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학사에 빛나는 范仲淹(범중엄)의 「岳陽樓記」(악양루기)
〔작품 설명〕
악양루(岳陽樓)는 악주(岳州) 파릉현(巴陵縣) 성문의 서쪽 누대로, 유명한 동정호(洞庭湖)를 굽어보고 있어 경관이 아주 빼어나다. 범중엄(范仲淹)이 중앙정부에서 등용돼 개혁정책을 펴려다 실각당해 지방관으로서 등주(鄧州, 오늘날 河南省 鄭州)를 다스리고 있을 때, 그의 친구인 등종량(滕宗諒)이 중앙에서 역시 좌천당해 인근지역인 악주(岳州, 오늘날 河南省 岳陽市)를 다스리게 되었다. 이 때 등종량이 그곳의 명소인 악양루를 중수(重修)하고 이를 기념하는 글을 써줄 것을 부탁하자, 범중엄이 친구를 위로하는 마음을 담아 써준 글이다.
이 악양루기 말미의 “(국가의 지도자나 목민관들은) 천하 사람들의 근심에 앞서서 근심하고, 천하 사람들의 즐거움에 뒤에 즐긴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歟)”라는 구절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명구(名句)로 널리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이는 세상에 대한 사대부의 책임의식을 잘 드러내는 명문장이라 할 수 있다.
범중엄의 이 글로 인하여 악양루도 천하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참고로 이 악양루는 호북성 황학루, 강서성 등왕각, 산동성 봉래각과 함께 중국 4대 누각에 속한다.
* 范: 풀이름 범. 淹: 담글 엄. 鄧: 나라이름 등. 諒: 믿을 량. 膾: 회 회. 炙: 구울 자.
歟: 어조사 여.
慶曆四年春 滕子京謫 守巴陵郡 越明年 政通人和 百廢具興
경력사년춘 등자경적 수파릉군 월명년 정통인화 백폐구흥
* 曆: 책력 력.
경력(慶曆) 4년(1044) 봄, 등자경(滕子京)이 파릉군의 태수로 쫓겨났다.
그 이듬해를 지나 정치가 통하고 백성들이 화합하여 온갖 폐지된 제도가 갖추어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乃重修岳陽樓 增其舊制 刻唐賢今人詩賦于其上
내중수악양류 증기구제 각당현금인시부우기상
이에 악양루를 중수하여 그 규모를 옛 모습보다 크게 짓고 당대(唐代)의 현인들과 요즘 사람들의 시부(詩賦)를 그 위에 새기고
屬予作文以記之 予觀夫巴陵勝狀 在洞庭一湖
촉여작문이기지 여관부파릉승상 재동정일호
* 狀: 형상 상.
나에게 글을 지어 이로써 기록하기를 부탁하였다. 내가 바라보노라니 파릉의 뛰어난 풍광은 동정(洞庭)이라는 한 호수(湖水)에 있었다.
銜遠山 呑長江 浩浩蕩蕩 橫無際涯 朝暉夕陰 氣象萬千
함원산 탄장강 호호탕탕 횡무제애 조휘석음 기상만천
* 銜: 재갈 함. 暉: 빛 휘.
浩浩蕩蕩(호호탕탕): 물이 한없이 넓게 흐르는 모양
먼 산을 머금고 장강을 삼키며 거침없는 기세가 끝 간 데를 모르는데 아침 햇살과 저녁노을로 기상(氣象)이 천태만상(千態萬象)으로 조화(造化)를 부리는데
此則岳陽樓之大觀也 前人之述備矣 然則北通巫峽 南極瀟湘
차즉악양루지대관야 전인지술비의 연즉북통무협 남극소상
遷客騷人 多會于此 覽物之情 得無異乎?
천객소인 다회우차 남물지정 득무이호?
* 瀟: 비바람 소. 湘: 강이름 상.
遷客(천객): 귀양살이하는 사람.
騷人(소인): 시인과 문사(文士)를 통틀어 이르는 말.
이것이 악양루의 일대 장관(壯觀)이다. 옛사람들도 이를 글로 지어 남겼다. 그런즉 북으로는 무협으로 통하고 남으로는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으로 이어져 유배 온 사람과 시인들이 여기에 많이 모이는데 사물을 관람하는 감정이야 다르게 느낄 수 없었으리라.
若夫霪雨霏霏 連月不開 陰風怒號 濁浪排空
약부음우비비 연월불개 음풍노호 탁랑배공
* 霪: 장마 음. 排: 밀칠 배.
怒號(노호): 성내어 부르짖음.
궂은비가 부슬부슬 내리면 몇 달 동안 개지 않고 음산한 바람이 성내어 울부짖는데 흐린 물결은 허공으로 솟구치니
日星隱耀 山岳潛形 商旅不行 檣傾檝摧 薄暮冥冥 虎嘯猿啼
일성은요 산악잠형 상여불행 장경즙최 박모명명 호소원제
* 檣: 돛대 장. 檝: 노 즙. 摧: 꺽을 최. 嘯: 회파람불 소.
해와 별이 빛을 잃고 산들이 형체를 감추며 상인과 나그네가 다니지 않으니 돛이 기울고 노가 꺾이며 해질 무렵 어둑어둑해지면 호랑이가 울부짖고 원숭이가 울어대나니
登斯樓也 則有去國懷鄕 憂讒畏譏 滿目蕭然 感極而悲者矣!
등사루야 즉유거국회향 우참외기 만목소연 감극이비자의
* 讒: 참소할 참.
이때 악양루에 오르면 곧 나라를 떠난 온 사람은 고향이 그리워지고 참소를 걱정하며 비난이 두려워지게 되는데 눈에 보이는 것마다 쓸쓸해서 감회가 지극하여 슬퍼지리라.
至若春和景明 波瀾不驚 上下天光 一碧萬頃 沙鷗翔集 錦鱗游泳
지약춘화경명 파란불경 상하천광 일벽만경 사구상집 금린유영
* 春和景明(춘화경명): 봄날이 화창하고, 풍광이 명미함
錦鱗(금린): 아름다운 물고기
화창하게 풍광이 아름다운 봄이 오면 물결도 일지 않고 위아래 하늘빛이 한 결 같이 푸르게 만경창파(萬頃蒼波)로 일렁이나니 모래밭에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아름다운 물고기가 헤엄치며
岸芷汀蘭 郁郁青青 而或長煙一空 皓月千里
안지정란 욱욱청청 이혹장연일공 호월천리
* 芷: 지초 지. 郁: 성할 욱.
郁郁(욱욱): 초목이 무성하다. 울울창창하다.
강가에는 지초와 난초의 향기가 무성하고 울창하였다. 간혹 긴 안개 한 줄기가 허공으로 뻗치고 밝은 달빛 천리이다.
浮光躍金 靜影沈璧 漁歌互答 此樂何極?
부광약금 정영침벽 어가호답 차락하극?
‘물 위에’ 뜬 빛은 금빛으로 반짝이고, 고요한 ‘달’그림자는 옥구슬이 잠긴듯하며, 어부의 노랫소리가 서로 화답을 하니 이 즐거움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登斯樓也 則有心曠神怡 寵辱偕忘 把酒臨風 其喜洋洋者矣!
등사루야 즉유심광신이 총욕해망 파주임풍 기희양양자의!
* 偕: 함께 해.
洋洋(양양): 매우 득의양양하거나 즐거운 모양.
악양루에 오르면 곧 마음이 넓어지고 정신이 흐뭇해져 총욕(寵辱)을 모두 잊어버리고 술을 끼고 바람에 다다라 그 기쁨에 득의양양 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嗟夫! 予嘗求古仁人之心 或異二者之爲何哉?
차부! 여상구고인인지심 혹이이자지위하재?
아! 내가 일찍이 옛 어진 사람의 마음을 구하였는데 혹여 다른 두 사람이 되고 있으니 어째서인가?
不以物喜 不以己悲 居廟堂之高 則憂其民 處江湖之遠 則憂其君
불이물희 불이기비 거묘당지고 즉우기민 처강호지원 즉우기군
물질 때문에 기뻐하지 않아야 하고 자기 일로 슬퍼하지 않아야 하며 조정의 높은 자리에 있으면 곧 백성을 걱정해야 하고 강호(江湖)의 먼 곳에 있으면 곧 임금을 걱정해야 하니
是進亦憂 退亦憂 然則何時而樂耶?
시진역우 퇴역우 연즉하시이락야?
이는 나가서도 또한 걱정하고 물러나서도 또한 걱정하는 것이니 그런즉 어느 때 즐거워해야 하는가?
其必曰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歟! 噫! 微斯人 吾誰與歸?
기필왈 선천하지우이우 후천하지낙이락여! 희! 미사인 고수여귀?
그 사람(옛날 어진 사람)은 반드시 말하기를 “천하가 근심하거든 먼저 근심하고, 천하가 즐거워하거든 뒤에 즐거워하라.”고 하리라.
아! 이런 사람이 아니면 나는 누구와 더불어 돌아가리?
〔지은이 범중엄〕
(范仲淹, 989 ~ 1052)
중국 북송(北宋) 때의 정치가·학자. 장쑤성[江蘇省] 쑤저우[蘇州] 출생. 자 희문(希文). 시호 문정(文正).
인종(仁宗)의 친정(親政)이 시작되자 부름을 받아 중앙에서 간관(諫官)이 되었다. 그러나 그 무렵 곽황후(郭皇后)의 폐립문제를 놓고 찬성파인 재상 여이간(呂夷簡)과 대립했기 때문에 다시 지방으로 쫓겨났다. 그 뒤로 구양수(歐陽修)·한기(韓琦) 등과 함께 여이간 일파를 비난하였으며, 자기들 스스로 군자의 붕당(朋黨)이라고 자칭하여 경력당의(慶曆黨議)를 불러일으켰다.
1038년에 이원호(李元昊)가 서하(西夏)에서 제위(帝位)에 오르자, 산시경략안무초토부사[陝西經略安撫招討副使]가 되어 서하 대책을 맡고, 그 침입을 막았다. 그 공으로 추밀부사(樞密副使)가 되고, 이어 참지정사(參知政事: 부재상에 해당)로 승진하여 내정개혁에 힘썼으나, 그를 미워하는 하송(夏悚) 일파의 저항이 강하여 다시 지방관(地方官)을 역임하다가 병으로 죽었다.
시문 등을 모은 《범문정공집(范文正公集)》(24권)이 있다.<두산백과>
[한글 해설문〕
여기의 한글 해설문은 한조(寒照) 신흥식(申興植)선생의 글을 옮겨왔다. 한조 선생은 道家의 무위사상과 儒家의 도덕이념을 거쳐 佛家의 선(禪)사상에 흠뻑 빠져 평생 공부해 온 분으로서 현재 유마강원(維摩講院)을 운영하고 있다.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 '법구경'(法句經), '채근담'(採根譚), '직지'(直指) 등 여러 권의 역서를 갖고 있다.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