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41
목욕을 앞둔 배
20년이 넘도록 좌초되어있는 배를 억지로 부양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한화그룹에 매각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난파선과 다름없는 배가 다시 대양으로 항해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필연적으로 발생할 구조조정과 노사갈등 등 적지 않은 암초가 산재해있기 때문이다.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관심을 두는 것은 일리 있다. 방산 분야에 두각을 보이는 한화로서는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경우 잠수함 건조 등을 통하여 글로벌 방산 기업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돈 먹는 하마가 될지 우유 짜는 젖소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대우해양조선의 주식이 반등한 반면, 한화그룹의 주가가 하락한 시장의 반응을 한화그룹은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1998년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대우조선해양의 키를 쥔 산업은행은 제대로 주인 노릇을 해본 적이 없다. 얼마 전까지도 CEO의 임명조차 정치의 외풍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비난을 들었다. 지난해에만 1조 7천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으면 하루라도 빨리 문을 닫아야 할 회사다.
빚은 천근 갑옷이다. 회계상 자본으로 계상한 신종자본증권(수출입은행에서 빌린 2조 3천억 원의 영구채권)을 부채로 계상하면 부채비율은 4,000%에 달한다. 그런 회사에서 임직원들은 어느 정도의 보수를 받았는지 궁금하다. 더 의아한 것은 경영권을 행사한 산업은행과 조선소 임원 중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노사 모두 도덕적 해이가 지나치다는 세간의 비난은 마이동풍이었다.
전문경영과 소유경영에 대한 논쟁은 오래된 연구과제였다. 분명한 것은 오너경영이라면 12조 원으로 추산되는 자금을 퍼붓고도 조 단위의 적자를 내는 기업은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 한마디로 대우조선해양은 주인 없는 회사의 말로가 어떤 꼴인지를 보여주는 사례연구(Case Study)의 교과서가 되었다.
대우조선해양은 공적자금만 삼킨 것이 아니다. 경영자들은 자신의 임기 동안 실적을 내세우기 위해 저가 수주를 마다하지 않았다. 대우조선해양이 다른 국내조선소까지 적자 수주하도록 동인을 제공하였다는 지적은 조선업계의 중론이다. 유럽연합이 2019년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과의 기업결합을 LNG선 독과점을 핑계로 반대한 속내가 여기에 있었다.
지금까지 드러난 대우조선해양의 선창 구멍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새로 키를 잡게 된 선장이 뱃머리를 돌리게 되면 부실의 규모는 훨씬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빅 배스(Big Bath) 때문이다. 금을 녹여 목선을 만든 기업이라면 정도의 문제일 뿐 부정이나 분식회계의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빅 배스는 새해를 맞아서 묵은 때를 벗기는 목욕과 같다. 새로 교체된 기업의 CEO는 자신의 경영성과를 가능한 극대화하려는 심리를 갖는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어서 탓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자신의 치적을 드러내기 위해서 전임자의 경영 실적을 낮게 평가하려는 의도가 관찰된다는 점이다. 그런 성향이 실제 실행되는 경우를 기업회계에서는 ‘빅 배스’라고 한다.
빅 배스 방법은 간단하다. 전임 CEO의 묵은 때를 피부가 벌겋게 부풀어 오르도록 이태리타월로 밀어내면 된다. 물론 이태리타월은 회계부서에서 만든다. 때밀이 수건을 제조하는 공정도 단순하다. 회계 처리 과정에서 과거에 발생한 부실을 과도하리만큼 상각하고 잠재적인 부실까지 털어내는 목욕을 거치면 된다. 그렇다고 빅 배스가 마냥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부실의 은폐나 부풀려진 이익을 바로 잡아,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빅 배스는 기업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어쩌면 정치권의 목욕탕은 더 야멸차고 극성스럽다. 그들은 정치적 목욕을 정상화나 적폐청산이란 언어로 변용하여 때밀이 완장을 찬다. 때밀이 수건은 기업의 이태리타월보다 훨씬 올이 굵고 거칠다. 때가 없으면 가죽까지도 벗기는 무모함은 도를 넘는다. 곧 자신이 발가벗겨져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미련함이다.
한국은 정치적 빅 배스에서 벗어났던 적이 별로 없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예외 없이 똥 막대기부터 찾는다. 한쪽에서는 지은 죄가 태산인데 탄압이라고 낯을 붉힌다. 여기에는 여야가 없다. 바지를 걷어 올려야 할 사람들이 회초리를 들고, 자신이 들어야 할 말을 제 입으로 한다. 상대의 코피를 보기 위해서라면 국익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상식을 가진 보통 사람과는 뇌 구조가 다른 사람들이다.
오너는 빅 배스를 하지 않는다. 스스로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월급을 받는 경영인은 자신의 이익에 중심을 두고 의사결정을 한다. 소위 대리인 비용이 발생하는 근원이다. 전문경영인들이 기업의 미래가치를 소홀히 하게 되는 것은 필연이라고 봐야 한다. R&D나 혁신 활동보다는 무사안일과 단기적 성과에만 목을 맨다. 종업원들에게는 인기를 얻기 위해 돈을 퍼준다. 노다지를 찾았다고 소리는 요란한데 알고 보면 자갈 무덤일 경우가 많다. 전문경영의 맹점이다.
선거 때가 되면 자청하여 머슴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허리를 접는다. 주권자가 국민이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 다만 현명한 유권자는 잔심부름꾼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너십을 가진 일꾼을 원한다. 나라와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고 다음 세대의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밤잠 설치는 일꾼이라야 표를 주고 싶다.
주인은 무한 책임을 진다. 날일꾼은 삯이 작으면 투덜대거나 떠나간다. 대우조선해양은 책임지는 리더가 없고 주인의식이 없는 조직이 어느 정도 망가질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라도 새 주인을 찾아서 묵은 때를 벗고 훤한 얼굴로 거듭나길 바란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지도자는 국가의 정향을 미래에 두고 책임지는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당장은 욕을 듣더라도 구멍 난 배를 용접하고 페인트를 칠하는 일꾼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곳간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채우는 것이 CEO의 본질적 사명이기에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