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5. 20
작년 9월 19일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15만 청중을 앞에 두고 연설을 했다. 이 세상에서 김정은만이 가능한 청중 동원력이었다. 거대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청중을 앞에 두고 연설한다는 것만으로도 문 대통령은 감격했을 수 있다. 그거야 뭐라 하겠는가. 다만 이런 의문은 생긴다. 그 많은 청중이 어떻게 그 자리에서 자신의 연설을 듣게 되었는지를 그때, 아니면 지금에라도 떠올리고 있을까?
‘빛나는 조국’이라는 10만 명 규모의 집단체조가 공연된 자리였다. 5~6세 아동들을 포함한 청소년들이 6개월 동안의 훈련을 거쳤다고 했다. 그들과, 역시 동원된 관중들이 그의 청중이 되어주었다. 자칭 ‘남쪽 대통령’으로서 체조하라면 하고, 박수치라면 치고, 환호하라면 하는 잘 훈련된 군중을 앞에 두고 감동할 줄만 알았을 뿐 동정심을 못 느꼈다고 해서야 말이 되겠는가.
올해 체조 명칭은 ‘인민의 나라’
이미 한참이나 지난일이지만 그래도 묻지 않을 수 없다. ‘평화의 시대’는 정말 열렸는가? 문 대통령과 김정은의 ‘뜨거운 포옹’이 마침내 한반도에서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를 완전히 걷어냈는가? 북측의 행태로 봐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기대다. 김정은은 ‘오지랖 넓은’ ‘촉진자’ ‘중재자’ 행세를 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는가 하면 단거리 미사일과 방사포를 쏴대며 다시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 바로 우리를 겨냥해서!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여러분의 지도자…김정은 위원장과 북녘 동포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어나가고자 하는지 가슴 뜨겁게 보았다”고 했는데, 그게 ‘어떤 나라’일 것이라고 문 대통령은 생각했을까? 능라도 연설의 감격을 떠올린다면 마땅히 자신이 한 말의 진실성 진정성 책임성도 함께 되새겨봐야 한다. 그게 ‘남쪽 대통령’ 이전에 민족구성원으로서의 도리다.
말 꾸밈이 너무 요란스럽거나 매끄러우면 신뢰성은 떨어진다. 문 대통령의 연설문은 유감스럽게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 “도보다리의 산새들에게도 안부를 물어봅니다.” 판문점 선언 1주년, 영상 메시지’의 말미에 그가 한 말이다. 그는 국내 자유우파 세력에 대해서는 눈을 부라리다가도 북한에 대해서는 한없는 친애를 표한다. 초등학교 문예반 학생의 문투를 흉내 내는 것으로 여겨질 만큼 오글거리는 표현으로.
그 북한이 다음 달부터 집단체조 공연을 시작하리라고 한다. 작년 문 대통령이 관람했을 때는 ‘빛나는 조국’이었는데 올해는 ‘인민의 나라’로 바뀌었다고 한다. 빛이 사라진 북녘 땅, 인민이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인권의 동토에서 10만 군중의 고통으로 꾸며지는 화려한 쇼가 펼쳐지는 것이다. VIP석이 800유로(약 107만원)나 할 정도로 돈벌이가 되는 공연이지만, 그 돈은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연습한 출연자들이 아닌 독재자 김정은 차지다.
북한 집단은 ‘자주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한다. 그러니까 여타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체제와는 다른 ‘사람중심’의 사회주의라는 말이겠다. 북한 헌법의 전문은 “숭고한 인덕정치로 인민들을 보살피시고 이끄시여 온 사회를 일심단결된 하나의 대가정으로 전변시키시였다”는 따위의 참으로 황당한 칭송들로 채워져 있다.
그런 곳에서 사람들의 강요된 예술행위 혹은 집체노동이 상품으로 팔린다. 그걸 감상하고 그 군중 앞에서 김정은을 한껏 치켜세웠던 문 대통령이 북한의 이 ‘노예 공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이 또한 김정은의 담대한 평화행진이라고 인식하고 있을까?
/ ⓒ데일리안
북 지원 서두르는 문재인 정부
그 북한의 아동 및 임산부를 위해 청와대는 국제기구에 800만 달러를 공여하기로 결정했다. 식량도 보낼 태세다. “정부는 대북 식량 지원 원칙을 이미 확정했고, 이를 어떻게 추진하느냐 하는 구체적인 방안에 관해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17일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기세등등하게 한 말이다. 국민의 의사 같은 건 들을 필요도 없다는 뜻일까? 같은 날 통일부는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북을 승인했다.
김정은에 대해 문 대통령은 그야말로 지극정성이다. 미국과 유엔의 제재 틀을 우회할 수 있다면 어떤 시도든 해보겠다는 결의에 차 있는 듯하다. 김정은이 올 신년사에서 개성공단 가동 및 금강산 관광 재개를 각별히 주문한 만큼 정부는 어떻게든 이를 성사시키려 안간힘을 쓰는 인상이다.
이대로 미·북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나고 양측이 다시 대화의 문을 닫아버리면 문 대통령의 중재자·운전자 역할은 빛을 잃을 정도가 아니라 국제적 웃음거리가 되고 말 수도 있다. 그래서 남 눈치 볼 것 없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에 매달리듯 한다는 것일까. 그 덕분인지 트럼프는 다음 달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정상회의 참석 후 방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는 일단 안도의 숨을 쉬게 된 셈이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집단과의 민족적 연대로 공동번영 체제를 구축하고 그 결과로서 한민족연방국가를 건설하는 데 진보좌파 정권의 명운을 걸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 시대에 배타적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지구촌의 평화공존에 대한 위협일 수 있다. 그리고 연방국가는 적어도 우리 시대에는 불가능한 명제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 그리고 지지자들이 북한에 집착하는 것은, 그게 자신들이 증오해 마지않는 보수세력에 대한 정책적 응징일 수 있다고 판단해서인지도 모른다. 이들은 지금의 자유한국당이 대표하고 있는 보수정치세력을 궤멸시킬 때에만 진정한 평화 번영의 시대가 열린다고 확신하고 있는 빛이 역력하다. 그래서 문 대통령까지 나서서 ‘독재자의 후예’라며 공격을 가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문 대통령은 누구, 어떤 사람의 후예인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문제는 문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북한을 모르고, 김정은을 몰랐다는데 있다. 이제쯤은 북한체제와 김정은의 속성을 알게 됐겠지만 이미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까지 오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그간의 정책을 지속해나갈 이유와 명분을 찾아야 한다. 이를테면 의도적 확증편향 같은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럴수록 이들의 화법에는 선과 악의 구분이 뚜렷해진다. 확신을 갖고 나아가면 반드시 온 겨레가 함께 영원한 낙원에 도달할 것이라는 자신들의 교조적 믿음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이념적 관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실 이들로서는 이제 와서 제동을 걸 수가 없다. 멈춰서는 순간 뒤에서 밀어붙이는 군중이 덮쳐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핵·ICBM 위협 재개한 김정은
김정은 세력은 우리의 추측·상상 이상으로 교활하고 영리하다. 이들은 한국 정부를 갖고 노는 데 이골이 났다. 미국까지도 자신들이 수십 년간 관리해왔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종신 통치자인 김정은이 임기 5년에 불과한 문 대통령에게 지켜야 할 의리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러거나 말거나 문 대통령은 중재자 역할에 매달리고 있다. 대북 지원시책으로 4차 남·북정상회담의 물꼬를 트려하는 인상이다. 거기서 ‘희망의 말’ 한 마디라도 이끌어낼 수 있으면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제3차 미·북정상회담의 동인으로 제시하겠다는 구상일 터이다. 이런 식으로 달래질 수 있는 상대라면 그 수십 년간 환상방황(環狀彷徨) 같은 비핵화 협상이 필요했을 리 없다.
김정은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게 북한 체제의 한계다. 핵 포기는 왕조체제를 포기할 때에나 가능하다. 끝까지 버티면 결국 핵보유국으로 국제사회가 인정하게 될 것이고, 제재의 고삐는 자연스레 늦추어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게 그의 계산이다. 이제 와서 치킨게임을 포기할 까닭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아주 취약할 수 있다. 잘만 흔들어 대면 혼란이 상시화 할 것이고, 그 만큼 조종과 이용이 용이해진다. 나중에 한국이 베네수엘라 짝이 나면? 그땐 버리면 되지! 가난뱅이가 된 한국에게 살갑게 대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븍한 노동신문은 19일 ‘원조(援助)’를 ‘하나를 주고 열, 백을 뺏으려는 강도적 약탈의 수단’이라고 규정하며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우리 정부의 지원 방침에 대해서는 반응을 하지 않았지만 저들의 각오가 어떤 것인지, 협상 조건으로 뭘 제시할 것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그 하루 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 ‘조미(북미)협상 재개, 관건은 선 핵포기의 철회’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미 협박을 한 바 있다. 이 글은 “(북한의) 대미(對美) 협상의 일관한 목적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 철폐와 핵전쟁 위협 제거”라며 “올해 안으로 3차 (미북)수뇌회담(정상회담)이 열리지 않는 경우 핵시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와 관련한 ‘하노이의 약속’이 유지될지 어떨지 예단할 수 없다”고 을러댔다.
문 대통령이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그 때문에 김정은의 체제생존전략이 바뀔 일은 없다. 그래서 말인데 이제쯤 흔히 하는 말로 ‘출구전략’을 수립하는 게 어떨까? 그렇다고 특별히 바꿀 것은 없다. 김정은에 대해 문 대통령이 보다 당당해지고 냉정해지면서 한·미동맹체제를 보수(補修)하고 강화할 필요성을 강조하면 된다. 만만하게 보이는 상대에게는 만만하게 대하는 게 인간관계의 원리다.
이진곤 /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자료출처 : 데일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