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 섭리사관(攝理史觀)과 유물사관(唯物史觀)과 통일사관(統一史觀)의 비교
끝으로 종래의 사관(史觀)중에서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섭리사관(기독교사관)과 유물사관, 그리고 통일사관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교해 보고자 한다(그림 8-1 참조). 즉 역사의 시작(始作), 성격(性格), 발전의 원동력(原動力), 변천(變遷)의 법칙(法則), 투쟁(鬪爭), 종말(終末)의 현상?사건(事件), 종말(終末)을 고(告)하는 역사, 이상세계 등의 항목(項目)을 가지고 비교해 보려는 것이다. 서로 비교해 봄으로써 각각의 사관(史觀)의 특징을 보다 단적(端的)으로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1) 역사의 시작(始作)
섭리사관은 창조된 인간의 타락에서부터 역사가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인류역사는 죄악사(罪惡史)로서 출발하였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대하여 유물사관은 인간이 동물계에서 분리(分離)된 후 인류역사가 시작되었으며, 최초의 사회는 원시공동체사회라고 하였다. 통일사관은 섭리사관과 마찬가지로 창조된 인간의 타락에서 역사가 시작됨으로써 인류역사는 죄악사(罪惡史)로서 출발했다고 본다.
(2) 역사의 성격(性格)
섭리사관은 역사를 하나님에 의한 구원의 역사로 보며, 유물사관은 계급투쟁사(階級鬪爭史)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하여 통일사관은 재창조역사(再創造歷史)와 복귀역사(復歸歷史)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역사를 파악한다.
(3) 역사를 발전시킨 원동력(原動力)
섭리사관에 의하면,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다. 섭리사관에 있어서는, 역사를 발전시킨 원동력(原動力)은 하나님의 섭리이다. 유물사관에 있어서는, 물질적인 힘인 생산력의 발전이 역사를 움직이는 기본적인 원동력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하여 통일사관(統一史觀)은,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책임분담이라고 본다. 기독교의 섭리사관에 의하면, 하나님이 역사 전체를 섭리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상의 모든 비참(悲慘)한 사건도 하나님이 이러한 사건을 용인(容認)하였다는 논리가 성립되게 된다. 그러나 통일사관에서 보면, 인간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역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역사상의 모든 비참(悲慘)한 사건의 책임도 인간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다.
(4) 역사변천(變遷)의 법칙(法則)
섭리사관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자(者)들의 신국(神國)과 악마(惡魔)를 따르는 者들의 지상국(地上國)이 싸워서 마지막으로 신국(神國)이 승리한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역사의 법칙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유물사관은 유물변증법을 역사에 적용하여 인간은 사회생활을 통하여 인간의 의지(意志)로부터 독립한 일정한 생산관계를 맺는다, 생산관계는 생산력의 일정(一定)한 발전단계에 대응(對應)한다, 생산관계가 토대(土臺)이고 의식(意識)의 여러 형태(諸形態)는 상부구조(上部構造)이다, 인간의 사회적 존재(存在)가 의식(意識)을 결정한다,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에 대하여 질곡화(桎梏化, 족쇄가 됨)할 때 혁명이 일어난다 등을 유물사관의 법칙으로 삼고 있다. 이에 대하여 통일사관은 역사에 작용한 법칙으로서 창조의 법칙과 복귀의 법칙을 제시하고 있다.
(5) 종말(終末)에 나타나는 투쟁(鬪爭)
섭리사관에 있어서는, 섭리역사가 종말(終末)에 이르게 되면 신국(神國)과 지상국(地上國)사이에 최후의 투쟁이 벌어진다고 한다. 성서(聖書)에 의하면,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봉사하는 천사(天使; 미가엘)와 악마가 싸운다고 되어 있다. 유물사관에 의하면 역사의 최후의 계급사회인 자본주의사회에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와의 치열한 계급투쟁이 벌어진다고 되어 있다. 통일사관에 있어서 역사는 선악(善惡)의 투쟁사이며, 종말기에서의 선악(善惡)의 투쟁은 세계적인 규모(規模)로 전개되는 바, 민주주의세계와 공산주의세계의 투쟁이 바로 그것이다. 이 투쟁에서 공산주의가 패배(敗北)하고 자유세계가 승리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메시아에 의하여 양편(兩便)의 화해가 이루어져서 통일(統一)되게 된다.
(6) 종말(終末)의 현상(現象)
성서(聖書)에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마태 24:29)고 한 기록에 근거하여 섭리사관은 종말에 이르러 천변지이(天變地異)가 일어난다고 한다. 유물사관에서는 자본주의사회에 있어서 빈곤(貧困), 억압(抑壓), 예속(隷屬), 타락(墮落), 착취(搾取)가 더욱 더 증대하고 경제(經濟)破綻과 사회혼란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통일사관(統一史觀)은, 역사가 종말에 이르게 되면 기존(旣存)의 모든 가치관이 무시되고 붕괴되어서, 특히 성도덕(性道德)의 퇴폐가 극에 달하여서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대혼란(大混亂)에 빠진다고 본다.
(7) 종말(終末)의 사건(事件)
섭리사관에 의하면, 종말에 최후(最後)의 심판(審判)이 벌어진다. 즉 성서에 의하면, 끝날의 심판때에 양(羊)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고(마태 25:32) 양(羊)편에 속한 자, 즉 하나님을 따르는 者들은 축복(祝福)을 받을 것이며(마태 25:34), 염소 편에 속한 자, 즉 악마를 따르는 者는 영원한 불속에 던져진다고 기록되어 있다(마태 25:41). 유물사관에 의하면, 폭력혁명(暴力革命)으로 피지배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지를 타도(打倒)함으로써 인류의 前史는 끝난다고 되어 있다. 통일사관은 종말에 있어서 세계적인 규모(規模)로 선편과 악편이 분립된 후 선편이 악편에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전함으로써 악편을 자연굴복(自然屈伏)시킨다고 보고 있다.
(8) 종말(終末)을 고(告)하는 역사
이 항목에서는 끝날에 무엇이 끝나는가 즉 종말(終末)의 때에 어떠한 역사가 끝나는가?를 다루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종말 때에 죄악사(罪惡史)가 끝난다고 한다. 즉 섭리사관(攝理史觀)에 의하면, 신국(神國)이 지상국(地上國)에 승리함으로써 죄악사(罪惡史)가 종말을 고한다. 유물사관에 의하면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를 타도(打倒)함으로써 계급투쟁의 역사가 종말을 고한다. 그러나 통일사관에 있어서는, 선(善)편이 참사랑으로 악(惡)편을 자연굴복시켜서 장자권(長子權)을 복귀함으로써 죄악사(罪惡史)와 선악투쟁사(善惡鬪爭史)가 종말을 고하게 된다.
(9) 도래(到來)하는 이상세계(理想世界)
역사가 종말(終末)을 고한 뒤의 세계는 어떠한 세계일 것인가? 섭리사관에 의하면, 역사의 종말의 심판이 끝난 뒤에는 새 하늘 새 땅의 시대(時代)가 도래한다고 되어 있다(계 21:1~2). 그러나 그 새 하늘, 새 땅의 시대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시대인가는 전연 밝혀지지 않고 있다. 유물사관에 의하면, 혁명후에는 계급이 없는 자유의 왕국인 공산주의사회가 실현된다고 한다. 통일사관에서는, 전인류가 참부모 되시는 메시아를 맞이하여 한가족세계(一家族世界)를 이루는 창조이상세계, 즉 지상천국(地上天國)이 실현된다고 본다.
이상의 세 가지의 사관(史觀)에 관한 9가지의 항목의 요점을 일괄(一括)하여 도표로 표시하면 그림 8-3과 같다.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기독교사관은 신비적이고 비합리적(非合理的)이어서 오늘날에 이르러 설득력을 가질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역사를 하나님의 섭리로 보고는 있으나, 법칙이 제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섭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분명하지 않다. 역사의 종말에 이르러 왼편의 염소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벌을 준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또 끝날의 새 하늘과 새 땅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유물사관(唯物史觀)은 기독교사관에 비하여 도리어 현실성과 합리성을 지니고 있고 설득력도 있어서 최근까지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다. 그리고 한 때는 세계의 거의 절반을 적화시키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서는 공산주의사회가 자유의 왕국도, 부(富)가 넘치는 사회도 아닐 뿐 아니라 완전히 그 반대였다는 사실이 이미 드러나서, 이제 그 사회는 이 지상(地上)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본래 공산주의는 토인비의 말과 같이 기독교가 그 사명을 다 하지 못하고 세속화(世俗化)하였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사탄편으로부터의 참소장, 고발장으로서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하여 유물사관은 마치 기독교사관을 뒤집어 놓은 것같은 외형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에 관련하여 칼 뢰비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적유물로(史的唯物論)이 이상적 토대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것은…… 유대人의 낡은 메시아 사상과 예언자 주의(主義), 그리고 유대적인 끈질기고도 절대적인 정의(正義)의 고집이다.
공산당선언은 과학적 예언이라는 전도(顚倒)된 형식으로 `희망을 거는 者에 대한 확신'이라는 신앙의 특징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적대하는 두 진영 즉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간의 최종적인 적대가, 역사 최후의 시기에 있어서의 기독교와 반기독교와의 최후의 싸움에 대한 신앙과 일치(一致)하고 있으며,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과제가 선민(選民)의 세계사적 사명과 유사(類似)한 것은 하등 우연적인 것이 아니다.
피억압(被抑壓) 계급의 세계적 구원의 역할은 십자가부활(十字架復活)과의 종교적 변증법에 일치하며, 필연의 王國이 자유의 왕국으로 변하는 것은 옛 에이온(old aion)이 새로운 에이온(new aion)으로 변하는 것과 일치(一致)한다.
공산당선언에 서술되어 있는 것같은 역사의 전과정은, 역사가 뜻있는 최종목표를 향하는 섭리에 의하여 구원의 사건으로 해석하는 유대교=기독교적인 해석의 일반적 도식(圖式)을 반영하고 있다. 사적유물론(史的唯物論)은 정치, 경제학의 용어를 사용한 구원사(救援史)인 것이다.
통일사관은 기독교사관의 연장선상(延長線上)에서 나타난 것이기는 하지만, 기독교 사관의 신비성(神秘性)과 비합리성(非合理性)을 극복하고 현실적이고도 합리적인 역사관으로 제시된 것으로서, 공산주의의 기독교사관에 대한 참소를 극복(克服)할 수 있는 유일(唯一)한 사관이다. 기독교사관은 악마를 따르는 지상국(地上國) 사람들이 영원히 벌을 받는다고 했으며, 유물사관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들을 폭력的으로 타도(打倒)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통일사관은 선(善)편이 악(惡)편을 참사랑으로 자연굴복시켜 악(惡)편도 선(善)편으로 복귀시킴으로써 전인류를 구원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참된 이상세계(理想世界)에서는 전인류가 모두 행복(幸福)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통일사관이야 말로 그것을 보장(保障)하는 것이다.
또 유물사관은 기독교사관을 미신(迷信) 또는 신화(神話)라고 공격(攻擊)하면서, 유물사관 자체는 법칙성(法則性)을 가진 과학적인 역사관이라고 자랑하고 있으나, 유물사관이 제시한 법칙은 사실상 역사적사실에 맞지 않는 허구의 법칙에 불과하며, 혁명을 합리화(合理化)하기 위한 자의적(恣意的)인 가짜 법칙에 불과하다. 이에 대하여 통일사관의 법칙은 예외없이 역사적 사실과 일치(一致)하는 문자 그대로의 법칙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