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과 함께 푸르름을 찾아 떠난 여행...2005년 여름휴가
간절곳 찾아 가는 길...2005년 7월 14일 목요일
휴가는 내일부터지만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기 위해 오늘 밤에 출발하기로 했다.
회사에서 조금 빨리 출발해서 6시정도에 집에 도착해서 짐을 꾸리기 시작했는데 이것 저것 준비하다 보니 8시가 넘어서야 겨우 출발 할 수 있었다.
고작 3박4일의 여행인데 준비물은 한짐이다. 옷가지며 먹을 거며 아이스박스까지.
역시 철저하신 우리 마눌님이다.
조금 빠르긴하지만 이렇게 우리의 여름 휴가는 시작 되었다.
포항에 있는 마눌 친구집까지 가고는 싶지만 포항까지 오늘 밤에 가기는 너무 멀어 송정 정도의 바닷가에서 밤을 보내기로 하고 송정을 향해 차를 몰았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송정에 도착한 덕분에 내일 첫 번째 일정인 간절곶에서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 까지 가기 위해 기장, 일광을 지났는데 시간이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정도에서 숙박을 할려고 주위를 살폈는데 잘곳이 없다. 그 많던 모텔들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하나도 없다. 여인숙이나 여관도 없다.
월내를 지나 간절곶에 거의 다와서 까지 잘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 간절곶이 유명하긴 한가 보다.
군데군데 펜션이 보인다. 얼마나 다행인지. 일단 전화를 걸어 물어 봤는데. 4만원이란다. 11시가 넘은 시간에 들어가서 낼 5시 반 정도면 나올 건데 4만원이라니 너무 비싸다. 만원만 깎아 달랬는데 절대로 안 된단다.
집이 거기 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옆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3만원에 해 준단다.
이건 방이 아니라 집이다. 2층 전체를 우리에게 준 것이다.
완전히 대타홈런이다. 방이 없어서 겨우 찾아 온 것이 간절곶 바로 밑에 있는 꽤 괜찮은 펜션에서 자게 되었으니 말이다.
낼부터 계속될 우리의 여행에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징조가 아닐까.
아쉬운 간절곶 그리고 포항으로...2005년 7월 15일 금요일
5시반부터 울어 제끼는 핸드폰 알람소리에 여지없이 눈을 떴다. 일단 날씨부터 확인 했다. 흐린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일단 출발이다. 포항 가서 씻기로 하고 대충 짐만 챙겨서 출발이다.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실망을 금할 수가 없다.
조금 흐린 정도로만 보이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때문에 해맞이는 내일 정동진으로 미뤄야 했다.
아쉽긴 하지만 앞으로 일정이 얼마나 많은 데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 마눌님도 별로 실망하는 기색은 없다. 오히려 아무도 없는 간절곶 여기저기를 다니며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하고는 포항에 있는 마눌 친구집으로 향했다.
언제부턴가 비는 거쳤고 구름사이로 파란하늘이 조금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파란 하늘이 어찌나 반갑던지 여행내내 데리고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우리 마눌님은 파란하늘 자기가 접수했다고 이제부터 걱정하지 말란다. 과연 말 대로 될지.
바닷길 여행을 할려면 31번 국도를 이용해서 감포, 구룡포, 호미곶을 지나 포항으로 가야 되지만 빠른 길로 간다는게 그만 울산 시내로 들어가서 차가 막히는 바람에 더 늦어진 듯한 느낌이다.
남들은 다 출근하느라고 서 있는 길에 우리는 여행을 가기 위해 서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교통체증정도는 짜증낼 일도 아니다.
어렵게 울산을 통과하고 경주를 지나 포항에 도착했다. 예전에 가본 곳이라 그리 어렵잖게 찾아 가서 마눌 친구가 차려주는 아침밥을 거나하게 먹고, 마눌 친구딸인 수경이랑 조금 놀아 주고 씻고 출발.
강구항에서 축산항으로-영덕해맞이공원...2005년 7월 15일 금요일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동해 여행의 시작이다.
포항까지 오는 사이 구름은 완전히 사라졌고 파란하늘에 햇빛은 쨍쨍이다. 정말로 우리 마눌님이 파란하늘 접수했나보다. 기특하다.
차를 돌려 호미곶까지 가서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도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을 것 같아 그냥 7번국도를 이용해서 영덕으로 갔다.
제일 먼저 차를 세운 곳은 강구항이다. 강구항에 들어서는 순간 여기가 영덕이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입구의 다리위에 커다란 게의 모형으로 시작되는 것이 심상치 않더니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자 눈앞에 게만 보이는 듯 했다.
수족관에도 온통 게 천지고, 항에 있는 시장에도 각종 어류들이 있었지만 주종을 이루는 것은 역시 대게였다. 과연 대게하면 영덕을 떠올릴 만 했다.
그리고 이 항이 드라마 그대그리고나를 촬영했던 곳이란다. 최불암 아저씨랑 양택조 아저씨 나오는 그 드라마.
아침을 너무 푸짐하게 먹은 뒤라 게맛은 안 보고 일단 출발할려고 차에 탔는데 주차관리 아저씨가 우리가 여행중인 것을 알아 보시고는 축산항으로 가는 길에 있는 해맞이 공원을 소개해 주어서 그길로 가 보았다.
여행내내 그 주차관리 아저씨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훌륭한 길이었다. 강구항을 벗어 나자 말자 아름다운 바다가 시작되었는데 운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때부터 시작해서 여행이 끝날 때 까지 "와", "좋다"라는 말을 백번을 더 했을 것이다. 길이 너무 아름다워 도저히 그냥 지나 칠 수가 없어 갓길에 차를 세우고 경치를 구경하고 있는데 저 앞에 휴게소 같은게 보이고 풍차가 돌아가는 것도 보여서 거기가 주차아저씨가 소개해준 곳인가 하고 가 봤는데 맞았다.
깎아지른 절벽에 바다를 잘 볼 수 있도록 난간도 만들고, 군데군데 의자도 만들어 두어 쉬엄쉬엄 바다를 구경할 수 있도록 만들어 두었다. 하얀 등대도 있고, 해당화 꽃밭도 잘 꾸며져 있어 바다와 잘 어울렸다. 한참이나 넋을 놓고 구경하다가 어쩔 수 없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다음 일정을 향해 출발했다.
아까 봤던 거대한 풍차는 영덕 풍력 발전소였다.
이 길이 아마 20번 지방도의 강구항과 축산항을 잇는 강축도로라고 불리는 곳인 것 같다. 동해를 여행할 계획이라면 꼭 가보기를 권하고 싶은 곳이다.
아쉽지만 절경을 뒤로 하고 계속해서 동해를 따라 북쪽을 향했다. 우리가 가장 먼저 모래를 밟은 곳은 고래불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해수욕장이다. 모래밭 바로 앞에 주차를 할 수 있어 신발을 벗고 모래밭으로 들어섰다. 내일이 개장이고 오늘은 평일이라 사람은 별로 없었다. 모래가 너무 부드럽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모래위에 우리 마눌님이랑 발자국도 남겨보고, 파도가 지나간 모래위에 마눌님이름이랑 내이름을 하트모양 양쪽에 적는 남이 보면 닭살 돗는 놀이도 했다. 사람이 없으니까 좋다.
고래불해수욕장을 나와 다시 7번국도를 이용해서 간곳은 백석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엘 갔다기 보다는 쉬러 간 것이다.
소나무밭에 자리를 펴고 한 30분 정도 잤을까 깊은 잠은 못자고 일출보너라 아침부터 서두런 피로함만 씻을 정도로 쉬고 오늘의 점심인 라면 끓여서 밥까지 말아 먹고 출발하기전에, 나는 어제 못한 차 정비도 하고, 우리 지영이는 열심히 설거지 했다.
비록 잠자고 밥먹기 위해 온 곳이긴 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진 몇장 연출하고 다시 북쪽으로 출발.
추암해수욕장 가는길...2005년 7월 15일 금요일
울진은 그냥 통과하고 다음으로 간 곳은 삼척이다. 추암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해신당이라는 곳이 있어 가 봤는데 시간이 지나 표는 안 받는 것 같아 일단 올라 가 보기로 했다.
들어서자 말자 거대한 남근모형의 목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 마눌님은 첨에 그게 뭔지 몰랐단다. 너무 순진한거 아닌가. 파란바다에 크고 작은 바위들이 무척 많고 역시나 이곳도 물은 무지 맑다.
애절한 표정으로 고함치는 남자 석상이 있는데 그 밑에 애바의 전설이 적혀 있다. 이제야 남근석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처녀의 몸으로 죽은 여자의 혼을 달래기 위해서란다.
나중에 알아 봤더니 꽤나 유명한 곳이었다.
계속해서 추암해수욕장을 찾아 가는 길에 용에게 수로부인을 빼앗긴 순정공이 해가사를 지어 불렀다는 곳에 해사가의 터라는 이름으로 기념비가 세워져 있어 거기서도 당근 사진한잔 찍을려고 내렸는데, 건너편에 추암해수욕장과 촛대바위가 나타났다.
추암해수욕장이 바로 옆에 있다는 기쁨에 차를 몰고 가는데 우리 지영이는 용이 겁쟁이라고 놀린다. 나는 해가사랑 구지가랑 햇갈려서 용이 거북인줄 알았다.
얼마 안가서 추암해수욕장이 나왔다. 생각보다 볼게 많다. 촛대바위, 거북바위, 해암정 그리고 겨울연가 촬영지 등등...
사실 드라마 촬영지는 별로 볼게 없다. 지금은 민박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드라마 촬영지였다는 것뿐 별로 볼만한 건 없다. 촛대바위 가는 길에 방해만 될 뿐이다.
전망대에 올라가 보니 촛대바위만 있는게 아니었다. 촛대바위 주변에 아름다운 기암괴석이 즐비해 있고, 바닷물은 역시나 맑고 깨끗했다. 정말이지 물속까지 뚜렷하게 보였다.
우리 마눌님은 전망대 망원경이 공짜라서 젤루 좋단다. 역시 우리 마눌님이다.
여기서도 실컷 바다구경하고 내려오는 길에 정말 코끼리랑 똑같이 생긴 코끼리 바위 사진 한 장 찍어 주고 해암정이라는 정자가 있길래 잠시 구경하고 왔다.
심시의 시조 심동로라는 선비가 관직을 버리고 내려와서 지어 살던 곳이라고 한다. 이렇게 훌륭한 곳에 정자를 짓고 바다를 보고 일출을 감상하고 틈틈이 고기도 잡고 누구나가 꿈꾸는 노년의 삶을 이 선비는 고려시대에 이미 살았었나 보다.
정말 부럽다.
해수욕장은 그렇게 넓지는 않고 동해의 여느 해수욕장과 별반 다를 건 없고 횟집과 음식점들이 모래밥 바로 옆에 벽처럼 가로 질러 있다는 정도다 풍경을 헤치는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볼만은 하다. 호프도 팔고 통닭도 판다. 바닷가에서 먹는 통닭은 더 맛이 날 것 같은 느낌이다.
이렇게 추암해수욕장 구경은 끝내고 이제 오늘의 숙박지 정동진으로 갈 차례다. 시간이 되면 강릉까지 가서 경포대랑 오죽헌까지 보고 정동진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동해의 빼어난 절경이 우리의 일정마저 바꿔버렸다.
밤은 깊어 정동진으로...2005년 7월 15일 금요일
망상해수욕장은 그냥 통과하고 정동진으로 직행할려고 했는데 길이 이상하게 꼬이는 바람에 망상해수욕장가는 길로 가버리고 말아서 얼떨결에 망상해수욕장을 가게 되었다.
늦은 시간이라 별 생각없이 입장할려고 하는데 이런 주차비를 받는다 옆에서 마눌님 투덜거리지만 이까지 온거 돌릴수는 없어 그냥 들어갔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순간 투덜거리던 마눌님이 조용해졌다. 안 보고 갔다면 후회할 뻔 했다. 모래가 부드럽기도 했지만 모래밭이 어찌나 넓던지 입이 쩍 벌어 졌다.
이렇게 멋진 해수욕장을 그냥 지나칠려고 했다니 큰일 날뻔 했다. 어쩌면 길이 꼬인건 망상해수욕장이 우리를 오라고 불렀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 여행에는 이상하게 이런 행운이 자주 찾아온다. 아까 봤던 주차장아저씨처럼.
밝을 때 봤으면 더 좋았을 망상해수욕장을 단지 밟아 봤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이제 정말로 정동진을 향해 출발 했다.
참 망상해수욕장의 모래를 밟자 모래에서 갈매기 소리가 났다. 정말 신기했다. 우리 지영이는 재밌다고 계속 삑삑소리를 내면서 걷고 나도 따라서 걸어가고 재밌었다.
7번국도를 따라 가자 의외로 쉽게 정동진 표지판이 나타났다.
어렵잖게 정동진에 도착하자 사진으로만 봤던 선쿠루즈란 이름의 커다란 배가 나타났다. 정말로 컸다. 우선 거기부터 찾아갔는데 사고를 치고 말았다. 주차하다가 뒤에 있는 차를 꽝 들이 받고 말았다. 소리가 꽤 컸는데 내려보니 밤이라 그런지 아무 표시도 안났다. 이리보고 저리 보고 아무리 봐도 흔적이 없다. 가슴을 쓸어 내리며 주변을 둘러 봤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웅성이고 있긴 한데 우리한테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찔리기도 하고해서 내일 다시 오기로 하고 그냥 내려와서 숙박지부터 찾기로 했다.
숙박지 찾아 가는 길에 모래시계공원이란 곳이 있었는데 거기에 주차를 하니까 아줌머니들이 민박집 표지판을 들고 여기저기 다니고 있다. 그중 한분이 오셔서 집도 깨끗하고 좋다며 우리보고 민박하란다. 오늘은 좀 더 근사한 곳에서 잘려고 했는데 우리 지영이 2만원이란 말에 앞뒤 안가리고 아주머니 따라 간다. 일단 방부터 보고 결정하기로 했는데 따라 가는 길에 결정한거나 마찬가지다.
결국 오늘 밤은 2만원짜리 민박집에서 보내게 됐다. 이 2만원짜리 민박집이 여름 성수기나 년초가 되면 10만원도 넘어간고 아주머니가 살짝 귀뜸해준다. 아주머니는 정말 친절하시다. 냉장고도 빌려주고 여기저기 설명도 잘 해주시고.
오늘 해수욕장 오픈해서 내일부터 사람 많이 오면 더 비싸 질 지도 모르는데 어쨌든 좋은 일이다.
이제 민박은 잡았으니까 정동진 관광을 할 차례다. 조각공원은 내일 일출보고 볼거니까 오늘 밤에는 모래시계공원만 보기로 했는데 별로 볼 건 없다. 거대한 모래시계가 하나 딸랑 있을 뿐이다.
공원은 잠시만 보고 모래밭으로 갔는데 모래는 굵고 발도 아프고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다. 그래도 정동진을 유명하게 만든 정동진역까지 꾸역꾸역 가서 사진한장 딸랑 찍고 왔다.
모래밭에는 밤이 늦었는데도 모타바이크타는 사람으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강릉에서 기차로 정동진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정말 정동진역말고는 건물이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산으로 간 배를 비롯해서 여기저기 모텔이 즐비하고, 길가에는 음식점으로 넘쳐난다.
이 마을 주민이야 돈벌이가 되어서 좋겠지만 여행하는 사람으로 볼때 좋다는 생각은 안 든다. 드라마하나가 마을을 이렇게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고요한 마을로 남아주었으면 더 좋았을 마을이 이렇게 변해 버린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다.
점심을 늦게 먹어서인지 라면이 인제야 불고 있는지 밥 생각이 별로 없어 저녁은 생략하고 내일 일출을 위해 일찍 자 두기로 했다. 사실 그리 이른 시간은 아니다.
민박집 아주머니 말로는 5시면 해가 뜬다니까 내일은 4시반에 일어나야 된다. 아무래도 정동진이라 간절곶에 해가 뜨는 시간하고는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내일 아침에는 맑은 하늘에서 뜨오르는 해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마눌님이 접수한 파란하늘이 또 한번 실력발휘를 할수 있을지 기대해 보면서 잠을 청해 본다.
정동진해돋이...2005년 7월 16일 토요일
오늘도 핸드폰 알람소리에 잠을 깼다. 집에 있었다면 상상도 못할 시간인 4시반에 눈을 뜬 것이다. 해돋이를 못보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때문인지 밤에 잠을 설치기는 했지만 일단 눈을 뜨자말자 날씨부터 확인했다. 일단 비는 내리지 않는다. 하늘을 보자 구름이 여기 저기 펼쳐져 있다. 조금 걱정도 되지만 어쨌든 한 가닥 기대를 안고 바다로 향했다.
4시반이 조금 넘은 시간에 바다로 갔는데 벌써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해를 기다리고 있다. 수평선 너머로 구름이 잔뜩끼어 있다. 해를 못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점점 깊어지지만 한조각 기대를 걸고 진득하니 기다리다가 그 새벽녘에 무슨 맘을 먹었던지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근데 생각보다 그렇게 차갑지는 않다. 바닷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사이 시간은 흘러가고 구름 주위의 붉은 빛이 점점 진해지고 흰색에 가까운 해가 슬며시 얼굴을 내밀었다. 너무 흐릿한데다 구름속에서 나타난 해라 아무도 못보고 있었는데 우리 지영이만 본 것이다.
역시 마눌님이 접수한 파란하늘의 효력인지 구름이 겆히고 해는 점점 더 제 색깔을 내기 시작한다.
태어나서 이렇게 아름다운 색깔을 처음 본 듯하다. 어제 얼굴을 안 보여 준 것이 미안했던지 몇 번이나 색깔을 변해 시켜주면서 감동을 준 것이다.
사진도 여러장 찍어 보았지만,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쉽게 보여 주지 않으려는 듯 아무리 찍어도 눈으로 보는 색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파란색과 같이했고 파란색에서 무한한 감동을 얻었었는데 유일한 붉은 색의 감동을 매일같이 보던 해가 주었던 것이다.
신사임당과 율곡 그리고 경포대...2005년 7월 16일 토요일
아침은 모래시계공원 앞에 있는 식당에서 황태해장국으로 해결하기는 했는데 짜기만하고 아무 맛도 없다. 어쨌든 아침도 먹었고 원래는 해돋이를 보고 민박집와서 한숨 자고 출발하기로 했지만 그러면 못 일어날 것 같아 씻고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민박집 아줌마한테 인사하고 냉장고에 있던 곶감 몇 개 슬쩍하고는 어제 사고쳤던 배를 다시 찾아 갔다. 거기 조각공원이 있으니까.
입장료 5천원 우리 마눌님은 여기서 잠시 고민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우리 마눌님이라도 여기까지 와서 안 들어 갈 수는 없고 일단 입장. 공원을 참 이쁘게도 잘 꾸며 놨다. 특히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가면 보이는 큰손은 정말 인상적이었다.그렇지만 공원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에 비하면 공원의 조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리의 "와" "좋다" 감탄사가 또 시작됐다. 관광객이 그렇게 많이 오는 데도 물은 무척이나 맑았다.
공원을 나와서 배위에 있는 전망대에서 또다시 한참이나 바다를 바라보다가 큰배옆에 있는 작은 배에 있는 참소리박물관으로 갔는데 에디슨 발명품들과 소리에 관한 여러 가지 것들이 있었는데 대충 둘러 보고 나왔다.
참소리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조그마한 정원이 있는데 꽤 이쁘게 잘 꾸며져 있다. 그리고 작은 배 옆에 옛날 기차카페가 있어 들어가 봤는데 아무것도 없다. 큰배가 기차를 잡아 먹어버렸나 보다. 옛날에는 꽤 괜찮았던 카페였을 건데 조금 안 됐긴 하다.
이렇게 정동진도 다 보고 이제 경포에 갈 차례다. 경포에도 마음만 먹으면 갈곳은 많지만 다 가보지는 못하고 오죽헌과 경포호 그리고 경포해수욕장만 보기로 했다.
먼저 간 곳은 신사임당과 율곡이이가 태어난 곳인 오죽헌이다.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다.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곳은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주제로 만든 화단이다. 수박, 가지, 맨드라미, 봉선화, 오이등으로 만들어진 화단인데 꽤 잘 꾸며져 있었다. 그 중에서 한창 제철을 맞은 가지나무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 오죽헌안으로 들어 갔다.
오죽이라고 불리는 까만 대나무가 곳곳에 나 있었는데 그래서 오죽헌이라고 한다. 그저 신사임당이란 이름만으로 대한민국 현모양처의 대명사 정도로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다가 실제로 그분의 그림을 비롯한 작품들을 보니 왜 그렇게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오천원권에는 율곡이이와 오죽헌이 있다. 그리고 벼루하나가 있는데 율곡이이가 어린시절 사용했다는 벼루로 왕이 친필로 찬양하는 글을 남겨서 보관하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죽헌내에는 그 벼루를 보관하는 어제각이라는 곳이 있다.
오죽헌에서 나와 이번 여행의 유일한 기념품인 손수건 한 장을 사고 다음으로 간곳은 경포호다. 경포대에도 올라보고 싶었지만 입장료도 내야 되고 날씨도 덥고 그냥 통과하고는 호수로 갔다. 바다 바로 옆에 이렇게 넓은 호수가 있다는게 신기하다. 자전거 타기에 꼭 맞는 곳이다. 날씨만 안 더웠으면 한바퀴 돌아 보고 싶었지만 너무 더운 날씨 때문에 자전거는 엄두도 못내겠다.
경주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정말 이해가 안 갔었는데 여기는 호수를 따라 한바퀴 돌아 보고 싶은 욕구가 저절로 생긴다.
호수를 보고 다음 간 곳은 경포해수욕장이다. 부드러우 모래가 아니다. 일반 해수욕장의 모래보다 한참 길다. 그렇지만 정동진 모래처럼 발이 아프거나 하지 않고 느낌은 꽤 좋다. 동해의 해수욕장중 몇손안에 들 정도로 넓어보인다. 앞으로도 넓고 옆으로도 넓다. 해수욕장은 어제정도에 개장한 것 같고 사람들도 몇몇 있긴 한데 아직 그렇게 붐비지는 않는다.
마눌님의 요청에 의해 밀려오는 파도를 헤치고 발등 사진도 두장이나 찍었다. 어렵게 찍은 덕분에 사진은 예술사진 수준이다. 우리 마눌님 무척 맘에 들어한다.
주문진항의 오징어...2005년 7월 16일 토요일
경포해수욕장을 나와서 간 곳은 주문진항이다. 그냥 지나칠려다가 눈 앞에 주차공간이 나타나길래 얼떨결에 차를 대고 항으로 들어 섰는데 장난아니게 크다. 배다 무척 많다. 태어나서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배를 본 게 처음 인 것 같다.
대부분 오징어 잡이 배인지 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밤에 불켜진 모습을 봤으면 장관일 것 같은데 조금 아쉽다. 항을 보고 간 곳은 항에 있는 시장이다. 도로가로 항을 끼고 시장이 형성 되어 있는데 오징어가 태반을 이룬다. 오늘 오징어가 많이 잡혔는지 12마리 만원이란다. 우리 마눌님 군침을 흘리고 있는데 시장 아줌마들 모듬회 한접시 2만원이라며 우리를 유혹한다.
아줌마들 유혹에 거의 넘어 가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 나타나서 초장이랑 사서 먹는 것 보다 회센터 가서 먹는게 싸다고 자기집 가잔다. 그리고 오징어는 먹고싶은 만큼 공짜로 준단다. 오징어가 공짜라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다. 3만원이란 말에 우리 마눌님 10초정도 고민하더니 오징어 공짜라는 말에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본요리가 나오기 전에 오징어회를 비롯해 멍게랑 성게가 먼저 나온다. 우선 오징어회부터 열심히 먹고 나머지를 먹고 있는데 본요리인 모듬회가 나왔다. 양도 괜찮고 맛도 괜찮다.
배가 조금 부르긴 한데 공짜로 먹을 만큼 준다는 오징어회를 마다하고 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징어회를 더 시키자 두말않고 두 마리를 더 쓸어 준다. 역시 맛있다. 갓 잡아 올린 오징어라 그런지 여느 오징어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신선하고 맛있다.
오징어 서비스 두 마리에 자청해서 인터넷에 광고 올려 준다고 팔팔횟집 식당아줌마께 약속하고, 몇 번이나 잘먹었다고 인사하고 그러고 겨우 주문진항을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매운탕 맛도 여느 횟집에 뒤지지 않게 맛있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맛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어제 싼 민박집에서 잔 덕분이다. 선크루즈나 하다 못해 모텔에서 잣다면 오늘 이렇게 맛난 회를 먹을 수 있었을까 어제 그 민박집 아주머니께 다시 한번 감사 드린다.
하조대와 해수욕장...2005년 7월 16일 토요일
회를 배불리 먹고 남애항을 향해 가는 길에 비포장길이 나왔는데 기상망양해수욕장이란 표지판이 있고 소나무 숲이 있길에 들어가서 한숨 자기로 했다.
이틀동안 해돋이 보러 다니느라 잠을 못잔데다 점심까지 든든하게 먹고나니 잠이 쏟아져 내렸다. 40분 정도 푹 잔 것 같다. 자고나니 한결 기분이 좋아 진다. 비포장길로 가기 싫어 다시 큰길로 나와 간 곳이 남애항이다. 그냥 자그마한 항구다. 시간이 많으면 내려서 바다도 보고 배도 보고 하고 싶지만 갈길이 바빠 하조대로 향했다.
조선의 개국공신 두명이 만년을 보내기 위해 정자가 하조대라고 한다. 깍아 지른 절벽위에 지어진 정자에서 보내는 만년이라 생각만 해도 뿌듯하다. 정자로 올라가는 길이 너무 가파러고 험해 보여서 정자로는 못가고 등대쪽으로 갔는데 역시나 절경이다. 여기서도 "와" "좋다"를 연발했다. 너무 좋아 차마 발길을 떼지 못하고 있다고 지나가는 커플들 사진을 몇장이나 찍어 줬는지 모르겠다.
눈에 담아가는 아름다움 만큼이야 할까마는 그래도 도저히 그냥 나올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자꾸만 뒤로 돌아 가는 눈을 잡아끌고 겨우 등대에서 나왔지만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아 한참이나 더 바다를 바라보다가 글씨가 지영이는 이쁜 안내소앞에서 사진한장 찍고, 나는 아주 허럼하게 지어진 음식점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 하조대해수욕장으로 갔다.
하조대해수욕장은 모래는 무척 부드러웠고 역시나 길이도 길고 넓기도 무지하게 넓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보는 마지막 해수욕장이라 바닷물에 들어 가서 열심히 놀다가 왔다.
계획대로라면 낙산사까지 가서 불타버린 가슴아픔 유적지를 보고 올려고 했지만 정선까지 갈 길이 너무 멀어서 동해안 여행은 여기서 끝맺기로 했다.
자 이제 부터는 동해가 아니라 동강이다.
가자 동강으로...2005년 7월 16일 토요일
동해를 눈속에 가슴속에 머릿속에 담아 놓고 다음으로 갈 곳은 동강이다. 동강으로 가기 위해 왔던 길을 돌아 남애항을 조금 지나 현남이라는 곳에서 동해안고속도로로 차를 올렸다. 동강까지 가는 첫 번째 여정은 동해안 고속도로에서 진부IC까지가서 정선까지 59번 국도를 타고 가는 것이다. 중간에 고속도로휴게소에서 내일 할 래프팅 예약하고 정선, 영월, 평창 안내지도 까지 챙겨서 다시 정선을 향해 출발이다.
진부IC에서 내려 정선으로 가기 위해 59번 국도로 차를 올렸는데 역시 파란색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지금 보는 파란색은 동해에서 보던 것과는 틀리다. 남쪽지방에서 보던 산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이름 없는 산들 까지 높고 험하다. 나무도 쭉뿍 뻣어있다. 밭에는 대부분 옥수수와 감자가 심겨져 있다. 역시 강원도다. 교과서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같다. 강원도 하면 고랭지 농업. 고랭지농업 하면 감자랑 옥수수 옛날 생각 조금 하면서 계속해서 정선으로 향했다.
오늘 저녁에는 계곡에서 고기를 구워 먹어야 되는데 딴건 다 준비 되었는데 아직 고기를 못 샀다. 아무리 다녀봐도 생선은 팔아도 돼지고기는 안 판다. 정선가면 우선 삼겹살부터 사기로 하기 일단은 바다를 대신한 산들을 감상하면서 계속 나아 갔다. 경치가 좋은 다리가 있어 차를 세워 보았더니 몇몇 사람들이 레프팅준비를 하고 있다.
내일 우리가 할거라서 유심히 살펴 보았는데 별건 없다. 준비운동 조금 하더니 그냥 출발한다. 물살이 센곳을 지날 때는 조금 무섭기도 하다.
다시 출발할 때 가지만 해도 머릿속엔 온통 삼겹살로 가득차 있었는데 일순간 내 머릿속에 있던 삼겹살은 사라지고 말았다. 100미터가 넘는 폭포가 길옆에 떡하니 나타난 것이다.
앞뒤 가릴 것 없이 차에서 내렸다. 정확한 높이는 116미터라고 한다. 높은 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정말 장관이다. 이런 장관을 두고 발이 떨어지지가 않아 폭포 밑으로 흐르는 강물에 발을 담그고 폭포와 어우러져 놀고 나서야 다시 출발 할 수 있었다.
동해에서 가지고 왔던 소금과 바닷 모래를 강물에 다 흘려 보낸 느낌이다. 내일 래프팅할 동강의 물이 짜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백석폭포는 길이 600미터의 관을 뭍어 만든 인공폭포라고 한다.
백석폭포를 지나 얼마 안 가서 정선에 도착했다. 정선에 도착하자 말자 정육점부터 찾았는데 입구에 바로 정육점이 있다. 삼겹살까지 샀으니까 이제 먹는 일만 남았다.
고기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멀리 강원도 정선까지 와서 그냥 갈순 없어서 아라리 촌이라는 곳이 있길래 가봤다. 근데 너무 늦어서 들어 갈 수 없다고 내일 오란다. 내일 다시 올 수는 없고 입구에서 사진 한 장 찍어 주고 다음 목적지인 평창으로 출발 했다.
평창 가는 길에 괜찮은 계곡이 나오면 삼겹살 구워 먹기로 하고 삼겹살을 싣고 기분좋게 출발했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모든 계곡에서 취사 야영 금지란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하다니. 몰래 들어가서 구워 먹을 수도 있지만 환경을 사랑하는 우리로서는 그럴 수도 없고, 사실 몰래 들어가서 고기 구워 먹다 들키면 벌금이 만만찮다는 말에 우리 마눌님 쫄아서 절대로 못 들어 간 것이지만.
어쨌든 정선을 벗어나 평창으로 가는 길에 동강자연휴식지라는 곳이 있어 가 봤는데 그 길을 통하면 평창이 아니라 영월로 간단다. 길이 이쁠 것 같아 가보고는 싶지만 늦은 시간이라 망설이고 있는데 진탄나루라는 곳을 소개해준다.
마음 같아서는 영월까지 가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움직이고 싶긴 하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라 평창까지만 가서 잠을 자고 내일 날이 밝으면 동강을 구경하면서 영월까지 가서 래프팅을 하기로 하고 평창으로 가고 있는데 진탄나루가는 길 표지판이 나온다.
잠시 고민하다가 진탄나루에 가보기로 했다. 길이 너무 아름답다. 밤이 어둑어둑해지자 동강의 물이 연기를 뿜어 내듯 점점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중간중간에 민박집도 몇 개 보여 여기서 자고 내일 내려갈까 고민도 하면서 조금 더 내려 가 보았는데 진탄나루 거의 다와 휴게소 옆에 꽤 괜찮아 보이는 민박집이 하나 보인다.
오는 길에도 민박집이 몇 개 보이긴 했었는데 방이 별로라서 그냥 왔는데 너무 어두워져 왠만하면 자고 갈려고 일단 방만 한번 구경하기로 했는데 방이 우리 마눌님 마음에 쏙 들어왔다. 나무향도 좋고 방도 지은지 얼마 안 되었는지 깨끗한 편이다. 주인 할아버지 너무 멋있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하신 분인데 친절하고 특히나 방값도 화끈하게 깍아 주시고 너무 좋다.
오늘은 여기서 묵기로 결정하고 방값계산하고 할아버지랑 이야기 중에 우연히 래프팅이야기가 나왔는데 자기가 아는데 있다고 소개시켜 준단다. 고속도로휴게소에서 예약해 둔게 있어 어쩔까 하다가 여기서 하는게 더 좋을 것 같아 앞에건 취소하기로 하고 여기서 다시 예약했다.
오늘도 계속해서 일이 잘 풀린다. 그래서 기분이 또 무지 좋아 진다.
씻고 구경하는 건 나중 일이고 일단 고기부터 먹어야 겠다. 머릿속에 온통 삼겹살만 들어 있다. 우선 삽겹살부터 굽고, 다음에 소세지 그리고 감자까지 구워 먹고 김치 볶음밥까지 만들어 먹었다. 역시 우리 마눌님의 준비는 철저하다니까.
배불리 먹고 나니까 잠온다. 낼은 조금 늦게 일어나도 되지만 그냥 일찍 자기로 했다. 밥 먹은 거 치우고 며칠동안의 여행으로 지전분해진 차 대충 정리하고 씻고 잠나라로 빠졌다.
내일은 비가 조금 내려 주길 바라며. 래프팅하기에는 아무래도 쨍쨍 내리 째는 햇살보다 조금식 흩뿌려 주는 비가 좋을 것 같아서.
동강래프팅...2005년 7월 17일 일요일
9시부터 래프팅 하기로 됐었는데 조금 일찍 일어나 동강 구경하고 아침으로 즉석 북어국 먹었는데 어제 먹었던 황태해장국 보다 낫다. 아침을 먹고 있는데 느닷없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첨엔 빗발이 제법 세더니 점점 약해져서 래프팅하기 딱 좋을 만큼만 내린다. 정말 신기하다. 날씨가 말대로 다 된다. 그렇게 밥을 먹고 정리를 하고 얼마 안있어 래프팅 팀들이 속속 도착했다. 민박집이 휴게소 바로 옆이었는데 휴게소가 거의 래프팅할려는 사람들과 장비들로 가득 찰 정도였다.
우리와 같이 래프팅 할 팀은 우리 옆방에 묵었던 9명의 남자들이다. 조교까지 남자만 11명에 여자는 우리 마눌님 혼자다.
안전모도 받고, 구명조끼도 받고 노도 받았는데 우리 마눌님한테는 모든게 크다. 작은 거 달랬더니 없단다. 어쩔 수 없이 꽉 쪼우는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장비를 갖추고 나루까지 5분정도 걸어서 출발. 나루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팀들이 와서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른 팀들은 준비운동도 하고 몸에 물도 뿌리고 준비들을 하는데 우리팀은 별다른 준비 없이 배를 띄우고 출발했다.
출발지는 물살이 완만한 편이라 별다른 어려움 없이 넓은 강물까지 갈 수 있었는데 조금 깊은 곳까지 가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둥둥 떠 다닌다. 게임을 해서 물에 빠뜨리는 것 같다.
우리라고 그냥 지나 칠 수는 없다. 양쪽에 앉은 편이 편을 먹고 배를 굴려서 상대팀을 떨어뜨리는 게임인데 우리가 이겼다. 상대편 남자 4명이 물에 다 빠졌는데 우리 마눌님만 살아 남아있다. 신기하다.
우리 팀도 이기기는 했지만 조교에의해 전부 물에 빠졌다. 갑자기 뒤로 빠져서 한참이나 내려가는 사이 처음으로 동강 물을 마셨다. 1급수라서 많이 마셔도 된다는 조교의 말을 믿고 얼마나 마셨는지도 모르겠다. 코로 마셔서 물 맛은 모르겠다.
이렇게 물도 마시고 얼마 다시 배에 올라 동강의 빼어난 경치를 구경했다. 유명한 두꺼비 바위도 보고, 1억이 넘어간다는 소나무도 봤다. 정말 분위기 있게 생긴 소나무였다. 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1억이라는 말에 소나무를 노리는 눈치들이었다.
그렇게 경치에 빠져있는데 다른 보트에서 또 이상한 놀이를 하고 있다. 커플들만 하는 놀이란다. 우리 배에 커플은 우리 밖에 없다. 마눌님과 배앞으로 가서 마눌님을 뱃머리에 올려놓고 나는 마눌님의 허리를 잡고 균형을 유지하는 일명 타이타닉이다. 우리가 타이타닉을 하는 동안 처음보는 아홉명의 남자들은 열심히 노를 젖고 있다. 결론은 뻔하다. 마눌님은 빠지고 나는 마눌님 구해오고.
아무래도 배를 잘 못 탄 것 같다. 멀쩡하게 생긴 아저씨들이 지나가는 배마다 다 건드린다. 아무 배나 가까이 오면 물뿌리고 전투시작이다. 그래서 모든 배들의 적이 되고 말았다. 딴 배들이 연합해서 학익진으로 펼치는 공격까지 받고. 덕분에 더 재미는 있었다.
그렇게 흘러흘러 가는데 진탄나루에서 도착지인 섭새강변까지 가는 물길에서 가장 위험하고 물살이 세다는 된꼬까리가 눈에 들어 왔다. 여러척의 배가 응켜서 물싸움도 하고 장난치면서 내려오다가 된꼬까리에 가까워지자 한 대씩 줄을 서서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조금 위험하긴 한가 보다.
잔뜩 긴장하고 열심히 노를 저어서 급류에 들어섰다. 우리 배는 무사히 통과했는데 우리 앞에 가던 배가 그만 소용돌이 들어가고 말았다. 아무리 굴리고 흔들어도 벗어 날 수가 없나보다. 한참을 내려가도 아직 소용돌이 안에서 못나오고 있다.
우리에게 물도 많이 뿌리고 장난도 많이 쳤던 아이들이지만 그새 정이 들었던지 아저씨들이 구해주러 올라가잔다. 그래서 물살을 가르고 왔던 길을 올라가고 있는데 한참만에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배가 내려오고 있다. 도와 주지도 못하고 힘만 뺏다.
그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강 한쪽에 배를 대더니 배 세대를 합쳐 다이빙대를 만들었다. 첨에 애들만 하고 있길래 안할려고 했는데 한번 해 보니까 재미있어서 마눌님이랑 같이 세 번이나 했다. 우리 마눌님한테는 무섭다고 했지만 사실 조금 재밌었다.
한참을 그러고 놀다가 다시 출발해서 어라연상회라는 곳을 갔다. 출발하기전부터 아저씨들 막걸리 마시는곳 찾더니 거기가 막걸리 파는 곳이었다. 우리는 아무 준비도 못했는데 딴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다들 비닐에 꼬깃꼬깃 돌을 싸서 온 것이다. 하긴 담배도 싸서 중간중간 피우는 사람들이니까 돈이야 일도 아니겠지만.
우리는 돈이 없어 강물만 구경하고 있는데 아저씨들이 같이 먹잖다. 덕분에 막걸리에 파전에 컵라면 까지 정말 잘 먹었다. 아저씨들 생긴건 우락부락해도 마음들은 참 좋은 것 같다.
래프팅하면서 계속 사진 찍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래프팅업체에서 사진 찍어서 홈피에 올려준다며 단체사진 한 장 찍었다. 우리가 이용한 곳은 21C동강이라는 업체이다.
먹고 배까지 부르고 도착할 때도 다 되어 가고 이제 정말로 찬물에 들어가기 싫었는데 조교하는 폼이 이상하다. 눈치를 체고 아저씨 몇 명이 자폭하듯 스스로 물로 들어간다. 나도 그럴까 하다가 조교가 어떡하나 볼려고 끝까지 남아 있었는데 어깨도움 시켜서 한꺼번에 물에 빠뜨려 버리는 것이다. 그 덕분에 우리 마눌님은 몸만 먼저 빠지고 다리가 엉키는 바람에 물을 엄첨 마셨단다. 내가 1급수라서 괜찮다고 해줬다.
우리 배 뿐만 아니라 다른 배들도 마찬가지다. 배에 탄 사람보다 떠 다니는 사람이 더 많다. 한참을 물놀이를 하다가 다시 배에 탔는데 다른 배 아저씨가 우리 배로 표류해 왔다. 인상을 보니 물을 꽤나 많이 마셨나 보다. 너무 힘들어 하는 것 같아 우리 배에 태워 졌는데 물에 빠졌다가 늦게 올라온 우리배 아저씨가 아무것도 모르고 장난친다고 그 아저씨를 밀쳐 버렸다. 너무 놀라서 다시 건졌는데 이번엔 정말로 사색이 되어 있다. 그 아저씨 다음부터 절대로 래프팅 안 할 것 같다.
이러고 있는데 어느 듯 도착지인 섭새강변에 다 와버렸다. 래프팅 기념으로 노로 만세 한 번 부르고 동강 한 대 때리고 래프팅을 끝냈다.
젖은 몸으로 봉고를 타고 숙소까지 돌아오는 시간 래프팅으로 내려 온 시간 보다 더 많이 걸린 것 같다. 이 코스는 래프팅하기는 좋은데 다시 돌아오는 길이 너무 않좋은 것 같다. 젖은 몸을 말리지도 않고 탄 것이라 찝찝하기도 했지만 날도 춥고 화장실도 겁한데 한참을 돌아서야 겨우 민박집에 도착했다.
민박집와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자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다. 샤워를 끝내고 짐을 챙겨서 이제 집으로 향해야 되는데 그냥 가기엔 너무 아쉬워서 동강자연휴식지에 있는 문희마을까지 갔다가 마지막으로 동강을 한 번 더 보고 집으로 향했다
어느새 비는 그쳤고 민박집에 도착할 무렵에는 해까지 나와 있다. 정말 센스 있는 날씨다.
집으로...2005년 7월 17일 일요일
9시에 시작한 패프팅이 2시가 넘어서야 끝나고 문희마을까지 갔다가 집을 향해 출발할 때 시간은 벌써 3시반이 넘어 있었다. 평창에서 영월을 지나 제천까지 가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기로 하고 출발했다.
중간에 국도에서 한 번 헤매긴 했지만 살아있는 네비게이션인 마눌님 덕에 고속도로까지는 어렵지 않게 찾아 갈 수 있었다. 고속도로에 차를 올리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10여분을 그렇게 내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이 맑아지고 다시 해가 나왔다.
그 덕분에 고속도로에서 아름다운 일몰까지 보는 행운을 안았다. 처음 간절곶의 해돋이를 못봇것 말고는 이번 여행에서 날씨는 정말 마음 먹는 대로 변해 준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는 죽령 터널을 지나고 변화없는 길을 계속해서 달리자 피곤함이 밀려왔다.
사흘이나 제대로 못자고 해돋이 보느라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피곤해진 몸이 여행중에는 잘도 참아 주다가 여행이 끝나간다는 아쉬움과 집으로 돌아 간다는 안도감에 한꺼번에 피로감을 드러 내기 시작했나 봐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아직도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아이스박스에서 차가운 물통 하나 꺼내서 열이 나는 몸에 대고 열도 식히고 나자 몸은 어느 정도 정상으로 돌아 가는 느낌이다.
휴게소에서 한 번 쉬고 나서 부터는 우리 마눌님이랑 그 동안의 일정을 하나하나 정리 하면서 내려 와서 인지 하나도 피곤한걸 못 느끼고 집까지 올 수 있었다. 일정을 다 정리 하기도 전에 마산에 도착해 버렸다.
그때 차 안에서 정리를 잘 해 뒀기 때문에 여행기도 이렇게 쉽게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준비도 잘하고 정리도 잘하는 우리 마눌님이다.
이렇게 마산에 도착한 시간은 9시경이었고 집앞에 있는 샤브샤브집에서 저녁먹으면서 일정 정리까지 끝내고 집에 도착한 시간은 9시 40분경이었다. 나야 내일까지 휴가지만 우리 마눌님은 낼 부터 당장 출근이다. 힘들어서 어떡할라나.
이렇게 우리의 2005년 여름휴가는 끝이 났다. 7월 중순이라는 조금 이른 시기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좋은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평일은 물론이고 토요일도 그랬고 돌아오는 일요일도 도로 사정이 너무 좋아서 가고싶은 곳에 시간 맞쳐서 갈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길이 막혀서 짜증나는 일도 없었고.
출발하기전에 일기예보에서 주말에 비가 온다고 해서 해돋이는 못보는게 아닌가 걱정도 했었는데 날씨도 맘에 쏙 들었고, 울산시내에서 길이 조금 막히긴 했지만 짜증날 정도는 아니었고, 몇 가지 행운도 겹쳐주고 아주 좋았던 여름휴가였다.
남들 보다 빨리 다녀온 여름휴가라 이제 휴가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조금 부럽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동해와 맑은 동강을 여름 내내 머릿속에 담아 둔다면 올 여름 그렇게 더울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