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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경 (天聖經) - 제4권 참가정 - 제 9 장 참된 자녀교육
1) 부모는 자녀에게 무슨 교육을 해야 하는가
부모는 아들딸에게 무슨 교육을 해야 되느냐? 지식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교육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하나되는 교육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좋아하는 어머니 아버지고, 또 어머니가 좋아하는 아버지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어머니고, 둘 다 좋아하는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어머니 아버지고,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는 나라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초에 아담과 해와도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 앞에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의 기원이 어디냐? 인간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모이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 아담과 해와의 가치기준 설정은 어디서부터 되어지느냐? 하나님의 사랑교육에서부터입니다.
그러면 사랑교육을 받는 데는 어느 때까지냐? 아버지가 아는 모든 가치의 기준을 헤아릴 수 있을 때까지, 다시 말하면 성숙할 때까지는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합니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기록이 성서에 없습니다. 사랑받았다는 얘기는 없고, 기분 나쁘게 타락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이거 산통이 깨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했던 아담과 해와는 사랑의 기준이 있었느냐? 없었다면 하나님의 이상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의 교육기준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가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서는 그런 교육을 못 받습니다.
이 땅에서 교육을 받고 살다가 가야 합니다. 이 땅에서 그 교육을 안 하면 큰일나는 것이요, 안 받으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그 교육이 무엇이냐? 천국은 심정의 세계입니다. 교리의 천국이 아니요, 교파의 천국이 아니라 심정의 천국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서 백성과 교인을 찾고자 하시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아들딸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어떠한 아들딸을 만들기 위해서냐? '내 마음이 이렇구나' 하면서 그 심정을 토로할 수 있는 아들딸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아담과 해와가 교육을 받으려면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되느냐? 부모와 자식간이니까 부모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가게 되면 어디까지나, 언제나 따라가야 합니다. 부모가 산에 오르면 산으로 따라가고, 골짜기로 내려가면 골짜기로 따라가고, 굴 속으로 들어가면 굴 속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언제나 부모와 같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아들과 떨어져야 한다면 떨어질 수 있겠어요?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보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분이기에 좋아해도 절대적으로 좋아합니다. '뭐 하나님,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고, 거 어디 있겠으면 있고 말겠으면 말고' 그러면 안 됩니다.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선집 51-71)
만일 하나님과 안팎으로 하나된 자리에 있으면 배우지 않고도 전부 박물군자(博物君子)가 된다는 것입니다. 연구해 가지고 아는 것보다도 더 그렇다는 것입니다. 천지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영계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인생살이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태어나는 모든 곤충 새끼도 나면 먹을 것을 찾아가는데, 만물의 영장이 배움으로 먹을 것을 찾고, 죽을 것 살 것 아는 것이 아닙니다. 척 벌써 대하면 알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멋진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이 못 된 것은 타락 때문입니다.
타락을 했을망정 주체와 대상 관계에서 본성은 역시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작용하는 이 사이에는 지금까지 쌓여 온 더러운 것들이 덮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빼어 버리면 점점 작용이 강해질 것입니다. 완전히 빼내 버렸다 하는 날에는 확 터지는 겁니다. 그럴 수 있는 길을 지금까지 인간들은 추구해 나왔습니다. (선집 56-153)
2) 부모는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진리의 내용이 무엇이냐? 진리의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를 대신할 수 없고, 진리의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자기의 남편을 대신할 수 없고, 또 자기의 처나 아들딸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진리 중의 최고의 진리가 무엇이냐? 그것은 부모요, 부부요, 자녀입니다. 그 이상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의 중심은 뭐냐? 사랑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고 볼 때, 최고의 진리의 중심은 무엇이냐? 사람들이 하나님은 진리의 본체요, 선의 본체요, 사랑의 본체요, 생명의 본체라고 하는데,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다 같은 말입니다. 진리가 성립되려면 사랑과 생명이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참된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자신의 생명 안에 진리에 대한 의욕과 욕망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욕망은 자신의 인격 기준과는 상대적인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핵심이 무엇이냐? 생명의 본체, 사랑의 본체, 진리의 본체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우리 인간의 아버지인 동시에 어머니입니다. 핵심은 부모입니다. (선집 21-183)
또 우리의 가장 귀한 유산이 뭐냐? 하나님의 사랑과 참된 부모의 사랑을 자녀에게 상속해 주는 것이 가장 위대한, 이 세상에 없는 상속입니다. 하나님을 잘 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다는 걸 잘 소개해야 합니다. 그걸 모르니까 하나님을 대신해 하나님같이 사랑하고, 하나님을 자기 부모로 대신해 찾을 수 있는 그런 부모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집 93-336)
우리 통일교회는 뭘 하자는 것이냐? '최고의 사랑을 위해서 죽자. 하나님과 인류와 세계를 위해 죽자'하는 것입니다. '이런 작용도 사랑을 위해서 시작됐고, 이런 방향도 사랑을 위해서 시작됐고, 이런 목적도 사랑을 위해서 시작됐다. 남자 여자도 사랑을 위해서 시작됐고, 어머니 아버지도 사랑을 위해서 시작됐고, 아들딸도 사랑을 위해서 시작됐고, 우주의 모든 것도 사랑의 선물을 위해서 시작됐다'하는 것을 가르칠 때, 이 이상의 교육이 없습니다. 이렇게 살고 간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 앞에 가기에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선집 93-191)
축복가정들을 보면 자기 2세들에게 '공부해라'합니다. 자기 아들딸에게 공부하라고 해서 그 아들딸이 효자가 되고 충신이 되는 게 아닙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통일교회에서 어머니 아버지는 고생을 했지만 나는 그런 길을 안 가!' 이럴 수 있습니다. 그걸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랑의 도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가 아들딸을 끌고 다니며 밥을 굶으면서도 동네를 사랑하고,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눈물짓고, 이런 것이 철모를 때는 나쁜 줄 알았지만, 철들게 될 때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제일이다'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자기 자식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 자식을 버리고라도 나라를 사랑하겠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고 인류를 구하겠다고 한 사실을 철이 들면 들수록 안다는 것입니다.
멋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자식을 염려한다고 그 자식들이 잘되지 않습니다.
사랑의 양식을 먹여서 키워야 합니다. 사랑으로 갈 수 있는 방향 감각을 가르쳐 줘야 합니다. 철이 들면 들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거기에서 황금판을 발견할 때, 한 점의 금밖에 없는 산인 줄 알았는데, 파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산 자체가 금덩어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선집 139-77)
3) 부모가 먼저 본을 보여 줘야 한다
자녀를 교육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실천해야 합니다. 부모가 모범이 되어 뜻 앞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부모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자녀들이 일언반구도 대꾸하지 않고 부모를 경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들이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늘의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가르쳐 주는 데는 부모가 먼저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자식에게 효도하라고 가르치기 전에 먼저 효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먼저 하늘의 법도에 따라 효자가 되고 효녀가 되어야만 거기에서부터 하늘의 전통적 효의 인연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가정에서 효도하듯이 너도 효도해야 되고, 아버지가 나라를 위해서 몰리면서도 투쟁의 역사를 엮어 온 것과 같이 너도 충신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선집 30-113)
부모가 자식에게 효도하라고 가르쳐 주어 가지고 효자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효도하겠다는 마음이 우러나오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을 두고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여기에서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아버지가 하는 대로 자식이 따라올 수 있도록 생활로써 자식에게 본을 보여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실천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선집 29-99)
자기 자식을 가르칠 때는 '너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만 하지 말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길을 거쳐서 뭐가 되라고 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책임을 다하고 형은 형으로서 책임을 해야 합니다. 누나는 누나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참된 남성, 참된 여성의 길을 갈 수 있는 인연을 가려 나갈 줄 아는,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여러분이 되어야 순리적인 노정을 거쳐, 한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이 생겨날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약 Ⅰ-1041)
부모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머니 아버지가 서로 사랑하는 것처럼 형제끼리 서로 사랑할 수 있게 가르치는 동시에 내가 나라를 사랑하니, 너희도 나라를 이렇게 사랑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다른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기도를 할 때에도 내가 이렇게 하니 내 자식도 이렇게 하도록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가 먼저 표준이 된 후에야 자식을 그러한 위치에 세울 수 있습니다. 자신이 먼저 그러한 위치에 서면 하나님은 자연히 그 자식도 그와 같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중심하고 그 방향을 돌려놓지 못하면, 영계에 가서도 책임 추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약 Ⅰ-1040)
여러분 가정에서 자식들이 우리 엄마 아빠는 세계의 어떤 왕궁의 왕이나 왕후보다도 훌륭하다고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또한 자식들에게 어머니 아버지의 사이가 천하에 없는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축복가정 여러분이 그런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어머니 아버지다'라고 할 수 있도록 자식들의 골수에 그 전통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세상의 부모들을 보면 자식들이 그 옆에서 '엄마 아빠 왜 싸워! 왜 싸워?' 하는데도 난장판을 벌입니다.
그때에 눈물을 보이지 않은 여러분의 가정에서 자란 자식들이 그런 세상의 모습을 보고 '과연 우리 엄마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이구나! 참으로 훌륭하고 거룩하신 분이구나'하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여러분은 자식들에게 본을 보여야 합니다. 자식들의 뼛골에서 흘러나오는 심정을 통하여 동경을 받을 수 있는, 부모의 인연을 세워 가지고 말없는 가운데 하늘의 가훈, 가법을 세워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자식들도 후대에 있어서 우리 엄마 아빠 같은 입장에 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약 Ⅰ-1042)
4) 부모는 친구 중의 친구요, 스승 중의 스승
사랑이라는 것은 어디서부터 오느냐? 사랑은 자기로부터 오는 법이 없습니다. 사랑이란 상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상대가 없게 될 때는 사랑도 올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 보면 남자 앞의 여자도 상대적이요, 또 부모 앞의 자식도 상대적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을 '삼대상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삼대상 사랑을 체휼하지 못한 자는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다는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만들어 놓고 좋아했듯이, 나도 아들딸을 낳아 놓고 그 만큼 기뻐하자' 이것이 통일교회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지어 놓고 '이제부터 세계를 주관하겠구나. 우리 집이 세계 중심 가정이 되겠구나. 어서 커라 어서 커라'하면서, 희망을 가지고 보호 육성하는 가운데 기쁨과 만족을 느끼면서, 그들이 자라서 결혼할 날을 바라시던 것이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버지 어머니는 아들딸을 잘 길러 훌륭한 상대를 골라 좋은 부부를 맺어 주어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좋은 부부를 맺어 주면 그 집이 흥하는 것입니다.
친구 중의 친구가 누구냐? 이웃 동네의 더벅머리 총각이 자기 아들딸의 친구가 아닙니다. 친구 중의 친구가 누구냐 하면, 바로 아버지 어머니입니다. 이렇게 돼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친구보다도 더 좋아하는 부모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친구 중의 친구요, 스승 중의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야야, 너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하고, 선생님은 '야 이놈아, 안 하면 종아리 때린다. 그렇게 하면 안 돼' 하면서 교육하면 안 됩니다. 사랑의 교육을 해야 합니다. '야 야, 너 그러면 되겠니?' 하면 '그래, 내가 이렇게 하면 아버지 어머니가 슬퍼하니까 안 되겠지'라고 할 수 있게 교육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는 자식의 친구 중의 친구요, 스승 중의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에덴동산에 있는 아담과 해와에게 친구가 있었어요? 아담에게 친구가 있었다면 해와밖에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천사장하고는 친구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천사장은 종입니다. 그런데 잘못 친구 삼았다가 망한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는 스승 중의 스승이요, 친구 중의 친구요, 사랑 중의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하나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결국 상대 사랑도 누구로 말미암은 것이냐 하면, 부모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야 야, 너희들이 좋아하는 것은 너희들 때문이 아니라 부모의 은덕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라고 할 때 자녀들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이렇게 길러 이런 상대를 얻어 주지 않았다면 큰일날 뻔했다' 이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결혼은 낙방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교육은 누구로부터 받아야 되느냐? 부모로부터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하나되어 비둘기같이 재미있게 구구구구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본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야,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저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니까 나 혼자는 외로워. 나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같이 구구구구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상대가 필요하다.'
이렇게 돼야 되고, 부모는 그렇게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아들딸들이 아버지 어머니가 하던 놀음을 반복하게 되니 세계는 선한 세계가 되는 것이요, 인류역사는 선한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이것을 하자는 것입니다. (선집 57-119)
5) 사랑의 채찍
요한계시록에 보면 차든지 덥든지 해야지 미지근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세계에서 미지근한 태도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면 매를 들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기를 때 사랑을 주었는데도 잃어버렸을 때는 차갑게 대해 줘야 할 때도 있습니다. 잘못했을 때 여러분이 꾸지람을 안 해주면 자식들은 분별력을 잃게 됩니다. 선생님이 좋아 보여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악에 대해서는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선에 대해서는 몇천 도의 용광로처럼 뜨겁습니다.
최근에 미국의 어느 학교에서 선생이 학생을 때렸다는 이유로 감옥에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미국은 이제 망했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진해서 때려서라도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 달라고 해야 합니다.
한국의 속담에 미운 사람에게는 떡 한 개 더 주고, 예쁜 사람에게는 매를 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올바른 전통을 이어가게 하기 위해서는 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의 채찍이 아픈 것을 잊고, 그 사랑 앞에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사람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상금을 주는 것이 아니고, '이 녀석아, 왜 그랬어?' 하고 도리어 혼을 내게 됩니다.
이웃 동네 총각 같으면 잘못해도 모르는 체 하겠지만 자기 자식 같으면 '종아리 걷어!' 해 놓고 때리면서 '이 녀석아 그것 잘한 거야, 못한 거야?'라고 하게 됩니다.
그것은 때리는 것보다도 더 많이 생각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주는 것보다 더 때리면 그것은 죄입니다. 자기가 생각해 주는 것보다 더 때리면 원수가 됩니다. 원수 중에도 큰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몽둥이를 든 것보다 더 사랑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때렸다가는 전부 다 깨져 나갑니다.
그렇지만 그 이상 사랑하는 자리에서 때리면 괜찮습니다. 즉 사랑을 열만큼 하고 다섯만큼 채찍으로 때리면, 다섯만큼의 사랑이 남아 있으니까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자식을 회개시키기 위해서는, 옛날 사랑하던 그 사랑보다도 더 큰 사랑을 갖고 나타나서 사랑하게 되면, 그 불량배 같은 자식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식에 대해서 자기가 길러온 공을 자랑하면서 자식을 세 번만 나무라면, 그 자식은 보따리를 싸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자식에 대해서 뼛골이 녹아나는 눈물을 흘리며 더 큰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게 될 때, 그 자식은 돌아서는 것입니다. 더 큰 사랑은 작은 사랑을 전부 다 소화 통합시킬 수 있는 주동성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자식이 피곤해 한다고 공부하지 말라는 부모는, 진짜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매를 때려서라도 잠자지 말고 공부하라고 해야 합니다. 왜 그런가? 지금 잘되자는 게 아니고 미래에 잘되자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미래에 큰 꿈을 걸고 그러는 것입니다.
자녀를 낳고 기르는 데에 있어서 참사랑으로 낳고 길러야 합니다. 그리하여 가정이 하나되고, 가정을 중심삼고 나라를 사랑하면 그를 애국자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자식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교육을 시키고 올바르게 크라고 '사랑의 매'를 들기도 합니다. 잘못했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꾸중을 듣거나, 매를 맞았다고 하여 불만을 갖거나 항의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교훈으로 삼아서 은연중 자중하면서 반성하고 고군분투 노력하여 잘못된 점을 고쳐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바르게 성장하여 하나님이 계시는 센터에 접근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성약Ⅰ-1027)
6) 공부는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인가
공부하고 싶어서 학교 가는 학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전부 다 처음에는 할 수 없어서 다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초등학교 학생들은 부모가 무서워서 할 수 없이 다니는 것이지, 공부하고 싶어서 다니지 않습니다. 맨 처음에는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이 다니다 보면, 나중에는 그 맛을 알고 배우기 위해서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 아버지가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맛을 느끼고, 그런 자극적인 내용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는, 공부하는 데에 재미를 붙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재미라는 한 자체를 두고 볼 때는 나쁜 것입니다.
그렇지만 공부해 보니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거기에 맛을 들여 공부하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공부함으로써 자기가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선집 36-120)
학교 가는 학생을 대해 부모는 말하기를 '열심히 공부하라!'고 합니다. 그거 쉽지 않은 길입니다. 고통스러운 길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미래를 위해 준비하라는 예고입니다. 교수들이 단에 서서 제자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것도 미래를 위한 준비입니다. 농부가 논밭에 나가서 열심히 일하는 것도 미래를 위한 준비입니다. 이 나라에 천국을 건설하기 위한 준비입니다. (선집 147-205)
여러분은 학교에 무엇 때문에 갑니까?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여 어디에 쓰려고 합니까? 그것은 행복을 위해서일 것입니다. 행복은 사랑을 빼놓고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학교에 가는 것은 사랑의 길을 단축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행복의 문이 열릴 때, 그것은 결혼이라는 것입니다. 행복의 문을 열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은 매우 좋은 방법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공부가 돈을 벌기 위해서, 권력을 갖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잘못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공부는 참사랑을 할 수 있도록 배우는 것이어야 합니다. 처녀들이 대학에 가서 학사가 되려는 그 이유가 뭐냐? 좋은 신랑을 얻겠다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남자가 아무리 훌륭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의 가정이 하나되지 않았다면, 그 남자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성약 Ⅰ-372)
공부하는 것도 참된 남성을 만나 참된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라를 위해서 공부해야 하며, 남편을 참된 남편으로 모셔 참된 남편을 모시는 참된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내가 되지 못하면 참된 남편을 모실 수도 없고, 참된 아들을 가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여자는 참된 아내가 되어 한 가정의 주부로서 남편과 백년해로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집 잘 가기 위해서 공부한다면, 대학 출신들은 전부 다 부부가 백년해로해야 되지요?
그런데 백년해로하는 사람이 많아요, 이혼하는 사람이 많아요? 알아보나마나입니다. 일자 무식자들이 더 오래 잘 산다는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가 태어나서 오랜 교육기간을 거쳐 성숙한 인격자가 되는 것도 사랑의 이상적 상대자를 만나 행복한 생활을 갖기 위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요즈음 세상에서는 결혼의 상대자를 만나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훌륭한 상대자를 갖기 위한 것이고, 상대자와 아름다운 사랑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다 보면, 재물도 따르고 명예도 따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성약 Ⅰ-373)
7) 참된 부모와 스승의 가르침
부모는 자기의 아들딸을 위해서 일합니다. 자기가 먹기 위해 일을 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자식이 많은 부모가 농촌에서 혹은 노동판에서 힘든 일을 할 때, 가난하지만 지게를 짊어지고 김을 매고 밭고랑, 혹은 논에서 호미질을 하는 것은 천년만년 자식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부모의 이마에서 흐르는 수고의 땀방울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땀의 결실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더불어 엉키게 되면, 거기에는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밭에서 김을 매고, 노동판에서 지게질을 해도, 그의 발걸음에는 새로운 역사가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선집 25-97)
우리나라에 사천만 민중이 살고 있지만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에서도 그 누구보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10년, 20년 이상 지속되는 부모가 있다면, 거기에는 효자가 안 나올 수 없습니다. 아들과 딸들은 그 부모의 얼굴만 봐도, 손만 봐도 자기들을 위해 수고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뼛골에서 우러나오는 부모의 사랑을 느끼게 될 때, 거기에서 오랜 세월의 깊은 사연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처럼 자식으로 하여금 나라를 위해 공헌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 부모는 국가적인 부모, 혹은 세계적인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부모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려야 되겠다는 심정에 사무쳐서 공부하게 될 때, 새로운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그러한 감정과 느낌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공부를 한다 해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부모가 자식에게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를 위해 애쓰고, 너를 위해 수고하여 땀을 흘리는 것은, 나를 생각하지 말고, 이 나라를 더 사랑하라는 뜻에서이다' 하는 애국지사의 심정을 가지고 교육하면, 그런 부모 밑에서 사랑의 교육을 받은 자식은 부모가 원하는 애국지사가 되기 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그는 부모님의 사랑을 회상할 때마다 사천만 민족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민족을 위하는 입장에서 공부를 할 것이며, 자기의 민족이 비참함을 당할 때는 자기의 부모 이상으로 비참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입장에 선다고만 해서 애국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서 이루어 놓은 터전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국민이 천년만년 흠모할 수 있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다 지나갑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를 생각할 때 심각합니다. 여러분의 학교에 어떻게 하든지간에 자기 제자들에게 올바른 사상을 인계시키기 위해 애쓰는 스승이 있다면,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운명을 염려하면서 여러분의 손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권고할 것입니다.
'나를 위해 순응하지 말고 나라에 대해 순응하라. 나를 위해 잘하는 것보다 나라를 위해 잘하기를 바란다' 하고 말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그 스승이 이루지 못한 뜻을 이루어 놓을 것입니다. 이렇게 스승은 자기의 생애를 바쳐서 제자들을 위하여 정성들이고, 부모는 자신의 가치보다도 국가와 세계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자식을 위해 정성을 들이면, 그 스승의 제자와 그 부모의 아들딸들은 동량지재(棟梁之材)가 될 것입니다. (선집 25-98)
8) 세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교육
종교는 마루 되는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마루 되는 가르침은 인류를 가르치고 인류를 사랑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참된 부모는 자식에 대해서 세계가 좋아하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인륜은 부모를 사랑하고 부부끼리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여러분은 누구 때문에 부모를 사랑해야 하는가 생각해 봤어요? 누구 때문에 부부끼리 사랑해야 하며, 누구 때문에 자녀를 사랑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봤어요? 사랑하는 것을 책임져주시는 주인공을 잃어버린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최후에 남아질 것은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워하는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 때문에 사랑합니까?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때문에 사랑하는자, 죽어 보십시오, 어디로 가는지. 여러분이 자식을 낳아서 젖을 먹이며 귀엽다고 하지만, 누구 때문에 귀여워합니까? 그것은 하늘땅을 대신하여 귀여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 이 세계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귀여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따른 천륜의 운세는 세계를 넘어 천지를 포용하기 위하여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인연을 통해 태어난 아들딸을 나 때문에 사랑한다면 그것은 용납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품고 젖을 먹이는 아주머니들, 하늘땅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딸을 품는다는 사무친 심정으로 자기 아들딸을 품어야 합니다.
여러분, 복 받기를 원합니까? 영생하기를 원합니까? 그러려면 공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식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 내 아들딸로만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계인을 위한 제물적인 아들딸로서 사랑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식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일 때는 이 지구상의 인류를 대표한 어머니의 입장에서 인류를 대표한 어린아기에게 젖을 준다는 마음으로 먹여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식에게만 예쁘다고 젖을 먹일 것이 아니라, 남의 자식도 내 자식 같다는 심정으로 대하는 어머니가 되어 보십시오. 그런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라나는 아기들은 반드시 위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당장은 안 되더라도 1대, 2대를 거쳐 나가는 동안 반드시 그 후손 가운데 세계를 지배할 수 인물이 탄생할 것입니다. 이것이 공식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훌륭한 어머니들은 자식을 품에 안고,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선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어려운 입장에서도 참을 수 있어야 한다고 그 자식에게 가르칩니다. 그것은 어머니들이 선은 망하지 않는다는 천리를 통했기 때문입니다.
선은 무엇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겠습니까? 나 때문이 아닙니다. 밥을 먹는 것도 나 때문에 먹는 것이 아니라 천주 때문에 먹어야 합니다. 장가가는 것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뜻을 위해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목표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경험을 하는 것도 세계를 중심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멋이 없는 사람 같지만 멋이 있는 사람입니다. 70년 내지 80년의 눈깜짝하는 일생을 넘어서면 영원히 사는 길이 있는데, 인간은 그것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는 세계의 시간권 내에 들어가서 그 세계와 연결시킬 수 있는 길을 안다면 그 영원은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밥은 조밥을 먹고 옷은 비록 허름한 보자기 같은 것을 둘러쓰고 앉았더라도 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옛날에 집이 이랬을 때 이런 사람은 이렇게 이렇게 살아 이렇게 되었다'고 할 수 있는 폭 넓고 끊임없는 화제거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그곳에 있는 아이들은 우수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약 Ⅰ-1047)
첫댓글 부모는 아들딸에게 무슨 교육을 해야 되느냐?
사랑의 교육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하나되는 교육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모이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천국에 가서는 그런 교육을 못 받습니다.
이 땅에서 교육을 받고 살다가 가야 합니다.
천국은 심정의 세계입니다.
언제나 부모와 같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분이기에 좋아해도 절대적으로 좋아합니다.
아주!
감사합니다.
1) 부모는 자녀에게 무슨 교육을 해야 하는가
부모는 아들딸에게 무슨 교육을 해야 되느냐? 지식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교육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하나되는 교육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좋아하는 어머니 아버지고, 또 어머니가 좋아하는 아버지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어머니고, 둘 다 좋아하는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어머니 아버지고,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는 나라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초에 아담과 해와도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 앞에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의 기원이 어디냐? 인간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모이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 아담과 해와의 가치기준 설정은 어디서부터 되어지느냐? 하나님의 사랑교육에서부터입니다.
그러면 사랑교육을 받는 데는 어느 때까지냐? 아버지가 아는 모든 가치의 기준을 헤아릴 수 있을 때까지, 다시 말하면 성숙할 때까지는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합니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기록이 성서에 없습니다. 사랑받았다는 얘기는 없고, 기분 나쁘게 타락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이거 산통이 깨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했던 아담과 해와는 사랑의 기준이 있었느냐? 없었다면 하나님의 이상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의 교육기준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가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서는 그런 교육을 못 받습니다.
이 땅에서 교육을 받고 살다가 가야 합니다. 이 땅에서 그 교육을 안 하면 큰일나는 것이요, 안 받으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그 교육이 무엇이냐? 천국은 심정의 세계입니다. 교리의 천국이 아니요, 교파의 천국이 아니라 심정의 천국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서 백성과 교인을 찾고자 하시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아들딸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어떠한 아들딸을 만들기 위해서냐? '내 마음이 이렇구나' 하면서 그 심정을 토로할 수 있는 아들딸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아담과 해와가 교육을 받으려면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되느냐? 부모와 자식간이니까 부모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가게 되면 어디까지나, 언제나 따라가야 합니다. 부모가 산에 오르면 산으로 따라가고, 골짜기로 내려가면 골짜기로 따라가고, 굴 속으로 들어가면 굴 속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언제나 부모와 같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아들과 떨어져야 한다면 떨어질 수 있겠어요?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보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분이기에 좋아해도 절대적으로 좋아합니다. '뭐 하나님,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고, 거 어디 있겠으면 있고 말겠으면 말고' 그러면 안 됩니다.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선집 51-71)
만일 하나님과 안팎으로 하나된 자리에 있으면 배우지 않고도 전부 박물군자(博物君子)가 된다는 것입니다. 연구해 가지고 아는 것보다도 더 그렇다는 것입니다. 천지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영계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인생살이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태어나는 모든 곤충 새끼도 나면 먹을 것을 찾아가는데, 만물의 영장이 배움으로 먹을 것을 찾고, 죽을 것 살 것 아는 것이 아닙니다. 척 벌써 대하면 알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멋진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이 못 된 것은 타락 때문입니다.
타락을 했을망정 주체와 대상 관계에서 본성은 역시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작용하는 이 사이에는 지금까지 쌓여 온 더러운 것들이 덮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빼어 버리면 점점 작용이 강해질 것입니다. 완전히 빼내 버렸다 하는 날에는 확 터지는 겁니다. 그럴 수 있는 길을 지금까지 인간들은 추구해 나왔습니다. (선집 56-153)
고맙습니다*^^*
천지인 참부모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주
참부모님 감사합니다
아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