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부모님 생애노정 - 2권 한국 해방과 섭리출발 제4절 흥남에서 부산까지 자유남하 (1950.10.14.~1951.1.27)
2. 평양 체류 40일 1950.10.24. ~ 12.4.
고향을 두고 식구수습
선생님은 동해안에 있는 흥남에서 평양(平壤)까지 걸어서 돌아왔습니다. 선생님은 서해안 지방의 평양까지 걸었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의 이전 추종자들 모두에게 선생님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리는 사람들을 보냈으나, 대부분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몇 사람들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평양에 나와서 40일 동안 있었는데 거기에서 280리만 가면 나의 고향입니다. 이틀이면 고향에 갔다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향에 있는 부모 형제들은 찾아 가지 않고 뜻을 대했던 사람들은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찾아갔습니다. 하늘을 두고 맹세했던 사람들을 만나러 다닌 것입니다. 그때에 고향에 못 간 것은 내가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따르던 식구들이 전부 어느 처소에 널려 있는지 궁금해서, 기억되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들을 수습해 가지고 다 통고하고 나서 고향에 가야 된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게 하늘을 따라가는 정도라는 거예요.
나를 믿는다고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맹세했기 때문에, 나한테 떨어진다고 보고도 안 했고 통고도 안 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스승된 책임이 있다는 거예요. 하늘이 아직까지 나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이상, 그 사람을 직접 만나 가지고 그 사람이 박대할 때는 하늘도 역시 그를 포기하지만 그 전까지는 스승으로서 맹세한 책임을 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흩어진 모든 식구들을 찾았습니다. 내가 직접 못 가면 원필이를 시켜서 만나고 이러다 보니 고향에 갈 새가 있어요? 어떤 사람은 일주일 헤매도 못찾은 사람이 있어요.
그 자체는 배반했더라도 그 후손은 구원해야 할 운명이 남아 있기 때문에 배반자들을 분간해서 청산하지 못하는 하늘의 운명이 놓여 있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40일이 다 지나갔어요.
하나님이 돌아서라 하실 때까지
내가 흥남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 매달 찾아와서 울고불고 하던 어머니를 이북에 두고 찾아가지를 못했어요. 평양에서 따르던 식구들을 찾아봐야 했기 때문입니다. 80세 이상 된 노인까지 찾아가서 죽었다는 소식을 알고야 가려니 늦은 거예요. 뜻 가운데 맺어진 동지들 식구들을 규합하기 위해서, 찾아오기 위해서 늙은 사람으로부터 젊은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생각나는 모든 사람들을 전부 방문했습니다.
그래서 찾아가 가지고, 한 번 가니 문전에서 배반하고 두 번 가니 문전에서 배반하고 세번까지…. 말하자면 전부 후퇴할 12월이구만요. 12월 2일까지 해질녘까지 사람을 보내 가지고, 나로서는 하나님이 돌아서라 하는 지시가 있을 때까지 최고의 정성을 들여야 되는 거라구요. 버릴 수 없는 거예요. 거기에 내가 할 책임을 다했다 이거예요. 심정의 이념을 들고 나와 가지고, 심정에 상처를 받은 내 가슴속에 심어졌던 모든 상처를 전부 다 뽑아서 놓고 새로운 심정을 하나님 앞에 연결시킬 수 있다는 자신을 찾아 가지고 비로소 거기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밤에 평양을 떠난 거예요. 지도자는 이렇게 신중하게 책임을 지는 거예요. 사지사판에서도 하나님이 맡겨 준 바의 책임분야를 끝맺고, 거기서 시작했으면 끝을 맺어 놓고 가지 않으면 그 사람이 가는 길이 막혀 버린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때에 인연되었던 사람을 전부 다 해결지어 놓고 내가 하늘땅 앞에 그들의 선조나 그들의 후손이나, 금세에나 내세에 있어서 그들의 조상도 동정하고 그들의 후손도 동정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는 거예요. 그런 걸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자리를 닦아놓고 나온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뒤돌아봐도 조금도 양심에 걸리지 않아요.
복중교 방문
내가 북한에서 나오면서 그 허호빈씨 어머니를 만났어요. 그 할머니가 전부 다 교단을 이끌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한번 찾아가서 처음 만났었다구요. 벌써 그 계시를 받고, 내가 가니까 경창리에 있는 선생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계시를 받고 그 따르던 사람들이 전부 흰 옷을 입고 맞아 주더라구요.
그때라도 내가 말한 대로 완전히 했으면 선생님이 고생을 안 해요. 그 단체가 컸었거든요, 거 신령한 단체가. 그 사람들은 벌써 다년간 준비를 해 왔기 때문에 주님이 와서 뭘 할까를 알아 가지고 일사천리로 차고 나갈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주교로부터, 복중교로부터 새 예수교가 한 계통인데 이것이 나만 환영했다면 문제없이 하나되는 거예요. 어떻게? 원리가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편편히 되어 있기 때문에 알지 못해요. 무슨 의미인지 해석할 수가 없다구요.
반대한 목사들의 결말
선생님이 이북 공산세계에 들어갔을 때, 기성교회 목사 80여 명이 전부 다 통일교회 문 아무개를 잡아죽이자고 서명 날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문선생이 죽게 되어서 개운하다고 하면서 앉아 있었지만, 선생님이 죽긴 왜 죽어요? 결국은 선생님을 죽이겠다고 모의하던 그 사람들이 전부 다 죽고 없더라는 것입니다. 공산당들이 다 죽였던 것입니다. 죽이려고 감옥에 잡아넣었던 사람은 살아 나오고 살겠다고 나를 죽이려고 하던 사람들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도 매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붙들고 사연을 풀고 그 원수들을 친히 사랑했노라고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모색하려고 알아봤더니 모두다 흔적도 없이 죽고 없었던 것입니다.
평양에서 나를 감옥에 집어넣은 사람이 남이라는 목사인데 이름은 모른다구요. 그 목사의 자식들까지 다 죽었습니다. 그런 놀음을 봤어요. 그것을 하늘이 다 청산한 거라구요.
그렇다고 ‘너 벌받아’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 후손이 남았거들랑 ‘하늘이여! 부디 이제는 손을 떼시고 이제부터 이 나머지 후손에게도 나로 말미암아 복을 인계하시옵소서’해야 돼요. 그게 의인들이 가는 길이요, 그게 하나님이 가는 걸음이라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뜻을 등진 식구들
선생님이 지금까지 뜻길을 걸어 나오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부정했습니다. 평양에서부터 지금까지 걸어 나오는 가운데 하늘 앞에 맹세했다가 떨어져 나간 사람들을 내가 모두 손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지금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다 알고 있습니다. 과거에 누가 이런 맹세를 했고, 그 사람이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다는 것도 다 알고 있습니다.
내가 저 흥남감옥에 들어갈 때 말이예요, 따르는 여자들도 많았다구요. 선생님을 위해서는 천상에서 죽거들랑 또 재림부활해 가지고, 회생해 가지고 몇 대를 살더라도 선생님을 위해서 소원성취를 할 여성이라고, 꽃이라면 백합화가 되고 꽃이라면 장미꽃이지 호박꽃이 아니라고, 얼마나…. 어떤 사람은 하는 말이 ‘백두산 천지의 반석을 갈아 가지고 감자를 심어서 선생님을 봉양하는 일이 있더라도 전 선생님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하더니 웬 걸, ‘죽음길을 가야 되겠다’할 때는 ‘어, 생각을 좀더 해봅시다’ 믿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이라구요.
선생님 앞에 말이에요, 배반한 여자들이 많아요. 그런데 하나님 앞에 배반한 사람이 얼마나 많겠느냐 이거예요. 아담 해와도 배반하고, 천사도 배반하고, 지금까지 배반의 역사를 엮어 나왔지마는 절대적 사랑을 가지고 주장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원수를 못 갚는다구요, 원수를. ‘하나님은 왜 그렇게 기다리고 있소?’ 이렇게 물으면 ‘그럴 수가 없다’한다구요. 절대적 사랑을 했기 때문에 원수를 못 갚고 기다리고 있다구요. 목을 이렇게 빼고 ‘두고 봐야지, 난 기다리고 간다’하는 거예요. 절대적 사랑을 가지고 기다리는 거예요. 하늘이 얼마나 불쌍하고, 하늘이 얼마나 비참한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돼요. 얼마나 참고 얼마나 비참했느냐 이거예요.
평양시대를 대표하는 네 식구
선생님은 이북에서 여자 세사람(지승도, 옥세현, 정달옥)과 남자 한사람(김원필)을 복귀했습니다. 이러한 기대가 없으면 복귀섭리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3대 기준에 걸쳐서 여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그 3대권의 여자의 형을 복귀할 수 없다면 진정한 부부를 겸한 자녀를, 가인과 아벨로서 일체가 된 자녀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탕감적인 여자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러한 내용을 정하고 북한에 갔었고 가서 구해 온 것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이 세 여자들을 데리고 나온 것은 3시대의 여자들이 잘못한 것을 탕감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원필이가 20세 전에 선생님을 모셨다는 것은 지극히 역사적인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공산권 가인 세계를 대표한 가인의 입장이기 때문에 선생님에 대해 절대 복종해야 되는 거예요. 여기에는 이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원필이가 전부 다 뒷바라지 한 거예요.
김백문 씨의 자리에 있는 한 사람을 복귀시키기 위한 조건들을 세우기 위해 선생님을 따르던 멤버들의 수는 선생님이 감옥에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선생님이 돌아왔을 때에도 똑같이 그대로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 김씨의 역할을 했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김원필이었습니다. 또한 거기에 세 여인도 있었습니다. 한 남자와 세 여인이 있게 됨으로 말미암아 선생님이 김백문 씨 집단에서 복귀하기를 원했던 네 사람을 복귀시킨 셈이 되었습니다.
이북의 원수들에게 가서 찾아왔던 것입니다. 이북에 가서 사위기대를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투쟁하여 얻은 그 모든 기반을 중심삼고, 그 아들딸을 중심삼고 복귀의 터전을 넓혀 나왔습니다. 원리적 견지로 보면, 그러지 않고는 새로운 출발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옥중제자 네 사람을 대표한 박정화(朴正華) 씨
그래서 선생님을 따르는 네 사람이 생기게 되었고, 선생님을 감옥에서부터 따르던 네 사람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월남할 때 그들 중의 한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수의 사람을 복귀하였기 때문에 남한에서 영적인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으로부터 통일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그후의 섭리는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내가 감옥에서 나올 때 네 사람을 데리고 나와서 평양에 와 가지고 자기 고향에 다녀오라고 전부 다 보냈어요. 아무날 몇 시까지 오라 했는데 잠깐 날짜를 놓침으로 말미암아, 후퇴 바람에 전부 다 따라 나오지 못했어요. 그래서 맨 나중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감옥에서 같이 있다가 먼저 나온 다리 부러진 박정화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리가 부러져 누워 있었기 때문에, 그의 형제가 전부 이남으로 내려가면서 내버려 두고 가서 누워 있는 판인데, 그 집에는 그 한 사람하고 집 지키는 세퍼트 밖에 없었습니다. 그 집을 찾아가서 다리 부러진 사람을 자전거에 싣고 내려오던 생각이 잊혀지질 않는다구요.
그리고 내가 이북에서 나올 때, 평양에 있다가 나올 때 어머니한테 사람을 보내 가지고 나오라고 했는데, 그때 원필이 어머니하고…. 그런데 서로 갈리게 되었지만, 자식의 도리로서, 북한 실정이 장구화할 수 있는 무엇이 있었기 때문에 보내 가지고 오라고 했는데…. 그래, 가다가 잡혔든 뭐했든 어떻게 돼 가지고…. 그래 할 수 없이 그 문정빈이라는 사람을 원필이 어머니 데리러 보냈다구요. 그런데 걸어가더라도 하루 이틀이면 돌아왔을 것인데 안 돌아온다 이거예요. 그래 사태는 점점점 불리해져 가지고 완전히 포위되겠기에 안 되겠으니 할수없이 길을 떠났다구요. 그래 가지고 그야말로 나를 위해 생명을 바치겠다고 따라온 그 문씨라는 사람은 못 나왔다구요.
그 양반들 둘이 살았으면 영계에 가서라도 둘을 데려다가…. 그 남편하고 둘이 살았더라도 축복한 것으로 쳐 줘야 되겠다 하는 생각까지 한 사람이예요. 그런 역사의 배후가 있기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