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얼마전, 작은 아들이 비싼 운동화를 두켤레 사 보냈다 이젠 제법 선선해졌으니까, 아빠 엄마 건강을 챙기려면 같이 걷는게 좋겠다는 취지였다 부부 둘이 사는데도, 신발장을 열고보니 오십여 켤레가 켜켜이 쌓여서 공간도 없고, 현관에 박스채 놓인 신발들까지 난감했다
2. 오래전 춘천살 때 오셨던 친정아버지께서 신발장을 보시고 네가 춘천 이멜다냐고 핀잔하셨던 생각이 났다 그당시 필리핀을 장기집권하며 자국민들은 가난에 허덕일 때, 초호화판 생활로 전세계 매스컴의 지탄을 받던 대통령 부인을 빗대서 하신 쓴소리였다
3. 그무렵 영어조기교육열풍이 시작되었고, 마침 아파트 집집마다 방문해서 영어를 가르치시던 그분을 만났다 한창 개구장이였던 두 아들은, 외국인 수녀님이 신기한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곧잘 따르는 것 같았다 그때 연세가 오십은 넘은듯 보였는데, 새벽부터 수녀원에서의 일상을 마치고 오후엔 걸어서 수업하러 다니셨다 일주일에 한번 오시는데, 간식거리를 챙겨들고 문앞에 가서 보면 두녀석들은 쉿! 조용히 하라며 키득거리고, 수녀님은 피곤해서 깜빡 졸고 계셨다
4. 여고시절, 매일 명동성당옆 학교를 오가던 내게 수녀님들의 존재는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다 복잡한 세상과 등지고 살면서, 순결한 성모 마리아를 따르며 사는 고고한 분들로 여겼으니까 누구보다 특별해보였다
5. 어느 날, 우연히 현관에 놓인 수녀님의 구두를 보게 됐다 순간 내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살짝, 구두 사이즈를 보려해도 너무 낡아서 알 수가 없었다 돌아가시는 수녀님께 조심스레 사이즈를 여쭤봤다 다음날, 까만 색에 굽이 낮고 편한 구두를 찾아 돌아 다녔다 마침내 그분께 안성맞춤인 구두를 사온 저녁에 전화로 엄마한테 말씀드렸더니 정말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소풍날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다음 수업날을 기다리며, 괜히 마음까지 들떠 있었다 뜻밖의 선물에 그분은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좋아하셨다 신고 온 헌 구두도 수선해서 드리면 번갈아 신을수 있다고 하니까 더 기뻐하시며 흔쾌히 맡기고 가셨다 나의 진심을 받아주시니 더없이 뿌듯했다
6. 몇년이 지나서 우연히 그분을 다시 만난건 성당입구로 오르는 길목이었다 반갑게 두손을 맞잡고서,이젠 사춘기 중학생이 된 아이들의 안부를 물어보셨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잘 신고 다닌다며, 내가 사드렸던 구두를 보여주셨다 이젠 성함도 가물가물해진 그분의 안부가 궁금하다
7.그후에, 남편의 직장 이동으로 두세번 이사를 하게되면서 난 정신없이 많은 옷에 구두, 모자, 가방을 사다가 쌓아놨다 스트레스를 핑계로 증세가 심해져서 쇼핑중독 상태가 되었다 내 주변 사람들한테도 선심쓰듯 옷이며 신발, 가방, 화장품까지 사서 주면서 쇼핑으로 돈과 시간을 보냈다 오죽하면, 울산으로 이사할 때, 이삿짐 아저씨께서 나한테 연예인이냐고 슬쩍 일침을 놓았다 쓸데없이 뭐가 많아서 죄송하다고 애써 웃으며 넘겼지만, 전에 아버지께 들었던 이멜다 얘기가 생각나 속으로 뜨끔했다
8. 8년전, 무릎연골 파열이 되어 시술하고는 한달을 입원하게 됐다 애지중지 아끼던 옷에 굽높은 구두들은, 이젠 그림의 떡이고 애물단지가 되었다 아깝지만, 큰맘먹고 베란다에 구두들을 펼쳐서 사진을 찍어 올렸다 아직 상표가 그대로인 새 구두들, 옷들도 많았지만 어쩔수없이 사이즈 맞는 사람들한테 분양해 보냈다 환갑이 지난 이나이에도, 겉치레에 연연하던 내자신이 너무 부끄럽다 하나씩 주변 정리를 하면서,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알곡으로 채워야겠다 주름진 모습까지도 멋진 여자로 살아야겠다 감히, 그분들의 낮은 곳으로 임하는 자세를 닮고싶다
첫댓글 글이 좀 정리가 되는 듯 합니다. 제목을 다시 <수녀님과 구두>로 하죠. 아무래도 구두보단 수녀님에게 초점을 맞추는 게 낫겠습니다.
그러려면 구도를 다시 정리해보죠.
5단락을 두 단락으로 나누고 수녀님의 낡은 구두(낡은 구두에 대한 묘사를 디테일하게 해주십시오)를 보고 갑자기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는 것으로 첫 단락을 만들죠.
그 다음 수녀님 구두 사준 것(5단락 뒷부분)은 지금의 6단락 앞에 놓죠.
5-1단락, 2단락, 3단락, 4단락, 5-2단락, 6단락, 7단락, 1단락, 8단락 순서로 만들어보십시오.
민지샘 열심히 퇴고 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젠 글도 잘쓰고 붓글씨도 잘 쓰는 걸 보니 탄력이 붙었나 보네요
민지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