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仙巖寺)의 매화(梅花)
어느덧 또 한 해가 지나 입춘이 지나면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 매화꽃이다. 아마도 머나먼 남쪽에서부터 꾸물거리며 기지개를 펴고 이동을 시작하면 이 땅에도 곧 봄소식이 도처에 만연할 것이다. 뭐니 해도 봄의 전령은 매화의 향기이다. 이 향기를 따라 각양각색의 꽃이 만발하면서 생기발랄한 기운을 실어 나르게 된다.
해마다 이 철이 되면 꽃길을 따라 길을 나선다. 거의 같은 길을 나서지만 그 느낌과 보이는 풍광은 그 때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올 해도 어김없이 길을 떠나려고 이미 계획은 세워 놓았다. 특히, 원림(園林)과 정자(亭子)를 둘러보며 부근의 명품 매화를 찾을 심산이다. 다음 글은 이미 작년에 써 둔 글인데 다시 읽어보면서 금년도 여정에 참고하기 위해 돌이켜 본 글이다.
섬진강을 따라 남도 꽃길을 가면서 먼저 「선암사(仙巖寺)」가 생각났다. 전국의 사찰 중 가장 특이할 것으로 보이는 「해우소(解憂所, 뒷간)」가 있다. 간판을 우횡서(오른쪽에서 왼쪽을 읽어가는 방식)로 써서 'ㅅ간뒤'로 쓰여져 있다. 재래식 화장실인데 겉모습은 부잣집처럼 여유로워 보이고, 내부 역시 튼튼하게 지어 오랜 세월을 잘 견디어 왔다. 뒷간으로 이름 붙은, 지은 지 400년 된 「해우소」로 문화재(문화재자료 제214호)로 지정돼 있다. 「유홍준」 교수가 세계에서 가장 운치 있는 화장실이라고 극찬했었다. 그런데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나 관광객이 이용을 꺼렸는지 근처에 현대식 화장실을 새로 만들었다. 이곳에 들어가면 「정호승」 시인의 「선암사」란 시가 오른편에 걸려 있는데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절로 멈추게 한다.
선암사(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선암사」는 조계산(曹溪山) 동쪽 기슭에 있는 사찰로 현재 한국불교 태고종(太古宗)의 본산이며, 유일한 수행 총림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불교를 소재로 한 영화, 드라마에서 촬영지로 등장하기도 했다. 얼마 전에 타계한 「강수연」이 출연한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와 「안성기」가 출연한 『만다라』의 촬영지가 「선암사」이다. 또한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 많은 등장인물이 활동하던 공간이기도 하다. 「선암사」는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꼽은 사찰이기도 하다. 일주문과 석탑, 대웅전을 비롯한 보물이 많고, 전각도 하나같이 장식이 화려하지 않으면서 오래된 풍경화처럼 은은하고 자연스럽게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면서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나무도 격(格)이 다른, 문화재급 나무가 많은 사찰이 「선암사」다. 무량수각「(無量壽閣), 옛 이름은 천불전(千佛殿)」 앞에 드러누워 있는 ‘와송(瓦松)’은 500살이나 먹었다. 은은한 솔향기 여전히 짙고 깊으며 오랜 사찰의 풍취를 느끼게 한다. ‘수양버들’처럼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처진 ‘올벚나무’도 눈길을 끈다. 장경각(藏經閣) 앞의 ‘측백나무’와 ‘석류나무’, 삼성각(三聖閣) 앞 ‘동백나무’에서도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고목마다 숨겨진 사연이 가득하고 말없이 질곡의 역사를 지켜온 파수꾼처럼 묵언으로 핏빛 울음을 토하는 가느다란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선암사」의 입구에 들어와 부도군(浮屠群)을 지나 경내에 이르면 시냇물을 건너야 하는데 그 건널목에 놓인 다리가 ‘승선교(昇仙橋)’이다. 주변 환경과 어우러진 아담한 규모의 무지개 모양의 다리는 「선암사」의 상징과도 같다. ‘강선루’(降仙樓)는 「선암사」에 오르는 이들에게 출입용 문루의 역할을 하는 팔작지붕의 중층누각이다. ‘승선교’와 쌍으로 이루는 풍광은 「선암사」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절경이다. 선녀들이 강선루를 통해 내려와 계곡에서 목욕하고, ‘승선교’에서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승선교는 벌교에 있는 ‘홍교(虹橋)’와 더불어 속칭 무지개다리로 불린다. 아름다운 다리에 어울리지 않게 해방 이후 이념의 충돌로 극한대치를 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양민이 비참하게 학살된 현장을 묵묵히 목격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매화의 보물창고'인 「선암사」 경내에는 최소 수령 350년이 넘는 약 50여 그루의 ‘고매(古梅)’들이 전각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중에서 원통전(圓通殿) 담장 뒤편의 ‘백매화’와 무우전(無憂殿) 돌담길의 ‘홍매화’가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되었다. 이 외에도 많은 ‘고매화(古梅花)들이 살고 있다. 대웅전 뒤편 계단에 자리한 수령 450년의 ‘매화’와 첨성각(瞻星覺) 앞의 ‘홍매화’는 수령 400년이 넘었으나 아직도 건강한 매실을 생산해 내고 있고, 그 외에도 수령 300년 내외의 매화들이 곳곳에 있다.
무우전(無憂殿)은 「선암사」 북쪽으로 대웅전의 북동쪽에 있는 요사채이다. ‘ㄷ’자형으로 전면이 둘러싸여 있는 무우전의 뒷마당에는 철불(鐵佛)이 봉안되어있는 각황전(覺皇殿)이 있다. 「선암사」에서 제일 외진 곳에 있어서 선방으로 적격인데 지금은 선방 겸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으며 태고종(太古宗) 종정이 머무는 장소다. 그동안 굳게 닫혀 있었던 무우전지역이 2020년부터 처음으로 일반에 개방되었다. 특히 무우전 돌담길의 20여 그루의 고매화(古梅花) 군락은 우리나라 토종매화의 정수(精髓)를 보여준다.
개량종의 수명이 수십 년인 데 비하여 토종매화는 수명이 수백 년에 이르고, 고목의 구부러진 등걸마다 몇백 년의 세월을 이고 있다. 우리나라 토종매화의 특징으로 꽃잎은 일반 매화에 비해 작고 꽃도 듬성듬성 피지만 그 기품과 향은 감히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한다. 죽은 듯이 메마른 등걸에서 한 송이 꽃을 피우는 그 고아한 멋과 끝을 알 수 없는 그 깊은 향기는 이 세상 모든 꽃 중에서 단연 으뜸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매화가 피는 시절에 그 매화의 꽃길에 들어서면 일상의 번민에서 벗어나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선계(仙界)를 거닌 듯한 봄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마치 몽유도원(夢遊桃園) 같은 공간이 '무우전 매화길'이다. 누구라도 이 시기에 이 길을 꼭 가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상기한 「선암사」의 무우전매(無憂殿梅)를 포함한 한국 4대 매화로 지정된 천연기념물은 다음과 같다.
강릉 오죽헌 율곡매(천연기념물 제484호)
홍매(紅梅)의 일종으로 연분홍색 꽃이 피며, 다른 매화나무에 비하여 훨씬 굵은 알의 매실이 달리는 점이 특이하다. 오죽헌이 들어설 당시인 1400년경에 이 매화나무도 같이 심었는데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과 율곡(栗谷)이 직접 가꾸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므로 이이(李珥, 1536∼1584)의 호인 율곡을 따서 율곡매(栗谷梅)라고 불렀다. 신사임당은 고매도, 묵매도 등 여러 매화 그림을 그렸고, 맏딸의 이름도 매창(梅窓)으로 지을 만큼 매화를 사랑하였다. 하지만 거의 고사 직전이라는 소식을 들었는데 아직껏 실물을 직접 보지 못해 구경 차 벼르는 중이다.
구례 화엄사 매화(천연기념물 제485호)
구례 「화엄사」에 들면 먼저 ‘각황전(覺皇殿) 홍매’와 만난다. 조선 숙종 때 각황전을 중건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심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 고매 중 가장 색이 검붉어 ‘흑매’(黑梅)라고도 불린다. 수령은 300~400년으로 추정된다. 검붉은 매화와 어우러진 산사 풍경이 그만이다. 푸른 이끼 낀 늙은 나무줄기 위로 작고 붉은 꽃잎들이 매달린다. 모두 이 나무가 홍매의 최고봉으로 간주하며 꽃이 피는 동안에 관상객(觀賞客)이 구름처럼 모인다.
그런데 「화엄사」에는 이보다 더 귀한 늙은 매화 한 그루가 자란다. 이른바 ‘화엄매(華嚴梅)’로 길상암(吉祥庵) 앞 대숲에서 고고하게 자리하고 있는 나무다. 수령 450년 정도로 추정되는 백매(白梅)로 ‘야매’(野梅)란 별명에 걸맞게 거칠고 강인한 수형이 일품이다. 화엄매를 만나려면 발품을 팔아야 한다. 대웅전 뒤편의 대숲 길을 10분 남짓 걸어 오르면 구층암이다. 모과나무로 기둥을 세운 건물이 인상적이다. 길상암은 구층암에서 대숲 너머 계곡 길을 50m쯤 내려가면 나온다. 화엄매는 길상암 오르는 급경사지의 대숲 가운데에 뿌리를 박고 서 있다. 이리저리 굽고 휜 모습에서 야수와 같은 생명력이 느껴진다. 이 나무는 1650년쯤 사람이나 동물이 매실의 과육을 먹고 버린 씨앗에서 싹이 텄다고 한다. 안내판은 꽃과 열매가 일반 매화보다 작지만, 꽃향기는 오히려 더 강한 것이 특징이라 적고 있다.
장성 백양사 고불매(천연기념물 제486호)
홑겹 홍매인데 향기가 백양계곡을 덮을 정도로 좋다고 알려졌다. 쌍계루와 단풍으로 이름난 장성 백양사엔 ‘고불매(古佛梅)’가 있다. 우화루(雨花樓) 기와지붕 위로 가지를 걸치고 피어나는 360년 묵은 홍매화가 고혹적이다. 이 나무는 전남대 「대명매」, 담양 지실마을 「계당매」, 「선암매」, 「화엄매 」등과 더불어 호남 5매로도 통한다. 단 한 그루에 불과하나 꽃 색깔이 아름답고 향기가 은은하여 산사의 깊은 정취를 우아하게 만들고 있다. 고불매는 색이 곱고 은은한 향기로도 유명하다.
이들 외에 산청 지역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를 능가하는 ‘산청 3매’(山淸三梅)라 불리는 명품들이 있다. 우선 남명매(南冥梅)는 조선 중기의 학자 조식(曹植)이 후학을 가르치던 산천재(山天齋)에 있다. 단속사 절터에는 고려말 강회백(姜淮伯), 강회중(姜淮仲) 형제가 심은 ‘정당매’(政堂梅)가 있다. 중산리에서 지리산 천왕봉에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남사마을」의 하씨(河氏) 고택 뜰에 원정매(元正梅)는 700여 년 남짓의 세월을 지키고 있다.
이 외에도 담양 일대는 소쇄원(瀟灑園) 등 정자(亭子)와 원림(園林)이 즐비하여 매정(梅庭·정원의 매화)의 진수를 엿볼 수 있다고 한다. 명옥헌(鳴玉軒) 원림의 ‘명옥헌매’와 죽림재(竹林齋)에 있는 ‘죽림매’, 독수정(獨守亭) 주변의 ‘독수매’와 지곡리 지실(芝室)마을의 ‘계당매(溪堂梅)’, 장산리 미암종가 마당의 ‘미암매(眉巖梅)’, 장화리 홍주 송씨 종택인 하심당(下心堂)의 ‘하심매’ 등이 유명하다. 아직은 미완의 숙제로 남겨두어 언젠가 탐방할 생각이다.
「선암사」의 속살을 말하다 보니 해우소를 거쳐 결국에는 매화로 이어졌다. 세계 어디를 가 봐도 화장실 문화는 우리나라가 제일의 선진국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끄럽던 환경이 얼마나 깨끗하고 아늑하며 누구에게나 개방된 휴식의 공간이 되고 있지 않았는가? 인도 여행 중 목격했던 철로 변의 자연 화장실이나 반드시 돈을 받는 유럽에 비하면 과연 천국인 셈이다.
매화는 선비의 꼬장꼬장한 기품을 상징하는 나무다. 그나마 주로 오랜 사찰에서 명맥을 이어 오면서 끈질긴 생존을 하고 있다. 물론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역대 선비의 집안에도 잘 보존되어 있다. 하지만 과문(寡聞)한 탓인지 잘 모르나 역대로 인물을 배출한 「양동마을」이나 「하회 마을」 등에서는 오랜 매화나무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더구나 선비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서원의 뜰에도 은행나무와 소나무, 왕버들 나무와 배롱나무 등의 고목은 있으나 오래된 매화나무를 보지 못했으니 자못 의아한 생각이 든다. 언젠가 들렸던 「안동서원」에도 오래된 매화는 보이지 않았다. 한편으로 그만큼 대를 이어 가꾸기가 어려운 면이 있다는 증표이기도 하고, 굳이 걸출한 인물의 성장과는 크게 비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년에는 「백양사」의 ‘고불매(古佛梅)’와 조식(曹植)이 지은 「산천재」 앞에 있는 ‘남명매(南冥梅)’를 찾아보았다. 지난 이른 봄에는 개화 시기에 맞춰 「화엄사」의 ‘야매(野梅)’와 ‘홍매’, 「선암사」의 ‘무우전매((無憂殿梅)’를 감상하였다. 그야말로 황홀한 모습에 찬탄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이후에도 어찌 되었거나 새로운 매화나무의 명소를 찾아 탐방길에 나서고 싶다. 부가적으로 오가는 길에 아름다운 사찰과 서원을 돌아보는 즐거움도 마냥 가슴 설레는 일이다. 「선암사」와 「부석사」 그리고 「미황사」나 「대흥사」와 「백양사」보다 더 아름답고 한국적인 사찰을 찾아 나서고 싶다. 아울러 주변의 지인들에게도 「선암사」의 매화를 비롯한 명품 매화의 구경을 권하고 싶다.
우선 내년도에는 섬진강 변 산수유와 매화마을 축제 길에 ‘산청 3매’(山淸三梅)를 찾아 구경하려고 한다. 아마도 개화시기에 맞추려면 적어도 2년은 족히 소요될 것이다. 동시에 도처에 산재한 정자와 원림에 있는 매화까지 포함한다면 4~5년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이런 소소한 희망이나마 안고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벅찬 감동을 주는 일인가 싶어 스스로 자족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2022.6. 8.작성/2023. 2. 6.재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