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기들은 대부분 2020년에 교대를 졸업해 초등교사가 됐다. 대부분 기간제 교사로 시작해 1-2년 후에 정식 발령을 받아 교사를 하고 있다. 기간제 교사를 포함한다면 최대 3년 경력을 가질 수 있고 임용고시에 떨어지거나 기간제 교사가 아닌 휴식이나 자기계발을 택한 친구들은 3년이 안되는 경력을 갖고 있다. 그들은 1정 교사 연수 기준인 3년의 경력도 갖지 못 한 신임 교사다. 4년동안 대학에서 교사 교육을 받은 학생 신분이었던 그들은 졸업과 함께 교사 자격증을 받자마자 교사라는 신분이 된 것이다.
학생으로서 경험한 학교와 교사로서 경험하는 학교는 결코 같은 공간이 아니다. 같은 공간도 역할에 따라 다른 공간이 된다. 학생과 교사는 서로 다른 일을 하도록 요구받고 있으며 하는 일도 구분된다. 게다가 학교나 학년마다 또 다른 문화를 갖고 있으니 이전의 경험만으로 학교라는 공간을 설명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사들은 12년간 공교육을 통해 학교를 경험했더라도 교사로서 새로운 의미의 학교란 공간을 새롭게 학습해야 한다.
교사 교육 수료가 교사 자격을 보장하는 우리나라의 교육 체계에선 경력에 상관없이 교사 개인이 학생의 교육을 전적으로 책임지게 된다. 핀란드나 독일과 같은 국가에선 교사 교육 졸업이후에 견습 교사 제도를 활용해 교사 자격을 부여하는 것과 대조된다. 견습 교사 제도는 신임 교사들에게 현장 경험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학생과 교사 신분의 교량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두 국가는 신임 교사들에게 학생이면서 교사인 이중적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현장에서만 얻을 수 있는 실천적 지식이나 교직 및 학교 문화를 학습하도록 제도적으로 교사 교육의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다. 견습 교사 제도의 존재는 대학 교육만으로 교사의 전문성이 보장되지 않으며 전문성 계발을 위해선 현장에서의 경험과 학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학에서의 교사 교육이 교사 전문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은 많은 교사들이 공감할 것이다. 특히 교사 교육과정의 부족한 현장 연결성에 대한 비판을 통해 현장에서의 경험이 전문성 계발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하게 인식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신임교사들 경우엔 대학 교육이나 임용 고시를 통해 어느정도의 이론적 지식과 약 9주간(서울교대 기준)의 실습으로 얻어진 실천적 지식만으로 현장에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나라의 신임교사는 불안정한 토대를 바탕으로 교육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요구받는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는 어떤 직업 집단이든 마찬가지다. 현장 경험이 그들의 역량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정 수준의 역량에 도달하기 위해선 어느정도의 경력을 필요로 한다. 이와 더불어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는 사람들이 경력자와 같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은 결코 전문직이라 불릴 수 없을 것이다.
전문직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직업은 경력자와 비경력자의 역할을 구분한다. 특히 조직의 위계가 중요한 회사의 경우엔 경력이 위계의 위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능력만으로 승진이 결정되지 않으며 어느정도의 경력을 요구한다. 그리고 어떠한 위계에 속하는지에 따라 개인의 책무성 및 성과에 대한 보상이 달라진다. 하지만 교직의 경우 일반적인 위계적 구조가 자리잡은 회사와 다른 문화를 갖고 있다. 적어도 명시적인 위계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과거엔 관리자들도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등으로 불렸다면, 지금은 '선생' 호칭을 빼고 교장님, 교감님이라고 부르는 걸 쉽게 볼 수 있는데 이것 역시 교직 문화의 특수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부장 교사나 수석 교사와 같은 일반 회사의 위계 구조를 어느정도 수용한 제도가 존재하긴 하지만, 적어도 개인의 교육적 실천에 있어서 다른 교사들이 간섭할 수 없는 자율성과 전문성을 인정하고 있다.
부장 교사 제도가 수업, 학급 경영 및 생활지도와 같은 직접적 교육 실천이 아니라 행정의 영역이라고 할지라도 이것이 교육 실천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많은 교사들이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서 행정의 간소화를 외치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부장 교사는 보직에 따른 추가적인 행정 업무와 그 부서에 대한 책임감을 요구 받는다. 업무의 추가는 대부분 교육실천을 기회비용으로 수행된다. 즉, 교육 실천에 필요한 노력과 시간과 같은 자원이 부장교사의 업무에 할애되는 것이다. 교사 개인이 투자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되니 행정 업무와 교육 실천의 사이에서 교사는 최적화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교직 사회가 수평사회이기 때문에 신입 교사가 부장 교사를 하는 것은 그렇다면 정당할까? 이 질문이 이 글을 쓴 동기다. 2월은 학교에서 끝맺음과 시작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이 시기에 많은 학교에서 어떤 교사가 당해 년도에 어떠한 학급과 보직을 맡을지 정한다. 그렇다 보니 초등 교사 지인들이 올해 맡게된 보직을 최근에 많이 듣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경력이 3년인 동기는 물론이건 1,2년이 되는 후배들이 부장 교사 보직을 맡게됐다는 것이다. 일반 회사로 치면 신입 사원이 팀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교대를 다닐 때, 교직 실무라는 과목에서 부장 교사를 할 수 있는 경력 조건이 정해져 있다고 배웠기 때문에 이 현상이 더욱 기이하게 느껴졌다. 이것을 교직 사회가 경력에 상관없이 그들의 전문성을 그대로 존중한다는 수평적 분위기라고 해삭할 수 있을까?
나는 이 현상은 교직 사회의 비전문성을 면밀히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부장 교사는 행정에 과연한 것이기 때문에 교사의 전문성과는 어떠한 연관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수많은 교사 전문성 이론이 있지만 교사의 행정 역량을 교사의 교사 전문성이라고 바라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의 입장이 타당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서술했듯이 교사는 물론 모든 인간은 한정된 재화를 활용해 살아간다. 시간, 에너지, 돈 등이 무한정으로 나오지 않는다. 즉, 행정 업무의 증가는 교사 전문성 계발에 필요한 자원 투자의 감소로 이어지기 쉽다. 게다가 저경력 교사들은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 교직 문화 및 학교 운영의 전반을 배워가는 단계다. 부서를 이루는 구성원으로서 일을 배워나가는 것이 마땅한 단계인데 큰그림을 그리지도 못 한 채 부서의 대표로서 책무성을 떠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고경력 교사들에 비해 실천적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수업 및 생활 지도와 같은 교육 실천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부장 업무의 보직을 맡겼다는 것은 저경력 교사와 고경력 교사에게 다가오는 교육 실천의 무게나 부담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이 둘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저경력 교사들에게 과도한 업무를 부과하는 것은 저경력 교사가 그들의 전문성 계발에 힘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한다.
이 문제의 원인을 로티가 제시한 교직의 불결한 삼위일체(Unholy Trinity)중 하나인 개인주의, 관리자들의 비합리적 판단, 개별 학교의 문화 등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이보단 제도가 이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고경력 교사들이 저경력 교사들에 비해 호봉에 따라 같은 일에 대해서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것을 제외하고 고경력 교사가 부장을 맡아야 할 이유가 없다. (호봉에 따라 월급이 자동적으로 올라가는 것이 경력에 따른 일의 질적 차이를 보여주는 지표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즉, 만약 경력에 따라 능력의 차이가 없다면 호봉에 따른 임금 차이가 있을 이유가 없다.) 교직의 전문직으로서의 지위 유지 및 상승의 방안으로서 저경력 교사들의 전문성 계발에 충분한 시간과 공간을 보장하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교사 개인으로서 교사라는 직업 자체의 지위 상승을 위해 희생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보직에 대한 유인책으로서 교사에 대한 보상이 어느정도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교장, 교감, 장학사와 같은 직급에 대한 생각이 없는 교사들에게 부장 교사 보직은 매력적이지 않다. 관리직의 경우 보직 교사 경험이 필수적이지만, 평교사로 살아갈 교사들에겐 업무의 추가와도 같다. 보직에 따른 권력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책무성만 늘어날 뿐이다. 게다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보상의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보직을 맡으면 한 달에 7만원의 수당을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수년간 똑같은 액수로 물가의 상승 및 경제적 상황의 변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액수다. 즉, 한 달에 7만원을 더 받고 다른 교사들보다 더 많은 고생을 자발적으로 하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한 부서를 이끄는 것을 흔치 않은 경우다. 게다가 회사의 경우엔 위계가 있고 그 위계에 따라 보상이 정해지기 때문에 높은 직급에 대한 수요는 공급보다 많다. 하지만 교직 사회는 위계에 따라 권위(력)나 보상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보직을 하려는 사람이 필요에 비해 적은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회사는 승진, 해고, 전근 등의 수단으로서 구성원들의 참여 및 성과를 이끌어내지만 교사들에겐 이러한 장치가 없다. 그러니 교사 개인의 윤리 의식 및 희생 정신에 기대어 고경력 교사들이 보직 교사를 맡은 이상적인 그림을 그릴 뿐이다. 교육 당국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경력 교사의 부장 교사 보직을 금지하고 보직 교사들에 대한 보상을 적극적으로 한다면 지금과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교사가 아닌 사람들은 알기 어렵다. 정책 입안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알고 있을까? 교사들 사이에서도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보단, 이러한 문제를 야기한 관리자나 교사 개인을 비판하고 있지 않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교사의 목소리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교사들에겐 이것이 중요한 문제일 수 있지만 외부자들에겐 이것은 어떠한 문제거리도 되지 않는다. 이 문제의 발생엔 제도가 가장 큰 원인이지 개인은 결코 제도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제도의 문제점이 발견됐을 때 그 제도에 반기를 들 수 있는 것 역시 개인이다. 개인은 구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그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존재기도 하다. 개인은 제도의 문제점을 알고도 해결이나 개선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교사들이 이 제도에 "나만 아니면 돼."라는 식의 개인주의를 넘어서 교직에 있는 모든 개인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함께 외쳐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는 보직 교사 문제를 넘어서 교직의 전문성 및 지위와도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첫댓글 좋은 문제제기입니다 우목님. ^_^ 이 글을 페이스북에 게시하면 어떨까요? 현장 교사들의 의견이 궁금하네요~
최근에 올렸는데, 여기에도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