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코스 : 군문교 삼거리 - > 신대2리 마을 정류장
경기 둘레길 44코스를 걷고자 군문교 삼거리에 섰다. 이곳은 청일전쟁(1894) 때 일본군과 청나라 군대가 대치하였을 당시 청군이 주둔하여 관문을 이루었다고 하여 군문포라 하였다.
청일전쟁 당시 청군은 이곳 군문포에 주둔하고 일본군은 아산에 포진하여 운명을 건 이국 간의 전쟁에 시달리던 우리 조상들은 ‘아산이 깨지냐 평택 무너지느냐’고 노래를 불렀다는데 ‘아산이 깨지면 우리는 되놈의 속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택이 무너지면 쪽발이에게 국권을 빼앗긴다’라는 울분이 아닐까?
평택 섶 길을 걸을 때 길을 잃고 방황하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이른 군문포 삼거리가 청일전쟁의 격전지라는 사실을 알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는데 오늘 경기 둘레길을 걷고자 또다시 이르니 그때의 감정이 북받쳐 온다.
썩어 문드러진 권력을 끝까지 움켜쥐고 백성들의 고혈을 짜며 정권을 유지하고자 輔國安民의 기치 아래 일어선 백성을 대량 학살시켜달라고 애원하여 우리 땅에서 남의 나라들이 벌이는 전쟁이 바로 국망의 시원인 줄도 몰랐던 위정자들의 썩은 냄새가 코를 진동한다.
지금은 아파트가 단지가 들어서고 대로에는 자동차가 달리는 평화스러운 곳에서 바로 엊그제 같은 그 날을 생각하며 군문교를 건너간다. 안성천은 공원을 조성하여 놓았는데 가을 햇빛에 반사하는 억새가 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안성천변에 끝없이 펼쳐진 억새와 갈대밭은 가을이면 온통 은빛 세상이 되는데 동요 노을이란 시가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 동요를 알지 못함은 자책하지 않고 군문포를 원평 나루로 바꾸어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개탄하며 군문교를 지나갔다.
차도와 농로의 갈림길에서 좌측의 농로로 진입하니 안성천의 지천인 실개천이 있고 오늘의 종착지 신대2리 22.1km를 알리는 표지목이 세워져 있었다.
농로를 걸으며 텅빈 논, 밭에서 발산하는 자연의 기운에 흠뻑 몸을 적신다. 추수가 끝난 밭은 항시 평화롭다. 그 평화스러움 때문인지 농로는 우리가 걸어가는 둘레길로 되돌아 왔다.
농로에서 자동차 도로인 71번 지방도로에 이르렀다. 농로가 좀 더 계속되기를 바랐지만, 어느새 차도에 이른 것이다. 사거리에 이르니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데는 여야가 없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선거가 가까워졌음을 느끼게 하였다. 성인께서 그 말이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을 것을 근심한다고 하였는데 우리의 정치가는 말과 행동이 선거 때가 되면 여,야 모두가 君子가 되어 언행이 일치하는 완전한 인격자가 된다.
길을 걸으면서 잡념이 많으면 길을 잃기 쉽다. 지도 앱에서 길 이탈을 알린다. 지방도로에서 농로에 진입하는 길을 보지 못하고 잡념 속에 방향을 전환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한 것이다.
다시 농로가 계속되었다. 안성천의 지천가에서 만났던 논보다는 광활하게 펼쳐졌는데 농기계 1대가 추수를 하고 있었다. 우리의 어린 시절에는 마을 사람 천제가 하나가 되어 낫으로 벼를 베었는데 농업 선진화를 이룬 오늘날에는 영농기계가 수십 명의 인원을 대체하고 있다.
달나라에 착륙하고 손에 전화기를 들고 다니는 시대이지만 그 넓은 논을 농기계 한 대가 벼 하나하나를 쓰러트리고 있는 광경은 낫으로 벼 베기에 익숙해진 탓인지 그저 신비롭기만을 느끼면서 팽성 레포츠 공원에 이르렀다.
농로에서 시내로 진입한 것이다. 시내는 갈림길이 많아 항시 길의 이탈을 염려하여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럽다. 보도블록을 따라 걸어가는데 옛 건물이 눈에 띄었다. 팽성읍 객사였다. 객사는 고을에 설치했던 관아로, 관리나, 사신이 숙소로 사용하거나 고을 수령이 망궐례(직접 궁궐에 나아가서 왕을 뵙지 못할 때 멀리서 궁궐을 바라보고 행하는 禮)를 행했던 시설이다.
내부를 둘러보고자 했으나 대문은 굳게 잠겨있다. 건축에 대한 문외한일지라도 옛 모습대로 복원한 조선 시대의 건축양식과 형태 등을 둘러볼 기회가 박탈된 것 같아 다소 아쉬운 마음으로 도로를 따라 걸어가는데 오늘날의 국공립학교에 해당하는 평택향교가 있었다.
향교를 들어가는 외삼문이 열려있어 객사를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랠 수가 있었는데 명륜당의 문은 잠겨있고 내삼문 또한 잠겨있어 향교를 양교답게 하는 대성전에는 이를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이 배가되어 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성당 사거리를 지나갈 때 둘레길을 인도해 주는 표지기와 지도 앱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표지기는 직진 방향에 부착하여 놓았는데 지도 앱은 우측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어있다.
현재의 위치를 지도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고 표지기가 가리키는 직진 방향으로 가지 않고 지도 앱의 인도하는 길로 진행하였더니 경기 둘레길의 표지기가 나풀거리고 있었다.
계속하여 도로를 따라 걸어가는데 평택 섶길의 표지기가 부착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곳이 평택 섶길의 1코스의 길이 되는데 도로를 따라 걸어가는 길 때문인지 걸었던 길이 오늘은 처음 와본 것 같이 생소하였다.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없어진 것인지 섶길을 걸을 때 길을 잘 못 들었는지 반신반의하며 도로를 따라 미군 부대인 k6 정문에 이르렀다. 그때에는 반미를 외치던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는데 오늘은 군부대의 정문이 그때와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단장하여 놓았다.
이곳부터 경기 둘레길은 평택 섶길 2코스 노을길과 함께하며 최종 종착지도 똑같이 신대2리에서 끝을 맺기에 두 번째 걸어가는 길이 되는 셈이다. 도로를 따라 이른 곳은 로데오 거리이다.
미군 부대의 주변 상가답게 외국인이 오히려 내국인보다 더 많이 눈에 띄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곳에서 점심시간이 되었기에 식당을 찾아보았으나 혼자서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준비해온 빵으로 점심을 대용하고자 농성에 설치한 평상의자에서 먹기로 하고 빠른 걸음으로 로데오 거리를 빠져나와 농성에 이를 때 붕어빵을 판매하고 있었다. 먹고 싶은 충동을 누른 것은 오늘의 점심으로 빵으로 준비했기 때문에 입맛을 다시며 농성에 이르렀다.
농성은 팽성읍 서쪽 약 4km의 지점에 있는 구릉 위에 위치한 토성으로 성산이라하고 또는 당산이라고 하는데 평야 지대의 구릉이라 사방을 내려다볼 수 있다.고 하였다.
농성에서 가져온 빵으로 점심을 대용하고 농성에 올라 한바귀를 돌고 내려와 도원사를 지나 팽성 북로에 이르렀다. 또다시 도로를 따라 걸어가 원정 삼거리에 이르렀다.
평택 섶길을 걸을 때 이곳에 이르러 표지기가 부착되어 있지 않아 길 찾기에 애를 먹은 곳이다. 경기둘레길은 표지기를 제 위치에 부착하여 놓았고 지금에는 지도 앱이 있어 길 이탈의 염려는 거의 없지만 그때에는 표지기가 부착되어 있지 않아 길 찾기에 가슴 태우며 방황했던 곳이다.
내리 문화공원(야영장)에 이르렀다. 안성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안성천의 물 그리고 사람의 손길이 가해진 잔디공원이 조화를 이룬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은 전경이다.
내리 문화공원에서 종착지인 신대2리 마을회관까지는 10.9km, 시작점인 군문교 삼거리까지는 10.8km이니 이곳이 바로 1/2지점이다. 군문교에서 만났다가 곧바로 헤어졌다가 내리 문화공원에서 다시 만난 안성천이 반가웠다.
하지만 안성천 변을 따라 걸어가는 길은 가물가물 보이지 않는 일직선으로 뻗어 앞을 바라보면 지루한 감정을 들게 하는 지난주 걸었던 52코스 시화방조제와 같은 거리의 11km의 길이다.
하지만 망망대해뿐인 방조제 길과 비교하면 왼편에는 광활한 미군 부대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안성천이 흘러 혼자 걷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길이 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간다.
배수문에 이를 때 노을길을 걸을 때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 우리처럼 걸어가는 사람, 뛰는 사람, 인나이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지만, 오늘은 자전거를 질주하는 사람도 길을 걷는 사람의 숨소리도 느낄 수 없었다.
시원한 바람이 가슴을 파고든다. 억새는 너울너울 춤을 추고 하늘은 푸른 기운을 발산하는 늦은 가을, 비록 단풍은 없을지라도 내 마음이 안성천에 물들었기에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간다.
안성천은 아무리 바라보아도 천川이 아니다. 저 장대한 규모를 보고 그 누구도 천이라고 말할 수 없고 더욱이 그 물이 바다로 흘러드니 강으로 불러도 조금도 손색이 없지만 굳건하게 천으로 자임하며 아산만으로 흐르고 있다.
넓디 넓은 광장 같은 잔잔한 물결에 비친 노을진 풍경이 아름다워 평택 섶길을 조성하면서 노을길이라 불렀기에 섶길을 걸을 때 노을은 볼 수 없을지라도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노을을 읊은 시들을 읊조리며 걸어갔는데
오늘도 해가 지는 시각이 아니어서 노을의 전경은 볼 수 없다 할지라도 호수에 비친 하늘과 구름을 위, 아래에서 바라보며 걸을 수 있기를 바랐지만 흐린 날씨로 여름의 땡볕 속에 걷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어야 했다. 지리산 일출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가 있다고 하는데 이곳에서의 노을도 3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당대에 덕을 쌓아야 노을에 젖어 볼 수 있는 것일까?
노을의 풍광은 꿈도 꾸지 못하는데 창공을 나는 헬리콥터 나는 소리가 요란하다. 안성천 돌아가는 길목에 ⊃자 형으로 자리 잡은 미군 부대의 헬리콥터 나는 소리가 안성천의 적막을 깨웠다.
어느덧 미군 부대를 돌아가고 있다. 미군 부대를 한 바퀴 돌면 그 길이 바로 오늘의 종점이 되는데 직선의 길이 비록 걷는 사람을 지루함을 느끼기에 하지만 빠른 걸음으로 진행하기 때문일까?
멀리 평택 대교가 눈에 띄었다. 섶길을 걸을 때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던 곳으로 종착지가 임박한 것이다. 피곤한 탓인지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그 무거운 작은 발걸음이 어느덧 20km의 장정의 길에 다가서고 있었다.
평택 대교에 이르렀다. 자동차는 대교 위를 달리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나 도보 여행가는 다라 아래서 잠시 쉬어가는 휴식공간으로 새롭게 조성하여 놓았다. 섶길을 걸을 때 왁자지껄했던 사람의 목소리가 오늘은 적막함이 감돌았다.
안성천은 한층 더 넓어지어 아산만으로 흘러가며 드넓은 광장이 되어 내 마음을 끝없이 펼쳐나가게 한다. 물로 가득 찼건, 논, 밭이 지평선을 이루던, 一望無際로 펼쳐진 망망대해든지 한없이 넓은 광장을 바라볼 때마다 내 마음은 창공을 날아간다.
종착지를 앞두고 경기 둘레길 44코스와 섶길의 노을길은 잠시 헤어진다. 섶길은 배수문에서 농로에 진입하는데 둘레길은 안성천을 따라 진행하다가 마을로 진입하여 섶길과 다시 만났다.
산자락을 따라 걸어가는데 표석이 있었고 그 돌에 아름다운 노랫가락이 새겨 있다.
“솔밭길로 야산 넘어 갯바람은 불고
님의 얼굴 노을 빛에 취한 듯이 붉은데
곱은 허리 곧추세우고 뒷짐 지고 서면
바람에 부푼 황포돛대 오늘 다시 보오리다“
노을길을 걷고자 왔던 신대2리에 또다시 이르니 낯익은 곳이 되어 그런지 반가운 기분이 든다. 정류장에 서 있는 향나무와 다시 만난 기쁨을 전할 시간도 없이 버스가 도착하였다.
● 일 시 : 2023년10월26일 목요일 흐림
● 동 행 : 나홀로
● 행선지
- 10시15분 : 군문교 3거리
- 11시20분 : 평택 향교
- 12시10분 : 농성
- 13시05분 : 내리 문화공원
- 13시40분 ; 대추 배수문
- 14시50분 : 평택 대교
- 15시21분 : 신대2리 마을 회관
● 총거리 및 소요시간
◆ 총거리 및 소요시간
- 총거리 : 21.9km
- 소요시간 : 5시간06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