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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5. 13.
도요타자동차의 이익이 전년보다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코로나 사태와 차량용 반도체 부족 등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도요타는 어제(12일) 2020회계연도(2020년4월~2021년3월) 실적을 발표했는데요. 매출은 전년보다 9% 감소한 27조2145억엔(약 282조원)이었지만, 순이익은 전년보다 10% 증가한 2조2452억엔(23조30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2020회계연도 전반(2020년4월~9월)에 코로나 사태로 판매가 급감했지만 후반(2020년10월~2021년3월)에 회복됐고, 자동차 금융수익이 증가한게 증익 요인이었다고 도요타는 밝혔습니다.
어떻게 된걸까요? 이익은 전년보다 오히려 늘고, 판매도 크게 줄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올해는 어려워질 것 같다고요? 하긴 올해 또하나 변수가 있긴 합니다. 지난 3월19일 터진 일본 차량용 반도체 회사 르네사스(Renesas)의 큰 화재입니다. 일본차를 중심으로 전세계 자동차회사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이 회사 주력공장이 7월에나 완전복구된다고 해서 특히 일본차 회사들이 난리였습니다. 노무라증권은 르네사스 영향만으로 세계 자동차회사의 4~6월 생산이 160만대, 그 중 일본차 생산이 120만대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지요.
▲ 5월12일 도요타의 곤 겐타 CFO가 2020회계연도 결산 발표 이후의 온라인 질의응답 시간에 NHK 기자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도요타 유튜브 캡처
그럼 ‘제일 먼저 도요타가 큰 피해를 입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겁니다. 도요타 하면 ‘저스트인타임(Just In Time)’ 즉 적기생산, 재고를 최소화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재고를 쌓아두지 않는 도요타이니, 르네사스 화재로 반도체가 모자라 생산을 못해야 정상이겠죠. 더 아는 분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르네사스 화재가 3월19일 났으니 피해는 도요타의 올해(2021년4월~2022년3월) 실적에 반영되겠구나”라고요.
◇ 도요타 작년 순이익, 전년보다 10% 증가... 올해 판매 1055만대로 사상최대 수준 될듯
그런데 도요타는 “(르네사스 화재를 포함한 반도체 부족사태) 영향이 거의 없다”고 12일 결산 발표 때 말했습니다. 도요타는 올해(2021년4월~22년3월) 전망도 발표했는데요. 올해 순이익이 전년 대비 2% 증가한 2조3000억엔(약 24조원)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상대로만 된다면, 역대 최고에서 2000억엔 모자라는 호실적입니다. 매출은 10% 증가한 30조엔, 영업이익은 14% 증가한 2조5000억엔으로 예상했지요.
도요타그룹의 올해 예상 판매대수는요? 네, 작년보다 6% 늘어난 1055만대로, 역대 최고 수준이 될 전망입니다. 전세계 자동차회사들이 반도체 부족으로 줄줄이 감산을 하고 있는데, 도요타는 영향을 안받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날 결산 발표 이후 도요타 경영진과 내외신 기자들간의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는데, 안그래도 기자들이 저와 똑같은 궁금증에 대해 대신 질문해 주더군요. “여러 악재가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전년보다 순이익이 증가했다. 이게 가능했던 최대 요인은 무엇인가? 올해도 어려운 환경 속에 높은 이익을 예상하고 있는데 배경이 무엇인가?”라고요.
여기에 대해 도요타의 곤 겐타 CFO(Chief Financial Officer)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반도체 수급 상황이 핍박받고 있는 것은 리스크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문제가 수십만대 단위의 생산 감소로 이어지는 등 (도요타에) 큰 영향을 주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다만 리스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올해도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섣부르게 예측하지는 않겠다.”
즉 연간 1000만대를 생산하는 도요타의 CFO가 공식적으로 “연간 수십만대 감산 수준의 영향도 없다” 즉 ‘전체 생산에서 몇퍼센트 감산 수준의 영향도 없다,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는 취지로 얘기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올해 예상판매를 전년보다 더 늘려 역대 최고수준으로 잡았을 겁니다.
여기에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르네사스 화재 때문에 일본차 회사에 집중될 수 있다는 반도체 부족 사태의 영향이 왜 도요타에는 없는 걸까요? 저스트인 타임, 재고 안쌓기로 유명한 도요타가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반도체 부족 사태에서 도요타의 피해가 왜 없는지, 도요타는 왜 이런 대형 위기에 강한지 설명하기에 앞서, 우선 ‘도요타생산방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도요타생산방식은 저스트인타임, 무다(낭비) 줄이기, 간반(看板)방식, 가이젠 등 여러 단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만, 저는 ‘도요타생산방식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노 다이이치(大野耐一·1912~1990)전 도요타 부사장의 말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오노 전 부사장에게 누군가가 ‘도요타생산방식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오노는 이렇게 애기했다는군요. “도요타생산방식은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방법”이라고요. 어떤 정해진 틀이 있는게 아니라, 어떤 일을 할 때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내도록 끊임없이 자문하고 생각하는 주체적 인간을 길러내는 게 핵심이라는 얘기일 겁니다.
그래서 오노는 도요타생산방식이 매뉴얼처럼 고착화되는 것을 무척 싫어했습니다. 그런건 진짜 도요타생산방식이 아니라는 겁니다. 시대에 따라 또 상황에 따라 어떻게 개선해야 좋을지의 각론은 계속해서 바뀌고 진화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 도요타의 2020회계연도 1~4분기 영업이익을 전년 대비 증감으로 보여주는 그래픽. 1,2분기에 줄었다가 3,4분기에 전년보다도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 10년 전 동일본대지진에서 교훈 얻은 도요타, 반도체 등 대체 어려운 부품 재고를 기존 1개월분에서 4개월분으로 늘려 놓았던게 주효
즉 도요타의 강점은 당면 위기를 당장 해결하는데만 급급하지 않고, 그것을 통해 앞으로 어떻게 개선해야 좋을지를 끊임없이 사고(思考)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번 반도체 부족사태, 르네사스 화재 사건에서도 도요타가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이유, 위기를 남들보다 더 잘 극복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등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도요타는 서플라이 체인(supply-chain) 전체에서 반도체 등의 재고를 이전의 4배로 쌓아놓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공급망 전체에서 종전에 1개월분을 갖고 있던 것을 4개월분으로 늘려놓고 있었다는 거죠.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반복 드리지만 도요타의 강점, 즉 과거의 실패에서 배우는 것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필요 최소한의 재고만을 가지는 것이 도요타 생산의 강점이지요. 그래서 도요타가 직거래하는 부품사는 재고량을 각자 판단한 뒤, 적기에 도요타에 납품을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도요타에 반도체를 공급해왔던 르네사스(이번에 화재 난 그 회사입니다) 공장이 멈추고 도요타 공장 전체의 생산이 중단되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공급망 아랫단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도요타가 파악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굴렀던 쓰라린 경험이었지요.
이후 도요타는 천재지변 등에 대비하기 위해 각 부품회사에 ‘안전 재고’ 확보를 요청했고, 이런 식으로 공급망 전체에 재고를 쌓았습니다. 이때 도요타가 특히 주목한게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대체가 어려운 품목’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요타 주도로 부품사에 일정량의 재고 확보를 요구하기로 했지요. 반도체를 포함한 중요 부품에 대해, 공급망 전체에서 1개월분의 재고를 가지고 있던 것을 4개월분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동안처럼 재고를 줄여 효율을 높이는 것도 좋긴 하지만, 재난이 일어났을 때의 큰 피해 예방을 우선시한 것이었습니다. 공장 가동을 못하면 그 피해가 도요타에만 가는게 아니라 모든 협력사에 미치게 되겠지요. 이런 전체적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는게 당장의 재고 효율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겁니다.
이때 도요타가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 반도체였고요. 덴소·아이신처럼 도요타에 반도체를 사용한 핵심부품을 공급하는 관계사들이 적극 응했습니다. 예를 들어 덴소의 재무상태표 상에서 재고를 나타내는 ‘정리 자산’이 동일본대지진(2011년3월) 이전인 2009년 말과 비교해서 2019년 말은 2.4배로 증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재고가 며칠 만에 교체됐는지를 보여주는 재고 회전일수도 37일에서 53일로 늘었습니다.
도요타는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거래처 재고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구조도 강화했습니다. 일본 IT 서비스 회사인 후지쓰와 함께 서플라이체인 정보시스템 ‘레스큐’를 개발했습니다. 이를 통해 도요타는 1차 협력업체뿐 아니라, 2·3차, 그 이하의 작은 거래처를 포함해 방대한 양의 부품 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런 시스템을 활용해 어느 부품이 언제쯤 부족해질 것인지를 부품 제조 초기단계부터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고요. 재해 시의 조기복구도 가능해 졌습니다.
닛케이 등에 따르면, 도요타가 현재 쌓은 반도체 재고로 생산할 수 있는건 7월 말까지라고 합니다. 그때까지는 내부 공급망의 재고만으로도 생산이 가능하다는 얘기지요. 르네사스는 지금도 일부 생산을 재개하고 있는 상황이고, 7월까진 완전복구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니 예정대로만 복구된다면, 르네사스를 포함한 반도체 부족 사태로 도요타가 대량 감산을 할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 도요타의 강점은 위기 극복뿐 아니라, 같은 위기를 반복 않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 있어
일본 업계에 따르면, 화재가 난 르네사스의 이바라키현(茨城)현 나카(那珂) 공장에는 현재도 매일 2000명씩 외부 인원이 들어와 복구를 돕고 있는데요. 외부 인원 중 가장 많은게 도요타 직원들이라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도요타의 면밀한 공급망 관리 시스템을 통해 이미 상황을 파악한 도요타 사람들이 르네사스 제조 현장에 와서 진을 치고 있는거죠. 도요타는 동일본대지진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고 제대로 배운 겁니다. 그래서 반도체처럼 대체가 어려운 부품의 경우, 1차 협력사에 공급망 관리를 위임하는게 아니라, 공급망의 맨 끝단까지 본인들이 직접 파악하고 위기 시에 직접 나서고 있는 거겠죠.
또하나 중요한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 12일 도요타 결산 발표 때 곤 겐타 CFO(Chief Financial Officer)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도요타가 대체부품의 평가 프로세스를 개선한 것이 이번 반도체 위기 때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었죠.
이게 뭔가 하면요. 동일본대지진 때 도요타가 큰 피해를 입은 뒤 “만약 어떤 부품회사가 재해 등 장기적 피해로 오랫동안 생산을 못하게 될 경우, 대체부품 생산을 다른 회사에 맡길 수 있는 빠르고 효율적인 ‘평가시스템’을 도요타가 갖추고 있는가”에 대해 깊이 연구했다는 겁니다.
자동차 부품은 대부분이 안전에 관계되기 때문에, 어떤 부품을 다른 곳에서 급하게 대신 생산하려고 할 때, 그렇게 써도 되는지에 대해 여러 단계의 혹독한 평가를 거치게 됩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경우라면, 재해가 발생해 어떤 공장에서 부품을 생산 못하게 될 경우 같은 제품을 다른 곳으로 옮겨 대신 생산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게 되지요. 도요타는 이런 평가 과정이 최대한 빠르고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뜯어고쳤습니다.
이런 대체품 평가 시스템의 개선이 중요한 이유는 제아무리 도요타라고 해도, 재난 대비를 위해 자사 자동차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의 재고를 1개월치에서 4개월치로 늘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재고를 4개월치로 늘린 것은 도요타가 판단할 때 대체가 어려운 반도체 같은 부품 중심이었고요. 다른 일반적인 부품의 경우, 만약 어떤 공장이 재해로 가동을 중단한다면, 그 공장의 금형 등을 다른 공장으로 옮겨 빠르게 생산한다든지, 혹은 그 부품의 대체품에 대한 평가가 신속하게 이뤄져, 공급 부족이 생기는 일을 막는다는 개념에 가깝습니다. 즉 일괄적으로 재고를 늘린 것이 아니라, 대체 불가 부품과 아닌 부품 등을 세밀하게 구분해 모든 부품 공급망에 대한 디테일한 정보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시간이 지나면 도요타는 반도체에 대해서도 4개월 재고를 확보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개선안을 찾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르네사스 화재처럼 주력 반도체 납품처에서의 공급이 중단될 경우에 대한 더 확실한 대처방안을 찾으려고 할 수도 있지요. 예를 들면 반도체 부품의 규격화, 공통화를 통해 다른 반도체 회사에서 빠르게 생산을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끊임 없이 문제점을 발견하고 끊임 없이 개선하는 것이 도요타생산방식의 본질일테니까요.
사람이나 기업이나 평상시에는 각자의 실력이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진짜 실력은 ‘위기 때 어떻게 대응하는가’로 볼 수도 있겠지요. 또하나 중요한 것은 ‘위기나 실패를 딛고 얼마나 빨리 일어설 수 있는가’입니다. 그리고 ‘그 위기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이겠지요. 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물론 대단한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비슷한 위기가 나중에 다시 일어났을 때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것’일겁니다. 동일본대지진 때 자동차회사의 전공장이 멈추는 일은 도요타만 겪은 것이 아니지요. 하지만 도요타만큼 그 위기에서 제대로 교훈을 얻어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을 시스템을 구축한 회사는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도요타도 과거에 큰 잘못과 실패를 겪었지만, 그 이후 대응이 다른 회사와 달랐기 때문에 빨리 회복하고 또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도요타가 올해에 역대 최고 수준의 생산·판매와 이익을 예상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은 ‘재고를 쌓지 않는다는 도요타가 왜 반도체 부족 사태에 끄떡없는지'를 알아보았는데요. 다음주 목요일 [최원석의 디코드]에서는 ‘도요타가 미래 자동차시장에서 어떻게 될 것인지, 그것이 한국 자동차산업에는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도요타가 최근 대세라는 전기차·자율주행차 개발에서 상대적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그게 정말인지, 아니면 그들에게 다 계획이 있는 것인지 분석해 보겠습니다.
최원석 / 국제경제전문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