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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일: 1894년 음력 1월 10일(양력 2월 15일)
발단: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포학정(만석보 부당 수세 징수 등)과 가혹한 수탈에 항거하여, 동학 접주였던 전봉준을 비롯한 농민들이 사발통문을 돌리며 봉기한 고부 농민 봉기가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전개: 이후 전라도 백산에서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등이 지도부로 나서며 본격적인 농민군 조직을 갖추었고, 황토현 전투와 황룡촌 전투 등에서 정부 관군을 차례로 격파하며 세력을 크게 확장했습니다.
2. 결말 (과정 및 종결)
전주화약과 외세의 개입: 농민군이 호남의 요충지인 전주성을 점령하자, 다급해진 조선 조정은 청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했습니다. 청군이 들어오자 일본군 또한 톈진 조약을 구실로 조선에 무단으로 밀고 들어왔습니다. 외세의 간섭을 경계한 농민군은 조정과 전주화약을 맺고 해산하였습니다.
2차 봉기(항일 무장투쟁)와 패배: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본격적으로 조선의 내정을 간섭하고 경복궁을 침략하자, 농민들은 국권을 지키기 위해 1894년 9월(2차 봉기) 다시 궐기하였습니다.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은 서울로 북상하려 했으나,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의 연합군에 맞서 싸웠으나 압도적인 화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패하였습니다.
종결: 지도부인 전봉준(1894년 체포, 1895년 처형)을 비롯한 주요 지도자들이 체포되면서 1년여 간 전개되었던 동학농민혁명은 실패로 종결되었습니다.
3. 역사적 의의
비록 비극적인 실패로 끝났으나, 동학농민혁명은 부패한 봉건 질서를 바로잡으려 한 반봉건 운동이자 외세의 침략에 맞선 반외세(항일) 민족 운동으로서 한국 근대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