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촌국민학교 8회 벗님들, 한 갑자 우정-잊혀 진 여인

[기원섭]

점촌국민학교 8회 벗님들, 한 갑자 우정-잊혀 진 여인

내 오래 전부터 특별히 좋아하는 가수가 하나 있다.

내 나이 또래의 여자 가수다.

그런데 그 얼굴을 모른다.

물론 알려고 하면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알 수도 있다.

그러나 알 생각도 안 했고, 알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알려고 하지 않았다.

오로지 내 아는 것이라곤, 그녀의 이름 석 자와 그녀가 부른 한 곡 노래가 그 전부다.

‘임희숙’이라는 여자 가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녀가 부른 노래로 내 아는 곡이라고는, ‘잊혀 진 여인’ 딱 그 한 곡뿐이다.

40여 년 전에 내 그 노래를 처음 들었다.

허스키한 음성으로 토해내는 그 처절한 외로움이, 물밀 듯 내 가슴을 파고들었었다.

질곡 같았던 지난날 내 삶을 그대로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은 그 노랫말 전문이다.

긴 잠에서 깨어보니

세상이 온통 낯설고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주는 이 없어
나도 내가 아닌 듯해라

그 아름답던 기억들이

다 꿈이었던가
한마당 달군 그 불길이

정녕 꿈이었던가

누군가 말을 해다오

내가 왜 여기 서 있는지
그 화려한 사랑의 빛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멀리 돌아보아도

내가 살아온 길은 없고
비틀거리는 걸음 앞에
길고 긴 내 그림자♪

나는 솔직히 같은 점촌초등학교 8회를 졸업했어도, 그 이름 모르고 그 얼굴 모르는 동기동창 친구들이 수두룩하다.

이름은 차치하고, 그 얼굴까지 낯선 친구들도 있다.

특히 여자 친구들은 더 그렇다.

1학년 때부터 6학년 졸업할 때까지 쭉 같이 다녔으면 몰라도, 나 같은 경우에는 남녀 반이 갈라지는 4학년 2학기 때에, 대구 수창국민학교에서 전학을 왔으니, 여학생들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어쩌다 동기동창 만남이 있다 해서 발걸음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낯선 친구 앞에서 우물쭈물 멋쩍어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번의 우리들 ‘한 갑자 우정’의 만남은, 바로 그런 멋쩍은 분위기를 깨볼 심산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세상사는 형편이 어려워서 그동안 잊고 잊혀 져 지냈던 친구들이었다.

그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내 문득 여 가수 임희숙을 떠올리고 그녀가 부른 ‘잊혀 진 여인’을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연상이었다.

전날 저녁에서 고향땅 문경 점촌의 황제예식장에서 한 판 잔칫판을 벌이고, 그 다음날 오전에는 문경새재 옛 과것길을 오르는 둥, 우리 만나는 그 이틀 내내, 앞으로는 잊혀 지내서는 안 되겠다고, 내 생각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