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폭포 처녀제사
속초시 설악동에 위치한 비룡폭포에는 ‘처녀 제사’라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이 폭포는 원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폭포였다. 행정 구역이 바뀌기 전까진 이곳이 양양군 도천면 향성리 또는 도문이라고 불렀다.
오랜 옛날 향성리에는 농사가 잘 되고 기와집이 많은 부자 동네였다. 천불동 계곡물이 다 말라도 이 토왕성 계곡에 있는 향성리 물은 마르지 않아 항상 풍년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해 뜻하지 않게 큰 가뭄이 들었다. 밭에 있던 곡식은 물론 논에 심어 놓은 벼마저 말라죽었다. 그러니 동네 사람들의 근심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날이 가물자 일거리조차 없어졌다. 당시엔 농사가 주된 일이었으니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매일 모여앉아 웅성거리기만 할 뿐 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나서서
“우리 이렇게 손 놓고 마냥 하늘만 쳐다보지 말고 저 위에 있는 계곡에나 한 번 올라가 봅시다. 도대체 그 계곡이 어떻게 됐기에 거기 물이 안 내려 오는지. 지금까진 큰 개울물이 모두 말라도 거기 계곡물은 언제든지 끊어지지 않고 흘러 내려 왔는데, 물이 안 내려오는 이유가 뭔지 어디 한 번 올라가 보자고요.”
하고 제안하였다.
동네 사람들이 계곡 쪽으로 올라가니 물이라곤 구경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한곳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고 그 뒤에서도 웅덩이 마르지 않을 만큼 물이 떨어졌다.
“그래, 아마도 웅덩이에 무슨 괴물이 살고 있을 거야. 괴물이 무슨 조화를 부려 물이 말라버린 거야.”
동네 사람들은 물이 내려오지 않는 게 괴물의 조화라 생각하였다.
그 위로 계속 올라가 보니 개울물은 모두 말라 있는데 비룡폭포라고 하는 그 웅덩이만은 물이 고여 있었다.
사람들이 내려와서 동네에 모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계곡 쪽으로 올라가니 물이라곤 구경을 할 수가 없는데 위와 아래에 있는 웅덩이 두 개엔 물이 마르지 않고 있었어요. 이게 이상하지요? 거기에다 더 신기한 것은 물이 마르지 않게 계속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내려오는 물은 없단 말이에요. 혹시 괴물이 무슨 조화를 부리는 게 아닐까요?”
“괴물이 조화를 부려 비가 오고 안 오고 그러니 어쩔 수 없잖아. 돼지라도 한 마리 잡아 꼭대기 웅덩이에 고사라도 지내봅시다.”
“그렇게라도 비가 많이 오게 해 달라고 빌어보는 수밖에 없잖아.”
“아무렴. 풍년을 맞아야지. 가뭄이 들어 굶어 죽는 것 보다는 그게 훨씬 나을 테니까 우리 그렇게라도 한번 해 봅시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뜻을 모아 300근짜리 돼지 한 마리를 잡아 고사를 지냈다. 정성껏 고사를 지낸 마을 사람들은 상위에 차려진 돼지고기와 음식을 그대로 놔두고 내려왔다.
그런데 고사를 지낸 지 열흘이 지나도 비는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괴물이 결과적으로 그 고사를 받지 않았다며 더 아우성을 쳤다.
그때 어떤 사람이
“가물어서 농사도 안 되는데 에라 모르겠다. 나들이나 가자.”
하고 길을 나서게 되었다.
지금이야 교통이 발달해 어디 든 쉽게 갈 수 있지만, 그때엔 괴나리봇짐에 먹을 것 싸 짊어지고 걸어 다녀야 했다. 그렇게 며칠 걸려 어느 마을에 다다랐다.
그 부락 마을 사람들과 어울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소생은 향성리에 살고 있는데 가뭄이 하도 심해 모두 굶어 죽게 생겼답니다.”
하고 하소연을 하였다.
그러자 그 마을에서 제일 연장자 되는 80대 영감님이 물었다.
“자네 향성리서 왔나?”
“네, 향성리에서 왔습니다.”
“향성리가 어떻다고?”
“향성리에는 지금 가뭄이 들어 흉년을 만나 모두 굶어 죽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해야 될는지 뾰족한 방법이 없군요.”
“그래? 향성리에는 지금부터 35년 전에 우리 친구들이 많이 살았어. 그 친구들이 토왕성폭포 꼭대기에 가면 거 웅덩이에 괴물이 있다고 했었어. 거기다 고사를 지낸다고 했는데.”
“그렇잖아도 저희들이 300근짜리 돼지를 잡아 고사를 지냈지요. 그러나 별 효험이 없었답니다.”
“돼지로 고사를 지내니 그렇지. 처녀 고사를 지내야 해. 처녀 고사를 지내야 괴물이 받아. 딴 고사 지내선 괴물이 절대 안 받을 거야. 그러니까 자네 가서 처녀 고사를 한번 지내보게.”
하고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 사람은 할아버지의 얘기를 듣고
“네. 영감님 정말 고맙습니다.”
하고 이튿날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 왔다.
그리곤 향성리 마을 사람들한테 자기가 들은 이야기를 하였다.
“이 사람아, 처녀가 어디 있어? 처녀가 있어야 고사를 지내지. 거 쓸데없는 소리하지도 말게.”
“아니, 고사를 지내면 비가 온다는데 왜 처녀 고살 안 지내요? 처녀가 없으면 어디 가서 돈을 주고 사와서라도 고사를 지내야지. 집집마다 얼마씩 돈을 내놓으세요. 내가 가서 처녀를 사 올 테니.”
“그럼 그렇게라도 한번 해보세.”
이렇게 동네 사람들이 서로 합의하여 집집마다 돈을 걷으니 굉장히 많은 돈이 모아졌다. 그래서 그 돈을 가지고 처녀를 구하러 집을 나섰다.
어느 두메산골에 이르니 처녀 5형제만 있는 집이 있었다.
“처녀를 하나 파십시오.”
그 시절엔 더러 돈을 가지고 처녀를 사다가 장가들기도 하였다.
그러자 장가들라고 처녀를 팔라하는 줄 알고
“그럼 제 맏딸을 팔겠소.”
하고 흔쾌히 승낙하였다.
그 집 맏딸은 얼굴이 곰보딱지였다. 그러나 목욕을 시켜가지고 얼굴에다 밀가루를 하얗게 단장을 해서 팔았다. 하지만 향성리 사람들은 아무도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덕분에 무사히 처녀 고사를 지냈다. 참 신기하게도 처녀 고사를 지내고 내려오자마자 비가 억수처럼 쏟아졌다. 그래서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있었고 그 해 풍년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해마다 그때가 되면 비가 오지 않았다. 농사를 제대로 지으려면 처녀 고사를 지내야 하는데 매년마다 어디 가서 사올 수도 없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는 격으로 동네에서 여자애를 골라 처녀 고사를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매년 그러다 보니 동네에 여자애가 씨가 말랐다. 이제 처녀 고사를 더 이상 지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니 또 가뭄이 들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고 정말 진퇴양난이었다.
그러자 고민을 하다못해 한 집이 이사를 가기 위해 보따리를 쌌다.
“아니, 자네 지금 뭐하는 건가?”
“에이, 나 이젠 지긋지긋해서 딴 데 가서 살려고 하네.”
“왜?”
“아, 이거 뭐 처녀라는 애들은 해마다 갖다가 고사를 지내야 하니 어디 여자가 남아있어야 말이지. 세상에 여자 없이 이루어지는 게 어디 있나. 여자가 있어야 장가도 들고 아들도 장가보내고 할 텐데 말이야. 여자가 없어서 장가도 못 들고 하는데 농토가 있으면 무슨 쓸모가 있는가? 나는 이런 것들 다 내버리고 다른 곳에 가서 살려고 하네.”
“이 사람아, 자네만 그런 거 아니잖나. 나도 마찬가지야. 아니지. 이 마을 사람들 모두 다 그렇지. 어디 자네만 그런가. 그러니까 우리 마을 사람들 전부 다 가세.”
이렇게 사람들이 모두 딴 데로 살러 가는 바람에 그만 마을이 텅텅 비어 버렸다. 나그네가 지나다 날이 저물어 자고 가려해도 도무지 사람들이 없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에라.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고 하더니 사람이 하나도 없다니. 좋은 기와집과 옥답 전부 내거로 만들어서 농사나 지으며 살아야지.’
마을을 지나던 한 사람이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기로 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농사가 잘 지어졌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다시 하나둘 돌아와 다시 마을이 유지되었다. 농사도 잘 되었다.
그런데 어느 해 또 가뭄이 들어 모두 굶어죽게 생겼다.
“에라. 하는 수 없지 뭐. 또 예전처럼 처녀 고사를 지내야지. 처녀 고사를 지내면 비가 많이 오잖아. 마침 마땅한 처녀가 있으니 그 애를 데려다 처녀 고사를 지내기로 하지.”
하고 마을 사람들의 뜻이 모아졌다.
그래서 아주 예쁜 딸을 데려다 목욕을 시켜 갖고 처녀 고사를 지냈다. 그랬더니 웅덩이(선녀탕)에서 괴물이 나와 처녀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 안이 캄캄해지고 안개가 자욱해졌다. 그리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모두 논에다 물을 받아놓고 마을로 내려와 한 자리에 모여앉아 고사 지낼 때 보았던 괴물 이야기를 하였다.
그 방안에서 제일 연장자인 영감님이 말했다.
“자네, 오늘 뭐 본 게 있는가?”
“예, 아주 이상한 걸 봤습니다.”
“자네 혹시 그걸 그림으로 그려볼 수 있겠나?”
“물론이지요.”
문창호지에다 숯검정으로 낮에 보았던 그림을 조각조각 그렸다. 그걸 모아 자세히 살펴보니 그건 틀림없는 용의 형상이었다.
“이건 틀림없는 용이구먼.”
사실 그 웅덩이에 있었던 괴물은 처녀 아홉을 잡아먹어야 용이 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여덟 명을 잡아먹었다가 이제 마지막으로 아홉 번째 처녀를 끝으로 용이 되어 올라갔다. 용이 되어 폭포의 물줄기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고 하여 날 비자, 용 용자를 써서 ‘비룡폭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