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정신의 우듬지
지독히 춥던 어느 겨울 저녁, 살어둠이 살짝 깃들기 시작할 때 산책로에서 그녀를 만났다.
“미술전시회 보고 오는 길이야.” 어디 갔다 오느냐는 내 물음에 그녀는 입김을 내뿜으며 말했다. 유명 음악회나 전시회를 혼자서 사부작사부작 찾아다니는 그 정신의 우듬지는 어찌 그렇게 우뚝 자란 것일까.
그녀 시어머님은 중풍이 들었는데도 아직 나이 많은 며느리를 아들 뺏은 적처럼 대한다. 남편은 바람기가 많은데다가 사업을 한답시고 늘 밖으로 돌며 집에 와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고 한다.
누군가를 향해 상처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으로 그녀 내면은 늘 활화산처럼 들끓고 있었다. 슬픔이나 분노나 적개심 따위 감정을 있는 그대로, 누군가에게 쏟아 놓을 수 있다면 그것도 복이다. 이고 지고 다니던 짐을 내려놓아야 구부린 허리를 펴고 앞을 제대로 볼 수 있고 손발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부여안고 있던 무거운 감정 덩어리들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결박당한 정신적 에너지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나를 만나면 주술에 걸린 듯 마음을 드러내는 것일까.
새로 이사 온 어떤 여인이 사람 좋은 그녀를 이런저런 이유로 졸지의 경우 없는 여자로 만들고 만다. 마음 넓고 경우 바른 그녀에게 왜 그럴까. 경우란 것은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이치, 사람 사는 데 있어 제일 평범한 이치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꿈꾸는 사람 사이 관계는 정의가 허공에 홀로 시퍼렇게 살아있는 사회가 아니라, 우리 사이의 경우가 윤활유처럼 흘러 우리 모두 나름대로 반듯반듯하고 소박하게 살 수 있는 사회이다. 이웃 여인에게 속절없이 상처받은 착한 그녀가 짠하다.
삶 속의 상처는 내면에서 푹 삭히고 발효시켜서 자분자분 뱉어야 할 텐데. 그녀는 항상 준비되어있는 사람처럼, 지난번 만났을 때와 똑같은 레퍼토리와 억양으로 똑같은 재료를 와르르 쏟아낸다.
상처를 치유하려면 문학으로 들어가서 털어놓는 것이 좋은 방법의 하나라는 것이 나의 경험이기에, 원래 책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월간지와 문학책을 한 아름 안겨주었다. 또 문학으로 가는 다리를 하나 놓아주려고, 한 톨도 없을 것 같던 내 시간을 닥닥 긁어내고 그녀의 소매를 잡아 끌어내어 여러 날 동안 인터넷을 가르쳐주었다.
이제 맘 좋은 시누이 닮은 그녀가 문학 속으로 성큼 들어와서 삶의 상처 하나하나에 딱지가 앉고 아물게 하고 거기 새롭게 별이 돋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녀 주위를 맴돌며 기다렸다.
“고등학교 때부터 책 읽기는 좋아했지만, 글쓰기는 정말 자신이 없어.”
그녀는 자신이 없다며 끝내 물러앉았다. 역사나 인문 서적을 탐독하고 음악과 미술을 좋아하는 박식한 그녀. 하지만 오랜 생활의 편린들은 이미 그녀 몸에 맞춤옷처럼 편안한지라 쉽게 새로운 일을 시도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사람 사이를 가깝게 바짝 끌어당겨 단단히 관계 맺게 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정서적 유대일 것이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서 치유할 수 있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그녀가 문학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기를 바란 내 생각은 애초에 가망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저녁 산책하러 나가려고 내려가니 그녀 특유의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도 그녀는 사람 사이에서 상처 입은 짐승처럼 가엾어 보인다. 나를 발견한 그녀는 만나자마자 또 자신의 권태를 끝없이 털어내기 시작한다. 딱 부러지게 거절을 못 하는 나로서는 다시 하릴없이 포로가 되었다. 내 시간은 숲처럼 무성하지 않아서 내 시간은 이렇게 방목할 수 없는데.
하지만 나 역시 어떤 날은 착한 그녀를 공원 같은 곳에서 문득 만나서 말 많은 늙은이가 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막상 그녀를 만나면 숙제를 미루어두고 놀러 나온 아이처럼 쓰다만 글과 접어놓은 책이 왠지 눈앞에 어른거려 온몸이 조바심으로 경련이 날 것 같다.
내 천성은 우유부단하여 이런 시간을 과감하게 뚫고 나가지 못한다. 사람들과 어울려 얼마를 더 살아야 내 마음과 내 시간을 딱 부러지게 끊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지? 집에 가야 하는데, 저렇게 잡아끄는 사람을 두고 어떻게 올라가지?’ 내 머릿속은 이미 다른 곳으로 흘러나와 유영하느라 그녀 말은 귓바퀴 밖에서 윙윙댈 뿐이다.
“나를 구해줘.” 나는 꾀를 내어 남편에게 SOS를 쳤다. 문자를 받고 득달같이 달려온 남편.
“뭐해? 늦었는데 기다릴 텐데. 빨리 가야지.” 그는 차를 가지고 와서 능청스레 말한다. 나는 잊고 있었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나 차에 탄다. 나의 비겁한 탈출기는 이렇게 막을 내리지만, 그녀는 그래도 짠하게 내 마음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