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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할미꽃당신 원문보기 글쓴이: 빙혼서생
제9장/ 삼위일체설의 허구성
삼위일체라는 것은 기독교의 신이 여호화인 성부(聖父), 예수 그리스도인 성자(聖子) , 성령
(聖靈)의 세 위격(位格)을 가지며, 이 세 위격은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고 유일한 실체로서 존
재 한다는 교리이다. 아타나시우스 신경에 의하면, 신성한 세위(성부,성자, 성령)는 각기 영원
하며, 각기 전능하며, 아무도 다른 자보다 크거나 작지 않으며, 각기 신(神)이지만 모두가 하나
의 신을 이룰 뿐이라고 한다. 또 다른 설명으로 세위는 분리된 개체가 아니라, 신의 본성이 내
재하는 세 가지 형태라고 강조한다.
삼위일체는 오늘날 기독교의 기본교리로써 신자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무비판적으로 받
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기독교의 종파는 초대 기독교부터, 중세시대의
영지주의, 오늘날의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등장했다. 기성의 교단들
이 이런 종파를 이단으로 몰아붙인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교리라는 것이 사실상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며, 기성교단은 삼위일체
를 부정하는 것만으로는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할 근거가 없다. 삼위일체의 교리는 미트라의
숭배자 였던 콘스탄티누스가 개최한 종교회의에서 투표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써, 신약속에서
는 삼위일체를 찾아 볼수가 없다. 그리고 정작 신약의 곳곳에서 예수와 신이 동일한 위격이 아
님이 여실히 드러난다.
예수와 신(여호와)과의 관계정리는 AD 325년 니케아 공의회(公議會)에서 결정되었으며, AD
381년에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성령에 대한 관계정리가 이뤄졌다. 삼위일체설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우선 그 역사적 실체부터 알아야 하지만, 그 역사적 부분에 대해서는 10장의 콘스
탄티누스와 종교회의편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 삼위일체의 배경
각종 백과사전, 심지어 삼위일체를 신봉하는 카톨릭의 사전에도 삼위일체가 성경적인 것이 아
니라 역사적인 조작임을 순순히 시인하고 있다. 권위있는 각종 사전에서 삼위일체에 대해 내
린 한 정의를 살펴보도록 하자.
'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삼위일체라는 말도 그에 해당하는 명백한 교리도 신약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예수와 그의 추
종자들도 구약에 나오는 쉬마 즉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하나인 주이시니
라'(신명기 6:4)는 말과 모순되는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중략)... 그 교리는 여러 세기에
걸쳐 많은 논쟁을 거치면서 점차 발전된 것이다....(중략)....4세기 말에 이르러....(중략).... 삼
위일체 교리가 구체적으로 정립되었으며 그 후 그대로 유지되었다." [NEW Encyclopaedia Br
itannica - Macropaedia / Encyclopaedia Britannica, Inc.]
'신 카톨릭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위 속의 한 하느님이란 교리는 제 4세기 말 이전에는 완전히 체계화 되지 않았으며, 확실히
온전하게 그리스도인 생활과 신앙 고백의 일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체계화된 바로 이 교리
가 처음으로 삼위일체 교리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 사도 교부들 간에는 그러한 경향이나 사
조에 조금이라도 접근하려는 노력같은 것 조차 전혀 없었다." [New Catholic Encyclopedia /
Mc Graw Hill]
카톨릭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성경에서 세 신성한 위를 합쳐서 표시한 단일 용어는 이제까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트리아
스'(라틴어 역어는 트리니타스)라는 단어는 기원후 180년경의 안디옥의 테오필루스에게서 처
음으로 볼 수 있다....(중략).... 그후 얼마 안되어 테르툴리아누스에게서 그 단어의 라틴어 형
태인 트리니타스가 나타난다." [The Catholic Encyclopedia]
하지만, 테르툴리아누스는 삼위일체를 가르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카톨릭 저작물인 '트리니
타스: 성 삼위일체 신학' 백과사전은 테르툴리아누스가 사용한 몇몇 단어를 나중에 다른 사람
들이 삼위일체를 묘사하는 데 사용했다고 지적한다. 그러고 나서 그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러나 그런 용례로부터 성급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그는 그 단어들을 삼위일체 신학에
적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Michael O'Carroll / Trinitas:A Theological Encyclopedia of the
Holy Trinity]
아메리카나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알려 준다.
"유대교에서 나온 기독교와 유대교는 엄격히(신은 한분의 인격체라고 믿는) 유일신파였다. 예
루살렘에서 니케아에 이른 길은 거의 곧은 길이 아니었다. 제 4세기의 삼위일체론은 신의 본
성에 관한 초기 기독교의 가르침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 가르침에서 이탈한 것
이었다." [The Encyclopedia Americana]
프랑스의 신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알려 준다.
"플라톤의 삼위일체는, 그 자체가 좀 더 고대 사람들의 시대에 속하는 더 오래된 삼위일체 사
상들을 정립한 것에 불과한 것이며, 합리적인 철학적 삼위일체로서 그리스도교 교회들이 가르
치는 삼위일체에 대한 이 헬라 철학자(플라톤, 기원전 4세기)의 개념을....(중략).... 고대의 모
든 이교 종교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 M. 라샤트르 편/ 신 백과사전/ 파리]
예수회의 죤 맥킨지는 그의 편저 '성경사전'에서 이와 같이 말한다.
"위격들의 본성이 하나인 삼위일체는 헬라 철학 용어인 위와 본성이란 용어로 정의된다. 사실
상 그 용어들은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다. 삼위일체의 정의는 일부 신학자들이 그러한 용어들
과 본질 및 품성과 같은 다른 용어들을 하나님께 그릇되게 적용한 오랜 논쟁의 결과로 생겨났
다." [John L. McKenzie / dictionary of the Bible]
성경도해 사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중략).... 그러한 말은 제 4세기까지 교회의 신
학에서 공식적인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J. D. Douglas / The Illustrated Bible Dictionar
y / IVP]
베른하르트 로제는 '간추린 기독교 교리사'에서 삼위일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약에 관한 한 실제의 삼위일체 교리를 찾아 볼 수 없다." [Bernhard Lohse / A Short Hist
ory of Christian Doctrine / Augsburg Fortress Publishers, Publishing House of The Evang
elical Lutheran Church in America]
신약 신학 신 국제 사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약에는 발전된 삼위일체 교리가 들어 있지 않다. '성경에는 성부, 성자, 성령이 동등한 본질
에 속한다는 명확한 단언이 없다'라고 개신교 신학자 칼 바르트는 말했다....(중략)....원시 기
독교에는 나중에 신경에 상술된 것과 같은 명백한 삼위일체 교리가 없었다." [Colin Brown, P
h.D.(Edt) / The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New Testament Theology / Zondervan P
ub House]
포트만의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공식적 혹은 공식화된 삼위일체 교리, 한 하나님 안에 동등하고 신성한 세 위가 있다는 명백
한 가르침을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중략)....우리는 동일한 지고의 신안에, 신성한 생명과
활동의 주체인 별개의 세 존재가 있다는 식의 삼위일체 교리를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Portman / The Triune God]
예일 대학교 교수 워시번 흡킨스는 '종교의 기원과 발전'에서 이렇게 확언했다.
"삼위일체 교리는 예수와 바울이 알지 못한 것이 었음이 분명하다....(중략).... 그들은 그것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E. Washburne Hopkins / Origin and Evolution of Religion
/ Yale U.P]
초대교회의 기독교인들은 삼위일체를 믿지도 않았으며 그 개념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AD 165년경에 순교자 저스틴(유스티아누스)는 예수를 가리켜 만물을 만드신 신과는 다른 창조된
천사라고 불렀다. 예수는 신보다 낮은 위격이며, "창조주께서.....그에게 행하고 말하도
록 뜻하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저스틴은 말했다.
200년경에 사망한 이레나에우스는 인간 이전의 예수는 신과는 별개의 존재이며 신보다 낮다
고 말했다.
200년경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인간으로 존재하기 전의 예수를 피조물이라고 불렀지
만 신은 "창조되지 않은 불멸의 유일하신 참 신(神)"이라고 불렀다. 그는 홀로 아들이 "홀로 전
능하신 아버지의 바로 다음이지만, 그분과 동등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230년경의 테르툴리아누스는 "아버지는 아들과 다르다. 그분이 더 크시기 때문이고, 낳은 이
는 태어난 이와 다르기 때문이며 보낸 이는 보냄을 받은 이와 다르기 때문이다....(중략)....아
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중략).... 만물이 있기 전에, 신(神)께서 홀로 계셨다."라
고 말했다.
AD 230년경에 히폴리투스는 "한 분이신 신, 처음이자 유일하신 분, 조물주, 만물의 주"라고
말하면서, 그 분과 동년배(연령이 같은 자)는 전혀 없다...(중략)...그러나 그분은 스스로 홀로
계셨던 분이며, 자신의 뜻대로 전에 존재하지 않던 것을 존재하게 하신 분이다."라고 말했다.
200년경의 오리겐은 "성부와 성자는 두 실체....(중략).... 즉 그 본질에 있어서 두 개체"이며
"성부와 비교할 때 성자는 매우 작은 빛이다."라고 말했다. 두산세계대백과는 오리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은 아버지이신 신의 아래 위치한다.'고 하는 등, 몇 가지 점에서 교회
의 전통적 해석에서 벗어나는 유설(謬說)이라고 공의회의 배척을 받았지만, 그리스도교 최초
의 체계적 사색가(思索家)로서 이후의 신학사상 발전에 공헌한 점은 매우 크다." [두산세계대
백과 EnCyber / 오리게네스 Origenes항목]
역사상의 증거를 요약하면서, 앨번 램슨은 '초기 3 세기의 교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대에 널리 보급된 삼위일체 교리는....(중략)....유스티누스의 용어로부터 아무런 뒷받침도
이끌어 내지 못한다. 이 말은 니케아 공의회 이전의 모든 교부들에게,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탄생 후 3세기 동안의 모든 기독교 필자들 에게 확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아버지와
아들과....(중략).... 성령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등하다거나, 단 하나의 본질이라거나,
하나 속의 셋이라거나, 현재 삼위일체론 자들의 어떤 의미로도 말하지 않는다. 사실은
오히려 정 반대이다." [Alban Lampson / The Church of the First Three Centuries]
따라서 삼위일체는 초대교회 이후 여러 세기 전체에 걸쳐 전혀 알려지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알려 준다. 그렇다면, 삼위일체 교리는 어떻게 발전했는가? 삼위일체의 교리는 AD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에서 공식화되었다. 그러나 이 회의에서는 예수와 여호와가 동등하다는 것이 공
인된 회의였지, 성령에 대한 언급은 아예 제기 되지도 않았다. 태양신 숭배자였던 콘스탄티누
스가 니케아 공의회에서 강제적으로 예수를 여호와와 동일시켜 버린것이다. 하지만 니케아 공
의회에 참석한 주교들중에 어느 누구도, 심지어 아타나시우스 조차도 삼위일체를 주창하지 않
았다. 이 회의에서는 성령따위는 아예 언급이 되지도 않았고, 예수의 본성에 대해서만 결론을
내렸을 뿐 이었다. 물론, 니케아 공의회에서 공인되었다는 아타나시우스 신경에는 삼위일체가
언급되어 있다.
"우리는 삼위일체의 한 하나님을 숭배한다....(중략).... 성부도 신이시며, 성자도 신이시며, 성
신도 신이시다. 그러나 세신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한 신이 계시다."
하지만 오늘날 남아있는 아타나시우스 신경은 아타나시우스가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데 의견
을 같이한다. 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아타나시우스 신경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경은 12세기까지도 동방의 교회에 알려지지 않았다. 17세기 이래로, 학자들은 아타나시우
스 신경이 아타나시우스(373년 사망)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필시 5세기 중에 프랑스 남
부에서 쓰여졌을 것이라는 점에 대체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중략)....신경은 일차적으로
6세기와 7세기 중에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에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9세기 독
일 교회의 예배 의식에서 사용되었으며, 얼마 후에는 로마에서 사용되었다." [NEW Encyclop
aedia Britannica]
두산세계대백과 역시 아타나시우스 신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해 준다.
"최근의 연구로 푸아티에의 힐라리우스와 아를의 대주교 성 카에사리우스의 것이라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그 저작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5세기경까지 갈리아 남부 지방에서 성립된 것으
로 추정되고 있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아타나시우스신조 Symbolum Athanasianum
항목]
니케아 공의회에서 예수의 본질에 대해서 결정이 난후에도, 예수가 신(神)과 동등하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이 한동안 우위를 되찾았다. 그러자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AD 381년에 콘스탄티노
플 공의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그 공의회에서, 성령을 신과 예수와 똑같은 수준에 놓기로 합
의한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것이 처음으로 등장한 삼위일체였던 것이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후에도, 삼위일체는 널리 받아 들여지는 신조가 되지 못했다. 많
은 기독교인들이 그것을 반대했으며 그로 인해 로마로부터 폭력적인 박해를 받기까지 했다.
삼위일체가 규정된 신조로 받아들여진 것은 여러 세기가 지난 다음의 일 이었다.
아메리카나 백과사전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삼위일체론이 온전히 발전한 것은 서방에서, 중세의 스콜라 철학에서, 철학과 심리학의 용어
들로 설명을 시도했을 때의 일이었다." [The Encyclopedia Americana]
그렇다면 도데체 삼위일체라는 교리는 어디에서 온것인가?
눈치채신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동방의 삼신사상이 그대로 기독교에 유입된 것이었다.
이집트의 호루스-오리시스-이시스의 삼신사상이나, 메소포타미아의 삼신, 힌두교의 삼신등 고대
중근동에서는 삼신사상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힌두교 신과 의식의 상징에서는 힌두교의 삼위일체에 관해서 아래와 같이 언급했다.
"시바는 삼위일체 신들 중 하나다. 그는 파괴의 신이라고 한다. 다른 두 신은 창조의 신 브라마
와 유지의 신 비슈누다....(중략)....이 세 가지 작용이 동일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세 신
은 하나의 형태로 결합되어 있다." [A. Partasarati / The Symbolism of Hindu Gods and Rit
uals / Bombay]
고대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에는 삼신 혹은 삼위일체의 신들이 있었다. 프랑스의 라루스 신화
백과사전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있었던, 그와 같은 신들 중 하나를 이렇게 지적한다.
"우주는 세 구역으로 나뉘어 졌는데, 각 구역이 한 신의 영역이 되었다. 아누의 몫은 하늘이었
다. 땅은 엔릴에게 주어졌다. 에아는 물들의 통치자가 되었다. 그들이 합쳐서 위대한 신들의
삼신을 이루었다." [Robert Graves / Larousse Encyclopedia of Myth / Prometheus Press]
지크프리트 모렌츠의 '이집트의 종교'에서는 이집트의 삼신사상이 기독교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삼위일체는 이집트 신학자들의 주요 관심사였다....(중략).... 세 신을 결합하여 단일 체로 취
급하면서 단수로 언급 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이집트 종교의 영적 힘은 기독교 신학과 직접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Morenz, Siegfried / Egyptian Religion / Cornell University Press]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출신의 아타나시우스와 같은 3세기말과 4세기초 교부들은 동방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지크프리트 모렌츠는 "알렉산드리아 신학이 이집트 종교 유산과 기독교 사이
의 중재자 일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에드워드 기본의 '기독교의 역사'의 머리말에서는 삼위일
체의 교리에 대해서 강력히 비판하기도 했다.
"이교 사상이 기독교에 의해 정복당했다고 한다면, 기독교가 이교 사상에 의해 부패되었다는
것도 동일한 사실이다....(중략).... 초기 기독교이 신에 대한 순수한 개념은 로마 교회에 의해
삼위일체라는 불가해한 교의로 변질되었다. 이집트인들이 만들어 냈고 플라톤이 이념화한 다
수의 이교 신조들이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Edward Gibbon / His
tory of Christianity]
종교 지식 사전은, 삼위일체가 "이교에서 빌려 온 타락한 것으로서 그리스도인 믿음에 접
목"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현대 그리스도교의 이교 사상'(The
paganism in Our Christianity)책에서도 삼위일체가 전적으로 이교에서 기원한 것 이라고 단
언하고 있다.
제임스 헤이스팅스는 종교 및 윤리 백과사전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인도의 종교에서 브라마, 시바, 비슈누의 삼위일체군(群)을 접하게 되며
이집트 종교에서는 오시리스, 이시스, 호루스의 삼위일체군을 접하게 된다....(중략).... 하나님을
삼위일체로 생각한 것은 역사상의 종교들에게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특히 생각나는 것은 최
고의 실체 혹은 궁극적 실체에 대한 신 플라톤 주의의 견해이다." [Hastings, James (Editor)
/ Encyclopedia of Religion and Ethics / Charles Scribner's Sons]
그렇다면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삼위일체에 어떤 영향을 끼쳤던 것일까?
플라톤은 BC 428년부터 347년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플라톤이 삼위일체를 가르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삼신 신앙을 포함하는 철학 운동이 일어났다.
프랑스의 신 백과사전은, 플라톤의 영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플라톤의 삼위일체는 그 자체가 이전 시대 민족들에게로 소급하는 더 오래된 삼위일체들을
재정립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그리스도교 교회들이 가르치는 세 위격 혹은 신성한 세 위를 산
출한 속성들로 이루어진 합리적 철학적 삼위일체인 것으로 보인다....(중략)....신성한 삼위일
체에 대한 이 그리스 철학 개념은... 고대의 모든 이교 종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Nouveau
Dictionnaire Universel]
초기 3세기의 교회는 이렇게 설명한다.
"삼위일체 교리는 점진적으로 그리고 비교적 후기에 형성되었으며....(중략)....그것이 점차 자
라서 플라톤을 신봉하는 교부들의 손을 거쳐 기독교에 접목되었다." [Alban Lampson / The
Church of the First Three Centuries]
AD 3세기 말엽에는, 초대교회와 신 플라톤 주의 철학이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연합 되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기독교를 대중화된 플라토니즘이라고 평가하고 있을 정도이다.
아돌프 하르낙의 저서 '교의 역사 대계'에서 교회의 교리는 헬레니즘 사상의 토양에 확고하게
뿌리기 위해 이교적 사상을 흡수했다고 한다.
"사실상 교회는 자체 내에 헬레니즘식 추론, 미신적 견해 및 이교의 신비적 숭배 관습을 합법
화 했다." [Harnack, Adolf / Outlines of the Sitory of Dogma / Little Brown & Co, Boston]
삼위 일체설의 교의를 믿지 않는 성명(聲明)에서 앤드루스 노턴은 삼위일체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이 교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근원이 그리스도의 계시가 아니라 플라톤의
철학임을 발견할 수가 있다...(중략)...삼위일체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교리가 아니라 후기 플
라톤 학파가 꾸며낸 것이다." [Norton, Andrews / A STATEMENT OF REASONS FOR NOT B
ELIEVING THE DOCTRINES OF TRINITARIANS / Brown, Shattuck, And Company / Hilliar
d, Gray, And Co.]
삼위일체론은 복음서나 서신들이 등장하던 시기에도 그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삼위일체를 부정하다 로마에서 박해받은 아리우스파의 주장처럼 성경에는 삼위일체를 무색케
하는 수많은 구절들이 등장한다. 1세기 신자들은 예수는 그들을 구원해줄 메시아로 여겼을 뿐
이었고 예수를 창조신과 동일시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예수 역시 자신이 여호와라고 말한적이
없다. 이제부터 그러한 성경구절을 파헤쳐 보자.
▶ 성부와 성자는 동등하지 않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요한복음 10장 30절]
이 구절은 어찌보면 삼위일체를 증거하기에 합당한 구절이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은
오히려 이것은 삼위일체를 증거할만한 자료가 아니라,부정하는 구절이 됨을 알게 될 것이다.
위와같이 예수가 스스로를 신격화 시키자 유대인들은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
이로라"라고 화를 내며 예수를 돌로 치려고 했다. 그러자 예수는 그 유대인들에게 아래와 같이
대답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
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요한복음 10장 34~38절]
놀랍게도 예수는 자신을 구약의 선지자들과 대조시키면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는 구약의 선
지자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는데, 자신이 그 명칭을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있냐고
항변했다. 예수는 결국 자기 스스로를 구약속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처럼 말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말은 구약은 물론, 신약의 곳곳에 등장한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
는지라...(중략)...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의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창세기 6장 2∼4절]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욥기 1장
6절]
"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서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와서 여호와 앞에
서니."[욥기 2장 1절]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갈라디아
서 3장 26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로마서 8장 14절]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로마서 8장 19절]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
음 5장 9절]
또한, 하나님의 아들(=인간)을 가르켜 신(=엘로힘)이라고 한 구절도 있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시편 82장 6절]
결국 예수가 말한 것은 문맥상으로 보아도 예수는 삼위일체를 말하지도 않았으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 역시 '신의 뜻을 전하는 자' 정도의 뜻일 뿐이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삼위일체에 어긋나는 다른 구절을 살펴보도록 하자.
길 떠나는 예수에게 어떤 사람이 "선하신 선생님....."하면서 그를 붙잡자, 예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
니라." [마가복음 10장 18절]
벌써 이 한구절 만으로도 예수와 여호와가 동일한 위격이 아님을 여실히 나타내지 않은가?
그래도 믿지 못하는 여러분들을 위해 다른 구절도 계속해서 끄집어 내겠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
라." [마가복음 13장 32절]
종말의 시기는 예수 조차도 모르고 오로지 여호와만이 알고 있다고 한다. 즉, 예수와 여호와는
동등한 위격이 아닌 것이다.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요한복음 8장 42절]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
령하여 주셨으니." [요한복음 12장 49절]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요한복음 14장 28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고
린도 전서 11장 3절]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
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고린도 전서 15
장 28절]
이처럼, 예수는 여호와에게 복종하는 존재이며, 여호와는 예수보다 훨씬 큰 존재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요한복음 5장 19절]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
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
서 하시고." [마태복음 26장 39절]
여기서 예수는 강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지만, 피
하기를 바라고 그렇게 기도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별개의 개체가 아니라 하나라면, 예
수는 자신에게 기도하였을 것이며 자기의 뜻이 당연히 아버지의 뜻이 되었을 것이 아닌가!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골로새서 1장
15절]
위 구절에서 예수는 여호와의 첫 번째 창조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위일체론자들은 먼저 나신이란 말은 '으뜸가는, 가장 뛰어난, 가장 탁월한' 이란 뜻이며, 따
라서 그리스도는 창조물의 일부가 아니라 창조물과 관련하여 가장 탁월한 분으로 이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일 사실이 그렇다면, 또한 삼위일체 교리가 사실이라면, 아버지와 성령 역시 모든 창조물 중 먼저
나신 자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나 성경에서는 아들에게만 이 표현을 사용한다.
먼저 나신이란 말의 통상적인 의미로 보면, 예수가 여호와의 아들들로 이루어진 가족 중에서 장자라는
것을 시사한다.
골로새서 이전에, '...의 먼저(처음) 난 자(것)' 혹은 '장자'란 표현이 약 30회 이상 나오며, 그 말이 생물에게
적용된 경우에는 매번 같은 의미가 적용된다. 즉 '먼저 난 자(것)'는 그 집단에 속한다. 이스라엘의 장자는
이스라엘의 아들들 중 한사람이며, 파라오의 장자는 파라오의 가족 중 한 사람이고, 생축의 처음 난 것은
그짐승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골로새서 1장 15절에 나오는 그 말에 특별한 다른 의미를 적용하는가?
그것은 성경의 용법에 따른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이미 고수하고 있고 증거를 찾고자 하는 신앙에 기인한
것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요한복음 8장 58절]
위 구절도 앞에서 지적한 골로새서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져야할 것이다.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아들들에게 큰 자리를 달라고 부탁했을 때, 예수
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
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20장 23절]
'개역한글판'의 뜻이 모호한 것을 고려해서 '공동번역판'을 다시 올린다.
"예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도 내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편과
내 왼편 자리에 앉는 특권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 [마태오의 복음서 20장 23절 / 공동번역판]
예수는 그들에게 자리를 약속할 권한이 없음을 시사한 것이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
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베드로전서 1장 3절]
예수가 승천한 후에도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일컫는다. 이들이 삼위일체를 믿었
다면 이렇게 기도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다윗)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사도행전 13장 23절]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절]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린 것은 여호와라고 언급해 놓았다. 이상은 예수와 여호와가
동등한 위격이 아님을 증거하는 구절들이다.
▶ 성령과 다른 위격은 동등하지 않다
성령을 언급하는 몇몇 구절들은 성령이 인격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성령이 가르치고, 증거하고, 말하고, 듣는 보혜사(paraclete :돕는자, 신세 ,협조자,
공동)로 언급되어 있다. [요한 14:16,17,26;15:26;16:13]
그러나 다른 구절들은 사람들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었으며, 일부 사람들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거나 기름부음 받았음을 알려준다. [누가 1:41 ; 마태 3:11 ; 사도 10:38]
성령에 대한 후자의 언급은 명백히 인격체에 적합하지 않다. 성경에서 지혜, 죄, 사망, 물 ,피
를 의인화한 것처럼, 여기 첫부분에 인용된 성구들 역시 성령을 의인화한 비유적인 표현을 사
용한 것이다. 신 카톨릭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신약의 대부분의 성구들은 하느님의 영을 어떤 인물이 아니라, 어떤 것으로 나타낸다. 특히
그 사실을 하느님의 영과 하느님의 능력이 대응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1967년 판, 제 13
권, 575면) 그 사전은 또한 이와 같이 알려 준다. 호교론자들(제 2세기 헬라의 그리스도인 필
자들)은 그 영에 대하여 아주 모호하게 말하였다. 우리가 아주 비인격체로 말했을 것이라고도
상당히 기대할 수 있다." [New Catholic Encyclopedia / Holy Spirit 항목]
이제는 성령과 예수가 함께 하지않고 따로 행동한다는 구절을 언급하겠다.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
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한복음 7장 39절]
요한복음의 위 구절은 의미심장하다. 예수가 아직 받지 못했다는 영광이 성령인지는 명확하지
는 않지만, 예수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 신에게서 능력을 받아 사람들에게 행하는 존재임
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는 구절이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
편에 서신 것을 보고." [사도행전 7장 55절]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사도행전 7장 56절]
스데반은 예수가 신의 우편에 서있는 환상을 보았다고 하는데 여기서 성령은 아예 언급되지도
않았다. 요한 계시록 7장 10절, 22장 1~3절에도 예수와 여호와가 함께 등장하지만 성령은 아
예 언급 되지도 않는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
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사도행전 2장 33절]
위 구절에서 예수는 성령을 아버지에게 받아서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선지자 정도로 표현되어
있다. 또, 성령은 예수와 하나가 아니요, 신에게서 성령을 받고 예수를 인도하기도한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태복음 4장1절]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
리시며." [누가복음 4장 1절]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태복음 3장 16절]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요한복음 20장 22절]
그리고, 성령은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여호와가 사용한다는 구절도 자주 등장한다. 즉, 성령은
신의 뜻을 행하는 도구이지 신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
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2장 31~32절]
정말로 이 구절로써 삼위일체 교리는 분명히 모순이 될 것이다. 이 구절에 의하면 성령은 예수
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신학 연구에서, 예수회의 카알 라흐너는 성령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신은 성령에 대하여 사용된 적이 전혀 없다. 또한 문자적으로, 신과 성령(holy spirit)에 대하
여 사용된 적도 전혀 없다." [Karl Rahner / Theological Investigations]
신 카톨릭 백과사전에서는 성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구약에서는 분명히....(중략)....하느님의 영을 한 위 혹은 한 인격체로 나타내지 않는다...(중
략)...하나님의 영은 단지 하나님의 능력 일뿐이다. 때때로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과 구별되는
존재로 구분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야훼의 호흡이 겉으로 보이게 나타나기 때문이
다." [New Catholic Encyclopedia / Holy Spirit 항목]
▶ 기독교계의 옹색한 변명
앞의 글들을 읽어 내려가신 여러분들은 삼위일체에 대해서 어느정도 의문감이 생겼으리라 본
다. 그렇다, 성경에 삼위일체는 없다. 종교회의에서 투표로 결정된 사항일 뿐인 것이다!
기독교계가 제시하는 삼위일체의 근거는 빈약하기 그지없고 그나마 억지주장에 가깝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립보
서 2장 6절]
신약에는 삼위일체에 상반되는 수많은 구절이 등장하는데, 이 구절만큼은 어떻게 보면 삼위일
체에 합당한 구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번역상의 오류일뿐이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KJV나 NIV성경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Who, being in the form of God, thought it not robbery to be equal with God." [Philippian
s 2: 6 / KJV] 직역: "신의 모양이 된 그는, 신과 동등됨을 약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Who, being in very nature God, did not consider equality with God something to be gras
ped." [Philippians 2: 6 / NIV] 직역: "매우 자연스럽게 신이 된 그는, 신과 동등 되게 붙잡는
것을 검토하지 않았다."
여기서 희한하게 '약탈'(robbery) 또는 '붙잡다'(grasp)라는 표현이 사용되어졌다.
헬라어 원문에서 이 구절에는 '약탈하다'라는 단어인 '하르파그몬'(Harpagmon)이라고 기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헬라어의 하르파그몬의 어근인 하르파조(Harpazo)는 '약탈하다', '강탈하다', '잡아끌다'라는
뜻인데, 기독교인들은 이 단어를 '휴거'라는 용어로 받아 들이기도 한다. 개역한글판 성경은
하르파그몬(Harpagmon)을 '취하다'라는 애매모호한 단어로 번역을 해놓았다.
로버트슨 니콜의 '해설자의 그리스어 성경'는 아래와 같이 지적하고 있다.
"하르파조(Harpazo)혹은 하르파그몬을 포함한 어떤 파생어가 가지고 있는 즉 보유하는 의미
를 나타내는 구절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그것은 항상 탈취하다, 강제로 빼앗다를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올바른 의미인 '취하려 하다'에서 '굳게 보유하다라'라는 단어가 다른 의미
로 변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W. R. Nicoll / The Expositor's Greek Testment.]
즉, 예수는 신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지만(=신의 말씀을 전하고 신처럼 행동했지만), 신과 동등
함을 나타내는게 약탈이 아니라고(=신성모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구절인 것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삼위일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번역상의 오류일뿐인 것이며 오히려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구절인 것이다. 더욱이 바울은 삼위일체를 주장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중보도 한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
라." [디모데전서 2장 5절]
위에서 바울은 인간과 여호와 사이의 중간에 존재하는 자가 예수라고 말하고 있다. 즉, 인간
보다는 높으나 신(神)보다는 낮은 것이 예수이다. 다른 구절을 살펴보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 이시니라."
[요한복음 1장1절]
요한복음 1장은 삼위일체적인 요소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고도 볼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번역상의 문제일뿐이다. 이 구절에 대해서 '뉴톰슨 관주 주석성경'에서는
이렇게 주석을 붙였다.
"함께 계셨으니: 함께라고 번역된 헬라어 프로스는 본디 하나님을 향하여라는 의미이며, 마주
보고 서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인격적인 교제를 뜻한다." [the new thompson annotated-chain
reference bible]
즉, 함께 존재 한다고 해서 그것들이 일체를 이룬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지 않나한다.
게다가 로고스(말씀)는 여호와를 향해서 존재했다고 한다. 또한 위의 요한복음에서는 성령에
대한 언급은 없다. 즉, 삼위일체의 교리가 아직 성립하지도 않았음을 시사한다고 할수 있겠다.
예수가 여호와의 첫 번째 창조물이라고 언급한 '골로새서'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필립 하너는 '성경 문헌지'에서 '특성을 나타내는 무관사 서술 명사; 마가 15:39과 요한
1:1'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있는 것과 같이 동사 앞에 무관사 서술어가 나오는 절들은 의미상 주로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며, 로고스(말씀)가 테오스(하나님)의 본성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아마도 그 절은 '말씀은 하나님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Phillip B Harner /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따라서, 이 구절에서, 두 번째로 나오는 테오스라는 단어에 정관사(호)가 없고 그 단어가 그리
스어 문장에서 동사 앞에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요한복음 1장1절을
"말씀은 하나님이셨다"로 번역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번역자들도, 동사 앞에 단수 무관사 서술
명사가 나오는 다른 구절들을 번역할 때는, 부정관사(a, an)를 주저없이 사용한다.
따라서 'KJV'에서는 모두 요한 6장 70절에서 가롯 유다를 마귀(a devil)로 언급하며, 요한복음
9장 17절에서는 예수를 예언자(a prophet)로 묘사한다. 예수회의 죤 J. 맥킨지는 그의 편저
'성경 사전'에서 이와 같이 말한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엄밀히 말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의 신성을 지닌 존재이
셨다'라고 번역해야 한다." [John L. McKenzie / Dictionary of the Bible]
즉,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로고스(말씀)는 만물에 앞서 태어난 창조물이지 신과 같은 본질의 것
이 아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과 마찬가지로 신의 창조의 시작 일뿐인 것이다.
요한복음의 '시작'(헬라어, 아르케)이라는 말은 예수가 신의 '창조를 시작하신 자'가 아니라,
'신의 모든 창조물의 시작'으로서 예수는 신의 첫 번째 피조물이라는 것을 말한다. 기독교계에
서 제시하는 또 다른 구절을 살펴보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
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
라." [요한1서 5장 5~8절]
이것 역시 삼위를 표현한 구절이 아니다. 예수가 이 세상에 온 것을 증거하는 구절로 그는 물
과 피로써 온것이라고 증거하는 구절일뿐이다. 물과 피가 어떻게 성부와 성령이 될 수 있단 말
인가? 이 구절에 대해서 '뉴톰슨 관주 주석성경'에서는 이렇게 주석을 붙였다.
"즉,성령의 감화를 받고 물로 세례를 받음으로 거듭나야하며, 주의 성만찬에 참여하여 십자가
의 피를 나누는 것이다." [the new thompson annotated-chain reference bible]
다시 말하자면, 삼위일체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구절이다.
또한 요한복음 14장 16절, 26절, 누가복음 1장 35절, 마태복음 28장 19절등의 구절에서는 성
부, 성자, 성령이 한구절에 모두 등장한다는 것을 증거로 내세우기도 한다. 오죽이나 삼위일체
를 증거할만한 구절이 없으면 그런 것을 내세울까?
맥클린톡과 스트롱의 '성경, 신학 및 교회 문학 백과 사전'은 삼위일체 교리를 옹호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삼위일체를 증명하는 데 불충분하다는 점을 시인하면서, 그런 구절들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그러나 이 구절 그 자체만으로는, 언급된 세 주체의 인격성 또는 동등성 또는 신성을 결정적
으로 증명하지 못할 것이다." [M'Clintock, Rev. John and James Strong / Cyclopedia of Bi
blical, Theological, and Ecclesiastical Literature / Baker Book House]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구절도 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디모데전서 5
장 21절]
위의 디모데전서에서는 한 구절에 신(神)과 예수와 천사들이 함께 등장한다. 그렇다면, 신과
예수와 천사들은 삼위일체를 이루는가? 그것으로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
또한, 삼위일체론자들은 구약의 히브리어 성경에서 신의 명칭이 복수형으로 등장한다는 것으
로 삼위일체를 증거하려고 한다. 복수형인 엘로힘과 우리라는 신의 언급이 삼위일체의 암시라
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엄연하게 그것은 신학적으로 히브리어에서 나오는 명사의 복수형
은 존엄 혹은 탁월성을 나타내는 장엄복수형이다. [성 조셉편 / '성서 사전' / P.330]['신 가
톨릭 백과사전' 제5권 / 1967년판 / P.287]
즉, 하나의 신(神) 안에 여러 위들이 있다는 생각을 나타내지 않는다. 예를들면, 잠언 1장 20~
33절에는 지혜를 의인화하여 복수 명사로 나타냈다. 즉, 장엄복수의 표현인 것이다.
"지혜는 통상 단수로 쓰이는데 여기에서는 복수로 나온다. 이는 (인간이나 사물의) 본성 또는
성격을 강조하는, 이른바 '강조형 복수'(라틴말에서는 pluralis intensitatis)이거나, 가나안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주교회의성서위원회편찬 / 임승필번역 / 구약성서새번역1-
시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엘상 28장 13절에서 사무엘의 영혼과 만나 보려고 했던 사울에게 접신한 무녀(巫女)가
"내가 신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라고 말하는 구절이 있다. 여기의 '신'은 엘로힘
으로 표기 되었는데, 여기서 말하는 신은 여호와를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유령 즉, 영적인 존
재를 말한 것이다.[the new thompson annotated-chain reference bible]
또, 열왕기 상 18장 27절에는 바알을 가르켜 복수인 엘로힘으로 지칭한 구절도 있으며, 사사
기 16장 23~24절에는 블레셋인들의 다곤신도 엘로힘으로 기록 되어져 있다. 여기서도 장엄
복수가 쓰여졌다.
그 외에도 많은 수의 거짓 우상 신들을 언급할 때, 엘로힘(신들)과 엘로헤(~의 신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출애굽기 12:12, 20:23) 출애굽기 4장 16절, 7장 1절에서는 모세는 아론과 파라
오에게 자신이 엘로힘의 역할을 하리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즉,엘로힘이나, 복수적인 신의 명
칭이 삼위일체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다.
헬라어에는 존엄 혹은 탁월을 나타내는 복수형이 없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 1절에서 70인역
의 번역자들은 엘로힘에 대응되는 말로 단수형인 '호 데오스'를 사용했다. 예수가 신명기 6장
4절을 인용하여 말한 그의 대답이 들어 있는 마가복음 12장 29절에도 마찬가지로 헬라어 단
수형 '호 데오스'가 사용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대 민족은 삼위일체를 믿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장엄복수일뿐이다.
예수회 수사 에드먼드 포트먼은 자신의 저서 '삼위일체의 신'에서 이렇게 인정한다.
"구약은....(중략).... 성부이자, 성자이자, 성령인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하여 명백하게 든 혹은
넌 저시 시사해 주는 방법으로든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중략)....어느 성경 필자도 지고의
신의 삼위일체의 존재를 어렴풋이 라도 알았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중략)....구약에서 인격
체들로 이루어진 삼위일체에 대한 암시나 전조 혹은 베일에 가린 표지들을 찾는 것은 성경 저
자들의 말과 의도를 넘는 것이다." [Edmund Portman / The Triune God]
성경 사전의 월리엄 스미스는 구약의 복수적인 신의 명칭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엘로힘이, 지고의 신 안에 있는 위들의 삼위일체를 가리키는 것이 라는 괴상한 생각을 지지하
는 사람들은 이제 학자들 사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은 문법 학자들이 장엄의 복수라고
부르는 것이나 하나님의 힘의 충만함, 그리고 하나님이 나타내는 능력 전체를 지적하는 것이
다." [William Smith / A Dictionary of the Bible / The S. S. Scranton Company.]
미국 셈어 셈문학 저널에서도 이렇게 밝히고 있다.
"그것은 거의 예외 없이 단수 동사 술어와 결합하며, 한 정사로 단수 형용사를 한다. 그것을
예시하는 것으로, 엘로힘이란 칭호는 창조 기록 가운데 35회 나오는데 하나님이 말씀하고 행
하신 것을 묘사하는 동사는, 언제나 단수이다.(창세기 1: 1~2: 4) 따라서, 엘로힘은 위대함과
위엄을 묘사하는 장엄의 복수로 설명되어야 한다." [The American Journal of Semitic Languages
and Literatures]
신 카톨릭 백과사전 역시 같은 의견을 말한다.
"성 삼위일체 교리는, 구약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New Catholic Encyclopedia / Trinity 항목]
여기까지 많은 성경의 구절들을 나열했다. 삼위일체에 대해서 결론은 아주 간단하다. 예수는
신과 동등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이미 나열한 수많은 성경구절들을 볼때 신약의 저자가 복음
서들을 작성할 때까지만해도 삼위일체의 교리가 기독교에 정립되지도 않았음을 알수가 있다.
오히려 각각의 삼위가 동등하지 않다는 점만 더욱 부각된다.
기독교인들은 과연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단자들을 정죄할수 있을까?
종교개혁 당시 카톨릭으로부터 탈퇴를 선언한 개신교는, 당시의 카톨릭으로부터 "악마에게 영
혼을 판 자들"이라고 불렸었다. 카톨릭의 입장에서 본다면 개신교는 이단이었기 때문이다.
성공회가 국교가 되었던시절 영국의 청교도들은 믿음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이동하기까지
조차 했다.
모진 시어머니 밑에서 산 며느리가 나중에 더욱 모진 시어머니가 된다고 했던가?
카톨릭에게서 이단이라고 배척받았던 개신교가, 이제는 자기네들끼리 분열되어 서로간에
이단이라며 티격태격 싸우고 있는 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진짜 배척받아야할 기독교의 이단이 있다. 신도들을 현혹시켜서 물질과 육체, 정신적
피해를 입히는 사이비 목사들과 구약의 율법을 지키겠다고 현대사회의 도덕과 어긋나는 황당한
짓을 벌이는 종파는 이단으로 배척 당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교리가 약간 다르다는 것으로 배타를 할만한 자격이 있는가? 교리가 약간 다르다고 해서
한국의 카톨릭이 "개신교는 이단입니다"라고 주장하는걸 보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톨릭이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한심한 기독교인들이 의외로 많다.)
이단은 없다!
자기네들끼리 분열되어 티격태격 싸우고 있는 기독교의 추한 모습만 있을 뿐이다.
성경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여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십일조나 걷어가는 주제에,
그대들이 이단이라고 과연 누구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나 갖추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