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은혜로운 향기 원문보기 글쓴이: Gideon
대심방 설교자료 모음(8)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가
고전 15:50-58
김삼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모두에게 몇 가지 큰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이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시고 구원하신다”는 수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② 주님의 부활은 우리 인간에게 사망과 생명의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는 사망이 왕 노릇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망은 패배
하고 마귀는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전능한 왕
이 되셨습니다. 만왕의 왕으로 지금 우리를 다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를 믿고 그에
게로 가면 생명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를 믿지 아니하면 누구든지 죽습니다. 사람들은
무덤을 넘을 길이 없습니다. 죽음을 극복할 어떤 길도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살아
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빈 무덤을 자랑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때 그
로 말미암아 우리는 생명을 얻을 수 있으며 영원한 나라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③ 주님은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부활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
며 한 분의 부활만이 우리에게 소망이 있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습니다. 바로 주
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④ 우리는 부활 신앙으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저주와 어두움과 불의
에서 떠나서 주님과 함께 빛과 진리와 믿음의 삶,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사망이 지배하는 곳에서 나와 활짝 핀 새 생명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부활 신앙으
로 이 세상을 살 때 우리는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의의 승리요, 하나님께서 승리하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
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기시었습니다. 진리가 이기며 말씀이 이기었습니다. 인간의 어
떤 힘으로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로마정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
람들을 핍박하고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옥에 가두고 죽였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예수 그
리스도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많은 현대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
리고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부활하시사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과 함께 승
리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명성교회목사 >
일평생 여호와 앞에
왕상 15:9-15
김창인
1. 정직한 생활(9-12)
성경은 다윗의 정직한 생활을 간단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다윗이 헷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
니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왕상 15:5). 성경이 말하는 정직은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 또
는 바른 관계를 의미하는데 그 정직의 본보기가 다윗입니다. 세상에 정직하다는 사람은
많아도 결코 똑같지는 아니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정직한 사람이 다윗입니다.
본문에 보면 “아사가 그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여”라고 기록하였습니
다. 아사왕은 여호와 앞에 정직함 때문에 남색하는 자들과 우상숭배자들을 소탕하였습니
다. 그 정직함은 다윗을 본받은 정직이었습니다. 일평생 하나님 앞에 정직해야 하겠습니
다.
2. 정리의 생활(13-)
예수께서 어느 날 가버나움 세관 앞을 지나가시다가 마태를 보고 나를 따르라고 부르셨
습니다. 마태는 자기 집에서 잔치를 차리고 세리와 죄인들을 초청했습니다. 청하지도 아
니한 바리새인들도 참석했습니다. 마태의 잔치는 그 날로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주변을
정리하는 잔치였습니다. 직장을 버리고 친구들과 결별하는 주변정리의 자리였습니다. 우
리는 항상 주변을 정리해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그 모친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
고 그 우상을 찍어서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습니다. 아사는 아버지와는 달리 신앙을
정립하면서 주변을 정리하였습니다. 주변정리가 우선 입니다.
3. 성별의 생활(14-15)
하나님께서는 에덴을 만드시고 그 한가운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었습니다. 모든
과실은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구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
역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은 먼저 구별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일주일에 엿새동안
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하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의
완성이 오늘의 주일입니다. 그러므로 일주일 중에서 주일을 성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얻는 것의 십일조는 하나님이 자기의 것이라고 하셨기에 성별해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저가 그 부친의 구별한 것과 자기의 구별한 것을 여호와의 전에 받들어
드렸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아사왕은 이처럼 일평생 하나님 앞에서 성별의 생활을 하
였습니다.
<광성교회목사>
예수 만찬
마 26:26-30
류철랑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저녁식사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알아차
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주님은 심각한 시간이었습니다. 잠시 후에 있을 가롯유다의 배신
과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몸을 떡으로, 피를 음료로 내 놓아야 하
는 고통의 시간이 점점 더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1. 떡, 예수의 몸
예수님은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26절)고 하
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요6:48)라고 하십니다. 초대 교회는 떡을 나
누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떡을 떼며 기도에 힘썼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행2:42, 46-47). 교회는 예수님의 몸을 먹고사는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인
은 그의 몸을 먹으며 삽니다. 우리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를 양식으로 삼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를 양식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2. 잔, 예수의 피
예수님은 잔을 주시며 “너희가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
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7,28절). 예수님은 인류를 죄에서 구
원하기 위해 자기의 몸을 버려 피를 흘리셨습니다. 어린양이 피 흘려 죽임을 당하므로
이스라엘 백성의 가정에 장자의 죽음이 비켜간 것처럼 예수님이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
리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피는 참된 음료로다”(요6:54,55)라고 하셨습니다. 피
는 능력이 있습니다. 죄사함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 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주시는 그 잔을 받아 마시는 것입니다. 참
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은 그 피의 잔을 마신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된 사람들입니다(계7:14). 예수의 피를 마시는 자만이 구원의 반열
에 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셨습
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생명의 떡이요, 피이신 예수
를 먹고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천동광교회목사>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
에4:13-17, 요19:28-30, 고전15:50-58
손인웅
성경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세력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해 나가도록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싸움의 대상과
방법과 결과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첫째로, 싸움의 대상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① 성경은 사탄(악령)을 가장 중요한 대적자(主敵)로 규정하고 있습니다(창3:1-2. 마
4:1-11. 엡6:12. 계12:9, 20:1-3, 7-10).
②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입니다. 이들은 사탄의 사주를 받든지, 사탄의 종노릇하는 사람
이나 집단을 말합니다(마16:23. 눅22:3. 엡6:12).
③ 자기자신입니다. 사람이 싸워야 할 대상 중에 가장 어려운 상대가 자기자신입니다.
사도 바울은 심각한 갈등 속에서 내적 투쟁을 하였으며(롬7:21-25), 자기자신을 쳐서 그
리스도께 복종케 하는 일을 계속하면서(고전9:27), ‘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하고 있
습니다.
④ 사망권세입니다. 다윗왕의 고백대로 죽음의 길은 모든 사람이 필연적으로 가야할 길
임에 틀림없습니다(왕상2:1-2. 히9:27. 롬5:14, 21).
둘째로, 어떻게 싸워야만 이길 수 있겠습니까?
① 악령과의 싸움은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마4:1-11. 엡
5:18).
②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엡6:17. 시119:165. 히4:12).
③ 쉬지 않고 성령 안에서 깨어 기도함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엡6:18).
④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마26:42. 빌
2:5-11).
⑤ 예수께서는 자기희생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쫓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
면 찾으리라(마16:24-25)’
셋째로, 그리스도의 승리가 인류와 창조세계에 어떤 결과로 나타났습니까?
① 인류의 구원이 가능해 졌습니다. (롬5:8-17).
②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셨습니다. (빌2:8-11. 계7:12).
③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승리의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요일5:4. 계22:5).
<덕수교회목사>
경건한 사람의 네 가지 습관
신 14:22-23, 행 10:1-8
이성희
에베소서 4장15절에는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경건한 사람은 자신의 영성을 위하여 노력하는
자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인이 성장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좋은 습관을 가진 그리스
도인이 자랍니다.
1. 기도하는 습관입니다.
성경은 기도의 습관을 강조합니다.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지 않겠다고 했으며, 예수님
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고 하였으며, 바울은 기도에 항상 힘쓰라고 하였으며, 무
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기도는 시작이 있지만
끝이 없는 것입니다. 루터는 너무 일이 많기 때문에 하루에 세 시간씩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2. 공부하는 습관입니다.
예수님은 배우라고 권합니다. 바울도 모든 사람에게 배우게 하라고 하였고, 배운 바를
행하고,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합니다. 공부하는 것도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유
대인들은 가장 현명한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서 배우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리처드
포스터의 말대로 학습하여야 할 두 가지 교과서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말이 있는 교과
서이고 다른 하나는 말이 없는 교과서입니다.
3. 헌금하는 습관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
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 합니다. 헌금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
며 약속한 대로 미리 준비하는 정성이 필요합니다. 고린도교회는 환난이 있을 때에 극
한 가난이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습관
이 되고 정성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연보가 될 수 있습니다.
4. 친교하는 습관입니다.
히브리서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
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
아 서로 교제하였습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습니다. 신약
의 교제는 단순한 사귐 이상의 참여의 의미가 있습니다. 서로의 일에 참여하는 것은 가
장 중요한 친교입니다. 이러한 습관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성장하며 성숙한 그리스도인입
니다.
부활의 주를 만납시다
눅 24:13-32
김갑식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
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저희가 서로 말하
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
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눅21:30-32)
오늘은 우리 문화권에서는 아직 미약하지만 세계의 3대 명절인 부활절입니다. 그런데 명
절의 분위기에 적합하게 부활의 주님을 믿는 신앙은 어떠할까요? 서방의 신학에서는 부
활의 주님을 잘 논하지만 잘 믿지는 않습니다. 부활을 아는 것은 쉬워도 믿는 것은 쉽
지 않습니다. 부활이 어떻게 인식되고 믿어지는가를 본문을 통해서 조명코자 합니다.
1. 육신의 감각으로는 만나지 못합니다.
본문은 엠마오로 가는 글로바와 한사람이 어떻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주님은 처음부터 그들과 동행하였
고(15절), 여인들이 부활의 증거를 제시했고(22절), 제자들이 확인했으며(24절), 미리
주님이 예언하셨을 뿐 아니라(마16:21), 천사들이 증거하기까지 했습니다.(23절) 그러
나 부활은 육신의 감각으로는 알지 못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2.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주님을 인식한 것은 주님이 자세히 설명했고(27절), 성경을 해
석하여 주셨을 때에 깨닫게 되었습니다.(32절)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
로 된 책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딤후3:15) 또한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
기 때문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롬10:17절) 이런 점에서 해석된 말씀인 설교는 중요합니다.
3. 성령의 역사로 만날 수 있습니다.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본문에서 두 제자들도 말씀을 풀어 주실
때에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시로 예루살렘으로 돌
아가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교육과 일반교육은 다른 것입니다. 그렇
기 때문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증인이 되라고”하지 않고, 성령을 받기 위하여 기다리
라고 하셨으며, 성령이 임하시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백운제일교회목사>
한 사람이 주신 선물
롬 5:14-15
김삼환
지난 4월 5일 2001년 프로 야구가 시작되었습니다. 특별한 것은 이번 개막경기에는 애
덤 킹이라고 하는 9살 난 소년이 시구를 하였습니다. 이 소년은 1995년 미국으로 입양되
어 간 아이인데 태어날 때부터 열 손가락이 붙어서 손가락을 펼 수 없었고, 다리가 썩
고 뼈가 굳어지는 병에 걸렸습니다.
부모가 고아원에 버렸는데 로버트 킹이라고 하는 미국의 젊은 부부가 이 아이를 입양하
였습니다. 몇 번의 수술을 거쳐 손가락을 분리하는데 성공을 했고 다리도 절단을 하고
더 이상 썩지 않게 하였으며 장애인들이 다니는 학교가 아니라 일반 학교를 보내었습니
다. 이 아이가 밝게 자라났고 하루에 두 시간씩 의족을 끼고 양아버지에게 코치를 받으
면서 야구를 했습니다. 이것도 매우 아름다운 이야기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
서 아무 소망 없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는 죄악으로 가득 찬 우리 인간을 위
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밝고 건강하고 희망이 넘치고 기쁨으로 살
아갈 수 있게 하신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본래 우리 인간은
죄인입니다. 시편 51편은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죄악된 길에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고 변화시켜 거룩한 길, 믿음의 길, 신령한 길
로 나아갈 수 있게 하신 것은 온전히 주님의 은혜인줄 믿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인간의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
셔서 세상의 어떤 재물이나 부귀가 아니라 죄 사함과 영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
이 우리 인간에게 생명이요 힘이요 능력이 되는 줄 믿습니다.
백여 년 전 우리 나라는 우상숭배와 온갖 미신이 가득하였고, 무지하였고 말할 수 없는
가난 가운데 살아가던 절망의 땅이었고 저주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
님의 종들을 이 땅 위에 보내 주셨습니다. 선교사들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 나라는 아
침해가 떠올랐습니다. 저주와 불행이 떠나갔습니다. 지하자원이나 많은 농토를 가지고
여러가지 좋은 조건을 가진 나라들이 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선물 받
은 개인이나 가정이나 민족이 잘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굳센 믿
음 위에 서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가 샘물처럼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명성교회목사>
부활의 복음
눅 24:34-35
김창인
1. 구원의 복음(34상-. 요20:1-18)
요한복음에 의하면 부활하신 주님은 가장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녀
는 재산이 많았으나 일곱 귀신이 들려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했던 여자였습니다. 모든 사
람의 구경거리요 조롱거리였으나 때 마침 예수님을 만나 온전히 예수로 인하여 고침을
받았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예수님이 전부였었는데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부활하신 날 아침에 누구도 안
찾는 무덤을 찾았다가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부활은 구원의 완성인지라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활은 구원의 복음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이 복음을 온 세상에 가장 먼저 전했습니다.
2. 변화의 복음(34하-)
베드로는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세례요한의 제자로서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동
생 안드레의 인도로 예수를 만났고 갈릴리바다에서 예수님께 은혜 받고 제자가 되었습니
다. 그가 주님을 따르면 따를수록 예수님을 메시아로 확신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께 항상 앞장을 섰고 열심히 특심하였으나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그로 하여금 옛날
로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그 동안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리고 가야바의 궁전 뜰에서 실
수가 너무 많았습니다. 절망 중에 저지른 것들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는 사
람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본문에서는 “시몬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씀이 바로 그 말입
니다. 부활은 베드로에게 그의 인생을 변화시킨 변화의 복음이었습니다.
3. 재기의 복음(35-)
엠마오로 내려 가던 글로바는 12제자 중의 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글로바는 마리아의
남편인데(요 19:25) 마가복음에는 마리아의 남편이 알패오입니다(막 3:18). 마태복음에
는 그 마리아가 작은 야고보의 어머니입니다(마 27:56). 그렇다면 글로바와 알패오는 같
은 인물입니다.
결국 온 집안이 함께 예수님을 따르다가 아내와 아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는데 글로바는 낙심 중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다른 모양으로 나
타나셔서 성경을 풀어 줄 때에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그 때까지도 깨닫지 못하다가 저녁
식탁에서 기도하신 다음에야 주님의 부활을 깨닫고 본문에 의하면 즉시 일어나 예루살렘
으로 돌아갔습니다. 주님의 부활이 그들로 다시 일어나게 하는 재기의 복음이었습니다.
<광성교회목사>
충만케 하소서
롬15:13
김형기
우리 주 예수에 대하여 세례 요한이 증거했습니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
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 1:16).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이 넘쳐흘러서 그의 몸 된 교회와 주의 모든 종들에게 전이 됩
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일심으로 기도하더니 성령충만, 말씀충만, 은혜충만, 능력충만
을 받았습니다. 초대 교회 일곱 집사들도 주의 교회에 충성하더니 믿음과 성령과 지혜
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목회를 한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과 사랑이 충만했습니다. 뒤늦게 사도로 부름 받은 바울도 변화된 후에 온갖 신령
한 선물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1. 주여, 나를 충만케 하소서.
이 기도가 우리의 첫 번째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옵니다. 내가 그 아들이신 예수를 바라보고, 생각
하고, 사모할 때에 심령과 생활이 정결해지고 새로워지며 충만해 집니다. 내가 주님께
구하면 여러 가지 신령한 은사를 충만히 부어주십니다.
2. 우리 모두를 충만케 하소서.
나 혼자서만 충만해 하는 것으로는 온전하지 못합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온갖 좋은 것
들은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다 함께 누려야 할 신령한 보화들입니다. 우리가 다 바울 같
지는 못할지라도 구하고 또 구하면 여러 부분에서, 여러 모양으로 충만히 받아서 함께
더불어 누릴 수 있습니다.
3. 예수 안에서 모든 충만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믿음 충만, 성령 충만, 은혜 충만, 기쁨 충만, 사랑 충만, 능력 충만, 평강 충만, 소망
충만, 지혜 충만, 감사 충만, 진리 충만, 정의 충만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간절히 구한 바 있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
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주의 이름이 온 땅에 편만함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치고, 주의 오른손에
는 정의가 충만합니다.
우리는 성찬식을 통해서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나눕
니다. 부족하고 허물 많은 우리 각 사람의 심령이 정결해 지고 새로와져서, 오직 그리스
도의 모든 충만함으로 채워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경주제일교회목사>
너는 나와 상관없다
류철랑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귀신들린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가다라 지방에 들어가셨는데 무덤 사이에서 귀신 들린자 두 사람이 예수님 앞
에 나타났습니다. 귀신들린 그들이 예수님을 보고 소리 질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마8:28-29) 우리가 예수님을 원치 않으면 예수님이 아무리 우리를 원해도
관계가 맺어지지 않습니다.
둘째, 예수의 배반자들입니다.
배신자들은 예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가롯유다는 예수의 열두 제자중 한사람으로 3년
동안 예수를 따라 다녔던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은30에 팔아 넘겼습니다. 그후 예수께서 정죄 되는 것을 보고 뉘우치고
은30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갖다주며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라
고 하니 저희가 말하기를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마27:3-4)
고 했습니다. 배신자에 대한 뼈아픈 배신 선언입니다.
예수님과 상관이 있다는 것은 그분과 영적으로 결합되는 것을 뜻합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이 상관이고 붙어있지 않는 것이 상관없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
도 교회와 상관없고, 주님과 상관없을 수도 있습니다.
셋째, 씻겨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저녁을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
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수건으로 씻겨주셨습니다.
베드로의 발을 씻으려하시자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내 발을 절대로 씻기
지 못하시리이다”(5,6절) 그러나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
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8절) 하시니 베드로는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라고 합니다(9절). 예수님은 물로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예수는 우리
를 깨끗게 하시는 주이십니다. 하나님이 깨끗하다 하신 것을 사람이 속되다 할 수 없습
니다. 깨끗해야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됩니다(딤후2:21).
씻지 않고도 깨끗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쓰임을 받으려면 먼저 씻겨 주심을 받아
야 합니다.
<부천동광교회목사>
부활의 세 가지 의미
민21:7-9, 롬6:3-5
이성희
부활이란 ‘일어남’의 뜻을 가진 말입니다. 성경적 의미의 부활이란 낱말은 죽은 사람
의 몸과 영을 되살아나게 하는 하나님의 기적을 뜻합니다. 구약은 죽은 자가 어떻게 다
시 살 수 있겠느냐고 합니다. 특별히 부활이란 단어는 죽은 자의 부활이란 표현이 대부
분입니다. 부활은 죽은 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1. 영원히 사는 약속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시며 영원히 배고프지 않는 떡이십니다. 예수님은
부활이며 생명이시며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에녹이나 엘리야는 죽지 않고 승천하셨습니다. 죽
지 않는 법도 있지만 죽은 자를 위한 또 다른 법도 있습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살 수
만 있다면 죽는 것도 괜찮습니다. 사람은 다 죽을 것입니다. 죽어도 괜찮습니다. 또 죽
어야 합니다. 그래서 영원히 사는 부활의 은총을 받습니다. 이것이 약속입니다.
2.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우리의 죽음은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실 수 없는 죽음이며
우리는 죽을 수 없는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는 죽음이며 우리는 죄의 대가인 죽음
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죄의 대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길 수 있는 죽음입니다. 그 이
상으로 예수님은 죽음을 다스리시는 분이기 때문에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은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신 역사적 증언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빈 무덤의 냄새를 맡고
사는 사람들이라”라고 어떤 프랑스의 회의주의자가 말했습니다.
3. 우리가 다시 살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시 살 것입니다. 우리는 다 잠잘 것이 아니오 마
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사셨으므
로 우리도 다시 살 것입니다. 사도신경은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
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죄 사함이 없으면 몸이 다시 사
는 것이 없고 몸의 부활이 없으면 영원히 사는 것은 없습니다. 부활절 선물은 부활의 능
력에 대한 해답이요 살려주시는 은혜입니다.
<연동교회목사>
주님이 타신 나귀
막 11:1-11
김갑식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
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막11:9-11)
주님께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승리의
함성이 울리어 퍼지고 종려가지를 꺽어 주님을 환영하는 인파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
이 오
로지 힘에 겨워 주님을 태우고 가는 나귀의 모습에서 종려주일을 맞는 우리의 신앙적 자
세를 조명코자 합니다.
1. 주님이 타신 나귀는 어린 나귀입니다.
예수님은 스가랴 9장 9절의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나귀를 타셨고 또는 겸손하시어 어
린 나귀를 타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 없이 어린 나귀는 너무나 힘에 겨울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주님을 모시기에 힘겨워하는 우리를 사용하셔서 주님의 일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어린 나귀는 힘에는 겨웠으나 결코 쓰러진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용하실 때
에 충분히 아시고 능력을 주어 쓰신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2. 주님이 타신 나귀는 순결한 나귀입니다.
주님이 어린 나귀 즉 사람이 한번도 타지 않았던 나귀를 타신 것은 순결한 나귀이기 때
문입니다. 순결하신 주님은 순결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순결한 사람들이 주님
을 태워 다니기를 원하십니다. 세속에 때 묻지 않은 순결한 사람을 사용하시기를 원하십
니다. 비록 주님을 태우고 가는 길은 힘들찌라도, 주님을 태우는 일은 주님이 순결성을
인정하신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기뻐해야할 것입니다.
3. 주님이 타신 나귀는 주님의 나귀입니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의 원전의 뜻은 “그의 주인이 쓰시겠다 하라”입니다. 이 말씀
은 주님의 것을 주님이 쓰신다는 뜻입니다. 이런점에서 주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주님의
것이라는 분명한 증거를 얻은 것입니다. 나귀가 메어 있던 벳바게는 “익지 않은 무화
과 나무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아직 익지도 않은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완전히 익은 자 같
이 쓰심을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백운제일교회목사>
사역의 은혜
마 21:12-17
김창인
1. 갱신의 은혜(12-13)
오늘의 본문을 보면 종려 주일에 성전에서 되어진 사건입니다. 즉 성전 안에서 소와 양
과 비둘기파는 사람들을 전부 내어쫓았습니다. 그리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전부 둘
러엎으시고 쏟아버리셨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제사장들과 결탁하여 강도나 다름없는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종교행위를 여지없이 짓밟았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으로 성전이 되게 하셨고 예배로 예배가 되게 하는 갱신의 은혜였습니다.
2. 치유의 은혜(14-15상)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
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라고 바울은 말했습니
다(롬1:16). 사람 차별은 없다는 뜻인데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고쳐야 할 정서적으로
큰 병중의 병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 주시니 대제
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교권주의자
들은 장애인들의 성전 출입을 제한하였습니다. 즉 차별병에 걸린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
은 그들을 고쳐 주셨고 차별병 역시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부터 베푸신 내적 외적 치유의 은혜였습니다.
3. 말씀의 은혜(15하-17)
신앙생활에서는 말씀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해석을 잘못할 때 문제가 되곤 합니다. 사이
비 이단이 여기서 나오고 교황무오설과 같은 엄청난 오류를 지금까지 범하고 있는 것입
니다. 사람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오류가 없다는 교리는 성경이 아닙니다. 성경을 모르
면 허튼 소리를 한다는 것이 본문입니다.
성전 안에서 어린아이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찬미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분노를 나타내며 예수님께 대들었습니다. 예수는 메시아
가 아니오 찬미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성경을 가지고 어린애기
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라는 말씀으로 깨우쳐 주셨습니
다.
즉 말씀을 바로 깨우쳐 주시는 말씀의 은혜였습니다.
<광성교회목사>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왕상 18:41-46
류철랑
인간의 공통적인 실패 원인은 인내와 끈기의 부족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기도로 성취한 성공을 보여줍니다. 그가 기도하면서 말했던 “일곱 번까지 다
시 가라”는 말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모릅니다.
1. 기도의 연상
엘리야의 기도는 상상하고 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지면에 비를 내려 주
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절). 엘리야는 비가 온다고 하신 하나님을 확신하고 있습니
다.
엘리야가 상상하고 있는 것은 비가 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3년 6개월 동안 가뭄이 계
속되고 있습니다. 마를 대로 말라버린 대지 위에 비가 쏟아지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름 한 점 없이 쨍쨍 가무는 맑은 날에 무슨 빗소리가 나겠습니까? 그러나 엘리
야의 귀에는 빗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는 것을 말하게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
하여 구원에 이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미래에 이루어질 것을 연상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기도의 끈기
엘리야의 기도는 끈기 있는 기도입니다. 끈기가 목표를 달성하게 하고 vision을 이루게
합니다. 그는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사이에 넣고” 기
도했습니다(4절).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경의와 겸손 그리고 열렬함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그는 기도한 후에 사환에게 말합니다.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 올라가 보고 온 사환의 대답은 “아무것도 없나이다”라
고 말합니다(43절). 그러나 엘리야는 또 다시 기도합니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기도해도 달라지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일곱 번째 또 기도합니다. 지면에 비를 내리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
기 때문입니다.
3. 기도의 성공
엘리야의 기도는 성공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일곱 번째 성공했습니다. 여섯 번이나 그토록 애타는 기도를 했지만 응
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곱 번째 기도하고 나니까 구름 한 점이 떠올랐습니다. 그 작은 구름이 큰비의
전조였습니다. 성공은 이긴 자에게 주어지는 최상의 포상입니다. 성공하기를 바라십니
까? 기도하십시오. 곤고함을 견디십시오.
<부천동광교회목사>
인생고의 의미
욥38:1-7, 42:1-6, 요9:1-12, 히12:7-11
손인웅
욥의 세 친구는 ‘하나님의 정의와 인간의 고통’을 인과응보라는 차원에서 일률적으로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인생고에는 많은 유형이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취급해서는 안됩니다. 욥이 당
한 총체적인 고통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경제적 손실에서 오는 고통이요, 둘째는 자녀들이 죽음으로 인한 고통이요, 셋째
는 자신의 육체적 질병으로 인한 고통, 넷째는 아내의 몰이해로 인한 고통, 다섯째는 친
구들의 비난과 곤경으로 인한 고통, 여섯째는 ‘하나님께서도 나를 버리시는가?’하는
영적인 고통이었습니다.
죄인의 고통은 인과응보의 법칙으로 쉽게 생각되지만, ‘의인의 고통’에 대한 문제는
그렇게 쉽게 설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은, 욥의 고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
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세 친구와 엘리후와 욥이 토론하는 장면을 보면서, 자신들의 그 많은 문제들을
스스로 풀어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욥에게 질문하시
고 욥이 응답하는 장면을 보면서 자신들의 근본적인 고난의 문제를 해결해 나갔을 것입
니다(욥38:1-7, 42:1-6).
욥기를 통해서 얻는 교훈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①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정의로우신 분이시며
② 인간은 불완전하고 유한한 존재이기에
③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시초를 인간이 다 알 수 없습니다.
④ 그리고 인간의 고통은 반드시 죄에 대한 형벌이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피
조성에 근거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고통은 반드시 동반되는 것이고, 그 고통의 정도
와 종류와 성격이 다를 뿐입니다. 대부분의 고통은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특별히 의인의 고통은 많은 교육적인 의미가 있고(요9:1-12), 대속적인 효력이 있어서
세상의 모든 병리현상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의인의 고통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능력까지도 발휘하게 됩니다(히12:7-11).
<덕수교회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