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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비추는 태양의 불법
제22회 인간혁명의 종교 ②
대화 ― 인간의 유대를 맺는 대자비심
왜 말을 건네는가?
‘눈앞의 한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석존 이래 불교의 근본정신이고 말법의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이 관철하시고, 우리 창가학회가 계승한 부처의 근간을 이루는 바람입니다.
65년 전 ‘전통의 2월 투쟁’은 지용보살의 사명을 자각한 한사람 한사람이 결연히 일어서 시작한 통쾌한 대화 확대의 드라마였습니다.
당시 은사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의 원업인 75만 세대를 목표로 각 지부가 절복에 과감히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절복은 지지부진해 은사는 “이대로 가면 광선유포는 5만년이나 걸리고 만다.”고 통탄하셨습니다.
어느 날 은사는 “다이사쿠, 자네가 나서주지 않겠나.”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즉각 답했습니다.
“알았습니다. 선생님이 깜짝 놀랄 만큼 공세를 펼쳐 절복전을 전개하겠습니다. 선생님 편안히 지켜봐주십시오.”
1952년 2월, 나는 가마타지부의 지부간사로 광포를 지휘해 지부의 동지와 함께 대화의 파도를 일으켰습니다.
벗의 행복을 바라는 ‘진지함’과 ‘끈기’
당시 어느 지부나 한달에 100세대 홍교가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2월에 우리 가마타지부는 한달 동안 201세대 홍교를 달성해 단숨에 한계를 유유히 돌파했습니다.
한세대 한세대의 절복은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 철저히 기원한 ‘진지함’과 ‘끈기’의 결정체입니다.
마지막 날 이미 목표한 200세대는 달성했지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201세대 절복을 보고해주신 분도 부인부이셨습니다. 가마타지부가 벽을 부수자 각 지부도 한달에 100세대를 크게 웃도는 홍교를 이뤘습니다. 은사의 원업을 실현하는 데 있어 광포의 속도는 점점 가속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먼저 말을 거는 사람’
은사는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광선유포는 무릎을 맞댄 일대일 대화에서 시작된다.”
불법은 ‘대화의 종교’입니다.
석존은 한 인간으로서 스스로 사람들 속으로 헤집고 들어가 말을 걸었습니다. 그것은 ‘불행한 사람을 그냥 두고 보지 않겠다. 구하고 싶다.’는 숭고한 자비정신을 체현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석존이 대화하는 모습은 이렇게 전합니다.
“반갑게 ‘어서 오세요’ ‘잘 왔군요’ 하고 말하는 사람이고 친숙하게 말을 건네고 기분 좋게 사람을 대하며 얼굴 찡그리지 않고 밝은 얼굴로 자신이 먼저 말을 건네는 사람이다.”
우리가 전개하는 격려와 성실한 대화는 스스로 기쁜 마음으로 발걸음을 가볍게 경쾌하고 즐겁게 그리고 벗의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는 민중불법의 대화운동입니다. 이번에는 불법에 맥동하는 대화의 정신을 배워봅시다.
주인이 가로되 나 혼자 이 사실을 근심하며 흉억(胸臆)에 분비(憤悱)함이로다. 객이 와서 함께 한탄하니 잠시 담론하리라. (어서 17쪽 10행)
[ 현대어역 ]
주인이 말한다. 나 혼자 이 일을 걱정하여 마음속으로 개탄하며 안타까운 심경이었는데 당신이 와서 같은 일을 한탄하니 잠시 이를 두고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 (어서 17쪽 10행)
‘걱정의 공유’가 바로 대화의 첫걸음
이번에 함께 배독할 <입정안국론>❶은 나그네가 고뇌하는 소리에 주인이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나그네가 기근과 전염병 등에 따른 사회의 참상을 탄식하며 그것을 막고 싶다는 열의를 토로한 데 대해 ‘나 혼자 이 사실을 근심하며 흉억에 분비함이로다.’ 하고 주인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밝힙니다.
이 ‘걱정의 공유’가 바로 민중을 구제하고자 사회변혁을 목표로 미래를 비추는 대화를 개시하는 실마리입니다.
차원은 다르지만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 박사❷와 내가 나눈 대담도 ‘함께 평화세계를 구축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는 ‘걱정의 공유’가 그 출발점이었습니다.
동양의 대승불교에 주목한 박사는, 학회가 추진하는 민중불법의 운동에 공감해 나에게 대담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박사는 자애로운 아버지처럼 마흔살 가까이 어린 나를 소중히 대해주셔서 현대사회가 맞닥뜨린 여러 문제를 진지하게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는 대담을 시작한 지 45주년이 됩니다. 박사와 나눈 대담집은 28개 언어로 출판되어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습니다. 토인비 박사도 틀림없이 기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❶ <입정안국론> : 1260년 7월 16일, 니치렌 대성인이 당시 실질적인 최고권력자인 호조 고키요리에게 제출한 간효서. 정법(正法)에 귀의하지 않으면 삼재칠난(三災七難) 중 아직 남아있는 ‘자계반역란(내란)’과 ‘타국침핍난(다른 나라의 침략)’이 일어난다고 예언했다.
❷ 토인비 박사 : 아널드 J. 토인비. 1889년~1975년.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문명사가. 런던대학교, 왕립국제문제연구소의 요직을 역임. 대표작 《역사의 연구》는 각계에 영향을 끼쳤다. 이케다 선생님과 대담 《21세기를 여는 대화》(《이케다 다이사쿠 전집》 제3권)는 인류에 귀중한 전망을 주는 책으로 지금도 큰 반향을 일으킨다.
상대의 마음을 감싸는 ‘난실의 벗’
<입정안국론>으로 돌아가 첫머리에서 걱정을 공유한 주인과 나그네가 각자 신념에 바탕을 둔 격렬한 토론을 나눕니다.
나그네가 잇달아 제기하는 의문을 주인이 하나하나 풀어주며 이해와 공감 그리고 신뢰를 얻습니다.
그 모습을 “난실(蘭室)의 벗과 사귀어”(어서 31쪽)라고 표현하셨습니다. 향기로운 난이 놓인 방에 있으면 자연히 그 향기가 배어들 듯 주인에게서 풍기는 자비의 향기가 상대의 마음을 감쌉니다.
상대의 마음을 열고 크게 움직이게 만드는 열쇠는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매력이고 인격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처지나 직함에 따른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한 인간으로서 삶의 태도에 난타난다고 해도 좋겠지요.
어떤 경우이든 사람들을 위해 사회를 위해 진력하며 확신에 넘쳐 밝고 힘차게 살아가는 모습은 상대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묘법(妙法)을 수지하고 광선유포, 입정안국(立正安國)의 대원에 꿋꿋이 살아갈 때 부지불식간에 존귀한 ‘난(蘭)’처럼 생명의 향기를 풍깁니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자비의 기원에서 시작합니다. 묘법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한사람 또 한사람과 거듭 대화해 연을 맺으면 그 사람들 또한 자신의 내발적인 가능성을 열 수 있습니다.
‘서원의 공유’가 바로 대화의 결착점
<입정안국론>에서는 마지막에 나그네가 “다만 나만이 믿을 뿐만 아니라 또 타인의 잘못도 훈계하리라.”(어서 33쪽) 하고 자신의 결의를 피력합니다. 말하자면 주인과 나그네가 ‘서원을 공유’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여기에 우리가 지향하는, 대화의 진정한 목적이 명확히 나타나 있습니다.
무엇보다 진실에 눈떠, 같은 서원으로 맺어진 사람을 한사람 또 한사람 넓히는 일이 ‘안국’을 구축하는 원동력입니다. 그야말로 ‘걱정의 공유’에서 ‘서원의 공유’로 승화하는 ‘입정안국의 대화’가 세계평화의 초석이 될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 ‘창가의 대화’에는 상대의 불성(佛性)을 믿는 힘이 깔려 있습니다. 상대의 불성을 일깨워야만 자타 공히 진정한 행복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이 자타 공히 불성을 믿는 ‘확신의 공유’가 어떠한 차이도 초월해 ‘행복의 공유’가 되고, ‘평화의 공유’가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세계가 추구하는 대화의 진수가 아닐까요.
불경예배(不輕禮拜)의 행(行)은 개당작불(皆當作佛)이라고 가르치는 고로 자비이니라. 이미 장목와석(杖木瓦石)을 가지고 타척(打擲)하여도 이강독지(而强毒之)함은 자비로부터 일어났느니라. 불심(佛心)이란 대자비심 이것이라고 설해 있으므로 예배의 주처(住處)는 자비이니라 운운. (어서 769쪽 5행~6행)
[ 현대어역 ]
불경보살이 실천한 예배행은 일체중생의 생명에 내재하는 불성을 열고 모든 사람을 성불시키므로 자비다. 장목와석으로 두들겨 맞아도 그래도 굳이 절복하는 까닭은 자비의 일념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불심은 대자비심이라고 설해 있기 때문에 불경이 이렇게 예배하는 근거는 자비다. (어서 769쪽 5행~6행)
인욕의 갑옷을 입고 악세에 투쟁하다
불경보살❸의 예배행이 자비로 일관되어 있음을 가르치신 <어의구전>❹의 한 구절입니다. 여기에는 “이미 장목와석을 가지고 타척하여도 이강독지함은 자비로부터 일어났느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불경보살의 예배행은 마음이 더럽혀진 중생에게 진에(瞋恚)❺의 마음을 일으키게 만들어 박해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불경보살은 심성이 나쁜 사람들에게 ‘불경은 불법의 법리도 제대로 규명하지 않고 예배행만 한다’고 멸시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아래라고 깔보던 불경보살이 ‘개당작불(皆當作佛)’ 즉 ‘보살도를 수행하면 반드시 부처가 된다’고 예배해도 믿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고 합니다.
초창기 동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각자 생활고나 병고 등 고민을 안고 숙명과 싸우는 모습 그대로 절복하러 다녔습니다.
‘당신이 행복해지면 오라’는 등 얼마나 멸시당하고 욕을 먹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불경보살이 박해와 매도를 참고 육근청정(六根淸淨)❻의 공덕을 얻었듯이 우리 긍지 높은 불굴의 동지들은 난을 받을 때마다 ‘이것으로 또 인간혁명할 수 있다’는 기쁜 마음으로 홍교하러 다녔습니다. ‘인욕(忍辱)’의 갑옷을 입은 진정한 ‘지용의 전사’가 울리는 승리의 함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❸ 불경보살(不輕菩薩) : 법화경 불경보살품 제20에서 설한 보살. 석존의 과거세 모습으로 위음왕불의 상법시대 말에 “나는 당신들을 존경한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보살 수행을 하면 부처가 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고 만인을 예배했다. 만심에 찬 사람들에게 박해받았지만 예배행을 관철해 그 수행이 인(因)이 되어 성불했다.
❹ <어의구전> : 니치렌 대성인이 미노부에서 강의하신 법화경의 요문을 닛코 상인이 기록했다고 전한다. 상하 2권으로 되어 있다.
❺ 진에(瞋恚) : 삼독(三毒), 십악(十惡) 등의 하나로 자기 마음에 어긋남을 보고 성내는 것.
❻ 육근청정(六根淸淨)의 공덕 : 법화경을 신앙하고 실천함으로써 육근(六根)이 청정하게 되는 여러가지 공덕을 말함. 법화경 법사품 제19에 설해져 있다. 육근은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라는 여섯가지 감각 인식기관 을 말하는데 이것들이 번뇌의 영향을 받지 않고 바르게 작용해 깨끗해지는 것을 육근청정이라 한다. 이 육근청정의 결과 여러 가지 공덕이 일어난다.
멸후 홍통의 방궤 ‘의좌실의 삼궤’
법화경에는 악세말법에 홍통의 방궤(方軌)로 ‘의좌실(衣座室)의 삼궤(三軌)’라는 사고방식이 있습니다.❼ 이것은 ‘여래의 방[室]’에 들어가 ‘여래의 옷[衣]’을 입고 ‘여래의 자리[座]’에 앉아 법을 설한다고 하는 ‘여래의 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여래의 심부름꾼’으로서 ‘여래의 일(부처의 일)’을 하는 실천으로 바꿔말하면 먼저 우리는 유화인욕의 마음으로 (여래의 옷을 입고) 박해에 의연하게 견딜 수 있습니다. ‘견디다’는 말은 피동사가 아닙니다. 진정한 용기가 있기 때문에 ‘능인(能認)’ 즉 ‘능히 참고’ 마침내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래의 자리’는 일체법공(一切法空)이라는 경지, 즉 자유자재의 지혜입니다. 그것은 무언가 집착에 얽매인 자신에서 광선유포를 근본목적으로 행동하는 불석신명(不惜身命)의 실천으로 얻을 수 있는 진실한 지혜를 가리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온갖 선입관과 편견,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져 그 결과 사물의 본질을 여실히 볼 수 있고 모든 사람에게 갖춰진 불성을 뚜렷이 볼 수 있습니다.
‘여래의 방’은 대자비심입니다. 그것은 벗을 커다란 자비의 생명 공간에 초대해 모든 사람을 감싸안는 경애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자비가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 사람을 구하고 싶다는 지혜가 생깁니다. 상대의 몰이해에서 비롯된 악구를 견딜 수 있습니다. 이 멸후 홍통의 방궤를 나타내는 선각자와 같은 모델이 바로 정법이 멸하고 거대한 증상만이 활개치는 시대에 일어선 불경보살입니다.
도다 선생님이 자주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는 용기가 자비를 대신합니다. 현실의 악세에 아직 자각하지 못한 사람들의 불성을 자각시키는 대화에 용감하고 인내 강하게 매진하는 학회원이야말로 이 ‘의좌실의 삼궤’를 체현하는 사람이자 현대의 불경보살임에 틀림없습니다.
❼ “약왕이여,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있어서, 여래가 멸한 후에 사대부중을 위하여 이 법화경을 설하려면 어떻게 설해야 하느뇨. 이 선남자·선여인은 여래의 방에 들어가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자리에 앉아서 마땅히 사대부중을 위하여 널리 이 경을 설할지어다. 여래의 방은 일체중생에 대한 대자비의 마음이요, 여래의 옷은 부드럽고 온화한 인욕의 마음이요, 여래의 자리는 일체의 법공(法空)이 이것이니라.” (법화경 366쪽)
최고의 불연을 맺는 ‘대화의 힘’
불경보살은 박해를 받아도 예배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상대의 불성을 끝까지 믿었기 때문입니다.
대성인은 ‘이강독지(而强毒之, 더구나 굳이 이것을 독으로 되게 하다)’의 의의를 “어떻게 하든 법화경을 굳이 설해 듣게 할지어다. 믿는 사람은 부처가 될 것이며 비방(誹謗)하는 자는 독고(毒鼓)의 연으로 되어 부처가 되는 것이니라.”(어서 552쪽) 하고 밝히셨습니다.
기원과 확신을 담은 자비의 행동은 반드시 ‘불연’이 됩니다. 그때는 일시적으로 반발해도 상대의 생명 깊은 곳과 불연을 맺습니다. 불경보살을 박해한 증상만(增上慢)의 사중(四衆)❽도 결국 역연(逆緣)의 공덕으로 다시 불경보살을 만나 모두 행복의 길을 열었습니다. 이것이 법화경의 철리입니다.
따라서 상대의 기근이 어떻든 우리가 겁내지 말고 불연을 맺으면 상대의 불성을 언젠가 일깨울 수 있습니다. 상대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것은 자타 공히 불성을 확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반응에 일희일우하지 말고 불경보살처럼 총명하고 끈질기게 불법을 끝까지 말해야 합니다.
❽ 사중(四衆) : 비구(출가한 남성), 비구니(출가한 여성), 우바새(남성 재가신도), 우바이(여성 재가신도)를 말함.
불심이란 대자비심 이것이라고
<어의구전>의 일절에는 “불심이란 대자비심 이것이라고”(어서 769쪽)라 하여, 부처의 생명은 자비의 마음이라고 명확히 말씀하십니다. ‘불심’은 일체 중생의 성불을 바라는 대자비입니다. 그것은 무언가 특별한 생명이 아닙니다. 대성인과 같은 서원을 하고 ‘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행동하는 색심(色心)에 불계의 생명이 엄연히 빛난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딱하게 여기는 마음이 절복의 근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비는 상대를 소중히 생각하는 ‘배려’, 반드시 바뀐다고 믿고 관계를 지속하는 ‘인내력’, 상대가 반발할지 모른다고 겁내는 마음을 타파하는 ‘용기’가 되어 나타납니다.
불법대화는 상대를 최고로 존경하는 자비의 행위입니다. 부처의 자비로운 서원에 합치해 불법대화를 펼치면 자신의 생명도 연마됩니다. 자행화타에 걸친 궁극적인 불도수행입니다. 환희용약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우리는 삼천제법(三千諸法)이라는 다양한 경애의 사람에게 대화를 거듭한 만큼 자신의 경애를 확대하고 자비의 생명을 강하게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것을 물어도 훌륭히 답하고, 그 마음에 두려움이 없으며, 인욕하는 마음이 확고하며 단정하고”(법화경 472쪽)라고 있듯이 지용보살은 대화의 달인입니다. 우리는 불법대화라는 불도수행으로 자신의 경애를 변혁하고 자비를 바탕으로 위대한 인간혁명의 인생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니치렌 한 사람이 남묘호렌게쿄(남무묘법연화경)라고 불렀으나 이인·삼인·백인 이렇게 차례로 불러서 전하느니라. 미래도 또 그러하리라. 이 어찌 지용의 의가 아니리오. (어서 1360쪽 9행~10행)
[ 현대어역 ]
처음에는 니치렌 혼자 남묘호렌게쿄라고 불렀지만 두 사람, 세 사람, 백 사람이 차츰 불러 전했다. 미래도 또한 그러하리라. 이것이 ‘지용의 뜻’이 아니겠는가 (어서 1360쪽 9행~10행)
21세기 지용의 대행진을
<제법실상초>❾에는 미래에 걸친 광포의 방정식이 나타나 있습니다.
법화경 종지용출품에 등장하는 지용보살은 대지에서 춤추며 나온 보살입니다. 지용보살의 수는 갠지스강 모래알 숙자의 6만배라고도 합니다. 반짝이는 무수히 많은 지용보살들이 무수히 많은 권속을 이끌고 땅속에서 출현했습니다.
광선유포가 확대될수록 지용의 진열은 더욱더 넓어집니다. 끝이 없습니다.
나는 세계광포의 초창기, 아직 멤버가 한명도 없는 나라를 방문해도 장래 반드시 지용보살이 어마어마하게 출현하리라 확신하며 그 나라의 대지에 스며들게 하겠다는 심정으로 제목을 불렀습니다.
전 세계 내가 방문한 지역, 또 동지와 함께 묘법의 씨앗을 뿌린 지역에 지금 지용의 대진열이 구축되었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땅이든 반드시 지용보살이 사명을 다하려 춤추며 나옵니다. 그것이 ‘혼자 남묘호렌게쿄라고 불렀지만’ 하는 대성인의 대확신입니다. 게다가 감사하게도 “미래도 또 그러하리라”고 단언 하셨습니다. 미래 영원토록 지용의 확대는 이어집니다.
따라서 대담하고 성실하게, 또 두려워 말고 정의를 꿋꿋이 말해야 합니다.
우리의 대화로 이 지구를 감싸는 일이 바로 대성인의 유명을 짊어지고 광선유포에 일어선 투사들의 숭고한 사명입니다.
‘자신을 이기는’ 일이 승리를 여는 길
‘전통의 2월 투쟁’은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의 성탄과 은사 도다 선생님이 태어나신 달을 절복의 결과로 장엄하게 장식하자는 보은감사와 사제공전(師弟共戰)의 깊은 일념이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 일념이 한계를 부수고 현실의 행동이 되었기 때문에 돌파구를 열었습니다.
말뿐이고 마음으로 생각만 할 뿐이라면 감사도 신앙도 관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행하고 실천해야만 현실에 가치를 낳고 살아있는 정신이 됩니다. 강한 마음은 어떻게든 실현하고자 하는 ‘결의’를 키우고, 어려움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분기시켜 현실을 뚫는 ‘지혜’를 용출시킵니다.
자신을 이기는 일이 중요합니다. 저 2월 투쟁에서 우리 벗은 숙명에 속박당한 마음을 해방시켜 결연히 불법대화를 하자고 일어섰습니다. 거기에 내면의 불계가 열려 ‘여래(如來)의 심부름꾼’으로서 ‘여래의 일’을 하는 힘이 발휘되었습니다. 형식이나 겉모습이 아닌 자용의 사명에 일어선 한사람 한사람의 강인한 생명이 바로 부처의 자비와 용기라는 증거입니다.
당시 입회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부인부원이 절복하러 가는 데 나도 함께 갔습니다. 그 분은 긴장해서 발걸음도 움츠러든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학회가를 부르며 즐겁게 갑시다.” 하고 제안했습니다. 처음에는 모깃소리만 했는데 ‘동지의 노래’를 몇 번이고 흥얼거리다보니 점점 힘차게 불렀습니다. 그리운 추억입니다.
모두 자신을 이겨야 합니다. 인간혁명한, 다시 태어난 그 모습이 현실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홍교를 이루었습니다.
❾ <제법실상초> : 1273년 5월, 사이렌보에게 주셨다고 전한다. ‘제법실상(諸法實相)’에 관한 질문에 불법의 심오한 뜻을 설한다. 제자 일문에게 대성인과 같은 뜻이라면 지용보살이라 칭하고, 광선유포는 반드시 달성된다는 확신을 말씀하셨다.
‘SGI에는 대화가 있다’
불법의 사제가 품은 대서원인 ‘광선유포’에는 그 문자 속에 이미 대화의 혼이 담겨 있습니다. ‘광선(廣宣)’은 ‘널리 말한다’는 의미입니다. 대화의 실천이 없다면 광선유포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렇듯 대화를 확대해 광선유포의 큰 파도를 일으키고 이 세상의 서민부터 국가지도자에 이르기까지 누구와도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대화의 챔피언’이 도다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런 선생님의 제자인 나는 세계의 지도자, 지성들과 종교나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어 열린 마음으로 평화를 위한 대화를 겹겹이 펼쳤습니다.
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만나 불연을 넓혔습니다. 내가 개척한 대화의 길을 세계의 젊은 동지가 같은 마음으로 크게 넓히고 있습니다. 이 운동을 세계의 지성들이 찬탄하며 큰 기대를 보내고 있습니다.
에머슨협회 전 회장인 사라 와이더❿ 박사는 “SGI에는 대화가 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좋은 사회를 구축하려는 존귀한 목적이 있습니다. 모든 생명을 동등하게 성장시키고 번영시키는 생명의 힘이 넘칩니다.” 하고 찬탄하셨습니다.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인 눌 야먼⓫ 박사도 “SGI가 발전함으로써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것은 종교와 종교가 만남을 맺는 대화의 시대, 평화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SGI의 가장 중요한 공헌입니다.” 하고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SGI의 벗은 나와 함께 용감하게 모든 사람과 나누는 대화, 그리고 종교 간 대화, 문명 간 대화에 도전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있는 곳에서 거듭 펼치는 대화는 자타 공히 인간혁명을 힘차게 촉구하고 세계를 바꾸는 원동력입니다. 창가의 동지가 전 세계에서 날마다 펼치는 대화가 평화로운 세계를 실현하고, 느리지만 확실한 변혁의 흐름을 물밑에서 일으키고 있습니다.
❿ 사라 와이더 : 에머슨협회 전 회장. 전미 굴지의 교양대학인 콜게이트대학교 교수. 이케다 선생님과 대담집 《어머니를 위한 찬가-시심(시심)과 여성의 시대를 말한다》(우시오출판사)가 있다.
⓫ 눌 야먼 : 터키 출신의 미국 문화인류학자. 하버드대학교 명예교수. 이슬람교와 불교, 힌두교 등 종교와 사회연구로 유명하다. 이케다 선생님과 대담집 《오늘의 세계 내일의 문명》(《이케다 다이사쿠 전집》 제140권 수록, 세이쿄신문사)이 있다.
인류의 미래를 여는 궁극적인 대화
‘태양의 대화’ ‘희망의 대화’ ‘청년의 대화’가 세계를 비춥니다. 우리의 대화는 인류를 여는 궁극적인 힘입니다. 어디까지나 지용의 용자답게, 행복박사답게 통쾌한 드라마를 남기지 않겠습니까!
끝으로 도다 선생님의 사자후를 여러분께 전하며 이번 강의를 마치고자 합니다.
“대성인님의 권속이 모여 광선유포를 이루지 못한다면 무슨 낯으로 영추산에서 만나겠는가. 지용보살인 여러분, 다같이 해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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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너무나 잘 정리해 주셨습니다...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