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꼬치다
손진숙
새벽녘 골목길을 걷는다. 가로등 불빛이 낮처럼 환하다. 3층짜리 연립주택 담장 밑에서 헙수룩한 중늙은이가 쭈그려 앉아 토악질에 팔려 있다.
허름한 주택이 이어져 교회가 있을 만한 곳이 아니라 싶은데, ‘참 · 빛 · 대 · 로 ·교 · 회’ 글자간판이 제법 높다랗게 서 있다. 조금 더 가면 사거리가 나타난다. 사거리가 가까워 장사가 잘될 법해서일까. 실내포차 네댓이 시야에 든다. 그중 사각 돌출간판 하나가 내 눈길을 붙잡는다. <술에 꼬치다> ‘꽂히다’의 발음 그대로인 ‘꼬치다’가 재미있다. 문득, 술에 꼬치고 싶었던 오래된 기억이 쪄 말리는 술밥처럼 고들고들하다.
스무 살 즈음이었다. 술에 취하면 어떤 기분일까, 호기심이 당겼다. 단순한 호기심이었는지, 아니면 삶에 드리운 불안감 때문이었는지는 잊혔다. 어떤 쾌감이 일기에 많은 사람이 술을 마시고 취하는지 직접 체험해 보고 싶었다.
시골집에서 두세 집 건너에 하일댁 점방이 있었다. 점방이라야 할머니 홀로 거처하는 방 위쪽 선반에 팔릴 만한 물건을 들여놓고 파는 정도였다. 하일댁에 가서 소주 한 병을 샀다. 홉병이었는지, 됫병이었는지는 가맣다. 취하려는 목적이었으니 큰 병이었을 확률이 높다.
나 혼자 사용하던 작은방에서 술잔과 안주도 없이 쓰디쓴 술을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넘겼다. 맛이나 분위기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그저 마시고 취해보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이상한 치기와 무모한 고집이 술처럼 괴고 있었다. 술병 바닥까지 비우고 더는 할 일이 없어지자 그대로 누워 잠이 들어버렸다.
현상은 그 이튿날 일어났다. 취하면 알딸딸해진다거나 황홀해지는 현상이 아니었다.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잠이 깨자 속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속이 쓰리고 갉아내는 듯 아팠다. 당장 작은방 옆 빈터에 가서 위 속의 것을 토해냈다. 노란 신물이 올라오도록 그치지 않는 통증과 구토였다. 엉뚱하게 마신 술로 생병을 만들어 겪는 위험천만한 모습이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는 않았다. 엄마와 단둘이 지내던 집. 방음은 안 되었지만, 밤사이 딸의 방에서 소주를 몰래 마시는 소리가 벽을 뚫고 안방까지 새어 나가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서였다. 그때까지도 술에 취한 기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나는 다시 취해볼 기회를 얻었다.
수필 쓰기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 댁에 들른 적이 있었다. 술맛도, 취한 맛도 모른다는 나의 고백에 선생님께서는 제주도에서 보내왔다는 귀한 술을 꺼내놓으셨다. 선천적으로 술을 못 하시는 선생님은 입에 대지 않으시고, 나 혼자 취해보려는 각오로 홀짝홀짝 한 방울도 남김없이 병을 비웠다. 나의 술 취하기 프로젝트를 위해서 제주 명주(銘酒)를 선뜻 내주신 선생님의 호의는 그다지 빛을 발하지 못했다. 아까운 술 한 병만 단숨에 사라졌다. 명주라서 그런지 소주처럼 독하지 않아 마시기는 수월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효과에서는 맹물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곧장 방에 돌아와 잠이 들었다. 다음날 후유증이나 뒤탈이 없는 게 강소주 때와는 달랐다.
인간 삶에 술은 필요불가결한 음식이 아닌가도 싶다. 관혼상제 즉, 대소사 음식상에 술은 꼭 곁들여진다. 술이 빠진 잔칫집이나 상갓집을 떠올릴 수가 없다. 기쁨을 배가시키는데도, 슬픔을 반가시키는데도 술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글재주 없는 내가 마흔 살에 우연히 글쓰기를 배우게 되어 수필 쓰기를 시도했다. 시와 수필을 강의해 주시던 선생님께서 “술을 알아야 문학을 안다.”라고 하셨다. 나는 여전히 술을 알지 못하는 상태다.
친정아버지는 술과 노름에 빠진 분이셨다. 결국 재산도 잃고 건강마저 잃어 마흔일곱에 이 세상을 등졌다. 아버지 체질을 물려받아서인지 술을 마시자면 제법 셀 거라는 짐작이 든다. 권주 두세 잔 받아 마시고는 아무 기별도 오지 않으니 말이다.
문학 행사 식사 자리에서 한 문우가 “손 선생 술 잘 마신다.”라고 하는 바람에 무안하고 억울하기까지 했다. 맛도 모르고 효력도 모른 채 억지 춘향으로 목구멍에 넘기기만 하고서야 어찌 잘 마신다고 할 수 있으랴. 씁쓰레한 웃음만 지을 뿐, 술잔을 더 입으로 가져가지는 않았다.
술을 마시기로 들면 못 마실 것도 없지만 마시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십여 년 전, 결막염 등에 시달리다가 병원에 갔더니 포도막염이라 했다. 치료를 맡은 안과의(眼科醫)가 술을 마시지 말라고 했다. “언제까지요?” “평생 마시지 마세요.” 그 의사 처방을 눈 건강의 규범처럼 받들고 지금껏 착하게 지키고 있다.
아들만 다섯을 두신 시어머니는 술 마시는 아들들로 애를 태우신 듯하다. “내 제사상에는 사이다 놓고 지내라.”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정직하게 따른 자식들은 어머니 장례식 때 사이다로 잔을 채웠다.
예부터 술이 약이기보다는 독이기 쉬웠던가 보다. 근래 다시 읽은 헤르만 헤세의 『싯달타』에서도 “또 사람을 게으르게 하고 마음을 무디게 하는 술도 배웠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싯달타도 배웠다는 술을 나도 이제라도 새로 배워볼까? 그 잦았던 눈병도 나아 십 년째 안과 걸음을 않고 있으니.
예순의 해를 넘고 강을 건넌 이제, 술에 꼬칠 열정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모르긴 해도 술에 꼬칠 인연은 내 마음먹기에 달리지 않았을까. 나는 조명등이 켜진 <술에 꼬치다> 간판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문학마당》 2024 통권 58호
첫댓글 내가 좋아하고 꼬친 작가의 이름에 눈이 번쩍 뜨였어요. 그리고 추천해요 먼저 눌렀어요.
좋은 작품이라야 추천을 하지요.
실수하셨습니다.ㅋ
실수라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