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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원본(原理原本), 기록 제4권
45. 만유인력은 만유원력으로 하여야만 그 원력은 전부에 작용한다
뉴턴이 만유인력(萬有引力)이라고 한 정리(定理)로 인하여서 지금 20세기 문명에 큰 공헌을 세웠다. 그런데 이 인력이란 힘의 작용은 정말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존재란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뉴턴이 말한 인력뿐이라고 하면 창조원리적(創造原理的) 입장을 완성한 곳으로 유지(維持)하지 못하고 한쪽만 받은 곳으로 하여지는 결과가 되니 그 존재의 위치를 이동(移動)하여야 하는 것으로 결론된다. 즉 전부가 당기기만 하면 그 평형위치(平衡位置)란 입장을 취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평형위치(平衡位置)를 정하는 데는 주고받는 위치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인력(引力)만 가지고 있다면 당기고 당기고 하면 나중에는 결국 하나가 되어 상대위치(相対位置)를 세울 수 없이 하나로 합해지고 만다. 그러므로 인력(引力)이란 것이 있는 동시에 수력(授力, 보내는 힘)이 또 있어야만 비로소 평형점(平衡点)을 중심하고 운동할 수 있는 제일기점(第一基點)을 정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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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기원점(基源點)은 기원(起源)은 반드시 대상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중심을 주로 하여 원력(原力)을 조성하여야만 된다. 예를 들어보자. 지금 지구상에는 지구를 주로하고 각양 존재물이 널려 있다. 그러면 그 존재물이란 존재는 각자에게 있어서 자기가 위치로서 정할 수 있는 그 존재위치(存在位置)란 곳을 잡고 있는 바는 각자가 있을 수 있는 대상을 완전히 보유하여 있기에 그 입장을 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 존재물(存在物)은 중심 지구(地球)에 대하여 주고받는 원력(原力, 인력과 보내는 힘) 작용으로 평형(平衡)을 취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 존재가 유(有)하려면 반드시 대상(対像)을 정하여야 존재의 구성을 본다. 그리하여 지구(地球)를 기반으로 하여 정지(定止) 혹은 운동작용(運動作用)으로 존재하는 바가 사실이다. 그러면 그 존재는 지구와 만 원력을 갖고 있는가 하면 그것만이 아니고 같은 요소를 가진 각자(各自)들은 서로 작용을 하여서 비로소 매(每) 정점(定點)을 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구면 지구상에 있는 존재는 지구를 중심하고 붙어 있는 듯이 보인다. 그것은 다만 만유원력(萬有原力)에 작용인 것이다. 그러니 한 존재가 안정위치(安定位置)를 정한 곳에는 만유원력에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위치를 정한다면 언제나 고착하는 모양으로 하여 안정위치에서 만유원력은 작용을 한다. 그러니 이 점((點))을 물질로 비유하면 분자(分子)면 분자는 그 요소가 한 중심으로 향하여 고착되려는 것을 지금 물리학적으로 말하기를 부착력(附着力)이라고 하고 있지만 그것 스스로 가한 요소와는 대상(対像)하여 원력작용(原力作用) 하에 있는 것을 말한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한 구성 요소들은 대상으로 평형위치(平衡位置)에서 한 체(体)를 구성하여 있다. 지구 한 자체는 천주간(天宙間)에 한 물질에 한 분자(分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면 지구 자체에서도 이런 원력작용(原力作用)을 구성한 존재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지구 하나지만 그 하나에서 이런 존재작용(存在作用) 즉 대상을 취하는 원력작용을 하여야 하는 결론이 성립된다.
그러므로 그것의 표현화(表現化)가 우리는 지구 자체가 남북을 통하여 이런 작용을 취하여 중심축을 정하고 돌고 있다. 그러므로 중심을 정할 수 있게 위치한 원력이 작용하는 방향으로 지축(地軸)을 정하고 지구 외 중심체와 합하여 한 방향으로만 작용할 수 있는 위치를 정하고 있다. 이러니 지축은 그 지구 자체의 원력(原力)이 합하여 통하는 곳이 자연적으로 되겠다. 그러므로 지구 자체에 이 작용의 표현화(表現化)는 전기작용과 같은 것으로 기본 원력이 남북 간을 통하고 있는 것은 이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중심 태양에 대하여 평형(平衡) 원운동(円運動)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면 지구 자체는 한 전기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없으면 원리적인 지구 요소로써 중심을 세울 수 없는 근본이기에 존재를 정하려면 이런 작용은 필연적 결과로 된다. 그러므로 물질은 전기요소를 중심한 존재이니 즉 기본원리로 원력이 작용하니 그곳은 전기작용과 같은 수수작용(授受作用)을 보는 바다. 그러므로 그 기본은 존재물 전부가 갖고 있으니 지금 과학은 전자로 되었다는 것은 과연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전기란 것은 무엇이냐고 묻게 될 때 존재원력(存在原力)이 표현화하는 제2작용이란 정의가 성립된다. 지금까지 전기는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대답을 못하여 왔다. 물체도 아니요 미립체도 아니라 하여 그 작용적(作用的) 윤곽만 정하고 있다. 그것은 전기란 딴 존재가 아니고 자연계가 존재하는 것 이상의 존재세계(存在世界)의 한 기본원력(基本原力)이 즉 전기요소(電氣要素)란 것이다. 그러면 물질을 질량(質量)이 왜 없느냐고 묻게 될 것이다. 거기 대하여서는 나중에 논하기로 한다.
전기가 물질에 통하는 것도 존재물에는 전기가 통할 수 있는 원력(原力) 요소가 있기 때문이며 또 전기가 공중을 파동되는 것도 요소(要素)를 찾아 통(通)함에서 시작함에 불과하다. 그런고로 존재 세계에는 이 창조원력 요소를 갔고 있기에 전부는 그 작용적 무대를 조성한다. 그리하여서 힘이 생기는 원리도 운동과 열(熱)도 전부는 그 원리성(原理性)으로 인한 선유물(先有物)의 작용으로 표현화(表現化)한 것을 이용하는 것이 전기과학세계(電氣科學世界)인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도 원리원력(原理原力) 세계를 떠나서는 발달과 존재위치(存在位置)를 유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므로 전기란 존재는 하나 완전(完全) 생기면 상대(相対)가 나와 대상(対像) 조성하여지는 것을 원리존재성품(原理存在性品)을 보여줌에 증명인 것이다. 그리하여 합하여서 완전존재로 지정된다. 그러니 천주에 대하여 말씀으로 명령할 수 있는 것은 이 원리가 존재물에는 같은 하나의 원리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이상 상대위치(相対位置)를 정하고 대상원력(対像原力)을 떠난 존재는 없는 것이며 또 사용시작(使用始作)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별성(分別性)한 나란 존재는 존재 세계에 존재 못하고 자연히 파괴적 방선(方線)을 취하는 도중(途中)에 처하는 것이다. 전기면 ㊉면 ㊀로써 되는 것이지 ㊉면 ㊉, ㊀면 ㊀는 각각 하나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어느 것이든지 완전하기 위하여서는 대상위치(対像位置)에서만 성립된다. 그러니 미완전(未完全)이란 존재가 존재하다면 존재하는 이상, 한 상대위치(相対位置)를 잡고 대상을 향하게 하는 노중(路中)에서는 인정할 수 있으나 완전완성(完全完成) 입장에서는 존재(存在) 인정(認定)은 못되니 그는 없는 바이다. 그러므로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는 존재완전(存在完全)을 위하여 이동하는 과정에서의 독신이 있을 수 있으나 완성한 존재 위치에서는 없는 창조원리를 가지고 있기에 나의 독신생활은 원리세계 파괴이니 있을 수 없다고 한 바가 정의적 결론을 짓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각자가 존재 완성을 위하려니 대상 찾는다는 이상론(理想論)은 원리적 원리임을 시인할 바다. 그러니 존재(存在)에서 자체는 자체에 이런 존재 원리적 작용하면서 대상(対像)에 대하여서도 그런 작용을 하고 있다. 이런 원리를 소(小)에서 대(大)로 그 기본원리(基本原理) 작용을 가(加)하여 가면서 근본(根本) 하나와 연(連)하여 합하여 있다. 무엇보다도 그와 같다. 사람을 주(主)로 하면 내 하나가 자체적으로 존재하기 위하여서는 나에게 원리작용이 있고 그다음 제2작용으로 이성(異性) 상대를 취하여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완성하는 것이 천체세계(天体世界)부터 미물(微物)에 곤충과 세균 세계까지 통하고 있다. 이런 원리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태양 역시 그러하고 지구 역시 그러하고 사람 역시 그러하다. 천주 역시 그러하다. 이러하니 한 원리형(原理形)을 소(小)에서부터 대(大)로 전개가 천주창조다. 근본 원리형은 하나라 하여 여겨보니 과학적으로도 신(神)이 지은 한 창조 그대로라고 정(定)할 바다.
즉 완전원리 중심존재를 정한다. 그 존재가 즉 창조주의 존재다. 그러므로 천주는 하나님의 자체형을 벌려 놓은 것이란 결론한 내 논리에 정의를 알 줄 안다. 그것은 원리를 중심한 천주이니 그래서 정(定)함을 본다. 그러면 사람은 물질작용하는 외 즉 동물성작용 외 양심작용을 한다. 그러면 몸으로는 만물작용완성을 보아야 하는 동시에 그 외 하늘에 대하여 선(善) 작용하여야 할 중심 존재라고 하였기에 두 작용을 한다. 그 물질계 완전 표현작용인 존재작용을 완성한 후에는 제2 대상을 취하여 작용하고 있는 동시에 양심작용을 하고 있다. 이는 하늘 선(善) 중심 유(有)에 대한 대상위치(対像位置)인 바다. 그러므로 양심이 작용하니 작용 시작은 원리성으로 인(因)함을 알게 되니 내 양심 작용은 제2작용 아니면 제1작용이라든가 하는 원리적 존재이니 여기에 대상 원점 존재는 작정(作定)되어진다. 그런데 양심은 있어서 더 좋은 양심대로 최고선(最高善)을 향하여 작용하는 그는 즉 제2 위치로 한 최고선 상대위치(相対位置)부터 대상위치(対像位置)를 잡는 바를 알면서 나는 지금 완성하는 도중에 선 존재라는 결론을 잡으니 나는 완전 완성의 작용적 양심적 작용은 원리적 작용인 것이다. 그러니 내가 논한 하나님은 양심을 보아 알 수 있는 기본 답(答)의 성립을 본다. 그러니 하나님은 인식존재(認識存在)로 지금 계신다고 한 전부는 해결 본 줄 안다. 그러므로 이상론(理想論) 전부는 이로 인한 완전한 해결을 하면서 사람은 천주중심이란 문제의 기본 성립도 해결한다.
하나님 대하여서 대상(対像) 되니 하늘 완성원리도 사람으로 인한다는 전부를 해결한다. 그러니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제2 존재로서 서게 하니 사람 조상은 하나님의 몸으로써 한다는 원리적 해결이 성립된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지금이야 이런 원리를 앎으로 가치완성(価値完成)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를 완전 중심점으로 잡으니 천주(天宙) 전부는 풀려나가는 이 이치적(理致的) 논리는 누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런 구조를 가진 원리세계(原理世界)니 이것이 천리(天理)이니 세계존재물(世界存在物)은 공식(公式)을 통하는 동시에 대상이상(対像理想)을 중심하였기에 천주는 정수(正數)로 서(徐) 되는 것이다. 전분존재(全分存在)가 있으면 존재할 수 없는 원리인 바다. 그러므로 천주인 그로서 할 수 있다는 결론도 내릴 수 있다. 그러니 사람도 지금까지에 세계 전부도 이상도 딴 제2의 나를 대(対)상 표준하고 있는 것은 기본원리인 것이다. 원리세계가 되면 대상 취하여 잘 주고받는 세계를 향하려니 세계 인류역사도 그 노정(路程)을 향하는 도중이니 존재하여 왔다. 그러면 세계상 존재하는 존재물들부터 완전대상을 향하여는 원력(原力) 위치를 영원히 정(定)하려 하고 있다. 그러므로 세계상 존재를 보아서도 원점 하나에 대한 완전 대상도 요구할 수 있는 원리인 바다. 즉 하나님 대하여 하나가 될 수 없는 대상이 존재하는 것을 정할 바다. 그 존재가 사람이다. 그러니 지금세계(至今世界)에 대한 모든 종교적 견지와 철학적 견지와 과학적 견지는 여기서 한 사명적 짐을 풀고 웃음으로 합할 바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원력이 작용하게 하는 대상원리(対像原理)에 의하여 해결되는 최고 과학원리(科學原理)로 된 원론(原論)인 것이다. 그러므로 뉴턴의 만유인력(萬有引力)은 만유원력(萬有原力)으로 반작용원리(反作用原理)는 본작용원리(本作用原理)로 중화적(中和的) 원리는 총화적(總和的) 원리로 되어서 한 신과학적(新科學的) 획기(劃期)적 선(線)을 그어야 할 바며 종교 역시 철학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 최후 승리는 원리(原理)니 선(善)에 대한 최후 승리란 것은 원리와 합하는 것이다. 원리 완성하여 나오는 노중(路中)을 세계에서는 진리(眞理)라고 하고 있다. 이 노중은 소생(蘇生)으로 장성(長成)으로 완성(完成)으로 기본(基本)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자연(自然)이란 말의 기원(起源)이 보여진다. 그러므로 이 모든 신앙적 문제가 과학적인 해결로써도 목적을 완수하여야 할 바가 정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원론으로 보면 존재물은 제일 위치인 평형위치를 잡고 안정을 필요로 하며 변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세계상을 보면 운동하는 제일 운동 지구(地球) 대하여 원력작용에 작용하는 존재로 위치를 정하고 있는 존재가 만일 딴 제2 운동 위치를 취하기 위하여서는 외부력(外部力)의 작용으로 인하는 바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중심과 합하려고 하여 그 위치를 정하지 않는다. 이것을 과학적으로 관성작용(慣性作用)이라 하고 있다. 그것은 완전존재하려니 그런 작용을 한다. 그런데 안정적 존재물에 이동운동(移動運動)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이 제일존재 운동위치가 취하고 있는 만유원력에 대하여 승리할 수 있는 외부력(外部力)이 있어서 만이 작용하는 것이 물체 혹은 물질의 이동운동의 시작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동운동을 하기 위하여는 만유원력 이상의 외부력의 작용을 필요로 한다. 그러면 이 이동하는 자체는 제일존재위치(第一存在位置)를 변할 뿐이지 그 원력작용(原力作用)은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외부력(外部力)만 중지되면 그는 본작용을 연결하는 바가 원리다. 그러므로 물체의 이동운동은 다만 그 자체가 한 것이 아니고 작용하는 외부력 자체에 대하여 피(避)하여 가는 것이 된다. 그러니 이동운동은 외부력에 대하여 자체가 파괴될 위치를 피하여 작용하는 결론으로 된다. 그러므로 이동은 본래부터 완전자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피하는 것을 이동운동(移動運動)이라 하는 바다. 그러므로 존재물(存在物)은 관습위치(慣習位置)를 유지(維持)하여 있은 중심과 하나 되고자 하여서 작용하는 힘이 대상위치(対像位置)를 변하지 않기 위한 존재물계(存在物界)의 한 의리적(義理的) 힘이 관성원리(慣性原理)로 된다. 이것이 없는 것에는 상대(相対)나 대상(対像)잡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성(慣性)이란 기본존재(基本存在)는 대상 유지성(維持性)에서 보여주는 상대간(相対間)의 전조(前兆) 작용인 것이다. 그리하여 완전히 보수(保守)키 위하여 전존재(全存在)는 작용하여 영원을 표준하고 있다. 만일 관습성(慣習性)이 없다면 전부(全部)는 파괴를 가져올 것이다. 관성(慣性)의 성질은 존재 필요성 있는 곳에는 반드시 작용한다. 그러므로 지금 과학은 관성(慣性)을 잘 이용하여서만 발달한다. 이와 같은 작용이 우리 사람을 중심하고 사람도 갖고 있기에 양심작용(良心 作用)은 본(本) 하늘 선(善)을 작용하는 것이다. 거기에 사탄 작용은 외부력(外部力)과 같은 것인데 우리 양심은 운동하고 있는 내 중심에서 관습작용(慣習作用)으로 근본(根本)을 대해서 향하는 것이 양심작용(良心作用)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하늘에 대한 의리적(義理的) 힘인 것이다. 그러니 하늘을 향하여 사람은 소망(所望)으로 하여 향하여 나온다. 이 성사(成事)함이 최고 이상(理想)이다. (일부 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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