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상큼한 아침이다. 정양늪 생태공원에 들어서니 메타쉐콰이어가 손 흔들어 반겨주고, 바람에 묻어난 숲의 향기에 취한다. 고즈넉한 아침은 나를 알아보는 시간이다. 정양늪을 찾으면 자연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인다. 곡식이 주인의 발걸음을 알고 좋아하듯, 화초가 주인의 비듬을 먹고 살 듯, 정양늪도 나를 알아보는 순간이 되어가는 것이 즐겁다.
정양늪 산책로 입구 메타쉐콰이어 나무 아래 모였다. 교수님의 첫 말씀이 “아름답다”이다. ‘아름’은 ‘나’를 뜻하는 말로 “아름답다는 자신을 보는 것”이라는데, 나를 보듯 자연을 보라는 말인가 보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제일 아름답다고 한다.
식물에 대한 탐구에 들어간다. 어떤 신비로움이 나를 매료시킬지 무척 궁금하다.
1. 메타쉐콰이어와 낙우송의 차이다. 메타쉐콰이어는 잎가지가 마주나기 하고, 낙우송은 어긋나기를 한다. 낙우송의 뿌리 옆에 솟아 있는 특이한 것이 있는데, 이것은 나무의 숨구멍으로 공기뿌리라고 한다.
2. 찔레꽃은 추위의 변곡점이란다. 찔레꽃이 피면 더 이상의 추위는 없다고 보는, 진정한 봄의 전령사傳令使다. 장미과인 찔레꽃 옆에서 ‘부처님과 비둘기’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생명의 존엄성까지 부각시킨 해설이어야 한다고 하니 좀 멍해진다. 이제 풀 한포기의 소중함과, 벌레 한 마리의 존귀함 까지는 알겠다. 하지만 동식물을 보고 생명의 귀중함을 수업의 모토로 삼으라니 참 어렵다.
3. 살갈퀴꽃에서 삶을 배운다.
많은 식물들과의 경쟁에 치어 경변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꽃으로 '사랑의 아름다움'이란 꽃말에 어울리게 앙증맞고 사랑스럽다. 농기구인 갈퀴를 닮아 살짝 어긋난 잎사귀가 서로 마주 보고 있어 살갈퀴라고 불렀나 보다.
분홍색 꽃이 아름답지만 벌, 나비가 찾지 않으면 종족번식을 할 수가 없다. 꽃에 꿀을 탐하는 자들은 많다. 단것을 좋아하는 불청객 진딧물을 퇴치하기 위해 개미를 이용한다.
하지만 일벌이 여왕벌을 사수하듯 꽃은 개미의 침입을 막고 벌, 나비를 유혹해야 한다. 개미가 꽃에 까지 오지 못하도록 잎사귀 밑에 밀선을 만들어 방어한다. 참으로 자연의 신비로움이다. 살아남기 위해 소나무가 이동 하듯 하찮은 식물들의 삶에서 많은 지혜를 체득한다. 지금 해설사 공부하는 것도 이러한 삶의 변신일까?
4. 쇠별꽃에서 겸손을 배운다.
들풀은 꽃이 아주 작다. 겸손하지 않으면 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자세히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하나 보다. 쇠별꽃은 털보다. 이렇게 털이 많은 이유는 척박한 곳에서 수분흡수를 위한 변신이다. 아침에 맺힌 이슬방울이 뿌리로 떨어지기 위함이라니 정말 자연은 위대하다. 그런데 왜 인간은 자연에 적응하려하지 않고 파괴만 일삼을까?
5. 쇠뜨기는 소가 먹지 않는다.
쇠뜨기는 땅속을 파고들어 지구 반대편에서 난다고 할 정도로 완전 제거가 어려운 풀이다. 얼마나 애를 먹이면 염라대왕의 부지갱이라 했겠나? 쑥대밭에도 쇠뜨기가 먼저 올라온다고 한다. 고생대 석탄기에 크게 번성했던 속새류 화석식물의 후손이란다. 규소성분이 많아 소가 좋아하지 않는데, 왜 소풀이라 오해를 받을까?
6. 피톤치드는 식물을 죽이는 살충제란다. “피톤”은 식물을 “치드”는 죽인다는 의미다. 나무가 자라는 과정에서 상처 부위에 침입하는 각종 박테리아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 뿜는 방향성 물질로 살균·살충 성분이 포함돼 있으며 활엽수보다 소나무·삼나무 등 침엽수에서 더 많이 방출된다. 식물을 죽게 만드는 피톤치드! 삼림욕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나무 밑에 차를 세우면 잘 닦이지 않을 정도로 끈적끈적하다.
7. 큰개불알풀은 큰봄까치꽃으로 불러주세요.
열매 모양이 수컷개의 생식기를 닮아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서양인들은 꽃이 피었을 때 보이는 수술 2개가 눈처럼 보인다고 하여 ‘버드 아이(bird‘s eye)’, 바로 ‘새의 눈’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생각의 차이에서 그 수준을 알 수 있겠다.
8. 뽀리뱅이는 속씨식물문>쌍떡잎식물강>초롱꽃목>국화과>뽀리뱅이속>뽀리뱅이종이다.
뽀리뱅이와 씀바귀, 고들빼기는 줄기를 자르면 흰 유액이 나오는 것은 같으나 차이점이 있다. 뽀리뱅이는 두해살이, 고들빼기와 씀바귀는 여러해살이다. 씀바귀는 꽃술이 검고, 뽀리뱅이는 꽃이 작으며 부드러운 연한 백색털이 있다. 고들빼기는 잎이 날카롭고 줄기를 감싸고 있다.
뽀리뱅이는 보리밭에서 잘 자라고, 긴 줄기 끝에 꽃이 피어서 보리뱅이라 부르다가 뽀리뱅이가 되었다. 뽀리는 꽃봉오리를 가르키는 사투리이고, 뱅이는 가난뱅이의 경우처럼 낮춰 부르는 의미의 접미사이다. 연약한 줄기를 길게 뽑아 올리고 아주 작은 꽃들을 뭉치로 피워 낸 모습이 봉우리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꽃을 피운다.
봄에 노랑꽃들이 많이 피는데 이것은 꽃등에(파리목 꽃등에과)가 노란색을 좋아해서라고 한다. 어떻게 풀이 동물의 속성을 그렇게 잘 알고 있을까? 정말 놀랍고 신비로울 따름이다.
9. 지칭개꽃은 먼지 털이를 닮았고, 메꽃은 고구마 꽃을 닮았다. ‘뱀딸기를 먹으면 죽는다’는 속설은 뱀이 많으니 가지 말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뱀딸기 즙을 입에 넣어 보니 니맛도 내맛도 없다. 다만 갈증해소용으로 먹었다고 한다.
10. 갱이밥은 고양이가 소화가 잘되지 않을 때 먹는 풀이다.
'빛나는 마음'의 꽃말이 좋다. 식물들이 씨앗을 퍼뜨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겨우살이와 같이 동물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코스모스와 같이 높은 키를 이용하기도 한다. 삶은 달걀을 그대로 전자레인지에 데우면 폭발하는 것처럼, 고온에 씨방을 팽창시켜 폭발하면서 멀리 퍼트린다고 한다. 정말 자연의 경이로움이다.
11. 갈대는 여린 내 마음 같다. 다정한 친구 사이인 억새와 갈대, 달뿌리 풀이 살기 좋은 곳을 찾아서 길을 떠났다. 긴 팔로 춤을 추며 가다 보니 어느덧 산마루에 도달하게 되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지만 잎이 뿌리 쪽에 나 있는 억새는 견딜만해 산마루에 살기로 했다. 둘은 강한 바람에 살수가 없어 뭍으로 내려가가 달뿌리 풀은 모래밭이 좋아 정착하게 되었고, 가다가 더 갈 수없는 곳인 바닷가에서 갈대는 살게 되었다고 한다.
억새는 꽃의 색깔이 흰색에 가깝고, 갈대는 갈색에 가깝다. 억새 잎은 돌기가 톱날 같아 잘 못 만지면 손을 베일 정도로 날카롭다.
12. 조용필의 민들레는 왜 일편단심일까? 흔히 민들레는 꽃이 노랗지만 흰민들레는 이름 그대로 꽃이 하얗다. 하지만 꽃이 하얗다고 전부 토종은 아니다. 정확한 것은 꽃받침을 보아야 한다. 꽃받침이 바나나 껍질깐듯 뒤로 젖혀져 있으면 수입종이고, 꽃을 감싼 것은 토종이다.
민들레의 일편단심론은 몇 가지 설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우리 토종 민들레의 독특한 순애보를 꼽는다. 산과 들에 흔한 야생초인 민들레는 식물계의 순정파다. 이 꽃은 오직 토종 민들레 꽃가루만 받아들인다. 서양 민들레 꽃가루가 흔하게 날아 다녀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토종 민들레가 무정란같이 발아가 되지 않는 씨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서양 민들레는 무엇이든 받아 들여 씨를 맺기 때문에 너무 많아서 골치다.
둘째는 민들레의 근성(根性)이 일편단심이다. 이 꽃은 큰 뿌리 하나를 곧게 땅속 깊게 내리고, 옆으로 실뿌리가 뻗어 있으나 가늘고 빈약하다. 큰 뿌리 하나가 땅속 깊게 박음으로 바람에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나태주시인의 ‘풀꽃’이 정말 가슴에 와 닿는 하루였다. 자세히 보면 예쁘고, 오래 보면 사랑 그 자체다. 이름을 알고 나니 하나가 되고, 색깔을 알고 나니 내가 되었으며, 모양까지 알고 나니 영혼이 되어버렸다. 이제 지상에 있는 모든 식물은 잡초가 아니라 전부 꽃으로 품고 말았다.
집안 정원의 잔디 속에 숨어 있는 잡초를 뽑다가 멈추기가 부지기수였다. 무릎 꿇고 잔디와 눈높이를 맞춰보면 실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저녁노을에 다소곳이 피어 있는 꽃을 볼납시면 그렇게 앙증맞고 귀여울 수가 없어 차마 뽑지를 못하고 넋 놓고 봤다.
이제 정원 잡초와의 전쟁을 종식시켜야겠다. 잡초대표와 한자리에 앉아 합의서를 작성하고 서명을 받아야 한다.
“앞으로 우리 잡초는 잔디 속에 숨지 않고, 떳떳하게 빈터에 자리 잡고 서식棲息하겠다”라고.
첫댓글 自然이란 스스로 있는 그대로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종교에서는 神의 存在를 자연을 통해 증명하기도 하죠.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잡초는 자생초라 부름이 옳치않나 생각되는군요.
좋은 공부 응원합니다.
오늘도 좋은하루 되시길 ~^^
자연은 또 하나의 나라고 봅니다.
자연을 보면서 나를 보고, 나를 보면서 자연을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진솔한 응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