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정리:2004.2.28.(일)
08:20문수사-10:00망바위-11:00노장대-12:00상내봉-중식-14:00출발-16:20벽송사
오늘의 산행은 문수사를 산행 들머리로 잡고 노장대를 오른 후 빨치산 능선을 따라 벽송사로 하산 코스로 잡았다. 노장대. 노장대는 상내봉 9부 능선 위에 우뚝 선 봉우리이며 최근 함양군의 빨치산 루트 관광사업에 따라 곳곳에 이정표가 신설되고 정비되고 있으나 아직 지리산 산님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아 곱게 보존된 동부 지리산의 원시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지역이다.
우리가 문수사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8시가 되어 있었다. 새벽 1시에 인천에서 출발하여 서해안 고속도로를 거쳐 동군산을 지나 전주역에서 L 선생을 만나 남원시청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6시 반. 남원O적과 합류한 후 차량 1대를 벽송사 주차장에 놓고, 지금은 폐교된 문정초등학교 앞 구 송문교를 건너 문수사 입구 조그만 공터에 나의 애마를 놓고 산행을 시작한다. 저 남쪽의 높은 산정을 보니 오늘 우리의 목표지인 노장대가 우뚝 솟아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문수사 경내를 통과한 후 그대로 작은 계곡을 치고 오를 생각으로 우리의 발걸음은 바빠지고 있다.
차량이 겨우 1대 통과할 경사가 가파른 시멘트 포장도를 따라 경내에 들어서니 은은한 절 향기와 이른 아침 공기가 잘 어우러져 그윽한 풍광이 정겹게 느껴졌으나 비구니 스님으로부터 강력한 제지를 당하고 만다. 단체 산행이 아닌 터라 경내 위쪽의 길로 치고 오르려고 사정도 해보지만, 뒷산이 문수사 사유지라는 것을 강조하며 그 뜻을 굽히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문수사 경내의 풍광만 디카에 담고 아까 오름길에 있었던 별장 아래 조그만 갓길에 주차된 곳을 시발점으로 좌측 능선을 치고 가기로 마음을 접는다. 중생을 구원하는 스님들이여. 부디 부처님의 자비를 베푸소서..
오늘의 산행은 능선 산행이기 때문에 개울가에 내려가 물을 빵빵하게 담고 좌측으로 희미하게 난 길을 따라 산언덕을 차고 오른다. 가파른 된비알을 십여 분 무작정 치고 올라가니 굵은 육수가 온몸으로 뚝뚝 떨어진다. 재킷을 벗어 배낭에 넣고 등산화 끈을 다시 야무지게 동여맨다. 이제 우리는 이 능선을 따라 노장대를 오르면 된다. 아침 이슬에 몸을 적신 낙엽을 밟고 옥계동에서 덕두산을 오르는 듯 밋밋한 능선 길을 따라가니 우측 저 아래 문수사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간혹 사람들이 다녔든지 희미한 길이 아슬아슬 이어졌고 고도를 서서히 높혀가며 우리를 인도한다.
오름길 잠시 후에 운암마을 쪽에서 올라오는 지능선을 하나 더 만나고 가파른 능선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하니 문수사 좌측에서 뻗어 오른 능선과 운서리 쪽 마을에서 올라오는 능선과 만난다. 능선 날 등을 따라 오름 길은 지속된다. 오전 10시경 커다란 바위가 정면을 가로막고 있어 좌우를 살폈으나 우회할 길이 마땅치 않아 바위를 그대로 올라타기로 한다. 이 이름 모를 망바위에 올라 주위를 바라보며 풍광에 취한다. 정면 북쪽으로는 법화산이 지척이고 그 너머엔 준봉의 삼봉산이 우뚝 솟았다. 저 아래에는 임천강의 가는 물줄기가 실개천처럼 보인다. 일행들을 잠시 쉬게 하고 길을 찾기 위해 앞길을 더듬어 본다.
우측 벼랑 옆으로 살며시 난 길을 따라 산행을 진행하니 올망졸망한 바위 군과 산죽들이 어울려 과거에는 은밀한 빨치산의 비트가 아니었을까 추정해 보기도 한다. 아침이슬을 흠뻑 먹은 낮은 산죽 사이의 길을 따라 올라가니 황토색으로 노장대라 씌어 있는 첫 이정표를 만난다. 이어진 오름길 5분 후에 똑같은 이정표를 다시 만나며 제법 규모가 큰 산죽 지대를 길을 따라 통과한다. 십여 분 후 역시 거리가 표기되지 않은 이정표를 또 만나게 되며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노장대 아래 이르러서야 노장대 0.1Km, 운암마을 3.5km, 선녀굴 3Km의 제대로 된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에 배낭을 내려놓고 간식과 카메라만 챙겨 노장대를 향하는데 지금까지 급경사 오름길에 시달렸던지 다리가 후들 떨리고 갑자기 허기를 느낀다.
잠시 후에 우리 앞을 가로막은 봉우리는 노장대. 일명 함양 독바위라고 하는 거대한 암봉이다. 북한산 비봉과 우이암에는 그 크기가 못 미치나 규모는 그래도 장관이다. 함양군에서 설치한 밧줄로 만든 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주위 경치를 살펴보니 조망이 끝내준다. 동쪽으로는 왕산과 붓끝 모양의 필봉산이 멋지고 산청읍도 시야에 들어온다. 북쪽으로는 법화산의 정상이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고 준봉의 삼봉산이 멋지다. 서쪽으로는 벽송사 능선을 넘어 창암산과 삼정산이 보이고 반야봉에서 직접 뻗어 내린듯한 만복대의 서북 능선이 덕두산 끝자락인 인월까지 능파가 되어 흐르고 있다. 바로 옆 약간 더 높은 암봉은 보조 자일이 있어야 오를 듯 맨몸으로 바위에 직접 붙자니 부담스럽다. 포기하고 로프 사다리를 내려와 노장대 뒤를 돌아가니 통천문이 나타난다. 통천문 앞에는 산죽 사이로 길이 좌우로 희미하게 열려 있는데 좌측길은 계곡 아래로 떨어져 방곡리 방향을 향하고 하나는 상내봉 방향인듯한데 배낭을 아래에 두고 왔기 때문에 다시 내려서기로 한다.
우리의 1차 목표지 노장대의 등정은 끝났다. 배낭을 들쳐 메고 벽송사 방향으로 일단은 향한다. 산허리를 따라 노장대에서 내려온 만큼 다시 치고 올라가니 상내봉이 바로 빤히 바라뵈는 안부이다. 이곳에는 비박하기에 적합한 구덩이가 있었고 바로 앞에는 북쪽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 바위가 있어서 잠시 머물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명당자리였다. 배낭을 풀고 점심을 준비한다. 남원 산적이 준비해온 김밥에. 뭇국을 버너에 데워 옹기종기 따스한 봄 햇살에 몸을 맡기고 식사를 한다. 구기자 술을 한잔 씩 마시고 나니 모두 홍안이 된다. 이젠 벽송사로 뻗은 능선을 따라 하산길이 2시간 정도 남아 있으므로 여유가 있다. 따뜻한 햇볕 아래 배낭을 베개 삼아 낮잠까지 즐기는데 그 틈에 살짝 코를 골기도 한다. 우리가 눈을 뜬 것은 진주에서 온 단체 산님들이 이곳을 지나치면서이다. 방곡리 방향에서 노장대를 경유하지 않고 능선을 따라 오른 이들은 잠시 간식을 먹고 상내봉 방향으로 서둘러 떠났다.
이곳에서 2시간을 한가롭게 보낸 후 우리도 벽송사를 향해 길을 떠난다. 벽송사까지는 오로지 내리막길로 곳곳에 빨치산 인형을 세워 놓은 아지트가 많다. 얼마 걷지 않아 바위 비트를 만난다. 바위 주변에는 산죽들이 많이 분포하여 빨치산의 소규모 부대가 은신했을 성싶은데, 사실 이태의 <남부군>이나 이병주의 <지리산>을 읽어보면 빨치산들이 산죽에 숨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토벌군들이 들이닥쳐 산죽만 나타나면 무조건 총을 난사하며 갈겨대기 때문이다. 따라서 토벌대의 이동을 주시하는 보초들이 은밀하게 자신의 위치를 노출하지 않고자 은폐하기는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역사는 흘러 반세기가 이미 지났다. 공산주의는 종주국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자본주의 개방으로 세상이 변했다. 소련을 아버지의 나라라 부르며 소련의 눈치를 보며 추종했던 북녘의 고위 공산당 간부들은 지금 지하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여기까지 오다 보니 이젠 빨치산도 과거의 그들이 부르짖던 정의와 투쟁도 상품화되어 관광사업이 되었다. 특히 함양군은 영원사 지구와 벽송사 지구에 이러한 빨치산 관계사업을 많이도 벌여 놓았다. 이러한 것을 어디까지 받아드려야 할까. 혹자는 아직도 빨치산이냐. 공비냐를 놓고 설전을 펴는데 과거 좌우익 투쟁의 산물로 언제나 우리의 아픔이 치료될 것인가. 특히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에서의 빨치산 루트 관광사업은 지리산 살리기 운동에 반하는 것이며 반환경적이며 민족적인 행위라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벽송사로 향하는 빨치산들이 이용했던 길은 말 그대로 교묘하게 능선을 피해 사면 비탈길을 따라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능선을 피해 그 아래 사면으로 빨치산들은 부대 이동을 했다고 하는데 그 말은 여실히 증명되고 있었다. 벽송사가 5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아직도 5Km가 남았다고 L 선생은 투덜대었지만, 계곡도 아닌 능선 길을 치고 내려가는데 1시간도 채 안 걸릴 수 있는 거리이다. 내려서다 보니 무성한 수풀 사이로 산죽밭에 총을 든 빨치산 인형이 연이어 나타난다. 아래로 내려와서 위의 산죽밭을 보니 역시 빨치산 인형의 모습이 은폐되어 보이지 않는다. 산죽 비트를 또 하나 지나 송대마을 갈림길이 있는 안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오늘의 산행이 정리된다. 이후 제법 큰 무덤 1기를 지나 내려서는데 광점동 계곡의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온다. 저 멀리 산정에는 까마득히 동부능선의 쑥밭재 안부가 보이고 웅장한 두류 능선의 모습도 보인다. 이후 내리막길 얼마 후에 한국 전쟁 때 인민군과 빨치산의 야전병원으로 쓰였던 벽송사에 도착함으로써 산행이 정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