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신비 결정체, 가정 (엡 5;31-33)
그러므로 라는 말은 앞부분의 종합이다.
그 동안 한 말들의 결론이기도 하다.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어떤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믿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지?
하나님을 따라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하나님의 나라에 두 기둥이 있습니다.
말씀과 사랑입니다.
즉 가정의 두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사랑하라, 순종하라는 말씀과 그것을 삶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연애 감정과 사랑의 혼동
사랑은 연애감정이 아니다.
연애 감정은
"문제가 생겨서 사랑이 없어진 것" 이란다.
그게 아니라니까...
그건 "사랑" 아니고 "연애감정"이라니까...
"연애감정"이라고 불러야 된다니까.
문제가 생겨서 "사랑"이가 아니고
문제가 생겨서 "연애감정"이라고 바꾸어야 하고...
그래 놓고 그 문장은 이렇게 다시 써야한다는...
"문제가 생겨서 연애감정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연애감정이 없어지니까 그것이 문제로 보이는 것"이라고.
문제?
문제로 보인다?
짜증난다는...
보기 싫다는...
꼴 보기 싫다는...
사랑의 개념에 대한 이해의 완성도도 지극히 낮고
결혼에 대한 철학의 완성도도 지극히 조잡한 수준이고
행복이 어떤 구조인지에 대한 이해의 완성도 역시 거의 제로
수준이고...
그러니까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을 또 한 명
생산하지...
그게 그렇다면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사람 세상에 어디
한 명이라도 있겠나?
휴~~~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social influencers)"은 결혼, 사랑,
행복에 대한 인식의 수준이 늘 그저 그 정도이고...
사단의 속삭임과 성경이 말하는 사랑 (예수님의 증명)
1. 사랑은 언제나 함께 하는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같이 하는 것이다.
슬플 때도, 아플 때도, 실망스러울 때도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끝까지 같이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2.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믿으며, 바라며, 견디어가는
것이다.
?를 ! 로 바꾸어 가는 것이다.
연애감정은 !를 ?로 변질 시키는 것이다.
3, 낮과 밤이 교차한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
빛만 있으면 지친다. 어둠이 필요하다. 쉼이 있어야 하기에
예) 연예인의 인기
사람들에게 알리는 도구이다.
반면에 나의 사생활의 방해자이다.
"사람들이 결혼을 왜 이렇게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됐죠?"
추억 중에 못된 것으로 조합하여 기억하니까 그렇지.
생각나는 대로 기억할 것이 아니라
생각해야 하는 것을 골라서 조합,
추억하는 방식으로 기억하는 연습을...
예쁜 짓 했던 것.
고맙게 했던 것.
재미있게 했던 것.
등등등...
예수 믿는다는 것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이다.
자기가 죽은 사람들이
울며 불며
"오빠, 오빠가 나한테 해 준 게 뭐야?",
거기에다 대고 냉혈 동물 모드로
"그래. 그러면 니는 나한테 해 준게 뭔데?"
그러고 있을리 없다는...
예수 믿는 것을 부부행복으로 환원하지 못 하는 것보다
세상에서 더 억울한 일은 없다.
그 있는 돈으로 맛있는 것 사먹어 보지를 못하는 것과 같다.
그 예수, 그 돈 다 뭐하노?
매일 일어나는 일상은 예방주사이다.
일상의 대화 (몸의 대화, 영적 대화, 삶의 대화)
일상의 나눔
요청하는 것과 수용
우리가 기도할 때 어떻게 하는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나의 기도를 도와주시기를 구하고
그리고 나의 요청사항
먼저 상대를 인정하고 세워주는 것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
나를 돌아보고 (내 부족을 아는 것이다.)
사랑은 나의 것으로 상대와 함께 100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동등한 위치에 서려고 한다. 땅의 법입니다.)
예) 하나님의 나라의 사랑
배우자를 어린 아이같이 여겨 주지 않으면 천국,
아니 행복을 맛볼 수 없느니라.
부부간에 서로 어린 아이 같이 아니하면
천국, 아니 행복을 맛볼 수 없느니라.
부부간에 필요한 것은 차질이 발생한 후의 대화가 아니라
차질이 생기기 전에 쫑알거리기다.
문제가 생겼다.
오래 살다보니 때로 리 모델링이 필요하다.
어떻게 할까?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과거의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은
리 모델링이 아니다. 그것은 진단입니다.
진단을 많이 한다고 리 모델링이 되지 않습니다.
감정이 들어가지 않는
서로의 걱정거리가 아닌 대화부터 시작하여야 합니다.
마치 처음 연애할 때 나누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말입니다.
상대를 다시 이해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어차피 골격은 있는 것 아닙니까?
이제 그 안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디자인부터 다시 의논하는 것입니다.
나 혼자 하는 디자인의 아니라 함께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함께 만들어가고
함께 책임질 미래를 말입니다.
부모가 두 분 더 생기는 것 = 한 몸을 이룬다.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1. "오빠가 나한테 해 준 게 뭔데?"라는 말은 철저히 오빠
"니는 너", 그렇게 말하는 "내는 나"라는 전제가 있는 것이다.
오빠와 내가 "하나"가 아니라는 전제이다.
그러니까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결혼의 기본이 구축되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결혼이 안 된 상태에서 결혼한 줄로 알고 사니까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온종일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너의 부모’ 라고 말하는 것
이미 부모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이분법적 사고가 하나님의 나라를 멀리 있는 것처럼 여기게
한다.
3.
남편과 아내 사이의 성격 차이라는 것은
사실 성격(character)차이 정도가 아니고
존재 모드(being mode)의 차이이다.
그 차이를 "차질(disaster)"이라는 마이너스 원인이 되도록
방치할 것이 아니라
"다양성(plentitude of life)"이라는 플러스 요인이 되도록 조작
(operation) 해내야 하는 것이 결혼의 과제(task)다.
남편들의 결혼 적령기는 만으로 65세이고
아내들의 원래대로 돌아가기 적령기는 만 35세이다.
그러니까 혹시 65살이 안 된 남편과 결혼을 한 아내는
남편이 65살 될 때까지 죽은 듯 수준으로 참아야 하고
그 전에 결혼한 남편은 아내가 35살 되기 전에 가능한 한
일 년이라도 당겨서 철이 들도록 그 수준으로 도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부부간에는 말이 맞는 말이 맞는 말이 아니라
상대에게서 "참 고맙다!"라는 마음이 일어나도록 하는 말이
맞는 말이다.
하나님의 신비를 이해하십시오.
나를 사랑하기 작정한 그 사랑의 힘을 믿는 것입니다.
1. 나를 사랑하셔서 변화 시켜 주셨지 가르쳐 주어서 변하지
않았습니다.
2. 기다려 주셔서 변화 되었지 조급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3. 동의가 필요합니다.
지식 다음에 주어지는 그 동의
4. 신뢰입니다.
신뢰하고 의지하기로 결정하세요.
뒤돌아보지 않겠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