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제1장 중관학파 수행론/대14
2.금강경의 수행론 (13)일상무상분
♧깨달음의 내용 세 가지를 교재를 중심으로 정리해 보세요
→깨달음을 증득할 때, 얻었다고 할 만한 소중한 보물과 같고 보배와 같은 그러므로 자부심을 가져야 할 만한 그런 무언가가 있는가? 흔히 볼 수 있는 이 질문은 득도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이다. 많은 사이비 도인들 역시 도를 얻었다고 말하기에, 그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그 도의 내용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첫째, 이 위없는 바른 깨달음(무상정등정각)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둘째, 모든 형상 있고, 모아진 것을 다 해체하고 해체한다는 생각까지도 사라진 것이 깨달음이다. 셋째, 해체된 것이 깨달음이기 때문에 얻을 만한, 자랑할 만한 법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무상정등정각이라 하고, 그러한 무상정등정각에 들어가기 위한 단계가 수다원에서 아라한까지다.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은 어떠한 법을 얻는지와 그 경계에 대하여 설명해 보세요
→수다원은 들어가는 자가 없기 때문에 얻을 법이 없고, 사다함은 돌아갈 곳이 없어 얻을 법이 없고, 아나함은 돌아가지 않을 곳도 없으니 얻을 법이 없고, 아라한은 다툴 대상이 없어 얻을 법이 없는 것이다. 이 모두가 인무아와 법무아에 대한 내용이다.
♧무상정등정각에 단박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한 경우에 대하여 설명해 보세요
→무상정등정각이라는 해체된 상태에 단박에 들어가는 경우는 무척 희귀하고, 차제대로 수다원에서 아라한까지 해체해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치 로켓이 우주 상공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먼저 견고하고 무거운 1단계의 몸체를 분리하고, 더 나아가서 대기권에서는 가벼운 에너지의 몸체도 벗어던지고, 무중력의 대기권에서는 그마저 벗어버린 가벼운 본체로 지구의 중력에 의지해 흘러가는 것과 유사하다.
인간은 이처럼 여러 겹의 번뇌에 의해 안팎으로 결박되어 있고, 이것을 차례대로 벗어 던지는 것이 도와 과의 단계이다. 첫 번째 결박은 지금 현재 경험되어지는 오오의 형성된 상태를 ‘절대적 나’라고 믿는 믿음이다. 연기적 자아는 실제의 삶에서 경험되어 지지만, 고정된 자아는 경험되어지지 않는다.
나의 몸을 자세히 보면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졌고, 이 지수화풍은 몸밖에 있는 지수화풍에 의해서 끊임없이 교체되어 진다. 내 몸의 지수화풍은 우주의 지수화풍과 연기적으로 얽혀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수화풍을 분별하여 나와 나의 것으로 한정하여 구분 짓는 것은 단지 ‘생각’일 뿐이다.
♧오온에 절대적 자아가 없음을 교재를 중심으로 설명해 보세요
→느낌, 생각, 욕망 등은 더 더욱 그러하다. 이들은 처음부터 나 밖에 있는 대상들에 대한 느낌, 생각, 욕망 등인 것이라서, 대상이 있고 지향적이다. 나의 수상(受想)’은 나 밖의 경계에 대한 지각과 인식에서 오는 것이고, ‘행(行)’은 그것들에 대한 욕망이기에 절대적 자성의 ‘수상행’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나 밖의 것과의 연기적 관계에 의해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수상행 역시 안팎으로 상의 상존한다. 수상행에 대한 자와 타의 구분은 역시 ‘생각’에서만 존재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온 중의 그 어디에도 절대적 자아는 없고, 일체 법들이 연기적으로 교류하는 상태에서의 오온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절대적 자아를 믿게 되면 세상을 자기중심으로만 생각하게 되어 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게 되고, 타를 이용 대상으로써만 생각하는 허물이 있다. 그에 반응하여 타인도 나를 배려하지 않게 되면서, 세상은 이기적이고 파괴적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자아에 대한 견해가 사라지고 여섯 감각기관의 대상을 겸험하는 자가 없음을 아는 것에 대하여 설명해 보세요
→절대적 자아가 없는 것을 아는 이는, 보고 듣고 맛보는 일상 행위 중에 6근의 대상에 집착할 자아가 없음을 알기에, 6근의 경계에 들어가거나 머물지 않는다. 이를 9장에서 “색성향미촉법의 어떤 법에도 들어감이 없기 때문에(성인의 흐름에 들어감(入流)이라고 한다”로 표현했다. 만약 6근의 경계에 ‘들어갈 자’가 없으면 ‘도를 얻는 자’가 없고, 얻는 자가 없으면 얻음(득)이 없고, 얻음이 없으면 집착하지 않고, 집착이 없으므로 성인의 흐름에 든다는 것이다.
♧입류과의 경계에 대하여 교재를 중심으로 설명해 보세요
→자아에 대한 잘못된 견해가 사라져서 6가지 감각기관의 대상을 ‘경험하는 자’가 없음을 알고, 마음은 식수상행의 연기를 쫓아 끊임없이 생멸함을 알게 되면, (성인의) 흐름에 들었다고 한다. 흐름에 들었다고는 하나 아직 욕계의 대상(법)들에 대한 잠재적 습관과 집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다만 집착할 ‘나’가 없음을 본 것뿐이다. 이를 입류(入流, 수다원) 또는 견도(見道)라 한다.
♧일래과의 경계에 대하여 교재를 중심으로 설명해 보세요
→오욕락의 즐거움은 인간 세계에서 천상의 여섯세계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화려한 비단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음을 본다. 분이 있고 귀가 있고 느낌이 있는 자가 그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싫어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그 즐거움은 무상하여 짧고, 그 과보의 고통이 오래감을 본다. 또한 그 즐거움에 실체가
없음을 보고 그 즐거움에 되돌아가지 않을 것을 다짐하지만, 잠재된 욕망 때문에 한 번은 돌아가서 그 한을 푼 후에 집착이 떨어지는 것을 일래(一來, 사다함)라 한다.
마치 한 소년이 아름다운 여인을 연모하다가 마침내 결혼하였지만, 그 여인에 대한 많은 허물을 경험한 후에 환상이 깨어져서 그 여인을 떠나는 것과 유사하다. 이와 같은 상태를 경에서는 이렇게 묘사한다.
“수보리야,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사다함이 생각하기를 ‘나는 일래과의 과위를 얻었느라’하겠는가? 수보리가 사뢰었습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사다함이 ‘나는 일래과의 과위를 얻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래의 도에 들어갈 그 어떠한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래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돌아갈 법이 없다는 것은 욕계가 즐길 것이 없음을 깨달아서 더 이상 욕계로 되돌아가서 즐기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불환관의 경계에 대하여 교재를 중심으로 설명해 세요
→사다함을 일래라고 하는 이유는 욕계에 대한 거친 욕망은 다스려졌지만 욕계에 대한 미세한 욕망과 업의 과보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욕계에 대한 미세한 욕망의 무상함을 보고 집착할 것이 없음을 알면 욕계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불환(아나함)과위에 든다.
경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수보리야,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아나함이 생각하기를 ‘나는 아나함의 과위를 얻었노라’하겠는가? 수보리가 사뢰었습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나함이 ‘나는 불환과를 얻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불환의 도에 들어갈 그 어떠한 법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환(불래)이라 합니다.
이처럼 욕계의 오욕락에 대한 집착이 완전히 해체된 사람이 욕계에 대한 흥미를 잃은 것을 돌아갈 법이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과위를 득한다는 개념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 장에서는 본격적으로 대상(법)의 공함을 다루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나함을 불환이라 하는 이유는 욕계에 대한 욕망이 다스려져서 다시는 욕계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색계와 무색계라는 천상계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색으로 빚어진 세계에 대한 욕망과 집착이 아직 남아서 상계에 다시 나기를 욕구하고 하계에 다시는 태어나지 않기를 원하므로 불환이라 한다. 이때 불환의 뜻은 욕계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색, 무색계 등 상계에 대한 미세한 집착이 온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다.
♧아라한의 경계에 대하여 교재를 중심으로 설명해 보세요
→영리한 근기(利根)는 인간 세상에서, 둔한 근기(鈍根)는 색계의 구경천이나 무색계의 유정천이라는 곳에 태어나서 무상함을 직접 경험하고 깨달아야만 그 집착을 끊을 수 있다. 물론 이 세계에 대한 ‘오해(무명)’가 있기 때문에 이 세계들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이다. 대상에 집착하면 미세한 ‘들뜸’도 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환이라고 하는 이유는 인간의 근본이 욕계이기 때문이다.
상계에 대한 무상함을 알고 아무것(법)도 집착할 것이 없음을 보면 다시는 3계(욕계, 색계, 무색계)에 돌아오지 않는 아라한과에 든다. 안팎의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면 그 누구와도 소유나 명예 때문에 다툴 일이 없다. 그러므로 아라한을 무쟁(無諍)이라고 한다.
♧금강경 제13장 여법수지분을 구마라습, 현장, 현진 본 가운데 한 가지를 사경하세요.
강미농의 금강경 강의
양관 옮김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이 경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하며 우리는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고하셨다. “이 경을 금강반야바라밀이라고 이름할지니, 이 이름으로 너희는 마땅히 받들어 지녀야 하리라. 왜 그런가? 수보리여! 부처님 말씀의 반야바라밀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니라. 수보리여! 그대 생각에는 어떠한가? 여래가 설한 바 법이 있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설한 바 법이 없습니다.”
“수보리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삼천 대천세계에 있는 바 미진이 많다고 하겠느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모든 미진을 여래가 미진이 아니라고 말할 새 그 이름이 미진일 뿐이고 여래가 세계는 세계가 아니라고 말할새 그 이름이 세계일 뿐이니다.”
“수보리여! 그대의 생각에는 어떠한가? 32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는가?”
“볼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왜 그런가 하면, 부처님께서 설하신 32상은 곧 상이 아니라, 그 이름이 32상 뿐입니다.”
“수보리여!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몸과 목숨으로 보시한다 해도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 중에 내지 사구게 등을 받아 지녀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한다면 그 복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니라.”
[개인 사유 토론 발표]
인무아 즉 오온무아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어 보세요.
----2568. 2. 13. 혜연 무구행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