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옥 자
2001년『심상』등단
시집『사랑, 그 당당함에 대하여』외
깔창과 오금
늘 춥고 눈이 내리는 노량진역 오버브릿지
저벅저벅 걷는 사람들 뒤에서 조촘조촘
저 사람들 깔창은 타고날 때부터 저벅, 이었나
내 깔창은 타고날 때부터 조촘, 이었나
저벅과 조촘, 그 사이를 생각하며 걷는데
아, 이건 정말 나쁘다 아기를 깔창으로 쓰다니……
아기를 업은 아낙이 파란 플라스틱 바구니를 앞에 놓고 엎드려 있는 거야
사람들은 저벅저벅 지나가고
세상은 사정없이 눈을 퍼붓고
아기는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내 조촘은 그 앞에서 오금을 못 펴고 조촘조촘
아기의 볼이 산수유처럼 붉어 눈물이 났어
한참을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던 아기는 지쳤는지 엄마의 등에 얼굴을 묻고
플라스틱 바구니 밑으로는 여전히 바람이 새고
추웠지
바구니에 조촘조촘 내 꼬깃한 지폐를 깔창으로 댔어
-여보세요 일어나세요 아기가 힘들어요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아낙이 허리를 폈어 아기도 그제야 얼굴을 들더라고
-일어나세요 눈이 너무 많이 오잖아요 아기 머리가 다 젖었어요
아낙은 구부렸던 시간이 오래 되었는지 오금을 펴는데 한참이 걸렸어
아낙의 오금이 펴진 걸 보고 내 오금도 길을 재촉했어
조촘조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