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26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언제나 해맑게 웃음을 띠며 그린에 나섰던 그다. 그런데 어인 일인지 눈물샘이 고장 난 듯 복받친 감정의 눈물이 뺨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우승의 기쁨인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맞다. 25개월 동안 우승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를 칠흑 같은 암흑 속으로 몰아넣은 끝없는 절망 탓이었다. 그동안 ‘악플’에 시달렸던 기억이 가슴을 후벼 파며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것 같은 느낌이었으리라.
눈물의 주인공은 175cm의 ‘8등신 미녀’ 전인지(25·KB금융그룹)다. 그의 닉네임 ‘플라잉 덤보’처럼 하늘을 나는 아기코끼리가 다시 한번 기분 좋게 날아올랐다.
10월14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앤리조트 오션코스(파72·6316야드)에서 열린 ‘아시안 스윙’ LPGA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총상금 200만 달러) 최종일 경기 4라운드에서 전인지는 챔피언조에 앞서 경기를 끝냈다. 4라운드 합계 16언더파 272타(70-70-66-66). 짜릿한 역전우승이었다. 그를 추격하던 뒤 팀의 찰리 헐(22·잉글랜드)의 세컨드 샷이 핀을 놓치면서 전인지의 우승이 결정됐다. 우승이 확정된 순간 외국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그는 펑펑 울음을 터트렸다.
▲ 전인지가 인천 스카이72 골프앤리조트 오션코스에서 열린 ‘2018 LPGA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우승 트로피를 든 채 웃고 있다. / ⓒ 연합뉴스
“그동안 믿어준 사람들 생각나 울었다”
왜 그리 울었을까. 전인지는 “결국 잃어버린, 잊어버린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저를 힘들게 했던 시간과 저를 끝까지 믿고 응원해 주신 모든 분이 생각나서 눈물을 많이 보였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사실 그에게 힘든 시간이 어느 순간 ‘탁’ 하고 밀어닥친 게 아니다. 쥐가 나무 조각을 조금씩 갉아먹듯 그렇게 조금씩 부정적인 생각들이 그를 파고들었고, 날개 없이 추락하는 것처럼 천길 물속으로 그를 밀어넣었던 것이다. 이는 스스로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그게 그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가 아마추어를 벗어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활동할 시절. 스윙이 아름다운 데다 기량이 뛰어나 팬들이 많았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미녀인 데다 골프까지 잘하니 시기와 질투를 하는 안티팬도 생겼다. 그의 이름을 치면 ‘전인지, 후인지’ ‘파전인지, 김치전인지’라는 식의 여러 악플이 도배하다시피 했다.
악플에 대해 그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관계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엄청 큰 부분을 차지했다. 20, 21살 때 투어에 막 들어와서 우승을 하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인터넷에 제 사진이 나오는 게 정말 신기했다. 응원해 주는 실시간 댓글들도 보였다. 문제는 여기서 터졌다.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에서 올린 글이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으로서, 여자로서 너무 참기 힘든 속상한 말들이 돌아다녔다. 반응하지 않으려 해도 가슴이 막히거나 먹먹했다. 그 글들에 반응하는 제 자신이 밉고 한심했다. 그런 것들이 여러 힘든 일들 속에서 저를 밀어내고 있었다. ‘더 이상 움직이고 싶지 않다, 일어나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강박관념에 자칫 우울증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이런 일들이 겹치면서 스스로를 미워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너무 무서웠다.
“제가 다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웃으면서 저라는 사람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저라는 사람을 보여줬을 때 듣게 되는 욕이 싫어서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하고 싶지는 않았던 거다. 언제나 진실되게 사람을 대하고 싶었고, 그렇게 생활하고 싶었다. 기회가 된다면 앞장서서 그런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었던 거다.”
이때부터 작전(?)을 바꿨다. 겸손하고, 배려하고, 상대선수를 응원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샷이 잘되든 안되든 ‘웃자’였다.
때로 근거 없는 소문도 전인지를 흔들었다. 그래서 먼저 한 것이 머리카락의 변화였다. 찰랑거리던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 단발로 바꿨다. 평소 해 보고 싶었던 스타일이어서 큰 의미는 없었지만 뭔가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데 이것도 악재였다. 또다시 루머가 떠돌기 시작했다. 남자친구와 결별했다더라, 하지도 않은 약혼을 했는데 파혼했다더라, 부모님이 강제로 잘랐다더라 등 뒷말이 나왔던 거다.
그는 “누구보다 저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안 좋은 방향으로 입방아에 오르는 게 너무 속상했다. 지나고 보면 작은 일이지만, 그때는 전혀 작지 않았다. 너무 크게 반응했고, 그런 게 모여서 정신상태가 스스로 건강하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고 뒤돌아봤다.
“스스로 믿으면서 편안해져”
최근 들어 마음에 변화가 일었다. 그는 비록 대타로 뛰긴 했지만 LPGA투어 8개국 국가대항전 UL 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 4전 전승으로 한국이 우승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것이 전환점이 됐다.
“스스로 전환점이라고 생각을 하고 싶었다. 앞서 말했듯이 힘든 시간들이 한 번에 온 게 아니라 조금씩 힘들게 했다. 대회에 앞서 많은 팬들이 ‘이 대회가 너에게 터닝 포인트가 될 거야’라는 말을 했을 때도 마음이 건강한 상태가 아니니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조금씩 힘들어졌는데 한순간에 좋아질 수 있을까’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또 들었다. 제 주변 사람들을 다시 힘들게 했었는데 이럴 때 조금 더 마음가짐을 건강하게 하고 그 사람들의 진짜 마음을 읽어보려고 노력하자, 나를 위해 얘기해 주는 분들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보자고 생각하고 믿으려고 했다. 최종일 마지막 홀 플레이를 하면서도 그 말들을 떠올리면서 나 자신을 믿어갔다.”
그래서였을까.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그의 얼굴은 평온했다.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편해진 전인지를 볼 수 있었다. 1, 2라운드에서 더블보기를 범하면서도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았다. 3라운드에서 시동을 걸었고, 최종일 4라운드에서 역전승을 거뒀다. 그는 홀을 마친 후 볼에 사인을 해서 갤러리들에게 던져줬다. 그만의 팬들 ‘사랑법’이었다.
악플은 정신이 건강한 사람도 병들게 한다. 특히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은 민감하다. 악플을 다는 사람은 확인되지 않은 것을 갖고도 교묘하게 글을 만들어 올린다. 전인지가 싫어서가 아니라 남이 하니까 따라 하기도 한다.
외국 언론에서 보면 전인지는 ‘국보급 스타’ 플레이어다. 그가 악플의 아픔을 스스로 이겨내고 그린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가 비록 실수를 하거나 잘못해도 이제는 더 이상 그를 사지(死地)로 내몰지 말아야 한다. 전인지는 누가 뭐래도 코리아 브랜드를 전 세계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하는 스타플레이어임을 기억해야 한다.
안성찬 / 골프 칼럼니스트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