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無門關) 사십일칙(四十一則)
달마안심(達磨安心) 달마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다.
본칙(本則) 역(譯)
달마가 벽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조(二祖)가 눈 속에 서서 팔을 끊고 말했다. 제자의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오니 바라옵건대 스승께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달마가 말했다.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너를 위해 편안하게 해주겠다. 이조가 말했다. 마음을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달마가 말했다.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達磨面壁, 二祖立雪斷臂云, 弟子心未安, 乞師安心. 磨云, 將心來, 與汝安. 祖云, 覓心了不可得. 磨云, 為汝安心竟.
평창(評唱) 역(譯)
무문은 말했다. 이빨 빠진 늙은 오랑캐가 십만 리 뱃길을 일부러 왔으니 바람도 없는데 물결을 일으킨 격이라 하겠다. 끝에 가서 제자 한 사람을 얻었으나 또한 육근을 갖추지 못했다. 허허! 사(謝)씨 집 셋째 아들놈은 네 글자도 모르는구나! 無門曰 缺齒老胡, 十萬里航海特特而來, 可謂是無風起浪. 末後接得一箇門人, 又卻六根不具. 咦, 謝三郎, 不識四字.
송(頌) 역(譯)
게송으로 읊다. 서쪽에서 와서 곧바로 가리키니 부촉함으로 인해 일이 벌어졌네. 총림(叢林)을 요란하게 만든 것이 원래 바로 너로구나! 頌曰 西來直指, 事因囑起. 撓聒叢林, 元來是爾.
사족(蛇足)
이 공안화두(公案話頭)는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서천(西天) 인도(印度)에서 28조(祖) 조사가 되어서 동토(東土) 중국 땅에 불법을 전하려고 와서 처음 불심천자(佛心天子) 양무제(梁武帝)를 만났으나 시복생천(施福生天) 유류복(有漏福)이나 닦는 상근기(上根機)가 아닌 천자(天子)와 대화를 나누고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할 때까지 위(魏) 나라 소림굴(少林窟)에서 구년면벽(九年面壁)을 하다가 신광(神光)이란 제자(弟子)가 찾아와서 구법(求法)한 선화(禪話)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날 찾아왔는데, 눈빛도 주지 않고 묵묵부답(黙黙不答) 달마대사(達磨大師)에게 칼로 자신의 팔을 베어 끊어서 받치면서 구법신심(求法信心)을 단비구법(斷臂求法) 신심(信心)을 보였다. 멀쩡한 생 팔뚝을 잘라버렸으니, 눈이 펄펄 내린 은백 세계 대지 위에 벌건 피가 낭자하고 온몸이 아팠다. 그래서 하는 말이 바라옵건데 스승께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 달라고 호소한다. 달마다 입을 열고 말했다. 너의 불편한 마음을 가져오라! 너를 위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마! 신광이 마음을 아무리 찾아보았으나 마음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음을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 내가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찾아도 보이지 않는 마음인지라 편안하게 해주었다는 말이다. 신광은 이 말 한마디에 깨달음을 얻어서 이조(二祖) 혜가대사(慧可大師)가 되어서 서천(西天) 이십구조(二十九祖)가 되고, 동토이조(東土二祖)가 된다. 혜개선사(慧開禪師) 평창(評唱)에 사삼랑 불식사자(謝三郎 不識四字) 사씨네 셋째 아들은 네 글자도 모른다. 세상 사람 누구나 다 아는 것도, 모르는 일자무식을 표현한 중국의 속담이다. 사삼랑은 아무개라는 뜻으로 배움이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고, 사자(四字)는 개원통보(開元通寶)와 같이 동전의 표면에 새겨진 네 글자인 전문(錢文)을 말한다. 여기의 뜻은 말귀도 알아듣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으로서, 달마가 일으킨 평지풍파는 도리어 세상을 구제하는 큰일이었고, 팔이 하나 없는 혜가(慧可)는 도리어 세계의 실상을 온전히 볼 수 있는 안목을 얻었다는 숨을 뜻을 모르면 안 된다는 말이다. 달마대사가 제자 혜가를 만나지 못했다면 서천에서 십만리 길을 온 일이 허사가 될뻔한 일이다. 다행히, 전법을, 했으니 다행 천만이다.
화옹송평(和翁頌評) 역(譯)
동토에 법전하려고 십만리 길을, 모래 먼지 무릅쓰고 고생 고생해서 양나라에 도착하니, 복이나 짓는 천자는 보아도 인연이 아니라서 면벽구년에 겨우 혜가를 얻었네. 東土傳法十萬里 蒙塵苦生到梁國 作福天子見不緣 面壁九年得慧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