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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본질: '바라'는 기존에 존재하던 재료를 가지고 무언가를 조합해내는 공작 활동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 즉 ‘무(無)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아무리 뛰어난 예술가라 할지라도 흙이나 물감, 음악적 노트라는 '기존의 재료'가 있어야 창작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이것은 '아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재료조차 없는 완벽한 허무와 차가운 혼돈 속에서 오직 말씀의 권능만으로 존재를 불러내셨습니다.
신학적 선언: 창세기 1장 1절에서 '바라'가 선포될 때, 이는 고대 근동의 우상 신화들을 단숨에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영적 폭탄이었습니다. 2강 2회차에서 다루었듯, 당시 바벨론 신화(에누마 엘리쉬)는 신들이 기존에 있던 괴물의 시체를 찢어서 세상을 만들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재료에 의존하시는 분이 아니라, 말씀 한마디로 우주를 새로 불러내시는 전능하신 유일신 '바라의 하나님'이시다"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2. 섬세하게 빚으시고 가꾸시는 은혜: '아사(Asah)'와 '야차르(Yatxar)'
반면에 ‘아사($\text{עָשָׂה}$)’라는 동사는 이미 존재하는 재료를 가지고 목적에 맞게 '가공하고, 빚고, 만지며, 만들어 내는' 행위를 뜻합니다. 이 동사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인간도 주어가 될 수 있습니다(예: 사람이 집을 만들다, 음식을 만들다).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하나님은 '바라'의 권능으로 우주의 거대한 틀을 선포하신 뒤, 그 안을 채우실 때 '아사'의 하나님으로 다가오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만들어 놓으신 빛과 어둠, 물과 땅이라는 재료를 정교하게 나누시고 배치하시며 '만드셨습니다(아사)'.
특히 창세기 2장 7절에서 사람을 만드실 때 쓰인 또 다른 정교한 동사인 ‘야차르($\text{יָצַר}$, 흙으로 빚으시다)’와 '아사'가 결합할 때 그 신학적 은혜가 절정에 달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먼 발치에서 말 한마디로 툭 던져놓으신 것이 아니라, 흙(아파르)이라는 재료를 직접 손으로 주무르시고 빚으신 뒤(아사/야차르), 그 코에 친히 생기(니샤마트 하이임)를 후하고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바라'가 하나님의 수직적인 절대 권능과 넘볼 수 없는 주권을 보여준다면, '아사'와 '야차르'는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수평적인 친밀함과 섬세한 사랑, 가꾸심의 은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3. 신약과 강단으로 이어지는 창조 동사의 완성
박사급 사역자는 이 두 원어의 격차를 구약에만 가둬두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도의 삶 속으로 정교하게 이끌어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을 때,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New Creation)**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여기서 '새로운 피조물'에 쓰인 헬라어 단어가 바로 구약 히브리어 ‘바라’의 완벽한 신약적 번역인 ‘크티시스($\text{κτίσις}$)’입니다.
구원은 내 인격이 조금 도덕적으로 리모델링되거나 개조된 상태(아사)가 아닙니다. 죄로 인해 죽어있던 내 영혼 한복판에,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 1절의 그 초자연적인 권능으로 아무런 자격도 없는 나를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바라(창조)'해 내신 영적 기적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의 삶을 하나님은 방치하지 않으시고, 토기장이가 토기를 다듬듯 날마다 말씀과 성령으로 빚어가시고 성화시켜 가십니다(아사/야차르).
[마스터 요약]
핵심 원리: '바라'는 오직 하나님만이 주어가 되시는 '무(無)에서의 초자연적 창조'를 뜻하며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나타낸다. '아사'는 기존의 재료를 가공하고 섬세하게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친밀한 은혜와 역사하심을 뜻한다.
실천 지침: 강단에서 설교할 때 성도들에게 구원의 본질을 선포하라. 우리의 구원은 내가 조금 착해진 개조(아사)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삶에 일으키신 초자연적 창조(바라)임을 선포하라. 절망과 혼돈(무) 속에 빠져있는 성도들을 향해 "창세기 1장 1절의 '바라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부러진 삶 한복판에 새로운 생명을 창조해 내실 것"이라는 무서운 말씀의 확신과 영권을 선포하라.
목사님, 창세기 1장과 2장의 창조 동사 속에 숨겨진 '바라'와 '아사'의 신학적 알맹이가 Ph.D. 세미나실의 밀도 그대로 완벽하게 주해 되었습니다! 이 원어적 뼈대를 알고 창세기를 읽을 때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동시에 얼마나 따뜻하신 분인지가 온몸으로 와닿습니다.
초지일관의 기세를 이어받아, 다음 단계인 3회차: 히브리어 '헤세드(Hesed)'와 '에메트(Emet)' - 구약 구속사의 두 기둥: 언약적 사랑과 신실함으로 넘어가서, 번역본에서 자비, 인애, 은혜로 흐려졌던 '헤세드'의 그 무거운 언약적 중량감을 강단 위에 완벽하게 복원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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