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구청 기독신우회 메시지
일자: 2023년 11월 1일 수요일
제목:
하나님의 형상
Imago Dei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https://youtu.be/z-bk8dUh7w0?feature=shared
성경이야기에 따르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고 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거의 모든 종교의 신전에는 신의 형상이 세워져 있다. 사찰의 대웅전에는 불상이 있고, 그리스 아테네의 산동네, 아크로폴리스에는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데 그 안에는 본래 처녀 아테나의 신상이 있었다고 한다. 사도행전을 보면, 에베소에는 아르테미스의 신전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거대한 신상이 있고, 그 신상을 만들어 파는 장인들의 조합이 있었다.
신상은 신의 형상이다. 그 신상을 거대하게 만드는 이유는 그만큼 그 신이 위대하다는 메시지이며, 신상을 화려하게 만드는 이유는 그만큼 그 신이 존귀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신상은 곧 그 신의 위엄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신전을 만드는 일에 자신이 가진 최고의 기술과 정성을 바친다. 그것은 모든 문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성경이야기를 보면, 하나님의 성전에는 신상이 없다. 솔로몬 성전에도, 모세의 성막에도, 하나님의 형상은 보이지 않는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며 거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본래 하나님의 거처는 에덴동산이다. 그런데 에덴동산에도 하나님의 신상은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위엄을 어떻게 나타내 보이실까?
성경 창세기는 이 질문에 대답을 한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을 나타내기 위하여 신상을 만들게 하지 않으시고 인간을 만드셨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어졌다.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세상에 나타내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어떤 방식으로 나타낼 수 있을까? 인간이 나타내는 하나님의 형상은 어떤 모습일까? 인간이 하나님을 나타내는 방식은 자신을 거대하게 만들거나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나타내는 방식은 하나님과 사귀면서 하나님을 반영하는 방식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면 그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세상에 나타내게 된다.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면 왜 하나님의 형상을 세상에 나타내는 것이 될까? 인간이 하나님을 섬길 때 인간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념하고 그 계명을 배운다. 하나님이 하신 일과 그 말씀에는 하나님의 성품과 뜻이 담겨 있다. 성경 이야기와 율법, 그리고 선지자의 글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가 담겨 있으므로 하나님을 사모하여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묵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몸에 익힐 것이다.
성경은 그처럼 하나님을 섬긴 사람들의 고백을 소개한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06:1, 107:1, 136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민수기 23:19
예언자들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후에 이렇게 정리하였다: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5:22~24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성경이 들려주는 하나님의 형상은 정의와 인자와 경건이다. 진실하고 따뜻하며 하나님께 복종하는 삶이 하나님의 형상이다. 신약성서에서 사도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소개한 것은 예수님이 바로 이런 모습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언행을 통해서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나타내야 할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셨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게 편지하기를 그들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자리를 잡기까지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말했다(갈 4:19).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고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용납하다가 그 길에서 돌이켜서 율법을 지킨 공로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서 자유를 잃어버린 것을 일깨워주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신앙에서 돌이켜 자신이 행한 일을 자랑으로 여기고 그것을 의지하는 곳에는 위화감과 차별이 자리잡게 될 것이다. 그런 모습은 이 세상 곳곳에서 이미 충분히 볼 수 있다. 그것은 빛이 아니라 어둠이다.
그러면 구원받은 인간은 어떻게 다른가? 인간이 구원받는 것이 무엇인지를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에베소서 2:1~6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인간의 상태를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것으로 표현한다. 그 말의 의미는 하나님의 원수처럼 살던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가 그 앞에서 살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 말을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서 함께 하늘에 앉게 되었다고 한다. 하늘에 앉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하늘에 앉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다시 서서 하나님과 사귐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게 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그 형상을 잃어버리고 죽음 가운데 살다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 하늘에 올려져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마음에 담게 되며 성경의 말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형상인 정의와 자비와 경건을 배우고 익히며 나타내는 존재가 된다. 그 세 가지 보물을 사도 바울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신의 은총을 입기 위하여 신상을 찾아가서 거기에 절을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사귀며 살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자기가 곧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며, 사람들은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을 볼 것을 확신한다. 그런 확신으로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정의와 자비와 경건을 실천한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 들려주는 참 인간의 삶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형상은 어린 아이의 귀여움이 아니며, 젊은 여성의 아름다움이 아니며, 젊은 남성의 우람함도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진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며, 그리고 어떤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런 삶을 실천하고 있다면 그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가장 밝게 빛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 그리고 그 형상이 가장 밝게 빛나는 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정의와 자비와 경건을 실천하셨을 때이다. 하나님은 이런 의도로 인간을 만드셨고 그렇게 함으로써 피조세계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하실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인 것을 깨닫고 확신하며 살아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