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이끄는 힘이 있는 교회(引力있는 敎會)
요한복음 14:6
홍제원교회
夫敎會使個人受福, 而個人傳之個人, 使成敎會也. 夫以何道以爲如是會集也. 其中必有所求也. 赴市之人欲得貨物, 朝往暮來絡繹不絶也. 然治理敎會多方盡力, 而人不來者何也? 紐育一財産家, 我欲不知多人, 使我成此願, 與償三百萬円云, 人欲求財錢, 人多求見此財産之人, 故如是爲言也. 自敎會多方盡力, 或曰設讚揚隊可引人, 人曰讚靈雖生欽慕, 然信仰則未也. 某敎會有讚揚隊, 擇男女之美貌者, 列立于壇上, 齊唱妙曲, 每於禮拜時, 如是助力, 其中有不潔事, 又有訟事乃罷之, 反貽害敎會者有之. 又設講演會, 請高明之師, 一週間傳道, 請多人問之, 願信者多至數千, 然無一人來敎者矣. 何也? 聞講時雖有興奮之心而定之, 然其後心冷不欲來敎, 壇上文學講說, 政治講說, 音樂會, 雖云必要, 然信仰則未也. 又曰建物狹窄, 不能引人, 某敎會投三十萬円, 建一石造禮拜堂, 其牧師以高俸邀之, 其卽神學博士,法學博士,哲學博士, 當世名譽赫赫之人也. 然每主日說敎時, 僅三百名會友中, 只讀說敎文已而, 其堂內設備, 則壇上有大風琴, 夏間有大扇風機, 門徒雖誇美聖京之聖殿, 而主曰石不置, 石盡壞之矣. 殿堂雖美, 於信仰無益. 然則引力何也? 主曰我路也,理也,生也. 人捨此三者而在世者未之有也. 人求此三者而或往佛敎, 或往天道敎, 或往儒敎, 然皆未足覺悟也. 人若知三者在敎會, 則人雖欲不來得乎? 桃李不言下自成蹊者以其有桃李之可食也. 讚揚隊如此三者而設, 講演會如此三者而設, 建物如此三者而設, 牧師如此三者而設, 捨此三者則皆非也. 三者非人力可發明, 故人爲之祈禱, 有聖神交通然後, 路也理也生也換復, 如明星預聖神之能力, 可以引人也. 彼天主敎不傳道而人爭往之者何故?
교회는 개인에게 복을 받도록 하는 곳입니다. 개인이 개인에게 전도하여 교회를 이룹니다. 어떤 방법으로 이와 같이 모을 수 있습니까? 그 가운데는 반드시 구하는 바가 있습니다. 시장에 가는 사람은 물건을 사기 위하여 갑니다. 그리하여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면 그 사이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교회를 이루고 여러 방면으로 힘을 다하여도 사람들이 오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뉴욕에 재산이 많은 어떤 사람이 ‘많은 사람들을 알고 싶지 않은데 이 소원을 해결해 주는 사람에게는 삼백만 엔을 상금으로 주겠다’라고 하였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이나 돈을 구하기 위하여 이 재산가를 보려고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한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교인들을 모으려고 힘을 씁니다. 어떤 사람은 ‘찬양대를 설치하면 사람들을 끌 수 있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영혼을 찬양하게 되면 존경하고 흠모하는 마음은 생기지마는 신앙은 아니라’고 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찬양대를 두어, 남녀 간에 미모를 가진 단원을 뽑아 단 앞에 나란히 세우고 아름다운 노래를 합창시켰습니다. 그리하여 매번 예배할 때 이와 같이 힘을 보탰는데 그 중에 불결한 사건이 생기고, 또 송사가 일어나기까지 하여 파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교회에 도리어 피해를 끼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어떤 교회는 강연회를 열어서 고명한 선생을 불러다가 한 주간 동안 전도를 하게 한 뒤에 많은 사람들을 청하여 “신앙을 믿겠다”고 한 사람이 수천 명이나 되었으나, 그 뒤 한 사람도 교회에 오는 자가 없더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강연을 들을 때는 비록 흥분한 마음이 생겨서 믿겠다고 결정하였으나 그 뒤에 마음이 냉정하여져서 교회에 오지 않으려고 한 것입니다.
단상에서 문학 강설이나 정치 강설이나 음악회 같은 것을 하는 것이 비록 필요하다고 하나 신앙에 대하여서는 아닙니다. 또 건물이 협착하여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못한다고 하여 어떤 교회에서는 삼십만 엔을 투자하여 석조 건물로 예배당을 짓고 그 교회 목사님을 많은 봉급을 주어 모셔 왔습니다. 그 목사님은 신학박사에다가 법학박사이고 철학박사로서 당세에 명예가 아주 혁혁한 인사였습니다. 그러나 매 주일 설교할 때에 겨우 삼백 명 교우를 모아놓고, 설교문을 읽을 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교회당에는 단상에 큰 풍금이 있고 여름에는 큰 선풍기가 돌아가도록 설치해 놓았습니다. 제자들이 예루살렘[聖京]의 성전의 아름다움을 찬양하였을 때, 주님은 ‘성전 돌들이 다 부숴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신앙에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인력(引力)은 무엇입니까?
주께서 ‘나는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 가지를 버리고 세상에 사는 자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세 가지를 구하려고 어떤 이는 불교를 찾아가고, 어떤 이는 천도교에 가고, 어떤 이는 유교를 따릅니다. 그러나 이는 다 깨닫는데 부족합니다. 사람들이 이 세 가지가 교회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 아무리 교회에 가지 않으려고 하더라도 안 갈 수 있겠습니까?
복숭아와 오얏이 말하지 않아도 그 나무 밑에는 저절로 길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이는 복숭아나 오얏이 따 먹을 수 있는 과일이기 때문입니다. 찬양대도 이 세 가지를 위하여 설치하고, 강연회도 이 세 가지를 위하여 열고, 건물도 이 세 가지를 위하여 세우고, 목사님도 이 세 가지를 위하여 존재합니다. 이 세 가지를 버린다면 다 잘못된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사람의 힘으로 발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위하여 기도하여 성신과 교통한 후에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변하여 돌아옵니다. 샛별과 같이 성신의 능력을 나타내 보여야 사람을 끌 수 있습니다. 저 천주교는 전도를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다투어 가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