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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3대 정신과 생명력
-송수권의 시론
김 선 태(시인·목포대 교수)
1. 서론-전통서정과 남도의 자연
송수권(1940∼2016)은 1975년 문학사상에 「산문에 기대어」 등이 당선되어 등단한 이래 평생토록 자신이 나고 자란 ‘남도’에 시적 뿌리를 내리고 그 정서와 정신을 한결같이 천착했던 시인이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우리 국토와 민족 전체로까지 시세계를 확대함으로써 물질문명의 위세와 온갖 실험적 경향들이 난무하는 작금의 문학풍토에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우리의 전통서정을 현대적으로 계승․발전시킨 보기 드문 시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김소월→김영랑→백석→서정주→박목월→박재삼으로 이어지는 전통서정시의 백두대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백두대간에서도 어쩌면 마지막 봉우리에 해당한다고 할 만하다. 주지하다시피 송수권이 문단에 나온 1970년대는 산업화로 인해 농촌사회가 붕괴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특히 농촌의 근대화 전략의 일환으로 벌어진 새마을운동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한국전통문화의 단절을 가져왔다. 이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출간된 시집이 서정주의 질마재 신화(1975)라고 할 수 있는데, 송수권의 시적 출발은 이와 맥락을 함께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송수권의 전통서정시는 근대화로 인해 파괴되어가는 우리 문화의 원형과 그 생명성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겠다는 전략적 차원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송수권은 이 시기에 탈서정화의 경향으로 많은 시인들이 도시로 이주해가고, 새로운 시의 형태를 모색하였으며, 독재적 현실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고자 했을 때, 그들이 남기고 간 빈 공간을 우직하게 지키면서 그 안에 깃든 한국적 정서와 정신을 노래함으로써 전통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열고자 하였던 것이다.
우리 시단에서 송수권만큼 시적 아우라가 크고 넓은 시인도 드물 것이다. 오세영은 송수권이 지금껏 추구해온 시세계의 다양성을 평가하면서 크게 1) 자연, 2) 전통으로 2분한바 있다. 그리고 1)을 다시 ① 애니미즘, ② 생활공간, ③ 생태 환경으로, 2)를 ① 민속, ② 민중으로 나누었다. 또한 2)의 항목을 다시 고전, 역사, 민속, 설화, 향토생활, 무속과 불교로 세분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세계의 기저에는 생명존중사상이 깔려 있다고 진단했다. 첫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공감이 가는 분류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다만 전통의 세부 항목으로 최근의 관심사인 ① 통일, ② 풍류, ③ 음식을 추가하고 싶다.
이렇듯 송수권의 시세계는 그 폭이 광범위하다. 이를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한국적 전통과 자연의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좀 더 압축하면 ‘남도’라는 지리적 공간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전술한 바대로, 그는 평생토록 태생지인 남도를 떠나지 않고 시를 써온 토박이 시인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그의 시적 공간이 너무 편협한 것이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이는 지역감정으로까지 연결시켜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남도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절대 신앙에 가깝다. 남도야말로 일개 지역을 넘어서 한국인의 가장 보편적인 정서의 원형이 살아 숨 쉬는 본향이요 황폐한 현대인의 정신을 구원해줄 수 있는 하나의 구원처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스스로 ‘남도의 3대 정신’을 내걸고 시를 써왔다. 그가 ‘국토의 3대 정신’이라고 확대하여 부르기도 하는 그것은 ‘황토의 정신’, ‘대나무의 정신’, ‘뻘의 정신’이다. 남도의 토양과 식생을 대표하는 이들 3가지 상징적 아이콘은 그대로 그의 시 정신(혹은 정서)이자 시론으로 통한다. 앞에서 언급한 모든 시세계의 항목들도 넓게 보면 이 3가지 안에 수렴된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따라서 이 글은 말로만 언급된 이 3대 정신이 송수권의 시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최초의 시도가 될 것이다. 특히 어떠한 생명력을 품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2. 남도의 3대 정신과 생명력
2-1 황토-남도의 토속정신
남도 토양의 아이콘은 ‘황토’이다. 황토는 주로 한반도 서남쪽에 분포하고 있지만, 유독 전라도 그것도 전라남도에 집중되어 있다. 전라남도에서도 붉은 황토가 있는 곳은 바로 송수권의 고향 고흥 쪽이다. 한하운 시인이 숨 막히는 더위 속에 고흥을 거쳐 소록도로 가면서 쓴 시 「전라도길」의 첫 구절이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로 시작되는 것이 이해가 될 정도이다. 송수권은 황토의 땅 고흥에서 나고 자랐다. 황토 위에서 뒹굴며 놀고, 황톳길을 걸어 학교에 다녔으며, 황토밭에서 농사도 거들었을 것이다. 그런 만큼 황토는 그의 의식 속에 지울 수 없는 고향의 색깔로 각인되었을 터이다. 김지하를 비롯한 전라도 출신 시인들의 시에 유독 황토가 많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황토는 농사짓기에 적합하여 남도 사람들이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흙이다. 약효가 있어서 객토를 할 때 반드시 황토를 쓴다. 특히 밭곡식이 잘 자란다. 해남의 고구마, 무안의 양파를 알아주는 것도 이 황토에서 자란 농산물이기 때문이다. 이덕무의 청장관고에 따르면 황토에서 자라 구황식(救荒食)으로 쓰였던 식물만도 150여 가지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 피가 나면 황토를 발라 지혈을 했던 것도, 근래 들어 적조 오염 퇴치에 이용하는 것도 모두 이 흙이 지닌 효능 때문이다. 이렇듯 황토는 농도인 전라도의 농경문화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따라서 모든 생명을 먹여 살리는 건강한 황토야말로 남도의 원초적 토속문화를 배태한 원천이 아닐 수 없다. 송수권이 남도 3대 정신의 맨 앞에 황토를 내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송수권의 초기시는 주로 이 황토의 정신을 바탕으로 창작된다. 이 황토의 정신으로 길어 올린 시들은 근대화 이전의 민속, 설화, 토속적인 삶, 무속과 불교 등과 밀착되어 있다. 그는 어린 시절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져가는 것들의 원형을 전통서정의 언어로 눈물겹게 재현해낸다. 이 재현을 위해 그가 끌어들인 시적 방법론이 느림의 미학인 ‘곡선의 상법’과 역동적인 생기의 미학인 ‘소리의 상법’이다. 이러한 방법론을 통해 그의 시가 구현해내는 황토의 정신은 남도의 토속정신 곧 원초적 생명력이다.
우리의 신(神)은 콩꽃 속에 숨어 있고
듬뿍 떠 놓은 오동나무 잎사귀
들밥 속에 있고
냉수 사발 맑은 물 속에 숨어 있고
형벌처럼 타오르는 황토밭 길 잔등에 있다
바랭이풀 지심을 매는 어머니 호미 끝에
쩌렁쩌렁 울리는 땅
얼마나 감격스럽고 눈물 나는 것이냐
캄캄한 숲 너머
모닥불빛 젖어 내리는 서북항로
아그라, 아그라
내 사는 조그만 마을
왔다메!
문둥아 내 문둥아 니 참말로 왔구마
그 말 듣기 좋아
그 말 너무 서러워
아 가만히 불러 보는 어머니
솥단지 안에 내 밥그릇 국그릇
아직 식지 않고
처마끝 어둠 속에 등불을 고이시는 손
그 손끝에 나의 신(神)은 숨쉬고
허옇게 벗겨진 맨드라미
까치 대가리
장독대 위에 내리는 이슬
정화수 새로 짓고
나의 신(神)은 늙고 태어나고
새 새끼처럼 조잘댄다.
-「아그라 마을에 가서」 부분.
‘아그라’는 타지마할이 있는 인도의 작고 가난한 시골 마을이다. 「시골길 혹은 술통」 등 황토의 정신과 관련된 시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굳이 외국의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 시를 인용한 것은 시인이 잃어버린 고향의 원형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을 뿐만 아니라 황토의 정신 또한 잘 구현되어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에 나오는 ‘아그라’ 마을은 ‘내 사는 조그만 마을’이라는 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화자의 고향마을과 겹친다. 이유는 ‘아그라’ 마을의 낡고 퇴락한 모습과 마을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화자의 옛 고향마을의 그것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에 화자는 마치 잃어버린 고향에 온 듯 ‘아그라’ 마을을 통해서 옛 고향마을을 재현해낸다.
그렇다면 화자가 살았던(지금은 그 원형이 상실된) 남도의 고향마을은 어떤 곳인가. 그곳은 1연에서 보듯, 애니미즘이나 범신론적으로 말하면 만물에 ‘신(神)’이 깃들어 있어서 원초적 생명력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즉 신이 콩밭의 ‘꽁꽃 속에 숨어 있고’, 콩밭 메다가 먹는 ‘오동나무 잎사귀/들밥 속에 있고’, 밥 먹은 다음 목을 축이는 ‘냉수 사발 맑은 물속에 숨어 있고’, 땡볕에 ‘형벌처럼 타오르는 황토밭 길 잔등에’ 있다. 또한 3연에서도 보듯, ‘솥단지 안에 내 밥그릇 국그릇/아직 식지 않고/처마끝 어둠 속에 등불을 고이시는’ 어머니의 ‘손끝’에 있고, ‘허옇게 벗겨진 맨드라미’, ‘까치 대가리’, ‘장독대 위에 내리는 이슬’, ‘정화수’에도 있다. 이는 자연과 인간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소통하며 살아가는 곳, 가난하지만 함께 나누는 인간적인 사랑이 있는 곳, ‘왔다메!/문둥아 내 문둥아 니 참말로 왔구마’처럼 토속적인 사투리로 반겨주는 곳, ‘바랭이풀 지심을 매는 어머니 호미 끝에/쩌렁쩌렁 울리는 땅’처럼 힘들고 가난하지만 생명력이 넘쳐 ‘감격스럽고 눈물 나는’ 그런 곳이다. 곧 근대화 이전 우리들이 살았던 행복한 고향이요 황토의 정신이 살아 꿈틀대던 유토피아로서의 남도 그 자체이다. 그러나 그러한 고향은 이미 사라지고 없거나 그 원형이 심하게 훼손되어버렸다. 따라서 이 시는 ‘아그라’ 마을을 통해서 우리가 되찾아야 할 본향을 아프게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2-2 대나무-남도의 풍류·저항정신
‘대나무’는 동백나무와 함께 남도를 대표하는 식생의 하나이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지만, 허균이 도문대작에서 “죽순은 노령 이남”이라고 했듯이 죽림 조성으로 경제성이 있는 지역은 경상북도 포항과 대구, 경상남도 거창과 함양, 전라북도 전주와 김제를 연결하는 선의 이남지역이며, 이 중에서도 특히 경상남도와 전라남도가 적합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남도에는 대밭 없는 마을이 없을 정도로 생활환경과 밀착된 나무로서 농가 소득원에도 일조하고 있다. 흔히 대나무는 매화·난초·국화와 함께 사군자(四君子)로 일컬어져 왔다. 윤선도의 「오우가」에서 보듯이 사철 푸르고 곧게 자라는 성질로 인하여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고대사회부터 전쟁무기였던 활·화살·창이나 퉁소·피리·대금 등의 악기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송수권의 시에 구현된 대나무의 정신이라 함은 지조와 절개보다 남도민의 풍류의식이나 역사의식을 상징하는 정신을 말한다. 그가 직접 설명한 바에 따르면 “수 틀리면 죽창을 깎아 외적을 막아내고, 태평한 세월엔 대금, 중금, 소금 피리소리로 뜨는 가락의 정신”(난세엔 죽창, 호시절엔 피리)이다. 이러한 대나무의 정신은 인심이 후하고 풍류를 좋아하되, 불의를 보면 못 참는 남도민의 기질과 그대로 연결된다. 판소리와 민요·무가·산다이로 대표되는 남도의 풍류가락과 동학농민혁명과 5·18광주민중항쟁으로 대표되는 남도의 저항운동이 그 좋은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70년대에 등단하면서 전통서정으로 출발했던 송수권은 80년대 광주민중항쟁의 본거지인 광주에 살면서 시대의 소명인 역사의식과 현실참여의 문제를 비껴갈 수 없었다. 당시 문학적 실천의 문제로 고민을 거듭하면서 펴낸 시집이 아도(창작과비평사, 1985)와 서사시집 새야 새야 파랑새야(나남, 1986)이다. 이러한 역사의식이 투영된 시집 발간은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데, 민족사의 비극인 여순반란사건과 지리산 빨치산 이야기를 담은 장편서사시집 달궁 아리랑(종려나무,2010)과 후속시집 빨치산(고요아침, 2012) 그리고 제주 4·3항쟁을 다룬 서사시집 흑룡만리(지혜, 2015)이다. 모두가 대나무의 정신을 끌어들인 시집들이다. 시 속에 역사의식, 민중의식을 끌어들인 바로 이 점이 그가 다른 전통서정시인들과 구별되는 점이다.
한편, 그는 김소월이나 김영랑 등 선배 전통서정시인들이 우리의 전통정서인 ‘한(恨)’을 나약하고 여성적으로만 노래해온 것이 식상하고 못마땅해서 이를 뒤집어 역동적이고 남성적인 한으로 바꾼 시인이다. 다시 말해 소극적이고 퇴영적인 한을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한으로 극복해낸 의지의 표현이 그의 시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우리의 한은 눈물이나 찔끔거리는 데서 벗어나 쩌렁쩌렁 울리는 한으로 업그레이드된다. 한이 한없이 억눌리거나 삭임으로 끝나지 않고 분노와 저항으로 일어서는 민중적인 한이 된다. 이러한 민중적인 한의 표출이 ‘죽창’으로 표상되는 남도의 대나무의 정신이다.
①
눈뭉치들이 힘겹게 우듬지를 흘러내리는
대숲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삼베 옷 검은 두건을 들친 백제 젊은 修士들이 지나고
풋풋한 망아지 떼 울음들이 찍혀 있다
연사흘 밤낮 내리는 흰 눈발 속에서
대숲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밤중 암수 무당들이 댓가지를 흔드는 붉은 쾌자자락들이 보이고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넘는
미친 불개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눈 내리는 대숲 가에서」 부분.
②
봉당 밑에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고여 흐르는 게 아니라요
대패랭이 끝에 까부는 오백 년 한숨, 삿갓머리에 후득이는
밤 쏘낙 빗물소리……
머리에 흰 수건 쓰고 죽창을 깎던, 간 큰 아이들, 황토현을 넘어가던
징소리 꽹과리 소리들……
남도의 마을마다 질펀히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흰 연기 자욱한 모닥불 끄으름내, 몽당빗자루도 개터럭도 보리숭년도 땡볕도
얼개빗도 쇠그릇도 문둥이 장타령도
타는 내음……
-「대숲 바람소리」 부분.
①은 대숲에 남도의 역사의식을 투영한 시다. 시인은 눈 쌓인 대숲을 ‘가만히’ 관조의 자세로 바라본다. 관조의 자세로 바라본다는 것은 상상의 힘으로 사물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보이지 않는 풍경이 보이고 들리지 않는 소리가 들린다. ‘눈뭉치들이 힘겹게 우듬지를 흘러내리는’ 모습과 소리를 통해 ‘삼베 옷 검은 두건을 들친 백제 젊은 修士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풋풋한 망아지 떼 울음들’을 듣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패망한 백제의 역사와 당대 민중들의 숨결, 건강한 자연의 생명력을 읽는다. 또한 한밤중에 ‘암수 무당들이 댓가지를 흔드는 붉은 쾌자자락들’을 보고,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넘는/미친 불개들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이는 시인이 어린 시절 경험했던 남도의 샤머니즘적인 풍경이 오버랩된 것으로서 신산한 삶과 고난의 역사를 극복하려는 민중들의 몸부림으로 읽힌다. 이러한 표현들은 시공을 초월한 역사적 안목과 경험적 인식이 있기에 가능했을 터이다.
② 또한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를 통해 남도의 역사의식과 민중의 생활상을 형상화한 시다. 시인의 귀는 소리만 듣는 게 아니라 풍경을 보고 냄새까지 맡는다. 청각의 시각화요, 청각의 후각화가 동시에 있다. 이른바 공감각이다. 먼저 시골집 ‘봉당 밑에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서 ‘대패랭이 끝에 까부는 오백 년 한숨, 삿갓머리에 후득이는/밤 쏘낙 빗물소리……’, ‘머리에 흰 수건 쓰고 죽창을 깎던, 간 큰 아이들, 황토현을 넘어가던/징소리 꽹과리 소리들……’을 듣는다. 이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 조선 500년 민중의 희로애락의 소리와 역사가 스며 있다는 뜻이다. 특히 2연에는 동학농민전쟁의 함성소리가 스며 있다. 여기에서 대나무는 흥을 돋우는 피리 등 악기가 아니라 농민들의 싸움의 도구인 ‘죽창’이 되고, ‘징소리, 꽹가리 소리’ 또한 그냥 농악놀이의 도구가 아니라 싸움을 북돋우는 무기가 된다. 이른바 대나무의 정신으로서 역사의식의 발현이다. 다음으로, ‘남도의 마을마다 질펀히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온갖 생활의 냄새가 배어 있다. ‘모닥불 끄으름내, 몽당빗자루도 개터럭도 보리숭년도 땡볕도/얼개빗도 쇠그릇도 문둥이 장타령도/타는 내음……’이 그것이다. 남도 민중들의 생생생한 삶의 실체와 토속적인 정감이 드러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용에서 빠진 이 시의 하반부를 보면 대숲 바람소리 속에서 청청한 선비정신까지를 읽고 있음을 본다. “아 창호지 문발 틈으로 스미는 남도의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눈 그쳐 뜨는 새벽별의 푸른 숨소리, 청청한 청청한/대닢파리의 맑은 숨소리”가 그것으로서 “우리들의 맑디맑은 사랑”을 생생한 감각으로 보여주고 있다.
2-3 뻘-남도의 질펀한 생명정신
‘뻘’은 남도의 바다생명들을 먹여 살리는 개흙이다. ‘뻘’은 ‘펄’의 전라도 방언이다. 펄이 펼쳐진 바다 벌을 ‘갯벌’이라고 한다. 갯벌은 리아스식 해안인 우리나라 서남해안에 두루 분포하지만, 특히 전라도의 그것은 유명하다. 순천만 갯벌, 보성벌교 갯벌, 무안 갯벌 등을 람사르 협약의 습지로 등록하여 보호할 정도이다. 전라도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뻘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전라도 사람들을 낮춰 부를 때 ‘개땅쇠’ 혹은 ‘뻘놈’이라고 한다. ‘개땅’이 뻘이고, ‘쇠’는 ‘놈’으로 대신할 수 있는 비칭 접미사이니, 이를 달리 부르면 ‘뻘놈’이 맞다. 그러나 뻘이 어떤 흙인가를 알고 나면 이 호칭은 결코 욕이 아니다. 갯벌은 해양생태 먹이사슬의 근원(출발점)이다. 게, 바지락, 망둥어, 갯지렁이, 짱뚱어, 낙지 등 무려 260여 종의 바다생명들이 서식하고 있다. 따라서 뻘이 오염되면 바다의 생태계는 파괴된다. 게다가 바다오염 정화기능, 태풍이나 홍수의 조절기능가지 갖추고 있다. 그래서 갯벌을 ‘자연의 콩팥’이라고도 부른다.
송수권이 1995년 30년의 교직생활을 명퇴하고 전라북도의 변산 바닷가로 가서 살았던 것은 바로 이 뻘의 정신을 천착하기 위해서였다. 변산의 지근거리에 한국의 3대 못자리로 불리는 김제의 ‘벽골제’, 고부의 ‘눌제’, 익산의 ‘황등제’가 있고, 새만금의 갯벌, 곰소만의 갯벌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개땅쇠’라 함은 위의 3대 못자리를 개척한 자랑스러운 사람들을 일컫는다. 변산에서 뻘의 정신으로 펴낸 시집이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노을(시와시학사, 1998)과 산문집 남도의 맛과 멋(창공사, 1996), 쪽빛세상(토우, 1998)이다. 온갖 갯것들의 보고인 뻘을 통해 남도의 참다운 맛과 멋을 발견한 시기도 이때다.
이 질퍽한 뻘내음 누가 아나요
아카시아 맑은 향이 아니라 밤꽃 흐드러진
페로몬 냄새 그보다는 뭉클한
이 질퍽한 뻘내음 누가 아나요
아카시아 맑은 향이야
열 몇 살 가슴 두근거리던 때 이야기지만
들찔레 소복이 피어지던 그 언덕에서
나는 비로소 살냄새를 피우기 시작했어요
여자도 낙지발처럼 앵기는 여자가 좋고
그대가 어쩌고 쿡쿡 찌르는 여자가 좋고
하여튼 뻘물이 튀지 않는 꽹과리 장고 소리보단
땅을 메다 치는 징 소리가 좋아요
하늘로는 가지 마……
하늘로는 가지 마……
캄캄하게 저물면 뒤늦게 오는 땅 울음
그 징 소리가 좋아요
저물다가 저물다가 하늘로는 못 가고
저승까진 죽어 갔다가
밤길에 쏘내기 맞고 찾아드는 계집처럼
새벽을 알리며 뒤늦게 오는 소리가 좋아요
-「뻘물」 전문.
위 시는 뻘의 원초적 생명력을 노래한 것이다. 리비도적 상상력을 통해 뻘의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1·2연의 주도어는 ‘뻘내음’이다. 시인은 뻘밭에서 나는 냄새를 ‘밤꽃 흐드러진/페로몬 냄새 그보다는 뭉클’하다고 말하고 있다. 흔히 남자의 정액 냄새를 밤꽃 냄새에 비유하지만, 뻘 냄새는 그보다 더 진한 페로몬 냄새를 풍긴다는 것이다. 페로몬은 동물들이 성적 자극을 위해 내보내는 물질인 바, 이 물질이 뻘밭에 진동한다는 것은 뻘밭이 조개류, 게류, 갯지렁이류 등 온갖 생명들이 교미하고, 새끼를 낳고, 먹여 기르는 질퍽한 자궁 혹은 생명의 성소라는 뜻이다. 갯벌 속에 어패류들이 들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뻘내음은 사춘기 첫사랑을 앓던 때의 ‘아카시아 맑은 향’도 아니고, 수수한 ‘들찔레 소복이 피어지던 그 언덕에서’ 비로소 피우던 ‘살냄새’도 아니다. 그보다는 훨씬 질퍽하고 뭉클하며 진한 냄새가 ‘뻘내음’이다. 그래서 여자라도 ‘낙지발처럼 앵기는 여자가 좋고/그대가 어쩌고 쿡쿡 찌르는 여자가 좋’다고 말한다. 여자로 말하면 뻘밭은 낙지처럼 착착 감길 뿐 아니라, 밟으면 푹푹 빠져드는 흙이기 때문이다.
3·4·5연의 주도어는 ‘뻘물’, 그것도 뻘물이 튀는 소리다. 뻘물이 튀는 소리의 속성을 ‘징소리’의 그것과 연결시키고 있다. 우리 전통악기 중에 징은 그 소리의 결이 매우 낮고 유장해서 여운이 긴 게 특징이다. 그것은 뻘물이 튈 때의 질퍽하고 끈끈한 느낌을 갖고 있다. 그래서 ‘땅을 메다 치는 소리’이고, ‘캄캄하게 저물면 뒤늦게 오는 땅 울음’과 같은 것이며, 하늘로 올라가는 소리가 아니라 땅으로 무겁고 낮게 깔리는 소리이다. ‘하늘로는 못 가고/저승까진 죽어 갔다가’ 다시 되돌아와 ‘새벽을 알리며 뒤늦게 오는 소리’이다. 달리 말하면 범종소리와 유사하다. 이 징소리에 비해 ‘꽹가리’나 ‘장고’의 소리는 전혀 다르다. 교회의 종소리도 마찬가지다. 이것들의 소리는 토막을 치는 듯 짧고 가볍다. 그래서 공중으로 찌를 듯 경망스럽게 퍼져 나간다. 기다란 여운이 있을 리 없다. 그러니까 이 징소리와 같은 뻘물 튀는 소리는 세상의 중생을 다 감싸 듯 온갖 바다생명들을 품는 넉넉한 소리이다. 이것이 송수권이 말하는 뻘의 정신이요 사상이다. 이 정신은 그대로 남도인의 기질로 연결된다고 하겠다.
3. 결론-전통서정시의 가치와 전망
지금까지 살핀 바대로, 송수권은 남도의 3대 정신을 시의 중심축으로 삼고 전통서정과 향토적 시세계를 펼쳐왔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언제나 생명의식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그가 시적 화두로 내걸고 있는 ‘전통’과 ‘지역(남도)’ 그리고 시적 방법론인 ‘곡선의 상법’·‘원환의 상법’·‘소리의 상법’은 속도의 시대인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퇴락한 가치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면 바로 그러한 시대이기 때문에 곡선의 부드러움과 여유로움이 직선화된 현대인의 거친 가슴을 치유해줄 수 있으며, 파편화된 개인주의를 공동체주의로 둥글게 되돌릴 수 있는 구원의 방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정신은 그저 낡고 쓸모없는 정신이 아니라 온고지신의 정신이며, 지역정신은 현대문명의 한복판인 비정한 도시정신이 아니라 따뜻한 온정과 독특한 변별력이 살아 있는 향토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송수권의 시는 부활과 재생의 상상력으로 노래한 등단작 「산문에 기대어」에서부터 민중의 역동적 상상력이 돋보인 최근의 흑룡만리에 이르기까지 과거가 과거로만 끝나는 낡고 무가치한 시간이 아니라 혼돈과 죽임의 문화가 판치는 현재의 시간을 성찰하고 구원할 수 있는 살림의 시간임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송수권 시가 지닌 진정한 가치이다.
그러나 근자에 우리시단은 이러한 전통서정을 노래한 시들을 흘러간 옛 노래쯤으로나 여기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지나치게 새로움만을 강조하는 실험시나 난해시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탓이다. 물론 새로움은 시가 가진 중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채워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문학의 꿈이 자유인 것을 인정한다면, 저마다 다양한 가치와 진정성을 지닌 시들이 공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오늘날 송수권의 시와 같은 전통서정시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아무리 퓨전시대라지만 한국인은 김치가 있어야 밥을 먹는 것처럼, 아무리 신세대라 할지라도 여전히 자연산을 선호하고 전통한정식 상차림 앞에서 입이 떡 벌어지는 것처럼 우리 것의 소중함은 시대를 초월하여 여전히 살아 있다. 우리 것만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낡은 소재를 낡은 방식으로 노래해서는 안 되지만, 낡은 소재라 할지라도 오늘의 현실에 맞게 변형을 꾀하며 계승·발전시켜나가는 일은 시대를 초월하여 지속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곧 새로운 전통의 창조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송수권 이후 한국의 전통서정시는 그 맥이 끊길 위기에 처해 있다. 모두들 앞만 보고 달려갈 뿐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더욱이 근자에 송수권이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 외로운 자리를 지키고 계승해나가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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