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에니어그램9) 유비의 성격 - 평화주의자
조 성 민 (한양대 로스쿨 명예교수)
1. 신축성과 신중함이 있음
유비는 손권이나 조조와 같이 집안배경이 없었고 정치적인 경험도 없었다. 그에게 있는 것은 오로지 한나라 황실 후예라는 명분뿐이었다. 이렇게 지명도나 세력이 없었지만 촉나라의 지도자가 된 것은 능굴능신(能屈能伸), 즉 상황에 다라 지혜롭게 굽히고 펼 줄 아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보다 나은 실력자에게 기대어 성장했고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 자신을 위협했던 세력과도 타협해 그들의 힘으로 재기의 기반을 마련했다.
유비는 겉으로는 말이 없고 부드러우나 속으로는 야심이 가득 차 있었다. 동정심과 수줍음이 많은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이고, 마음 깊은 곳의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말수가 적고 겸손하고 온순하며 고난과 굴욕을 끝까지 인내하며 천하통일의 꿈을 펼쳤다.
2. 친화력이 강함
유비는 사람들 간의 믿음과 감정의 교류를 중요시했다. 유비와 그의 참모들은 목숨을 맞바꿀 만큼 깊은 신뢰로 다져졌다. 그는 통제형 리더십이 아니라 지지형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그는 천하통일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달성할 목표이며, 이를 위해 인재영입을 위한 노력에 헌신적이었다. 유비는 외향적 감정유형이다. 외향형은 정신에너지가 외부로 향하기 때문에 환경에 따라 순응하는 능력이 강하다. 따라서 이 유형의 유비는 탁월한 외향적 감정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잘 맞춰 줄줄 알고 다른 사람들과 쉽게 친분관계를 맺었다.
이러한 유비는 관계지향적인 통치문화를 갖추고자 했다. 대의에 따른 비전으로 유능한 인재를 모으고,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하며 인재들의 역량을 최대로 이끌어내는 통치수완을 발휘했다. 그는 권모술수보다는 원칙과 윤리를 바탕으로 통치했다.
그는 자신이 기획하고 직접 실행하기보다 구성원의 역량에 맞추어 그들이 역량을 발휘하도록 고무시켰다. 따라서 그는 모든 전략적 결정은 제갈량의 뜻을 따르고 존중했다. 이러한 용인술이 개성 강한 인재들을 각자의 위치에서 최고의 능력발휘를 가능하게 한 셈이다. 한비자가 “삼류리더는 자기의 능력을 사용하고, 이류리더는 남의 힘을 사용하고, 일류리더는 남의 지혜를 사용한다”고 한 것처럼, 명철한 전략가이기 보다는 구성원을 존중하는 신뢰의 전략가였다.
유비는 강한 추진력이나 통솔력은 없었지만, 친화력과 흡인력(吸引力)이 강했다. 그른 스스로 진두지휘하는 방법보다는 능력 있는 사람을 일깨워 주는 민주적인 스타일의 소유자로서 사람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3. 성심성의를 다함
유비는 사람을 대할 때 성심을 다했다. 유비가 제갈량을 융중으로부터 이끌어낸 것도 성심을 다해 삼고초려를 했기 때문이다.
당양벌에서 조조군에 쫓겨 패주하던 유비가 간신히 피하자, 조자룡이 유비가족을 구하기 위해 단기필마로 적진으로 들어가 사력을 다해 유선을 구출해낸다. 그러자 유비는 이 아이 때문에 귀중한 장수를 잃을 뻔 했다며 유선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관우의 복수를 위해 오나라를 침공했다가 대패한 뒤, 유비가 제갈량에게 유언을 했다. 위나라를 쳐서 하나라의 명예를 회복해주고, 유선을 도와서 될 만한 인물이면 도와주고 그렇지 않으면 직접 촉나라의 주인이 되라고 했다. 이러한 신하에게 성심성의로 대하는 태도가 유비의 인간적인 매력이다.
4. 지구력이 부족함
유비는 규칙과 규율에 지배하는 조직에 들어가면 얼마가지 않아 지쳐버리고 마는 성격이다. 촉나라의 왕이 된 후에 외교·군사·행정은 실질적으로 제갈량이 처리하게 하고, 유비는 제갈량의 판단에 동조하고 힘을 실어주었다. 관우의 죽음으로 오나라에 복수전을 한다고 이릉전투를 일으켜, 제갈량을 동원하지 않고 유비 자신이 직접 지휘를 했지만 패했다.
적벽대전 후에 내정을 다지고 전쟁준비를 철저히 하고,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참고문헌) 조성민, 삼국지에서 내 성격을 찾다(제2쇄), 박영사, 20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