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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손열음(왼쪽)ⓒ 빈체로 제공 ·김선욱 |
손열음의 한예종 후배인 김선욱은 2006년 영국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8세의 나이로 우승해 40년 만의 최연소 우승이자 아시아 최초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김선욱은 2008년 영국의 세계적인 음악 매니지먼트사인 아스코나스 홀트와 계약을 맺고 체계적인 관리를 받으면서 영국으로 본거지를 옮겼다. 영국 왕립음악원 지휘과에서 음악을 공부하면서 유럽과 한국 무대를 오가고 있다.
2011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한 조성진은 지난해 프랑스 유학을 택했다. 이로써 국내에서 교육받아 국제 콩쿠르에서 인정받은 샛별이 모두 유럽에 포진했다. 이들이 본격적인 전문 연주자의 길을 택하면서 유럽으로 간 이유는 그곳이 클래식 음악계의 본고장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인정받으면 세계에서 인정받는다. 또 매니지먼트사나 음반사가 모두 유럽에 몰려 있어 연주 기회나 연주 동선을 짤 때 유리하다.
이들은 가깝게 지낸다. 덩치가 큰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김선욱은 선배 손열음에게 콩쿠르 이후의 진로를 조언한다. 셋 중 먼저 결혼한 그는 런던에 좋은 공연이 있으면 조성진을 초대해 집에서 머무르게 하기도 한다. 손열음도 조성진을 친구처럼 대하면서 아직 국제 콩쿠르 경험이 적은 그에게 콩쿠르에서 겪었던 일화를 전해준다. 지난해 11월 내한한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협연자로 손열음과 조성진을 택했다. 이때 손열음과 조성진은 토론과 대화를 통해 게르기예프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다는 후문이다. 이들이 경쟁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돕는 동반자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들 세 명은 국내에서는 상당한 지명도를 얻고 있다. 젊은 연주자치고는 드물게 개인 콘서트를 열면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을 채울 수 있을 정도의 관객 동원력을 갖고 있다. 김선욱은 지난해부터 LG아트센터와 공동으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도전에 나서 지난해 4회 연주하고, 올해에 4회 연주한다. 20대에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에 나서는 것도 흥미롭지만, 연주회마다 만석을 이루는 흥행 실적이 놀랍다.
각종 협연 무대에 주로 서왔던 손열음도 3월7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생애 첫 독주회를 열어 열광적인 환호를 이끌어냈다. 이날 앙코르 곡만 7곡을 친 그는 자신만의 색깔을 청중에게 각인시켰다. 손열음은 5월29일 유리 바쉬메트가 이끄는 모스크바 솔로이스츠와의 협연 무대에서 바흐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해 현대음악부터 바로크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하는 음악인임을 증명할 계획이다.
셋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조성진은 세계 콩쿠르 무대에 한두 번 더 나갈 가능성이 있는 꿈나무다. 하지만 파워풀한 측면에서는 동년배 중 최고로 평가받는다.
이들 세 명의 공연을 모두 기획해본 클래식 공연기획자 한정호씨의 얘기다. “이들은 경쟁 관계라기보다 서로 잘 알고 이끌어 주는 사이다. 김선욱은 손열음의 테크니션적인 면을 부러워한다. 손열음은 김선욱의 타이밍을 칭찬한다. 언제 어떻게 쳐야 하는지 김선욱은 그 뉘앙스를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파워에서는 둘 다 조성진을 샘낸다. 조성진은 피아노 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세게 친다. 스케일이 큰 러시안 작곡가의 피아노 작품을 잘 소화한다. 다른 피아니스트가 치면 들리지 않던 소리도 조성진이 연주하면 다 들린다. 이건 음량의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다.”
좁은 한국 무대를 떠나 유럽에서 전문 연주자로서의 도전에 나선 20대 3인방이 어떤 성취를 보일지 주목된다.
“벌어놓은 상금으로 파리에서 공부해요” 조성진. 이제 스무 살이다. 대학교(파리국립고등음악원) 1학년. 유학 중이라 특출하게 집안이 부유한 줄 알았는데 봉급쟁이 가정의 장남이다. 프랑스는 학비가 싼 편이다. 그동안 벌어놓은 콩쿠르 상금과 대원음악상 신인상을 탄 것으로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벌어놓은 상금’이라고 말할 정도로 조성진은 그동안 상을 많이 받았다. 2009년 일본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2011년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3위를 차지했다. 그해 대원음악상 신인상을 탔다. 클래식 세계에서 이름값이 높은 콩쿠르 입상은 큰 자산이다. 신수정 서울대 명예교수의 제자로 국내에서 교육받은 토종 피아니스트인 조성진이 스무 살 이전에 이 정도의 성적을 낸 것은 신동이 많은 음악계에서도 특별하다. 하지만 그는 “나는 신동이 아니다. 진짜 신동은 키신 같은 사람이다. 나는 신동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피아니스트를) 하고 싶은 것이다. 신동 이미지는 나중에 어렵다고 생각한다. 아역 배우가 성인 배우가 되기 어렵듯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은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닌 것 같다. 내 음악이 어떤 클래스에 안착한 것이 아니다. 더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이답지 않은 침착함과 여유가 묻어난다. 그가 연주회에 등장할 때 꼭 손수건을 꺼내 피아노 한편에 얹어놓고는 차분하게 시작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조성진은 사랑을 많이 받는다. 스승인 신수정 명예교수는 물론, 서울시향의 정명훈 지휘자, 김대진 한예종 교수 문하의 손열음이나 김선욱도 그를 아낀다. “정명훈 선생님이 음악 만드는 것을 많이 도와주신다. 리허설을 할 때 오케스트라 단원이 다 들어가고 난 뒤 무대에서 정 선생님이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라고 말씀해주신다. 그게 큰 도움이 됐다.” 프랑스의 대표 작곡가인 라벨이나 드뷔시는 파리국립고등음악원 출신이다. 조성진이 그들의 후배가 된 셈이다. 콩쿠르 세계에서 프랑스 현대음악계는 별 지분이 없다. 그럼에도 조성진은 유학지로 프랑스를 택했다. 그는 “프랑스 문화를 겪어보고, 경험하고
올해 국내 무대에도 선다. 4월22일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뮌헨 필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예술의 전당 무대에 올린다.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함께 전국 투어에도 동행한다. “프랑스 음악은 크리스털 같은 느낌이고, 독일 음악은 그 반대다. 맥주 생각이 나고, 둥글둥글하고, 어찌 보면 딱딱한 음색을 중시한다. 4번 협주곡 연주에서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독일적인 사운드를 표현하려고 한다. 이 곡은 베토벤 전성기 때의 작품이다. 베토벤은 어려웠지만 예전보다는 그래도 좀 편안해졌다.” |
- 2011년 글
고교 2학년 학생이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지난 6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전해진
소식이다. 피아니스트 조성진(17)은 앞으로 한동안 깨지지 않을 기록을 남겼다. 올해로 14회째인
이 대회는 ‘한국 특별 무대’를 방불케 했다. 피아노ㆍ성악ㆍ바이올린 부문에서 총 다섯 명이
입상했고 화려한 성적을 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25)은 1974년 정명훈의 2위 입상 기록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 피아노 부문의 결선 진출자 다섯 명 중 가장 어렸던 조성진은 3위에 입상하면서
고국을 놀라게 했다. 조성진의 놀라운 소식은 이것이 끝이 아닐 터다. 세계 최고 수준의 콩쿠르를
경험한 그는 “이번 대회 이후 내 음악관이 훨씬 뚜렷해졌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정확하게 알게 됐다”
고 했다. 지금껏 빠르게 성장했던 그가 예고하는 발전은 두렵기까지 하다. 한 연주자와 음악적 성장을
함께하는 경험은 특별하다. 신동ㆍ천재였던 이가 음악가로 깊게 뿌리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인내심 많은 청중의 특권이다. 그 기쁨을 아는 이들에게 조성진을 권한다. 잘 치는 피아니스트,
좋은 연주자는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조성진을 지켜봐야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조성진은 조금씩 입소문을 탔다. 열 살 즈음부터 국내 초등학생 음악 콩쿠르에서 1위를 휩쓸었다.
그러나 테크닉이 완성된 꼬마 피아니스트가 넘치는 시대다. 능글맞은 감정 표현을 해내는 어린
조성진은 여기에 답을 들고 나타났다. 2008년 14세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6회 쇼팽 국제 청소년
진정한 승전보는 일본에서 전했다. 그 이듬해 하마마쓰(濱松) 국제 콩쿠르는 30세 미만의 어른들과
지난 6월 말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도 이름값을 했다.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가 1958년 시작된 이래
조성진의 장점은 ‘본능’이다. 그는 무대 위와 아래에서 유난히 다른 피아니스트다. 평상시엔 평범하고
2009년 11월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조성진은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를 연주했다.
들보다 템포가 훨씬 빠르다. 보통 10분 이상 걸리는 1악장을 9분 정도로 단축시켰다. 어찌 보면
위험한 선택이다. 점수를 매기는 콩쿠르에서 자의적 해석은 감점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콩쿠르 우승 직후 한국 독주회에서 만났던 조성진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당시 상황에서
열일곱 살의 소년이 거대한 작품을 해치우는 속도를 보면 어지러울 지경이다. 특히 하마마쓰
비결이 있을까. “특별히 악보를 빨리 보는 편도 아니고, 연습 시간이 또래보다 훨씬 길지도 않다.
그는 그저 음악이 좋을 뿐이다. 무엇보다 큰 장점은 집중력이다. “연습할 때는 집중한다. 파묻혀
다음으로 특별한 재능은 몰입이다. “연습하지 않을 때도 음악과 관련된 책과 자료를 뒤진다.
피아노를 뺀 조성진
조성진은 일곱 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피아노보다 1년 늦었을 때다. 같은 해 동네 콩쿠르에
“서서 하는 악기가 힘들어 피아노를 선택했다”고 농담을 섞어 말하는 조성진은 지금도 바이올린에
이뿐만 아니라 실내악·오케스트라 등의 공연에도 청중으로 자주 등장한다. 한 가지 악기와 장르에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끝나고 취미로 바이올린을 다시 해 볼까 생각하고 있다. 언젠가는 차이콥스키
피아니스트로서 조성진은 “10년 안에 40곡 넘는 협주곡을 마스터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언젠가
예측 불가능한 성장
이제 남은 관심사는 하나다. 조성진은 얼마나 더 클까.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내 경력에서 가장 큰 무대였다. 본선 2차 무대부터는 바빠졌기 때문에
그는 음악관이 좀 더 뚜렷해졌다고 했다. 자신의 소리가 슈베르트·쇼팽 등 낭만 시대의 화려한
서울예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조성진은 좀 더 넓은 세상으로 갈 참이다. “곧 유학을 떠날 생각”
어린 피아니스트에게만 허락될 ‘음악적 쇼크’가 세계 도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청중도
조성진이 걸어온 길
-1994년 서울 생
-2005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
-2008년 모스크바 쇼팽 청소년 콩쿠르 1위
-2009년 하마마쓰 국제 콩쿠르 1위, 지휘자 로린 마젤과 협연
-2010년 NHK심포니, 나고야 필하모닉 등과 협연, 예원학교 졸업, 서울예고 입학
-2011년 제14회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3위
김선욱 이어 두 번째로,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과 협연
지휘자 마렉 야놉스키(72)는 2009년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과 함께 내한했다. 이때 피아니스트
야놉스키는 제왕적 스타일의 지휘자로 분류된다. 김선욱과의 베토벤 4번 협연 이후 베를린으로
다음 달 조성진도 야놉스키와 협연한다. 베토벤의 다섯 번째 피아노 협주곡 ‘황제’다. 조성진이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은 2009년 단정하고 복고적인 사운드를 들려줬다. 야놉스키의 베토벤 3번
이번 내한에서는 브람스 교향곡 3번을 골랐다. 두터운 소리의 독일 음악을 정통 요리법으로 차려낼
또한 베토벤의 가장 인기 있는 피아노 협주곡을 골라 든 조성진과의 만남에서 정통 사운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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