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4년 12월 01일 주일 설교
성경 이야기의 구슬을 꿰어라
첫번째 실: 하나님의 형상 – Image of God
https://youtu.be/G2wwG-tzcr8?feature=shared
갈라디아서 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설교 개요
1. 너는 세계를 꿰어라!
2. 꿰어야 할 구슬 1. 하나님의 형상
3. 모든 인간이 왕이며 제사장이다
4. 윤리와 도덕의 기초
5.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
6.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준 목회자
7. 가이사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
8. 사역의 목표-하나님의 형상을 이루기
9. 하나님의 형상은 바로 이런 모습이다!
10. 사람이 어째서 그 모양입니까?
11. 요약과 정리
***
1. 너는 세계를 꿰어라!
누군가 인생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인생이란 ‘나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는 여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어려서는 부모님으로부터 우리가 누구인지를 배웁니다. 가장 먼저 우리는 이름을 받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름으로 우리 자신을 인식합니다. 그렇게 하다가 우리는 친구를 만납니다. 그들과 뛰고 웃고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자신에 대하여 좀더 깨닫습니다. 무언지는 모르지만 그 친구와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더 큰 세상을 만난 것처럼 느낍니다. 그래서 밥만 먹으면 그 친구와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하다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것은 친구와는 다른 존재입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벅차고 나 자신이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나의 부족한 절반이 채워져서 그런지 모르지만 더 충만한 것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서 자기의 절반을 찾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자기야!’라고 부릅니다. 사람은 결혼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 속에서 무엇인가 의미있는 일을 할 때도 뿌듯함을 느낍니다. 그것은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런 일을 하고 나면 자신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자기가 그런 일을 하라고 이 땅에 태어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게 사람은 어떤 일 속에서 자신의 존재의미와 가치 또는 사명을 깨닫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사실 신앙생활도 하나님을 만남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새롭게 발견하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어머니께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어떤 말을 들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저에게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해강아, 너는 세계를 꿰어라!’ 저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면서도 왠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싫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큰 일을 하라는 뜻이거나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말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한마디 말씀은 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저를 이끌어주는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오십대 중반이 되었는데, 세계를 꿰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저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세계를 꿸 수 없는 자리에 있고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그 말은 저에게 맞지 않습니다. 다만 어린 시절에 들은 동화나 전래동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에 저는 ‘해가 뜨고 비가 오면 호랑이가 장가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처럼 밑도 끝도 없는 말이 된 것만 같습니다.
이번 주 설교를 준비하면서 저는 성경에 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시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성경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을 하나로 꿰어보면 더 크고 멋진 그림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그림은 우리에게 인생과 세상이 어떤 의미인지를 새롭게 일깨워줍니다. 성경 이야기를 꿰어서 하나의 멋진 이야기로 엮어내는 작업이 제가 설교자로서 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보배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저 자신과 세상 사람들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해서 새롭게 깨닫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꿰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제 어머니께서 저에게 세상을 꿰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이제 설교자로서 성경에 나오는 구슬과 같은 영롱한 이야기들을 하나로 엮어 보배로운 의미를 담은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제가 하는 일의 의미라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부터 여러분과 함께 성경 이야기들을 하나로 꿰어 보겠습니다. 그런데 그 구슬들을 하나로 꿰려면 실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몇 주간의 설교를 통해서 저는 그 실 몇 가지를 소개하고 성경 이야기의 구슬을 꿰어보고자 합니다. 사실 이 작업은 제가 늘 관심을 가지고 하던 일입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제가 처음으로 출판한 책의 제목은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그런데 그 제목의 부제는 ‘성경이 보여주는 위대한 서사시’입니다. 성경을 하나의 대하드라마로 보고 그 서사를 정리해 보려는 노력을 한 결과가 그 책입니다. 그리고 그 책은 우리 교회에서 설교한 내용 그 자체입니다. 설교집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제가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하는 주제는 ‘성경 이야기의 구슬을 꿰어라!’입니다. 그 첫번째 작업을 위해 먼저 우리에게 필요한 실이 있습니다. 그 실의 이름은 ‘형상’입니다.
2. 꿰어야 할 구슬 1.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 우상숭배 금지, 시편 8편, 천자, 왕 같은 제사장, 이스라엘,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 본체의 형상, 해산의 수고, 시국선언문
성경을 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을 따라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말을 할 때,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생각을 할 수 있다거나 말을 할 수 있다거나 상상력이 있는 존재라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는 영이 있다고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말할 때 그 의미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성경 이야기를 자세히 보면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그 안에 생명으로 충만하게 채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늘과 땅의 중간에 거처를 지으시고 거기에 하나님이 거하셨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을 우리는 하나님의 집, 또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곳이 에덴동산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으로 지으신 인간을 그 하나님의 거처인 에덴동산에 들이셨습니다.
사실 고대의 신전에는 거의 틀림없이 그 중심에 그 신전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신상이 있습니다. 그 신상은 신의 형상으로서 신전에 들어가는 사람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집인 성막이나 성전에서 하나님의 신상을 볼 수 없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그곳에 어떤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을 닮은 일체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렇게 돌이나 나무 또는 금속으로 만든 형상은 결코 하나님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을 나타낼 수 있도록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이 말은 인간만이 하나님을 세상에 나타낼 수 있는 형상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움직이는 신상이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그는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리는 왕 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형상,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의 독특하고 존귀한 지위와 사명에 대하여 시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주께서는 사람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시고,
그에게 영광과 존귀의 왕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주께서 손수 지으신 만물을 사람이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사람의 발 아래에 두셨습니다.
크고 작은 온갖 집짐승과 들짐승까지도,
하늘에서 나는 새들과 바다에서 노니는 물고기와
물길 따라 움직이는 모든 것을, 사람이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시편 8:4~8, 표준새번역성경
3. 모든 인간이 왕이며 제사장이다
고대 사회에서 왕이나 통치자들은 자신을 천자라고 불렀습니다. 천자는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문명에서는 왕이 자신을 태양신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왕을 신의 아들이라고 부르게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고 선언합니다. 어떤 한 사람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 말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비추어주고 세상 만물의 찬양을 모아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일을 합니다. 그것을 성경의 표현대로 말하면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부르셔서 자기 앞에 서게 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시고 그들을 통하여 세상 만민에게 복을 주리라고 계획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그런 언약을 맺었음을 배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 하나님의 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주어라.
출애굽기 19:5~6, 표준새번역성경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열방에게 복을 주는 제사장 같은 존재라고 일깨워줍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강력한 그림이며 가르침입니다.
4. 윤리와 도덕의 기초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태어나 살아갑니다. 그는 사회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그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람들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일을 할 때 공정하게 처리하고 공동체에 유익이 되게 하기 위하여 애써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우리 사회에서 이 질문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공직자나 정치인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소리치는 국회의원들의 고성이 심심찮게 들립니다.
윤리적으로 정직하고 진실하며 항상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국민윤리을 가르치면 됩니까? 명심보감이나 도덕을 가르치면 됩니까?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이며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고, 세상 모든 것을 맡아 관리하고 돌보라는 왕의 임무를 받았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인간에게 윤리와 도덕과 진실과 정의, 그리고 사랑의 실천이라는 필수적인 덕목의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신학자 톰 라이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존재로서 인간을 거울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 거울은 기울어져 있습니다. 기울어진 거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비치고 세상의 찬송을 하나님께 비추어 올려 드리는 역할을 합니다. 인간이 그런 존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그 영광과 은혜를 맛보고 세상에 빛을 반사하여 비추는 거울입니다. 그가 비추는 곳마다 어두운 곳이 밝아지고 시들어 가던 생명이 소생될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5.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런 인간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골로새서 1:15, 표준새번역성경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한복음 1:14, 18
성경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소개하며 하나님의 충만함이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주신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임을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의 행적을 통하여 소개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사람들을 가까이 하시고 어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시고 자신을 어떻게 내어 주셨는지를 소개하는 복음서의 이야기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임을 보여주는 그림 이야기이며 실제입니다.
6.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준 목회자
지난 수요일, 2024년 11월 27일에 성락성결교회의 원로이신 박태희 목사님이 별세하셨습니다. 저는 어제 토요일 발인예배에 참석하여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박태희 목사님이 어떤 분이었는가를 들려주는 몇 사람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이 박태희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언젠가 새벽기도 시간에 어떤 청년의 기도소리를 들으시고 그에게 돈이 필요한 줄을 아시고 병원에 가서 자기 피를 팔아서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성도들을 위하여 피를 팔아 도우면서 한번은 몸이 회복되지 않아서 병원에 입원하신 적도 있다고 합니다. 박태희 목사님의 장례식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눈물을 흘렸는데 어쩌면 그분들은 목사님에게서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7. 가이사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
예수님은 한번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마태복음 22:20~21
고대의 통치자들은 자기의 형상을 동전에 새기고 자기의 형상을 닮은 신상을 사방에 세웠습니다. 예수께서는 곤란한 질문을 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대답하시면서 당시의 화폐였던 데나리온에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진 것을 보시고 그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교우 여러분, 데나리온이라는 동전에는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은 어디에 새겨져 있습니까? 예수님에게 질문을 하는 유대인들과 그 청중들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깨달을 것입니다. 그들이 깨달았기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양심에 들려오는 소리는 무엇이었을까요? 어쩌면 그것은 ‘네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냐? 그러니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진 동전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너는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야 하지 않겠느냐!’ 이런 소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8. 사역의 목표-하나님의 형상을 이루기
이제 오늘 본문을 소개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격한 어조로 편지를 했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새 사람이 되어 살 수 있도록 가르쳤는데 그 교회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저버리고 다른 가르침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신앙의 바른 길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편지를 써서 그들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갈라디아서라는 사도 바울의 편지입니다.
거기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라디아서 4:19
신약성경의 절반은 사도 바울의 편지로 이루어졌습니다. 복음은 사도 바울의 전도를 통해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파되었습니다. 그 위대한 사도인 바울이 해산하는 수고를 하는 목적이 이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가르치고 돌보는 성도들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그들 안에 이루어진다는 말은 그들의 인격이 하나님을 닮아 간다는 의미이겠습니다. 하나님을 닮아간다는 말은 곧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사도 바울은 그 일을 위하여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성도들 안에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일까요? 우리들이 신앙생활하는 이유,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의미도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이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말했는데 저는 최근에 이사야서를 읽다가 사도 바울이 이 본문의 말씀을 생각하고 그렇게 말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 길을 버리고 떠나갔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오랫동안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참았으나,
이제는 내가 숨이 차서 헐떡이는,
해산하는 여인과 같이 부르짖겠다.
이사야 42:14, 표준새번역성경
9. 하나님의 형상은 바로 이런 모습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어떻게 살기를 바라셨을까요? 하나님이 바라시는 사람,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사람의 모습에 대하여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종을 보아라.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사람이다.
내가 택한 사람, 내가 마음으로 기뻐하는 사람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가 뭇 민족에게 공의를 베풀 것이다.
그는 소리 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거리에서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실 것이다.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며,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다.
그는 쇠하지 않으며, 낙담하지 않으며,
끝내 세상에 공의를 세울 것이니, 먼 나라에서도
그의 가르침을 받기를 간절히 기다릴 것이다.
…
네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감옥에 갇힌 사람을 이끌어 내고,
어두운 영창에 갇힌 이를 풀어줄 것이다.
이사야 42:1~4, 7, 표준새번역성경
하나님이 인간을 자기 형상으로 만드시고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뻐하신 이유는 바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 것을 기대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는 것은 바로 이런 삶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며 따라야 할 모범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까?
10. 사람이 어째서 그 모양입니까?
최근에 우리나라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 수가 이미 6천명을 넘어섰습니다. 지난 주중에는 천구교사제단도 시국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공영방송의 뉴스 시간에 그 선언문이 소개되었습니다. 천주교 신부들은 우리의 대통령을 향하여 이렇게 꾸짖었습니다:
사람이 어째서 그 모양입니까? 그이에게만 던지는 물음이 아닙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마는”(로마 7,19) 인간의 비참한 실상을 두고 가슴 치며 하는 소리입니다. 하느님의 강생이 되어 세상을 살려야 할 존재가 어째서 악의 화신이 되어 만인을 해치고 만물을 상하게 합니까?
[출처] 천주교 사제단 시국선언문,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작성자 얼렁뚱땅 좌충우돌
천주교 사제 1,466명은 이 선언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아 하나님을 세상에 나타내야 할 존재가 왜 악의 화신이 되어 만인을 해치고 만물을 상하게 하느냐고 가슴을 치며 탄식합니다. 다만 현직 대통령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이런 말을 듣습니다.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입니까?’ 이 음성은 때때로 우리 마음 속에서 들려올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11. 요약과 정리
교우 여러분, 저는 오늘 성경 이야기의 구슬을 꿰어보았습니다. 제가 오늘 사용한 실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며, 그렇기에 우상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하나님을 나타내며, 그 일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사는 것이며, 그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신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며,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살아야 하며, 그 형상은 이사야 42장에 아름다운 삶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이사의 동전에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졌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존재라면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흩어진 구슬들을 한데 모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실로 꿰어 보니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좀더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 보배로운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간직하고 우리의 목에 보배처럼 걸고 다녀야 하겠습니다(잠언 6:21).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