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의 해안 지방에는 해당화가 피어나고 있지요. 심지어 서울의 궁궐, 민속박물관, 공원 등지에서도 수줍게 피어있는 해당화를 심심치않게 볼 수 있습니다. 해당화가 가사에 들어있는 대중가요로는 단연 <섬마을 선생님>이 유명하지요.
<섬마을 선생님>은 <동백>등과 함께 이미자 가수님의 3대 히트곡입니다. 이미자 님은 60년 동안 560여장의 음반과 2,500여곡의 노래를 발표했고, 그 중에서 100여곡이 히트했습니다. 그러니까 <섬마을 선생님>은 히트곡 중에서도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빅히트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섬마을 선생님>의 시대적 배경과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섬마을 선생님>은 1966년 방송됐던 라디오 드라마의 주제가였지요. <섬마을 선생님>을 작사하신 분은 이 드라마의 극본을 썼던 이경재 선생님입니다. <섬마을 선생님>을 작곡한 분은 천재 작곡가로 불리던 박춘석 선생님이지요. 박춘석 선생님은 본래 오아시스 레코드사 전속이었으나 이미자 님에게 곡을 주기 위해 라이벌 회사이자 이미자 님 전속인 지구 레코드사로 소속을 옮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작곡한 작품의 1/3에 해당하는 700여곡을 이미자 님에게 주었습니다. 박춘석-이미자 콤비의 주요 히트곡으로는 <섬마을 선생님>, <흑산도 아가씨>, <아네모네>, <낭주골 처녀>, <한번 준 마음인데>, <기러기 아빠>, <황혼의 부르스> 등이 있지요.
<섬마을 선생님>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1967년 인기 여배우 문희 주연의 동명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섬마을 선생님>의 인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막을 내립니다. 검열 당국은 <섬마을 선생님>에 대해 일본 엔카곡을 표절했다는 사유로 금지곡의 낙인을 찍습니다. 그러나 <섬마을 선생님>이 표절했다는 엔카 곡은 <섬마을 선생님>보다 몇달 뒤에 발표됐기 때문에 표절은 사실무근이었습니다. 최근 연구 성과에 의하면 금지 사유는 다른 데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국민들은 정부가 추진 중인 한일협정에 대해 격렬하게 반대했고, 정부는 반일 기치를 내걸어 위기를 모면하고자 합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기 대중가요들에 대해 왜색가요의 낙인을 붙였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이미자 님의 많은 히트곡들이 금지곡으로 지정되어 방송에서 틀거나 공연 무대에서 연주할 수 없게 됩니다. 이미자 님의 3대 히트곡인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도 금지곡으로 지정됐습니다.
그러나 대중들은 회식 자리에서, 야외 놀이 등에서 이미자 님의 금지곡들을 열창했습니다. 대중들이 이미자 님의 금지곡을 한사코 부른 덕분에 <섬마을 선생님>의 명맥이 유지됩니다. <섬마을 선생님>은 1987년 민주화 이후 금지곡에서 풀려났습니다. 이미자 님은 팬들로부터 <섬마을 선생님>을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 부르지 못하는 것이 가슴아팠다고 회고한 바 있지요. 이미자 님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이 곡들이 음반 판매와 방송이 금지되고, 무대에서조차 부르지 못하게 되자 극심한 좌절감에 빠져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회고했지요.
<섬마을 선생님>은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시를 방불케하는 가사
와 아름다운 멜로디 덕분으로 보여집니다. 무엇보다도 이미자 님의 고운 목소리에 힘입은 바 컸다고 보여집니다. 이미자 님의 목소리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인 천상의 목소리라는 칭송을 받은 바 있지요. 1967년 발매 당시의<섬마을 선생님>의 음반을 감상해보면 정말 천상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섬마을 선생님>의 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1. 해당화 피고지는 섬 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열아홉살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2. 구름도 쫓겨 가는 섬마을에
무엇하러 왔는가 총각 선생님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에
시름을 달래보는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떠나지 마오
<섬마을 선생님>은 순박한 섬처녀가 서울에서 전근해온 교사를 연모하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해당화, 철새, 구름, 별, 바다를 등장시켜 시각적 이미지를 극대화시켰지요. 특히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 라는 표현은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섬마을 선생님>의 핵심 메시지는 흠모하는 교사가 서울로 전근가지 않기를 바라는 섬처녀의 절규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 노래들은 서울을 너무 멀어 갈 수 없는 곳으로 묘사합니다. 가요 <가슴아프게>(1966)는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이라고 외쳤고, <흑산도 아가씨>(1967)는 ‘머나먼 그 서울을 그리다가 검게 타버린’이라고 절규합니다.
<섬마을 선생님>에 등장하는 섬이 어느 섬을 의미하는지를 놓고 논란이 있습니다. 현재 많은 섬 지역에서 <섬마을 선생님>의 본 고장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섬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가요를 통해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러나 <섬마을 선생님 님>을 작사하신 이경재 선생님은 끝내 섬마을의 섬이 어느 곳인지를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섬마을 선생님>에 노래에 나오는 섬은 특정한 섬이 아니라 한국의 어느 섬이라도 좋다는 의사 표현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흑산도 아가씨>를 작사한 정두수 선생님도 실제로 흑산도를 답사하고 쓴 것은 아니고, 신문 기사와 흑산도에 대한 인문지리서를 읽고 가사를 쓴 것이라고 회고한 바 있지요. 그러므로 <섬마을 선생님>에 나오는 섬은 실제의 섬을 지칭하기 보다는 서울과 대척점에 있는 지역을 상징한 것이라 보면 좋지 않을까요.
<섬마을 선생님>에는 섬과 서울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섬과 서울은 가장 대척점에 있는 지역의 상징이라 할 수 있지요. 이 무렵 서울은 도시 중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으로서 화려한 이미지의 서구 문화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지방에서도 가장 오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섬은 소박한 이미지의 전통 문화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울과 섬 사이에는 심연이 놓여있어 건너기가 어렵다고 여겨집니다. 이 노래에서 섬처녀가 교사에게 서울에 가지말라고 애원한 것은 이같은 단절을 강하게 의식했기 때문이었겠지요.
한국에는 전통적인 한국의 멋을 계승하는 흐름과 외래적인 서구의 문화를 동경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전통이 강조될수록 그에 대한 반발로 서구에 대한 선망이 강화되기도 하고, 반대로 서구화가 가속화할수록 그에 대한 반발로 한국적인 것의 소중함이 강조되곤 했지요. 이 시기 대중 가요도 <노란 쌰쓰 입은 사나이>는 서구적 취향을 반영하고, <섬마을 선생님>은 한국적 취향을 반영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시기 <섬마을 선생님>에 열광적인 성원을 보낸 사람들은 크게 두 집단으로 보여집니다. 먼저 시골에서 상경한 여성 노동자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노래가 유행한 시기는 1960년대 중후반으로서 한국이 고도경제성장 시대로 접어든 때였지요.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도시로 떠났습니다. 농어촌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서, 자식 교육을 하러 도시로 이동했습니다. 젊은 여성들은 공장 노동자, 부자집 가정부, 버스 차장 등의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떠났지요. 이 시기는 통신수단이 열악하여 고향 집과 연락하기가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고향은 1년에 두 번 명절 때나 갈 수 있을 정도였지요. 여성 노동자들은 여성 엘리트들이 미국의 팝음악을 선호했던 것과는 달리 트로트에 열광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부모님들이 트로트를 선호하여 익숙한 데다가, 알기 쉬운 트로트 가사가 자신들의 심정을 반영한다고 보았기 때문이지요
https://youtu.be/b9X0JXBSwoQ
다음으로 도시에 정착한 남성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섬마을 선생님>은 섬처녀의 순정을 노래합니다. 이 노래에는 해당화 같은 한국적 꽃이 등장합니다. 장미나 백합같은 서구적 꽃들과는 달리 은은하면서도 짙은 순정을 담고 있지요. 섬처녀들에게는 서울 여성들 사이에서 잘 찾아 볼 수 없는 순정이 남아있지요. 도시에 거주하는 남성들은 정착하는 과정에서 숱한 어려움을 겪자 순수했던 고향의 모습, 고향의 친구, 고향의 처녀들이 떠오릅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남성들이 고향이나 섬처녀의 순정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짙어만 갑니다. 이상의 이유들로 인해 <섬마을 선생님>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이라 보여집니다.
<섬마을 선생님>, <동백아가씨>, <흑산도 아가씨> 등의 트로트 곡들은 미국의 팝 음악과 번안 가요에 밀리고 있던 트로트를 부활시켰다고 합니다. 이러한 트로트 곡의 연속적인 히트는 트로트의 전성기를 가져왔고, 그 기세는 1970년대까지 이어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