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소(蘇)의 백서(白書) 1948.11.25
소련은 11월 25일 밤에 파리 유엔정치위원회에 백서(白書)를 제출하였는데 미소(美蘇) 양국의 불합치 된 점을 지적하야 제출하였다. 북한의 정권을 모두 승인하는 스탈린 수상의 서한으로 유(由)하여 끝났다 하고 또 스타부 제국은 북한대표가 유엔정치위원회에 참가하여야 된다고 주장하고 그 내용은
1945년 12월에 모스크바에 미영소(美英蘇) 3외교의 결정서,
소련이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를 제의하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타스통신 성명서,
모로토트 소련 외교와 미국무장관 마샬씨 동차관(東次官) 로베르씨 사이에 발표된 서한
모로토트 서한은 한국문제에 관한 4대국 회의 개최를 위한 미국제안에 대한 1947년 9월 4일 부(附) 서한
1946년 9월 23일 뉴욕 유엔 개회 시 한국문제는 1947년 총회에 상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소련외교 대리인비빈스커씨의 연설내용,
미소(美蘇) 2국위원회 소련대표 스티코트씨는 한국으로부터 미소양군철수를 최초로 제안한 1947년 9월 26일 성명서.
미국대표 태도가 한국임시정부를 가능케 하였다고 주장한 1947년 10월 9일 부(附)의 마샬 씨에 대한 모로토트 서한.
1947년 10월 28일 유엔정치위원회와 금년( 10월 13일 유엔 총회에 대한 소련외교 대리 안드레 성명한 한국인민대표를 초청하자고 제안하였는데 유엔 한국위원단 설치를 반대하였고,
미소양국에 대한 1948년 4월 23일 부(附)* 북한대표자 연석회의(의 서한이 각의는 유엔 한국위원국의 5일 총선거 실시 계획을 반대하고 미소양군 철수를 실시하였고,
소련의 철병의지를 표명한 1948년 5월 7일 부(附)소련정부 성명서 및 동년 5월 23일 부(附)*성명서, 미군도 역시 철병하라는 요망을 표시한 북한최고인민회의 성명서 끝으로 소련 지원 하에 북한정책에 대한 스타린 정부의 북한 정권의 김일성 씨에 대한 1948년 10월 12일 부(附) 서한 등을 등초(謄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