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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즈베키스탄으로서도 이 아프라시압 유적은 전통적인 세계 중심도시로서의 역사적 의미가 깊기 때문에 국가적인 시설의 명칭 등으로도 즐겨 쓰고 있다. 그 예로 우즈베키스탄 최초 고속열차 이름도 이를 로마자로 옮긴 A frasiyab Express다.
아프라시압 폐허 옆에 있는 11세기에서 19세기까지 영묘들이 모여 있는 사히 진다(Shah-i-Zinda)로 간다. 샤히 진다는 페르시아어로 "살아있는 왕(The Living King)"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고대 우즈베키스탄의 뿌리가 페르시아와 관련이 깊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영묘군은 쿠삼 이븐 압바스(Qutham ibn Abbas)라는 사람의 전설과 관련이 있다. 그는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촌이다. 그는 이 지역을 정복하러 온 이슬람군과 함께 이슬람을 전파하기 사마르칸트로 와 이곳에서 기도하는 도중 조로아스터교도들에 의해 머리를 잘렸는데, 자신의 잘린 머리를 들고 천국의 정원이라고 알려진 깊은 우물 속으로 들어갔으며, 무슬림들은 그가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있어 이슬람이 위기에 처하면 구원자로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쿠삼은 사마르칸트에 온 적이 없는데 아마도 이후에 아랍인들이 이슬람 이전부터 있었던 지하에서 저승세계를 다스린다는 왕의 신화를 차용, 샤히 진다에 대한 숭배를 만들어 이곳의 이름이 샤히 진다가 되었다고 한다. 그곳이 지금 샤히 진다 영묘 군이 있는 곳이다.
아치형 입구에서 티켓을 사 안으로 들어서면 약 200m의 길을 따라 영묘와 모스크가 나타나는데 그 앞에 가파른 계단이 나타난다.
샤히 진다의 계단에는 흥미로운 전설이 있다. 계단을 올라갈 때 세었던 계단의 수와 내려올 때 세었던 계단의 수가 같으면, 모든 죄가 용서되어 천국으로 갈 수 있지만, 계단의 개수가 다르면 그 차이만큼 죄가 있다는 전설이다. 계단의 총 개수는 36개로 알려져 있으며, 같은 수를 세는 것이 행운을 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영묘군은 11세기 때부터 지어지기 시작했지만, 몽골이 침략했던 13세기 초 대부분 파괴되었고, 현재 모습은 14세기 티무르제국 때 재건된 것이라 한다. 영묘군은 3개 그룹으로 나뉜 20여개 건축물로 구성돼 있는데, 여기에는 이슬람 영묘들 이외에도 모스크, 미나레트 (이슬람 탑)와 마드라사도 포함돼 있다. 티무르제국 시대의 건축가들이 정교한 푸른색 모자이크 타일 기법으로 장식한 건물들은 무척 화려하다. 외부 돔과 내부 돔이 따로 만들어져 있는 이중 돔 구조로 된 건물도 있다. 이 영묘에는 예언자 마호메트의 사촌 쿠삼(Kusam)과 티무르 일족, 울루그벡의 스승과 자녀 등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고 한다. 울루그벡은 샤히 진다를 마무리하기 위하여 웅장한 정문을 세웠는데 입구 정문에는 “이 장엄한 건물은 883년(1334년)에 아미르 티무르 구르간의 아들, 샤흐루의 아들 울르그 벡, 구르간의 아들 압둘 아지즈 한에 의해 세워졌다”라고 씌어있다고 한다. 그 뒤로 첫번째 초르탁(돔 구조로 된 통로)이 나타나며, 달옛 쿠쉬베기 사원(Dalvet Kushbegi Madrassah)과 19세기에 세워진 모스크로 이어진다.
샤히진다의 많은 건축물은 피슈타크(pishtaq)라고 불리는 아치형 입구를 가지고 있다. 이 피슈타크는 정교한 타일 장식으로 꾸며져 있으며, 입구의 웅장함을 강조해준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등 이슬람 건축양식에서는 천정에 많은 노력과 정성을 쏟는데, 이곳 샤히 진다도 마찬가지로 천정장식에 많은 정성을 들인 것 같다. 이슬람건축에서 천정장식이 중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핵심적 이유는 신앙심의 표현과 우주의 질서 및 무한함 상징에 있다고 한다. 무슬림들이 이슬람 양식의 건물에서 장엄하게 장식된 천정을 올려다보며 일상적인 현실을 벗어나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듯한 정신적 고양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고 하는데 모스크, 마드라사(학교), 술탄의 궁전 등 중요한 건물에서 천정 장식은 그 건축물을 지은 통치자나 후원자의 권력, 부, 그리고 신앙심의 깊이를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수단인 것 같다.
좁고 긴 통로 양옆으로 줄지어 선 20여 개의 영묘들은 화려하고 정교한 청록색 타일과 모자이크, 아라베스크 문양, 아랍어 글씨 등으로 장식돼 있어 마치 야외 도자기박물관을 걷는 듯한 느낌인데 이슬람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기하학적 무늬는 이슬람 학자들이 우주가 신의 완벽한 계획에 따라 움직이며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알라(신)의 무한하고 영원한 창조력을 상징하며, 천정의 별 모양 패턴이나 복잡한 다각형 배열은 우주의 천체 움직임이나 수학적 완벽성을 재현한다고 하니, 이슬람세계에서 수학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현재 남아있는 영묘들은 대부분 티무르 왕조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다른 영묘와 동일한 형태를 지닌 영묘는 하나도 없다고 한다. 샤히 진다를 돌아보면서 영묘들의 주인을 일일이 알려고 하는 건 나에겐 머리 아픈 일이다. 티무르와 그 가족들과 관련된 무덤인가 보다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2009년도 샤히 진다에 왔을 때 가이드가 영묘들마다 누구의 영묘인지를 설명해 줬는데 까마득한 걸 보면 내겐 영묘의 주인이 누구인가가 다가오지 않는 모양이다.
샤히 진다에서 비비하눔 모스크(Bibi-Khanym Mosque)로 간다. 비비하눔은 가장 높은 귀부인이란 뜻이라 한다. 아무르 티무르에게는 9명의 왕비가 있었는데 비비하눔은 그 중 티무르 왕이 제일 사랑했던 부인 사라이 물크 하눔(Sarai Mulk Khanum)의 애칭이라고 한다. 인도에서 터키까지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아미르 티무르는 1399년 인도원정에서 승리한 후, 인도에서 약탈해온 보물과 95마리의 코끼리를 동원하고, 전 세계에서 끌고 온 최고의 건축가들과 석공들을 투입하여 최대의 모스크를 만들고자 한 것이 바로 비비하눔 모스크로 메인 돔의 높이만 40M에 달하는데다가, 입구 아치 (피슈타크)의 압도적인 크기가 보는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냈다고 한다. 40m였던 정문 아치 높이는 지금은 약 35m로 지금 봐도 거대하니 당시로선 엄청난 스케일이었는데 정문에는 11세기 이라크지역에서 처음 개발된 천장구조로 건물의 주요 부분을 구별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고 방의 벽에서 돔형 천장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했다는 이슬람 건축 양식의 특징인 무카르나스가 보인다.
비비하눔 모스크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타일장식으로 정문의 거대한 이완(Iwan) 벽면을 자세히 보면, 하나의 거대한 그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조각타일로 이루어진 모자이크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외벽은 푸른색, 청록색, 벽돌색을 활용한 복잡한 기하학적 패턴이 주를 이루며, 그 틈 사이를 코란 구절을 새긴 아랍어 캘리그라피가 띠처럼 둘러싸고 있다. 건물 중앙의 돔 천장은 금박과 상아색, 푸른색으로 섬세하게 채색된 장식으로 이슬람 건축 특유의 우아하고 복잡한 구조가 너무 아름답게 보인다. 중앙아시아 이슬람 건축물에는 꼬인 끈(Braided Rope)이나 매듭(Knot)을 연상시키는 뱀처럼 꼬인 문양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길이쉬(Girih,) 문양의 변형으로 이 문양은 종종 문틀이나 아치 주변을 따라 건물을 둘러싸는 테두리 장식으로 사용되는데, 이는 꼬임을 통해 견고함과 연속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중앙아시아의 독재자들은 한때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모스크를 갖고 싶다는 경쟁이 있었던 것 같다. 이를 처음 촉발한 것은 투르크메니스탄의 독재자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로, 2004년 자신의 고향에 이탈리아 산 흰색 대리석으로 1만 명 수용 규모의 투르크멘바시 루히 모스크를 지었는데 당시 중앙아시아 최대 규모였다. 그러자 타지키스탄의 에모말리 라흐몬 대통령이 수도 두샨베에 하지 야쿠브 모스크를 건설하자 카자흐스탄도 경쟁에 뛰어들어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수도 아스타나에 하즈레트 술탄 모스크를 건설했다. 서로 중앙아시아 최대라는 선전이 잇따랐지만 역시 애매했던지 나자르바예프는 퇴임 직전 수도 아스타나에 건물 내부와 광장을 합치면 최대 23만 5천명이 한꺼번에 기도를 할 수 있는 아스타나 대성원이란 모스크를 2022년 완공시켰다. 물론 이런 모스크들도 세계에서 제일 큰 모스크란 타이틀은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메카에는 4백만 명이 한꺼번에 기도할 수 있는 마스지드 알 하람이 있고, 메디나에도 150만명 규모의 알 마스지드 안 나바위가 있으며, 시아파 성지인 이란의 마슈하드에는 120만명 규모의 이맘 레자 성지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티무르가 또 다른 정복 전쟁에 나선 사이, 왕비 비비하눔은 티무르가 이기고 돌아오면 깜짝 선물을 할 생각으로 거대한 모스크를 건설하기 위해 제국 최고 건축가이자 천문학자에게 이 일을 맡겼다.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다가, 마지막 단계에서 갑자기 진척이 되지 않았다. 그 사이 이 건축가는 무엄하게도 아름다운 왕비를 사모하게 돼, 엄청난 짝사랑의 열병을 앓게 되었던 것이다. 왕비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기 위해 마지막 아치 공사를 일부러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왕이 정복전쟁을 승리하고 돌아오고 있다는 전갈이 들려왔다. 마음이 급해진 왕비는 건축가를 찾아가 공사를 빨리 끝내달라고 간청하자 그 건축가는 아주 대담하고도 위험한 제안을 했다. "왕비마마, 마마의 부드러운 뺨에 단 한번만 입을 맞추게 해 주시면, 밤을 새워서라도 왕이 도착하기 전 모스크를 완성하겠습니다." 완전히 혼이 나간 제안이었다. 아마 죽을 작정을 했을지도 모른다. 왕비는 당연히 분노하였지만, 아쉬운 것은 왕비였다. 그는 하녀에게 여러 색깔로 칠한 달걀 한 바구니를 건축가에게 보내면서 이런 말을 전했다고 한다. "이 달걀들을 봐라. 겉모습과 색깔은 모두 다르지만, 껍질을 까서 맛을 보면 알맹이는 다 똑같다. 세상의 여자들도 이와 같은 것이니, 내 하녀 중 원하는 이를 택해라." 그러자 건축가는 두 개의 똑같은 유리잔을 왕비에게 보냈다. 한 잔에는 맑은 물이, 다른 잔에는 투명한 백포도주가 담겨 있었다. "외양은 똑같을지 모르지만, 물은 갈증만 채워줄 뿐이고, 술은 제 심장을 불타오르게 합니다. 왕비 마마가 아니면 그 갈증은 풀 수 없습니다." 하지만 티무르의 군대가 사마르칸트에 가까이 오자, 급해진 왕비는 결국 무엄한 키스를 허락하고 만다. 대신 두꺼운 비단 스카프 위로 입맞춤을 하게 했는데 건축가의 뜨거운 키스는 스카프를 뚫고 급기야 왕비의 뺨에 키스 마크를 남기고 말았다. 아무튼 이렇게 왕이 사마르칸트에 입성하기 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는 완성이 되었다고 한다. 티무르는 왕비의 성의에 감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결국 왕은 왕비의 뺨에 난 키스자국을 보고야 말았다. 진상을 알게 된 왕은 진노하였고, 건축가를 잡으러 병사들을 보냈다. 여기서 이야기는 몇 갈래로 갈린다. 큰 죄를 저지른 건축가는 가장 높은 미나레트 위로 도망쳤고, 그곳에서 날개를 달고 메카로 날아가 버렸다는 설과 왕이 지하에 거대한 모스크를 짓도록 한 후, 그곳에 가두어 밀봉하고 말았다는 설, 결국 처형을 당하고 말았다는 설 등이 있다. 분노에 치를 떨던 티무르는 "제국의 모든 여인들은 외출할 때 남성을 유혹할 수 있는 얼굴과 아름다움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얼굴과 머리를 가리는 베일을 쓰도록 해라."는 명을 내렸다고 한다. 이렇게 중앙아시아 여자들은 외출할 때 온몸을 가리는 파란자 또는 히잡을 착용해야만 했다고 한다. 비비하눔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스크를 지어 자신의 이름을 남기게 되었지만, 중앙아시아 여성들 모두에게 히잡이란 굴레 또한 남겨주어 모든 여인들의 원성을 사게 되었다고 한다.
이 모스크의 마당에는 엄청난 크기의 코란이 전시되어 있는데, 중요한 것은 코란 책이 아니고 코란을 받치고 있는 받침대이다. 원래는 티무르의 오스만 정복 당시 전리품으로 가져온 오스만 쿠란을 올려두기 위한 것으로, 티무르의 손자인 울르그벡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스만 쿠란은 651년 3대 칼리프 오스만이 세계 최초로 완성한 정본 쿠란 4부 중 하나였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도 이야기가 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이 쿠란 받침대 밑을 세 번 기어 통과하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해 수많은 여인들이 이 쿠란 받침대 밑을 기어서 통과했다고 한다. 원래 이 쿠란 받침대는 모스크 내부에 있었지만, 지진과 낙석의 위험 때문에 안전한 마당으로 꺼내져 나왔다고 한다. 현재는 2023년에 정부가 설치한 보호 장치 안에 들어 있다.
비비하눔 사원도 입장료(75,000숨, 약 8천원)를 받는다. 레기스탄 광장(마드라사) 10만, 샤히진다 영묘 5만이었는데 이슬람 국가에서는 보통 모스크는 무료입장인데 돈을 받는 것도 의아했는데 아직도 한참 보수를 해야 할 것 같은 내부는 돈 내고 관람할 수준이 아니었다. 내·외부가 아직 복원도 되지 않았고 퇴락한 모습 그대로인 부분이 많아 실망스러운데 비비하눔의 전설 때문에 사람들이 이곳을 반드시 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로 옆에 재래시장인 시압 바자르(Siyob Bazaar)가 있는데 그 이름은 시장 근처를 흐르는 작은 시압 강(Siyob River)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시압(Siab)은 페르시아어(타지크어)에서 유래한 합성어인데, 본래 시아(Siyāh)는 검은(Black)색을 뜻하고, 압(Āb)은 물 또는 강(Water/River)을 뜻한다고 하니 결국 시압은 검은 물 또는 검은 강이라는 뜻이다. 타슈켄트의 초르수 바자르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그래도 그릇 등 생활용품, 견과류, 과일, 채소, 우즈베키스탄의 한국 김치라고 하는 당근 샐러드가게 등 나름대로 볼 것들이 있고 관광객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현지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생활의 중심지로 상인들의 호객 행위,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의 흥정 소리, 그리고 다채로운 색감의 상품들이 어우러져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바자르 입구에는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 카페들이 보이고 판매 상품별로 구역이 나눠져 있었고 전체적으로 관리가 잘 되어있어 깔끔한 편이다. 채소 코너에는 가지, 당근, 감자 등 우리 눈에 익숙한 채소들이 싱싱함을 유지한 채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중 한국에서 보기 힘든 노란 당근이 내 눈을 끈다. 과일 코너에는 우즈벡의 뜨거운 햇볕을 받아 당도가 높다는 수박과 멜론, 빨갛게 완숙된 토마토 등이 내 입맛을 자극하나 오후 내내 들고 다닐 걸 생각하니 망설이다 지나친다. 견과류 코너에서는 수많은 종류의 견과류를 전시해 놓고 관광객을 위해서는 예쁘게 포장해 주기도 한다. 가이드가 우즈베키스탄에서 기념품을 사려면 TANBOUR라는 40%짜리 꼬냑이 좋다고 하면서 주류 전문판매점으로 안내한다. 꼬냑은 프랑스산에만 붙일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프랑스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장비를 사용해서 꼬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도록 해줬다고 한다. 일행 중 몇 명이 꼬냑을 구매하는데 난 들고 다니기 싫어 나중에 공항 면세점에서 구입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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