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신자"
광신자 또는 광신도라는 말은 같은 의미이면서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그리고 이 말이 기독교인들에게 많이 쓰이는이유는, 교인들 가운데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이 말하는 중심 사상이나 가르침의 실천에 열심을 내는 게 아니라, 출석하는 교회 목회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그 목회자가 하라는 대로 행하는 교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기독교의 이단 교파에 광신자가 많은 건,
일반적으로 교인들이 성경을 열심히 읽지 못한다는 것과, 때로는 읽어도 제대로 참뜻을 깨닫지 못한다는 허점을 이용해, 목회자가 교회의 외적인 성장을 위해 성경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이를 실천해야 구원 얻고 복 받는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4월 11일자 중앙일보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1992년 10월에 여화와의증인 예배당인 왕국회관에 불을 질러 15명이 죽고 20여 명이 화상을 입게한 방화범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30년이 넘도록 형이 집행되지 않아, 방화범을 석방해야 한다는 법 해석과 석방의 근거가 희박하다는 법 해석이 상충한다는 기사였다.
우리나라에서 최장기 복역수라고 한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사형제도는 법률상으로는 유지하고 있으나, 1992년 12월 30일 이후로는 사형집행이 없어서, 2007년 12월에 국제앰네스티에서 한국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방화하게 된 동기가 바로 그의 아내가 이단 종교에 깊이 빠져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아내가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왕국회관에 열심히 다니자, 남편이 여호와의증인은 이단이니 성당이나 교회에 같이 다니자고 했더니, 그러면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며 곡기를 끊어 병원에까지 실려 갔었고, 장모에게도 아내를 좀 설득해달라고 부탁해보았지만, 장모도 종교의 자유가 있는데 왜 그런걸 나에게 부탁하느냐며 이혼도 안 된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고부간에 갈등이 빚어져 어머니가 화병으로 돌아가셨고, 참담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건 당일에는 술 취한 상태에서 휘발유 통을 들고 왕국회관으로 가 아내를 내놓으라고 소리쳤으나, 아내가 오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고 격분해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는 것이다. 직장에서는 우수 사원으로 표창도 받고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참았으나 결국 광신자 아내가 성실한 남편을 방화범으로 몰아 사형선고를 받게 한 것이다. 추측컨대 아내가 왕국회관 책임자에게 이 사실을 말했을 것이고, 왕국회관
측에서는 이 핍박을 믿음으로 극복해야 천국에 간다고 설득하지 않았을까?
필자가 40대 중반에 다녔던 부흥사가 담임하는 교회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부흥회 저녁 집회 때 술 취한 한 남편이 교회로 들어와 아무개 나오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화들짝 놀란 아내가 즉시 일어나 나가서 아무 일이 없기는 했지만, 사전에 왜 목회자가 이런 일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지 무척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입니다.(그림이 그려지는 복된 말씀[딤전 5:8]" 교회의 외적 성장에 눈이 어두워진 목회자에게는 이런 말씀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특별히 믿지 않는 남편이나 자녀를 둔 여성 교인에게는, 교회에서 가정의 화평과 전도를 위해 믿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세심히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취소한 남편이나 자녀들로부터 광신자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남편과
자녀들이 아내와 엄마를 광신자라고 불러도, 그건 여러분이 지고 가야 할 십자가이니, 그런 말에 개의치 말고 열심히 봉사하고 집회에 참석하라고 가르치는 목회자가 있다면 그는 분명히 삯꾼 목회자다.
예수님이 말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마 10:38]"는 말의 십자가는 내 뜻을 이루기 위해 내 고집대로 행하다가 난관에 봉착했을 때 그 난관이 자기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라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십자가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하려고 당신의 뜻(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눅 22:42])을 거두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졌듯이, 우리 도 성경적이지 않은 내 뜻을 관철하려고 할 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족을 사랑하며, 가족을 향한 하나님의 선한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며 애쓰는 게 자기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라는 말이다. 따라서 이 말을 위 여성에게 적용하면, 내가 왜 가족들로부터 광신자라는 말을 듣게 되었는지를 숙고해 보며, 가족을 주님의 사랑으로 품는 게 자기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였다는 것이다.
왕국회관에서 진리의 말씀을 왜곡하지 않고 진리 그대로 가르쳤다면 참사를 예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들의 입을 막아야 합니다. 그들이 더러운 이득을 얻으려고 가르쳐서는 안 되는 것을 가르쳐서 가정을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림이 그려지는 복된 말씀[딛 1:11])"
왕국회관에 얽힌 이야기 하나 더. 30대 후반에 등 밀려 속장이 된 이듬해에 성경을 다섯 번 통독한 후 어느 날 오후에 우리 집을 방문한 여호와의 증인 두 사람을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평소에는 출석하는 교회 목회자가 시키는 대로 "교회에 다닙니다"하고 정중히 거절했으나, 성경을 다섯 번 통독했다는 건방기가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평소에 두 사람씩 짝지어 다니면서 주로 교패가 있는 집을 공략하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 하던 터였다.
두 사람이 방에 들어와 앉자 먼저 공세적으로 물었다. 성경 어딘가 어떤 집에 들어가면 먼저 그 집의 평안을 빌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눅 10:5] 그런데 형제님들은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경험이 있어서인지 조금도 망설이고 않고 즉시 대답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형제님이 저희를 들어오라고 했을 때 평안을 비는 기도를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대화를 거의 한 시간 정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그들이 이렇게 물었다. 요한계시록에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144,000명이라고 했는데, 형제님은 144,000명 안에 들 자신이 있습니까? 성령님이 주셨을까?즉시 재치 있는 말이 떠올랐다. "제가 대답하기 전에, 쉬운 질문이니까 제 질문에 답하시면 저도 대답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자고 해서 그들에게 물었다. "우리나라의 왕국회관 교인 수가 144,000명은 넘겠지요?" 순간 당황해 하는 눈빛이 보이더니 "정확한 수는 모르지만 144,000명은 넘겠지요."
즉시 이렇게 응대했다. "그러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왕국회관 교인들끼리도 경쟁해야 하는데, 왜 교패가 있는 집만 찾아다니면서 전도하는 궁금합니다." 그들이 이런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제님에게는 내일 앨더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다음 날 앨더는 오지 않았다.
2023년 5월호
최창섭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