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톡 게임을 하며 인생을 생각하다 - 윤성혜 -
스토리텔링 보드게임 '이야기톡'을 진행하면서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았다. 그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내 인생이라는 한 편의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유사점을 발견하였다.
1. 계속 결말을 생각해야 한다.
'이야기톡'에서 승리하려면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방해를 해도 나의 결말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플레이어 중 한 명이라도 나의 결말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승리하는 게 이 게임이다.
서로 자기 결말을 생각하고 소재카드를 내기 때문에 이야기는 얼마든지 삼천포로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삼천포로 빠진 이야기도 다시 나의 결말과 연관이 되게끔 잘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타고난 능력으로 카드 한 장만으로 나의 물줄기로 이야기흐름을 돌리는 사람을 도저히 이길 방법이 없다면 다음과 같은 방법도 사용해볼 만하다. 삼천포 중에서도 삼천포 이야기인 경우 그 이야기를 통째로 은근슬쩍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어쨌든 그 모든 방해를 이겨내고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다시 말하지만, 나의 결말을 계속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의 인생에도 어떤 결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만 듣다가 자신이 꿈꾸던 결말을 결국 흐지부지하게 만드는 걸 얼마나 많이 겪었던가. 당신도 언젠가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 꿈을 누군가가 빼앗는 것을 지켜보지만 말길 바란다. 그래서는 도저히 재미있는 스토리가 나오지 않는다.
게임의 룰을 잘 모르는 신입 플레이어의 경우, 받은 결말카드를 아예 엎어놓고 결말카드와 전혀 상관없이 전체 이야기를 신나게 만들어나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때는 남 좋은 일만 시킬 뿐이다. "지금 자기 결말로 이야기를 유도하고 있는 거 맞죠?" 하면 백발백중 "아!! 결말을 깜빡했다!" 라고 말한다. '내 인생'이라는 한편의 이야기를 써 나갈 때도 "아!! 결말을 깜빡했다" 라고는 말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소 진지한 교훈(?)을 생각해본다.~
2. 경청 &함께
다른 사람이 말한 이야기를 잘 들어야 내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 재미있게도, 게임에서 꼭 이기기 위해 나의 결말만 생각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게임을 진행할 수조차 없다. 게임을 하다 보면 다른 생각을 하다가, 혹은 주위가 시끄러워서 "앞에 @@이가 뭐라고 말했어?"라고 다시 다른 사람이 말한 이야기를 듣는 장면을 간혹 본다. 그러나 게임을 많이 해 본 사람일수록 경청해서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스킬이 늘더라. 그래서 여러 번 게임을 해본 사람들의 경우 각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유도를 하면서도 전체적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꽤 퀄리티 높은 경우가 많다.
작가들은 혼자서 대하소설을 짓기도 하지만 '인생'이라는 이야기는 혼자 쓰는 게 아니다. 내 친구가 한 말, 부모님이 한 말이 '내 인생 스토리'의 큰 줄기를 흔들어놓거나 아예 방향을 바꾸어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그러나 그것을 잘 듣고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때 더 재미있으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도 잊지 말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말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3. 왜?
이 게임은 부루마블처럼 어느 시점에 카드 한 장을 가져가야 한다거나, 100만원을 따거나 잃는다거나, 내 차례에 쉬어야 한다거나 하는 등의 명확한 룰이 없다. 단지 누군가가 말을 하고 그 말이 '어느 정도 수긍'가기만 하면 넘어갈 수 있다. 심지어 승패도 그렇게 결정된다. '어느 정도 수긍'이 되면 승자가 나온다. 그것이 이 게임의 묘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한 말이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카드를 물려야 한다. 그 때 다른 플레이어들이 이렇게 묻는다.
"거기서 갑자기 왜 아기가 등장해?"
"그 남자가 뜬금없이 할아버지에게 가는 이유가 뭔데?"
"가진 돈을 모두 잃었다면서 어떻게 바로 다시 부자가 돼?"
"왜?" 라는 질문이 없이는 '스토리'가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니모를 찾아서'의 감독 '앤드류스탠튼'은 "인간은 본능적으로 개연성이 없는 이야기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도록 태어났다"고 말했다.
우리 인생 이야기를 해 보자. 내가 중고등학생들과 수업을 하면서 "너희는 왜 학교를 다니니?" 하고 물어보았다. 쉰 명 중 서른 다섯 명은 "엄마가 다니라고 해서요. 안 다니면 안 되니까요" 라고 말했다. 열다섯 명은 "안 다니면 사회에서 도태되니까요. 안 다니면 인정받지 못하니까요" 라고 말했고, 다섯 명은 "저도 생각 중이예요. 제가 왜 다니는지" 라고 말했다. 분명 우리 아이들은 "왜?"라고 질문했었다. 단지 어른들이 대답하지 못해주었을 뿐.
"수학은 왜 공부해요?"
어른들이 대답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부터는 아이들도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이런 질문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은 커서 다음과 같은 질문에도 잘 대답을 못할 것이다.
"당신은 왜 그 회사를 다니고 있나요?"
"당신은 왜 5년 전에 그런 선택을 하셨나요?"
"당신은 왜 괴로워하고 있나요?"
"왜?"라는 질문에 익숙해지고 그 대답에 대해 생각해야 좋은 이야기, 좋은 인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4. 시작의 어려움
스토리텔링 보드게임 '이야기톡'을 접하기 전 사람들은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작문실력이 부족한데 이런 게임은 잘 못할 것 같아. '
'우리 아이와 같이 하면 내가 창의력이 부족하고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 들통날 것 같아 아이와 같이 하지 못하겠어. '
'아.. 머리써야 하는 게임같은데 나는 머리쓰는 거 싫은데..'
그래서 그 편견을 깨 드리고 겨우 시작을 하면 '첫번째 플레이어'가 된 사람은 또다시 다음과 같은 고민을 한다.
'어떻게 시작하지?'
'주인공을 누구로 하지?'
그래서 이 게임의 시작을 위해 좀더 디테일한 룰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몇 차례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야기톡' 연구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이 게임은 생각보다 쉽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금 어렵다면 우리가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의 3요소 '인물, 사건, 배경' 중에 하나로 시작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어떤 섹시한 여자가 있었어요"
"길을 걸어가는데 차 두대가 퍽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어요"
"비가 오는 날이었어요"
그러면 아마 다음 사람이 알아서 이야기를 이어나가줄 것이다.
우리 인생은 전체가 한 편의 긴 이야기이고, 그 속에 작은 이야기들이 프로젝트처럼 벌어진다. 작은 이야기는 우리 반에 전학온 누군가로부터 시작될수도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시비를 걸면서부터 시작할수도 있고, 시골여행지에서 시작할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시작'하는 게 어려워한다. 그 이야기가 재미없이 끝날까봐 혹은 그 이야기의 결말이 흐지부지될까봐. 그러나 '그냥' 시작해보라! 그렇다면 나 혼자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함께 그 이야기를 마무리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