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참배에서 확장한 광범위한 친일부역(1)
일제(日帝)가 의도한 사상통합의 정책을 조직적으로 추진한 사람은 제 7대 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이었다. 그는 1936년 8월 총독으로 취임하기 전에는 관동군사령관이었었고 일본정부 내 군국주의자 중의 하나였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내선일체>를 강조하였고 1938년 2월 22일 도지사회의에서 이를 더욱 강하게 역설하였다. 그는 조선인의 완전한 황국신민화에 의한 내선일체를 조선 지배의 근본으로 하고 그것에 의하여 조선을 대륙병참기지화하여 아세아 침략을 실현하려는 것이었다.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킨 후에 그는 더욱 황민화의 실질적 집행을 위하여 광분하였다. 미나미(南次郞)는 일명 <조선통치 5대 지침>의 정강을 발표하였다. 이 지침은 국체명징, 내선일여, 교거진작(敎擧振作), 농공병진(農工倂進), 서정별신(庶政刷新)-댓글1- 등으로 일제에 대한 확고한 충성심을 유도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실천방법으로 신사참배, 궁성요배(宮城遙拜), 국가국기의 존중, 일본어의 보급 등을 요구하였다. 또한 일제는 1938년 7월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댓글2)을 조직하여 황국정신의 현양(顯陽), 내선일체의 완성, 전시생활혁신, 전시경제정책에 협력, 근로보국, 생업보국, 군인원호강화 등을 부르짖게 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조직 강요에 따라 1939년9월8일 장로교회는 신의주제2교회에서 국민정신총동원 장로회연맹 결성식(궁성요배, 국가봉창, 황국신민서사, 황군장병 및 동양평화를 위한 기복)을 갖고 선서를 하였다.
0 대표적 친일부역 활동사례
- 종교간행물을 통한 친일활동
「활천」(活泉, 성결교회 신앙지)은 1939년 12월 “팔굉일우의 대원리”(댓글3)이란 사설에서 ‘팔굉일우의 대이상은 일본제국의 건설 정신이요, 이상이다.’라고 정의 한 후 청일전쟁, 러일전쟁과 만주사변을 팔굉일우 사상을 실현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미나미 총독이 강조하는 내선일체도 바로 이 정신을 고조하는 것으로서 이 정신이 황도정신이며 동시에 ‘성경정신’이라고까지 정당화하였다. 이 신앙지의 1940년2월호 “황기(皇紀) 이천육백 기념식년에 당하여”란 사설은
“우리는 황기 이천육백년을 당하여 황조황가의 성덕을 흠향(歆饗)하며 천황폐하의 성수무강(聖壽無彊)을 봉축하는 동시에 (중략) 더욱 조국 정신을 발양하며 황운부익(皇運扶翼)의 실을 거함으로써 국운무한의 발전에 진할 것을 맹서하자!” |
고 하면서 일제에 아부하였다.
「청년」(감리교 신앙지)은 윤치호의 “내선일체에 대한 사견”이란 글을 실었다. 그 글의 내용은
“현재의 내선일체는 정치적, 법률적, 경제적으로는 가히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정신적인 내선일체는 아직 미흡한 바, 황국신민서사의 2조 ‘우리들은 합심하여 천황폐하에게 충성을 다한다.’를 이루는 것이 시급하며 또 하나는 천황폐하의 적자가 된 형제 의식을 갖고 서로 믿는 일이 필요하다.” |
는 것으로서 한국개신교가 천황폐하에게 충성을 다하여야 한다고 선동하고 있다.
「기독신보」(장로교)는 1937년 10월 12일 “기독교인의 국가봉사”라는 사설에서
“기독교인은 여력이 다하도록 황실을 봉재하며 만분의 일 이라도 황은에 봉답하며 국운을 융성하게 함이 의무이다.” |
라고 하면서 크리스천들도 세속 황제의 은혜에 보답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리스도의 왕권을 부정하였다.
일제(日帝)는 1942년부터 각 교파에서 발행하던 기관지들을 강제폐간하고 어용적 활용 의도에서 「기독교신문」을 창간케 하였다. 1942년4월 18일 기독교신문협의회 제1회 이사회가 교회나 교단사무실이 아닌 경기도 경찰부 고등과 회의실에서 개최되었다. 이 창간 이사회는 총독부 경무국 이사관, 경기도 경찰부 고등과장, 동과 검열계 주임이 참석한 가운데 장로교에서 3명, 감리교에서 2명, 성결교에서 1명, 구세군(救世軍)에서 1명 등이 참가하여 1942년 4월 29일 창간호를 냈다. 창간된 「기독교신문」강령에 발행취지와 목적이 나오는데, 황국신민화를 위하여 ‘① 반도기독교내 국민총력운동의 강화 ②종교의 국민정신진흥과 국민사상 계도 ③필승체제의 확립에 관한 계도 ④내선일체 완성과 국어생활의 철저’ 등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 회에 계속)
첫댓글 댓글1)
① 국체명징(國體明徵) : 제국 9천만 동포가 거국일치 상하일심으로 천황의 도를 선양하자면 우선 국체 관념이 명징되어야 한다. 이는 곧 조선통치의 근본이라, 신사참배․황거요배․국기 국가의 존중과 <고꾸고(일본어)>의 보급 등으로 실을 거두어야 한다.
② 선만일여(鮮滿一如) : 최근 일, 만 관계에 조선이 차지하는 지위는 크니, 일만일체, 선만일여 의 대방침에 따라서 조선은 만주개발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③ 교학진작(敎學振作) : 국민정신의 함양을 기본으로 하고, <우리는 일본제국의 신민>이 라는 신념과 긍지를 갖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④ 농공병진(農工倂進) : 세계정세로 볼 때 일본의 국방력 강화가 요긴한 문제이니, 조선의 지리적 자원적 사명에 따라 생산력 증강에 힘쓰라.
⑤ 서정쇄신(庶政刷新) : 행정을 국가의 수요에 대응하도록 쇄신하여야 한다.
그럴듯한 4글자 한자단어로 친일을 부추겼네요ㅠㅠ
@노베 공감합니다.
댓글2)
자발적인 총후봉사활동(銃後奉仕活動)을 협의한데서 태동되었다. 이리하여 종(從)으로 각 종교단체와 사회교화단체, 횡(橫)으로는 인구 전체를 연맹원으로 하는 단체를 조직하기 위하여 1938년 6월 22일 부민관에서 발기인총회를 개최, 59개 단체 및 개인 56명이 참가했는바, 이중 개신교 측에서는 구세군 조선본부, 조선감리회, 조선기독교연합회, 조선장로회 등이 참가하여 동년 7월 7일 서울 운동장에서 성대한 발대식을 가졌다.
일본인은 한자 단어를 줄여 쓰는 것을 좋아하네요. 총후봉사활동은 총력으로 후방에서 봉사활동 하라는 뜻인가 보네요. 여기에 기독교단과 단체들이 합세를 하니 가관입니다ㅠㅠ
핍박을 견디기가 쉽지는 않았겠지만 참 믿음으로 대응하지 못했던 당시 교회의 모습은 매우 안타깝네요.
@천이다 공감합니다.
댓글3)
팔굉일우(八紘一宇)
일본 신화 상의 초대 천황인 신무천황이 세상을 지배하고 국가를 건설했을 때 천하를 하나의 집과 같이 통치하는 의미로 초서(招書)를 내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시 하에서의 천황제 파시즘은 신풍(神風) , 성전(聖戰) 등과 같은 이름으로 침략전쟁을 정당화 하려고 하였다.
전에 글에서도 이 개념을 보았는데요. 신화적 종교와 군국주의가 결합된 미친 이데올로기임이 분명합니다. 일본이 이 팔굉일우를 지금도 진짜로 믿는다면 매우 위험한 나라입니다.
@노베 뭔가 일본 애니메이션 같은 곳에 나올듯한 신화로 일본 백성들을 전쟁과 사지로 몰아넣은 신국주의, 군국주의는 이제 사라져야 합니다.
"④내선일체 완성과 국어생활의 철저"에서 국어는 일본어를 의미합니다.
일본에 완전히 종속된 비참한 상황이었습니다.ㅠㅠ
오죽하면 평범한 노인들이 일본어를 2000년대 초반에도 할 수 있었습니다.
@노베 그거 저도 보았습니다. 신구 주연의 시트콤이요.^^ -- 기도를 한답시고 내 욕을 하고 있네^^
https://cafe.daum.net/1107/Y657/311
진정한 우익은 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고, 거기서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인정하고 믿으며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포스팅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공감합니다.
계속 연재되는 한국교회 역사의 글이 기대됩니다.
기독교가 아주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네요. 두 나라의 조상이 다르다는 걸 잘 알면서도 같다고 하고, 황국 신민으로서 천황을 모시고 내선일체가 되어야 한다고 당당히 말했던 자들은 양심을 저버린 것이었습니다.
해방 후에 이들의 입장이 어땠을까요? 부끄러워 고개를 못들고 다녔을 것 같습니다.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회개운동이 크게 일어났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네, 공감하고 또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