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중의 문화, 칠원윤씨 거제시 일운면 파종회(派宗會)의 ‘족계(族契)’>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우리나라 계(契)의 기원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계의 종류가 무척 많아졌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조사에 따르면 480여 종이나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표적 유형이 친족 간에 길흉사가 생기면 상부상조하는 족계(族契), 선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조직한 학계(學契), 관직 생활을 함께하는 관리들의 모임인 관계(官契), 동갑인 사람끼리 도움을 주거나 친목을 다지기 위해 만든 협동조직 갑장계(甲長契), 또한 마을의 공동재산 관리와 동제(洞祭), 농업협동(두레), 공동작업, 상호부조 등을 행하는 자치조직인 동계(洞契)는 대동계(大洞契)·이중계(里中契)·동중계(洞中契)·동리계(洞里契)·촌계(村契)라고도 한다. 그리고 상례를 대비하는 상포계(喪布契), 군포 납부에 대비하는 군포계(軍布契), 서로의 친분을 쌓기 위해서 하는 친목계(親睦契) 등이 있었다.
○ 다음 소개하는 자료는 1921년부터 1926년까지, 칠원 윤씨 동성동본 거제도 파종계(派宗契)의 족계서(族契序)와 더불어 곗돈(契錢)과 계원의 명단 그리고 그날 실제 빌려 준 곗돈(同日借給表 實在錢) 내역을 간단히 기록한 자료이다. 이 곗돈은 종친 간의 대소사는 물론이고 회원 간의 두텁고 화목한 정(情)을 나누는데 사용되었다. 이 자료는 다른 지역의 족계서(族契序)나 족계좌목(族稧座目)과 비교하면 아주 빈약하기는 하나, 거제도의 문중 문화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어 무엇보다 큰 의미가 있다. 한편 이 족계(族契) 자료에 등장하는 칠원 윤씨 회원들은, 직계나 부계의 후손들이 참여한 것이 아니라, 당시 파종(派宗)에 관계없이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동성동본 칠원 윤씨 종친(宗親) 모두가 참여한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거제도로 입도(入島)한 종친 분들의 선조(先祖)나 경로(經路), 시대가 다양했음을 보여준다. 참고로 이 자료는 거제시 일운면 소동리 윤동원 선생으로부터 입수한 것임을 일러둔다.
1) <족계서(族契序), 칠원 윤씨 거제도 씨족의 친목계 서문(序文)>
계약(契約)은 계약(稧約)과 같은 말이다. 정(鄭)나라 풍속에 상사(上巳 삼짇날)일에 진수(溱水)와 유수(洧水)에 사람들이 모여 물 위에서 난초를 띄워 목욕했다. 이는 상서롭지 못한 것, 곧 액운을 없애기 위한 행사였다. 그러나 후세에 그 명성만 취하고 그 의(義)를 잃어버렸다. 어찌하여 그 의미를 어기게 되었나? 우리나라 대부분의 계(契)가 거의 그렇게 되었다. 그 상서롭지 못한 것을 한마음으로 물리치는 것이야말로 상서로운 것이다.
대저 조상도 뿌리도 같은 (칠원 윤씨 문중) 모두 다,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孝友之道)는 물론, 일가친척 사이에 오가는 두텁고 화목한 정(敦睦之誼)을 나눌 수가 없다면 종족(宗族)이 복(福)이 없고 상서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진실로 간혹 종족(宗族)을 모아, 정부자(程夫子)의 올바른 가르침을 쫓아서 풍속(風俗)을 두터이 하고, 거문고와 서책을 즐기면서, 도연명(陶淵明 365~427) 선생이 남긴 말씀을 정다운 이야기로 기쁘게 나눌 것이다. 곧 종족이 벗이 된다는 징조이니 어찌 이보다 지나치다 하리까?
아! 우리의 씨족은 근원이 같은 칠계파(漆溪派)로 바다 섬으로 나온 갈래다. 혹은 대대로 조상의 산소를 지키면서 혹은 여기저기 흩어져 물고기를 잡고 나무를 하며 제사를 모시고 있는데, 남으로 30리 바닷가 물가에 이르기까지 그 갈래 수가 심히 적지 않다. 그리고 드문드문 유배 와서 살기도 했다. 그래서 약 17개에서 18개 정도로 갈래가 나뉘어져 있다. 인정과 법을 떠나, 모두가 길 가는 사람을 서로 보듯 하기에 이르렀으니 어찌 두렵지 아니하랴.
그래서 늙은이와 젊은이가 함께 도모했다. 멀고 가까운 이웃집은 물론 가난함과 넉넉함을 따지지 않고 연이어 이름난 섬에서 대략 갖추어 갔다. 이로써 마침내 하나의 계(契)가 만들어져 매년 1월 7일 날에는 바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시작의 의미가 있고, 7월 모임은 더위와 추위가 서로 바뀌는 때이라 날을 정했다. 매년 이때에 서로 만나서 안부(安否)를 물으며 인사하는 예(禮)를 올리고 시(詩)와 술(酒)로써 즐긴다. 구태여 삼짇날 정(鄭)나라 풍속을 따를 필요가 있겠는가?
계(稧)를 이미 만들고 난 후, 종친이 와서 나에게 서문을 청하였다. 내가 그만한 글이 못된다고 사양했으나 끝내 거절하지 못하고 마침내 붓을 잡았다. 그런 후에 며칠 내 완성하여 비로소 알리게 되었다. 아주 깔끔하게 마무리 했다.
후손들도 이 계(稧)를 이어받아, 명예(名譽)를 돌아보고 의를 생각한다면,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의 도(道)는 물론, 일가친척 사이에 오가는 두텁고 화목한 정(情)을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곧 이는 우리 종친의 좋은 징조를 위한 것이니 당연히 힘써 깃대를 흔들지어다.
-임술년 1922년 1월 10일 윤성의(尹性誼)가 서문(序文)을 쓰다.-
[稧約也同也 鄭俗上巳會人於溱洧之(水)上浴蘭而祓除不祥者也 後世失其義以取其名者曾何詪而吾稧之作庶幾乎 去其不祥而友乎祥者也 夫同祖同宗而不能盡孝友之道敦睦之誼者宗族之不祥也 苟或收宗族厚風俗遵程夫子之正訓樂琴書討情話悅陶(淵明)先生之遺辞 則友其宗族之祥者豈有過於此哉 噫吾族源同漆溪派分岐海或世守壠墓之邱或散在漁樵之社者數甚不尠岐之南三十里極濱於海而落落流居者緩十七八派分支別服盡情法得至於相視如路人則豈不懼哉 於是老少同謨不問蘇譜之遠近院隣之貧富同帳聯名﨩聚畧于遂成一稧以每年正七會爲正是新舊餞迓之初也 七是寒暑代謝之際也 每以此時叩寒暄樂詩酒則何必用鄭俗上巳哉 稧旣成族囑(屬)余叙幷余以不文辭不穫則遂搦管而告之日成之者始也 善之者終也 後之嗣爲是稧者顧名思義能知盡孝友之道敦睦之誼 則其爲吾族之祥也 固宜矣 勉旃勉旃 / 壬戌正月十日尹性誼序]
[주1] 족계(族契) : 조선시대 혈연과 혼인을 매개로 조직된 공동체 조직이자, 씨족의 친목계로써, 향촌에서 같은 집안 간에 자치 규약을 만들어 활발히 활동하였다. 조선시대 족계는 상부상조와 상호규제를 통해 사족들 간의 결속력을 다지고 향촌에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이러한 계 조직은 예로부터 존재해 왔는데, 16세기 이후 사림 세력에 의한 향약보급이 활발해지면서 향약의 제 규정과 접목되어 실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주2] 난탕(蘭湯) : 향기로운 난초를 넣어서 끓인 물을 말하는데, 옛사람들이 난초가 불상(不祥)한 것을 물리칠 수 있다 하여 난탕으로 목욕재계를 했다고 한다. 《대대례기(大戴禮記)》〈하소정(夏小正)〉에 의하면 “단오일에는 난탕으로 목욕을 한다.〔午日以蘭湯沐浴〕”라고 하였다.
[주3] 한훤지례(寒暄之禮) 서로 만나서 안부(安否)를 물으며 인사하는 예(禮)
2) 곗돈(契錢)과 계원의 명단, 그날 실제 빌려 준 곗돈(同日借給表 實在錢) 내역.
곗날에 실재(實在)로 받은 돈은 총 85냥 5전(錢八拾五兩五戔)이고 6개월 이자를 감안한 총금액은 보합(補合) 전90냥(錢九拾兩)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곗돈은 족계서(族契序)에서 밝혔듯이 종친 간의 대소사는 물론, 두텁고 화목한 정(情)을 나누는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거제도의 문중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1) 윤씨파종회 좌목(尹門派宗會座目). 1921년 11월(辛酉十一月 日) 단기 4254년, 19명
윤영원(尹永源)소동, 윤성의(尹性誼)와현, 윤택현(尹澤賢)소동, 윤달찬(尹達讚), 윤희학(尹禧學), 윤영구(尹永球), 윤지학(尹趾學), 윤달학(尹達學)소동 -宗中-
윤병주(尹秉柱)소동, 윤인석(尹仁錫)소동, 윤영학(尹英學)소동, 윤치헌(尹致憲)지세포, 윤경수(尹京守)구조라, 윤두식(尹斗式)소동, 윤치학(尹致學)소동, 윤욱이(尹旭伊)구조라, 윤학구(尹學九)와현, 윤월년(尹越年)지세포, 윤우조(尹苃祚)소동. *기타 생략함*
(2) 1921년 11월 25일 파종회 자본금기(辛酉十一月二十五日派宗會資本金記) 19명.
윤영원(尹永源) 윤성의(尹性誼) 윤달찬(尹達讚) 윤영구(尹永球) 윤경수(尹京守) 윤인석(尹仁錫) 윤학구(尹學九) 윤택현(尹澤賢) 윤치헌(尹致憲) 윤달학(尹達學) -宗中-
윤병주(尹秉柱) 윤영학(尹英學) 윤희학(尹禧學) 윤지학(尹祉學) 윤두식(尹斗式) 윤치학(尹致學) 윤욱이(尹旭伊) 윤월년(尹越年) 윤우조(尹苃祚). *기타 생략함*
(3) 임술년 1922년 1월10일 보합 전90냥(壬戌正月拾日補合錢九拾兩)
*기타 생략함* 실재 전85냥 5전(實在錢八拾五兩五戔)
(4) 임술년 1922년 7월10일 종계 전리 병탱 상기(壬戌七月十日宗契錢利並撑上記)
-- 이하 생략함 --
[주1] 계전(契錢) 계에 들어서 내거나 타는 돈
[주2] 차급(借給) 물건을 빌려 줌. 실재전(實在錢) 실제 장부에 들어 온 돈.
[주3] 종계(宗契) 조상의 제사를 받들 목적으로 만든 계
[주4] 절목(節目) 조선시대에 특정 정책이나 사업의 시행지침 또는 규칙을 나열한 것
[주5] 대사(代謝) 묵은 것이 없어지고 새것이 대신 생기는 일
[주6] 문기(文記) : 예전에, 땅이나 집 따위의 소유권이나 어떤 권리를 증명하는 문서를 이르던 말
● 참고 : 계[禊] /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정약용(丁若鏞 1762~1836)
계(禊)란 결(潔)이니, 정(鄭)나라 풍속에 상사(上巳 삼짇날)일에 향초[蘭芷]를 채집해서, 상서롭지 못한 것을 물리쳤는데, 이를 계(禊)이라 하였다. 한(漢)나라 예의지(禮儀志)에 ‘상사(上巳)일에 관리와 백성들이 모두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서 결(潔)을 하여 묵은 때를 씻어 낸다.’ 하였으니 결(潔)은 제사의 명칭이다. 지금 풍속에 돈을 갹출하여 이익을 불리는 것을 계(稧)라고 부르는데 稧란 본래 없는 글자이다. 오직 난정첩(蘭亭帖)의 방본(坊本)에 禊이 와전되어 稧로 되어 있는데, 이로 인해서 인습한 것이다. 진(晉)나라 풍속이 禊을 즐겨서 왕(王)씨와 사(謝)씨 등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禊의 제사를 지냈다.[지냈다는 ‘修’는 옛날의 제사를 다시 지냈다는 것을 말한다.] 동쪽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릇 여러 사람과 모여서 술을 마시는 것을 모두 禊라 하여, 나이가 같은 것을 동갑계[甲禊]라하고, 같은 해에 과거에 합격한 것을 동방계[榜禊]라 하며, 관청이 같은 것을 동료계[僚禊]하여, 옥당(玉堂 홍문관)에서는 동료계 병풍[禊屏]을 만들고, 괴원(槐院 승문원)에서는 동료계 첩[禊帖]을 장식한다. 이러한 풍습이 서로 전해져서, 시골에서 돈을 갹출하는 것 또한 모두 계(禊)라고 부른다. 이러한 종류의 禊는 마땅히 契라고 불러야 하니, 계(契)란 약속이고 합치는 것이다. 명칭을 돌아보아 의미를 헤아리는 것이 어찌 옳지 않겠는가?
[禊者 潔也 鄭俗 於上巳采蘭芷 祓除不祥 謂之禊 《漢 禮儀志》:“上巳 官民皆潔於東流水上 洗去宿垢” 潔 祭名也 今俗 醵錢殖利謂之稧 稧 本無字 晋俗好禊 王羲之蘭亭修禊是也 〈蘭亭帖〉 禊 或從禾 因以傳譌也 今醵錢之禊 當作契 契 約也 合也 正合爲名]
[주1] 상사(上巳) : 음력 3월 초사흗날. ‘삼월삼질’이라고도 하며, 한자어로는 상사(上巳)·원사(元巳)·중삼(重三), 또는 상제(上除)라고도 쓰고 답청절(踏靑節)이라고도 한다.
[주2] 난지(蘭芷) : 난과 지. 모두 향초(香草)로서 현인 군자에 비유된다.
[주3] 난정첩(蘭亭帖) : 진(晋)나라의 왕희지(王羲之)가 쓴 난정집서(蘭亭集序)의 법첩(法帖). 행서(行書)로 쓰였으며 원본은 전해지지 않지만 종종 사본(写本)이 있어 행서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견본으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