진도 금골오층석탑 📍주소: 전남 진도군 군내면 금골길 58
진도 금골산 오층석탑(珍島金骨山五層石塔)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금성초등학교에 있는 고려후기 에 조성된 백제계 석조 불탑. 석탑. 보물.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금골길 58(둔전리) 금성초등학교
높이 4.5m. 석탑은 단층 받침돌 위에 5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리고 반구형(半球形) 돌로 상륜부(相輪部)를 조성한 모습이다. 석탑이 있는 곳에는 해월사(海月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하며, 지금의 위치가 원래의 자리로 추정된다.
바닥돌은 땅 속에 묻혀 있어 구조를 알 수 없다. 단층 받침돌은 4장의 널돌로 면석을 짜고, 각 면마다 모서리 기둥과 1개의 가운데 기둥을 새겼다. 받침돌의 덮개돌에는밑면의 쇠시리인 부연(副椽)과 윗면의 굄이 모두 생략된 채 아무런 새김을 하지 않았다.
1층 몸돌은 높이가 매우 높지만, 그 위의 몸돌은 낮은 편이어서, 체감을 주었지만 기형적으로 보인다. 몸돌의 각 면에는 별다른 새김이 없이 모서리 기둥만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몸돌에 비해 넓고 두꺼운 편이지만 각 층마다 그 모습은 약간씩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3층과 5층의 지붕돌에서 더욱 확연히 나타나는데, 받침이 1층·2층·4층은 5단인데 반해, 3층과 5층은 각각 4단과 3단이어서, 비규율성을 나타내면서 체감률에도 혼란을 보인다. 지붕돌 추녀 밑의 전각(轉角)은 가벼운 반전(反轉)을 보이고 있다. 다만 반전은 곡선이 아니고 추녀 아래부분을 비스듬히 잘라서 절단면이 3각을 이루는 이형(異形)이다. 머리장식인 상륜부는 후대에 보충한 것으로 보이는 반구형 돌을 제외하고는 다른 석재가 없는 상태이다.
이 석탑은 백제계 석탑을 계승한 것으로, 1층 몸돌이 지나치게 길고 각 층의 지붕돌이 길고 넓어서 조형미를 갖추지 못한 듯 보인다. 곧 백제계 석탑으로는 가장 남쪽에 건립된 석탑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조성 시기는 돌을 다듬은 수법이나 각 부분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 말기로 추정된다. 진도 망금산 관방성 전라남도 기념물 제204호 진도 망금산 관방성(珍島 望金山 관방城)은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망금산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성이다. 2002년 7월 13일 전라남도의 기념물 제204호로 지정되었다.
망금산성은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에 있는 망금산(높이 111.5m) 정상에서 동남쪽 500m 밑의 허리에 있는 작은 봉우리(67m)에 있는 성이다. 성의 둘레는 460m이며, 서쪽이 동쪽보다 높은 서고동저형(西高東低型)의 테뫼식 해협 관방성으로 도랑을 판 흙과 막돌을 섞어 쌓고 외벽을 깎아 접근이 어렵도록 되어 있다.
망금산 관방성은 명량대첩의 역사현장이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곳은 당시 전쟁에 이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관방 유적이며, 성안에서 백제 와당이나 신라 토기를 수습한 점, 그리고 많은 성 가운데에서도 물목을 지키는 관방성이라는 점에서 지리적으로 중요하여 보존하고 보호할 가치가 크다. 조선시대 임진·정유란 때 강강술래를 했던 곳이라 전하고 있으나, 경사를 이루고 있는 지형여건 등에서 보면 고증하기가 어렵다.
이 성은 그보다 훨씬 전에 축성하여 관방유적으로 기능했기 때문에 관방성으로서의 지리적 중요성이 있다. 충무공 이순신이 진도를 남도(南道)의 요충(要衝)이라 하였고 조선선조 때 판중추부사 유두수가 진도를 ‘가장 중요한 관방지역(最爲緊關之地)’이라 한 점, 『동국여지지』에 ‘해로요해지지(海路要害之地)’라 한 것은 울두목(咽喉之地)을 이른 것이다. 망금산성은 이 울두목을 지키기 위한 관방성으로 통일신라시대 축성 이후 고려∼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관방유적으로 기능을 하여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참고자료: 진도 망금산 관방성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진도 망금산 관방성(珍島望金山관방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