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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1.18
身分證도 없는 엉성한 나라?
영국에는 신분증이나 주민등록제도가 없다. 한국에서는 사회 안위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인해 그 누구도 당위성에 대해 감히 도전을 하지 않는 대단한 제도들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국가가 국민의 주거를 관리하지 않는다면 무슨 그런 국가가 있는가 하겠지만 영국이 그런 국가이다. 영국인은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관공서를 방문해 신고해야 할 일이 3번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바로 출생신고, 혼인신고, 사망신고이다. 이 중 혼인신고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그러니 반드시 해야 할 출생신고를 하고 나면 사망신고가 들어올 때까지 국가는 국민이 어디에 사는지 제도상, 공식적으로는 알 방법이 없다. 이사를 해도 주민등록이 없으니 관공서에 주거 이전 신고를 해야 할 의무조차 없다. 물론 소유차량, 운전면허, 은행계좌, 신용카드, 가스, 전기, 전화 관련 주소 이전 신고는 최소한으로 한다. 이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하는 것이지, 국가가 요구해서 하는 신고는 아니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 일이다. 하지만 영국은 국가가 나서서 국민이 어디에 사는지 알 필요가 없다는 식의 제도를 무언의 국민적 합의에 의해 애써 유지해간다. 이제 그 이유를 하나하나 풀어가보자.
대학을 진학하거나 취직해 집을 나가면서 굳이 살던 집 주소로 등록된 모든 서류를 새 주소로 옮기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럴 경우 영국에서는 우체국에 ‘바뀐 주소지로 우편물 자동 우송 서비스(mail redirection service)’를 신청한 후 소액의 수수료(1년에 7만원)를 내면 내가 원하는 주소에서 우편물을 받아볼 수 있다. 이 서비스에 기간 제한이 있지 않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이미 오래전에 이사간 전 주인이나 방 하나에 세를 들어 살던 세입자, 심지어는 내 주소와 아무런 연관도 없는 나도 모르는 누군가가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영국에는 누군가가 내 주소를 이용해 대출을 받은 뒤 갚지 않아 신용불량자가 되면 나하고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상당한 불이익을 받게 되는 이상한 일도 벌어진다. 영국에서는 대출 또는 신용카드나 금융 관련 신청서류에서 제일 먼저 물어보는 항목이 바로 ‘현주소에서 몇 년을 살았느냐’이다. 대개 3년 이하면 이전 주소가 어디였는지를 상세하게 세월을 거슬러 적으라고 요구한다. 주소를 자주 옮기면 신용평가에서 감점요인이 된다. 이런 모든 문제가 바로 국가가 국민의 주거 이전 사항을 관리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국민이 주거 이전을 한 후 신고하는 주민등록이라는 제도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다.
나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
영국은 주거 이전 사항을 관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사진도 국가가 수집하지 않는다. 하물며 개인 지문은 범죄자가 아니면 어떤 경우에도 채취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국인은 자신을 증명하기가 상당히 어렵고 불편하다. 반드시 사진이 붙어야 하는 여권이 있긴 하지만 두껍기 때문에 소지하고 다니기가 불편하다. 물론 1998년부터 발급해주는 사진이 부착된 명함 크기의 운전면허증이 있어 신분증으로 대용하긴 한다. 하지만 아직도 사진이 없는 과거 종이 형태의 운전면허증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이유로 여권 신청할 때 제출하는 사진이 신청자 본인임을 증명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쓰는 방법이 있는데 허술하기 그지없고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엉성하다. 다름아니라 사진 뒤에 동네 유지가 ‘이 사람이 바로 여권 신청인 본인이다’라고 증명하면 끝이다. 동네 변호사, 회계사 같은 자격증 소유자나 공기관 인사, 심지어는 동네에서 영업을 하는 필자 같은 개인사업자도 사진에 본인 확인을 해준 후 전화번호 적고 서명만 하면 끝이다. 여권 신청자가 나쁜 마음을 먹고 가공의 동네 유지나 지나가다가 본 변호사 간판의 이름과 주소로 증명하고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서 신청해도 그만이다. 이론상으로는 사진 뒤에 적힌 전화번호로 여권 발급 당국의 확인전화가 올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필자도 주위 친지 수십 명의 여권 신청서에 증명을 해주었지만 한 번도 확인전화를 받아본 적이 없다.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었으니 설사 여권 발급 당국에서 전화가 와도 자신이 거짓으로 확인해주면 그만이다. 사진이 붙은 주민등록이나 신분증이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이런 미심쩍은 절차가 엄연히 영국에는 존재한다.
주민등록이 없으니 여권 신청에 들어가는 서류도 한심하다. 본인의 주소지를 증명할 방법은 물론 없다. 신청서에 적는 주소지는 그냥 발급된 여권을 받을 주소지에 불과할 뿐이다. 심지어는 사서함 주소를 적어도 그만이다. 해서 여권 신청에 반드시 필요한 서류가 출생등록서 정도다. 호적이나 주민등록서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나 문제는 출생등록서이니 사진이 당연히 없다는 점이다. 자식이 태어난 후 병원이 발급해준 출생증명서로 출생신고를 하면 시청은 그 자리에서 출생등록서(birth certificate)를 발급해준다. 출생등록서에는 생부의 이름과 출생지와 태어난 시일이 적혀 있다. 향후 영국인의 삶에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공적 서류이다.
그런데 문제는 유일한 공식 서류인 출생등록서로는 본인의 다른 인적 사항, 즉 사진이나 현주소를 증명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결국 동네 유지가 사진을 증명해주는, 정말 19세기에나 있을 법한 방법을 쓰는 것이다. 해서 범죄자들이 남의 이름을 도용해 여권을 만들고, 운전면허증도 만들어 여행도 하고, 신분증으로도 사용한다. 영국 신문에는 가끔 이런 맹점 때문에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이 해외에서 사고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서 본인이나 가족이 기절초풍하는 사건이 종종 보도된다.
▲ 런던의 경찰관들. 영국 경찰은 아무런 이유 없이 보행객을 정지시킬 수도, 신분증 제시를 요구할 수도 없다. ⓒ 뉴시스
투표장서도 신분확인 안 해
한국인 입장에서 기가 막히는 일은 이 뿐만이 아니다. 각종 선거철이 되어 투표를 하러 가면 투표장에서 투표용지를 받기 위해서 내가 누구라는 걸 증명하는 서류나 신분증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주소와 이름을 말하면 정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투표용지를 내준다. 대리투표나 부정투표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투표를 하러 간 날 과장하면 거의 기절초풍의 문화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절차의 하나인 투표를 하는데 본인 확인도 하지 않고 투표에 참가하게 하는가 말이다. 과연 이런 제도의 맹점을 영국인은 모르는가, 아니면 알면서도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 애써 모르는 체하는 건가? 아니면 이래도 문제가 없다는 말인가? 국민이라고 믿을 만 한 사람이 와서 자신이 누구라고 하면 믿어야지 관에서 감히 의심을 하고 신분을 확인하는 일이 월권이라는 믿음이 영국 사회에는 분명 있다. 그 사람이 본인이 아니라는 확실한 의심이 들 때만 신분을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투표를 하기 위한 권리를 얻는 근원적인 절차는 더 황당하다. 영국에서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투표 등록(vote register)을 해야 한다. 법에 의해 투표권이 있다고 모두 투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법적인 권리가 있더라도 본인이 투표를 하겠다고 투표인 명부에 등재 신청을 해야 한다. 선거일이 다가오면 각 주소지로 투표 등재 신청을 하라는 서류가 우송되어 온다. 이 서류에 이름과 생년월일을 기재해 우송하면 된다. 별다른 부속서류가 필요하지도 않다. 자세하게 다른 인적사항이나 법적근거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더 기가 막힌 일은 투표 등록관청은 등록서의 기재 내용을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등록서류의 기재 내용 그대로 투표인 명부에 등재하고 만다는 사실이다. 주민등록이 없으니 등록서 기재 내용의 진위를 해당기관은 확인할 방도가 없어서이다. 해서 투표 등록서는 문자 그대로 투표(vote)를 하겠다는 등록(register)이지 신청서(application)가 아니다. 국민이 투표를 하겠다고 기재해서 보내면 정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투표인 명부에 등록을 해준다면 등록이 맞지 신청이 아니다. 자신이 영국법에 의해 투표권이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이 신청하면 그냥 믿고 등록해주어서 투표하게 만드는 일이 사리에 맞은 일인가? 정말 물 한 방울 새어나갈 틈이 없는 완벽한 제도를 요구하는 한국 관료들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못 할 일일 것이다.
영국법에 의해 선거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해를 했거나 혹은 장난으로 등록을 해도 투표인 명부에 등재가 되면 투표가 가능하다. 반대로 생년월일과 사진, 주소가 기재된 주민등록이 없으니 투표할 나이가 되어도 스스로 등록하지 않으면 정부에서 자동으로 투표권을 줄 수가 없다. 서류 만능의 한국적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을 일이다.
▲ 런던 개트윅공항. 영국에는 출입국 카드라는 제도가 아예 없다. / ⓒ 뉴시스
출입국 관리도 안 해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한 개만 더 보자. 영국에서는 국가가 국민의 출입국도 관리하지 않는다. 영국인에게는 출입국 카드라는 제도가 아예 처음부터 없었다. 그냥 여권만 살펴보는 것이 공항에서의 출입국 관리다. 영국 정부는 자국민이 외국에 나가 사는지 아니면 국내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공식적인 방법이 없다. 요즘은 공항 출입국 관리들이 여권을 기계에 스캔하긴 한다. 그러나 이 절차도 여권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결코 여권 정보를 인식해서 국가 정보시스템에 국민의 출입국 사실을 기록하기 위한 절차가 아니다. 영국 정부는 영국 국민이 어디에 살고 언제 출국하고 입국하는지, 혹은 국내에 살고 있는지 해외에 살고 있는지를 원래부터 관리하지 않았다. 물론 항공사 기록을 통하면 국민의 출입국을 알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알 수 있다는 말이지 모두 안다는 뜻은 아니다. 영국 정부는 자국 국민의 출입국 상황이 전혀 궁금하지 않은가 보다.
그렇다고 영국 정부가 마냥 맥을 놓고 자국민에 대한 일체의 관리를 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다. 영국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일체의 서류를 받지 않고 신고를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국민의 주소 이전이나 주거지 파악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앞에서 예로 든 것처럼 이사 후 각종 주거 이전 신청 기록 등 수도 없이 많다. 영국인들답게 호들갑 떨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고도 조용히 할 일은 다한다는 뜻이다. 조금 돌아가는 방법이긴 하나 국민을 관리한다는 인식을 주지 않고도 결국 관리할 건 다 한다. 행정력 낭비하면서 쓸데없이 모든 국민의 입출국 관리를 하지 않을 뿐 필요한 만큼만 한다.
영국에도 주민등록이나 신분증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1, 2차 대전 중에는 신분증이 있었다. 그러다가 1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19년, 그리고 2차 대전이 종전된 후인 1952년 폐지되었다. 전쟁 중에는 필요에 의해 신분증을 도입했지만 전쟁이 끝나 정부가 국민의 신분을 굳이 확인해야 할 필요성이 없어지자 즉시 폐지했다. 당시 폐지의 대의명분은 ‘신분 확인의 필요성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영국인의 국가 권력에 대한 태생적이고 신경질적인 의심이 이유였다. 국가라는 비인격적인 존재에 자신을 통제할 권한을 주는 데 대한 반감이 워낙 높은 것이다. 국가가 국민 개개인이 어디에 사는지 알 필요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말고, 알아서도 안 된다는 무언의 합의가 영국인들 사이에는 이루어져 있다.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서 신분증이니 주민등록이니 하는 제도를 만들게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영국의 역대 모든 정부가 한때는 신분증 제도를 도입하려고 시도했으나 항상 의회에서 압도적 표차로 부결되곤 했다. 보수·진보 구분 없이 대다수 의원이 반대했다. 세계적인 테러사태가 만연하는 요즘에도 신분 통제의 가장 쉬운 방법인 신분증 제도를 도입하려는 유혹이 있을 만한데도 한 번도 의회에서 신분증 필요성이 언급된 사례가 없다. 그만큼 영국인들이 신분증에 대한 반감이 높다는 뜻이고, 국가에 의한 통제를 싫어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연유로 법의 그물망을 조금 비켜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민등록 제도와 신분증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다.
투표도 같은 맥락이다. 부정투표의 가능성이 상당히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투표인 등록이나 투표용지 배부 때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뚜렷한 방도를 마련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나둘씩 신분확인 절차를 만들어가다 보면 결국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는 상황까지 가리라는 무언의 믿음과 합의가 영국 사회에는 분명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이런 영국 제도의 엉성함을 필자는 영국인 친지들에게 의도적으로 비판하면서 도전 해 보았다. 필자의 도전에 대한 대답에서 바로 그런 합의와 믿음을 거듭 느낄 수 있었다.
국가에 많은 권력을 주면 안 돼
영국 경찰은 아무런 이유 없이 길거리 보행객을 정지시킬 수도 없고 더군다나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신분증이 없으니 “없다”고 하면 그만이다. 또 있다고 해도 법적으로 신분증을 꼭 지니고 다닐 의무도 없다. 뭔가 범법행위를 했거나 했다는 확실한 의심이 들 때만 경찰은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정지시킬 수 있다. 음주운전의 의심만으로는 진행하는 차를 바로 세울 수도 없다. 일정 거리 이상을 따라오다가 차선을 계속 침범하는 등 음주운전의 행태가 보일 경우에만 정지를 요청해서 운전면허증과 함께 음주테스트를 할 수 있다. 속도위반 또는 자동차 등이 하나 나갔다는 등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만 차를 세울 수 있다. 아무리 경찰이라도 아무런 근거 없이 주행 중인 차나 보행자를 세워서 신분증이나 몸수색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영국인이 가장 경계하는 일은 무인격자인 국가에 너무 많은 권한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 국가는 반드시 일탈을 해서 주인인 국민을 통제하려 든다고 본다. 그것이 권력의 태생적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인들이 엉성한 제도를 알면서도 보완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영국인들의 피 속에 존재하는 합리적인 경험주의의 지혜 때문이기도 하다. 그냥 두어도 발생할 가능성이 아주 적은 범죄는 그냥 두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반면 관료들의 속성은 그런 범죄를 완벽하게 막으려는 제도를 도입하려 한다. 그러나 그런 제도를 관리하기 위한 절차나 서류로 인한 경비가 실제 범죄로 인한 피해보다 훨씬 많이 든다는 걸 영국인들은 경험에 의해 안다. 범죄를 막으려 그물망을 작게 하는 일이 더 번거롭고 비싸게 치인다는 말이다. 1995년 노동당 연례총회에서 보수당의 신분증 도입 시도를 비판하면서 당시 노동당 당수였던 토니 블레어는 “소수의 범죄자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의무적인 신분증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투입할 수십억파운드의 예산으로 차라리 수천 명의 경찰을 길거리에 투입하는 쪽이 더 효율적이다”라고 발언했다. 한국의 국회가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한 법안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는 언론 기사를 보고 영국의 사례를 한번 짚어보았다.
현실과 괴리된 굴레보다 구멍 뚫린 제도가 낫다
개인적인 이야기로 이 글을 시작하는 데 대해 우선 용서를 빈다. 필자는 지난번 주간조선에 기고했던 ‘신분증도 없는 엉성한 나라? 영국이 주민등록 안 만드는 이유’가 네이버 시사뉴스 등에서 한창 뜨거운 이슈였던 손혜원 의원 관련 기사를 제치고 댓글 1위로 올라서는 반응에 깜짝 놀랐다.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일련번호를 부여하고 지문 채취와 사진까지 수집하는 한국에서는 영국의 엉성한 제도가 조금 과장해서 표현한다면 ‘멘붕’이 올 정도로 충격적이어서 그런 열띤 반응이 나온 게 아닌가 하는 판단을 해봤다.
필자는 그동안 한국 언론에 영국 관련 글을 쓰면서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다. 분명 시효가 만료된 ‘선진국’이라는 단어를 이용해 한국의 현실을 비판하면서 한 수 가르치려는 듯한 태도를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러나 지난번 글에서는 한국 사례, 특히 한국의 공무원을 서너 번 일부러 언급했는데 그 이유는 최근 유럽 교민 한 분으로부터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한국에서 여행온 중·고등학생 10여명을 맞는 행사를 순수한 의미로 도와준 적이 있었다. 한데 한국의 교육청에서 요구하는 구비 서류를 보고 기절초풍을 했다고 한다. 서류 목록이 A4용지 한 장을 가득 채운 무려 24종이었다는 것이다. 이 교민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목록을 받아본 필자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조금 길게 열거함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숙박업소 관련 서류 8종: 숙소와의 계약서, 객실 배치도, 숙소 내외와 객실 사진, 식단표, 호텔 사업자등록증 사본, 종업원 화재안전교육 확인서, 소방기관 점검 합격증, 식당 위생검사증.
식당 관련 서류 8종: 식당과의 계약서, 식단표, 사업자등록증, 식당 영업신고서, 종업원 화재안전교육 확인서, 소방기관 점검 합격증, 식당 위생검사증, 식당주방장 자격증.
운송 관련 서류 8종: 운송회사와의 계약서, 각종 사본(여객 운송업 사업등록증, 여객운송사업 면허증, 회사 종합보험증, 배정 차량등록증, 배정 차량 종합보험증, 운전자 운전면허증), 운송회사가 파악하고 있는 개별 운전자 인적사항(범죄·사고 기록 확인 내용)’.
요구 사항 중 백미는 ‘버스 운행 시작 전 버스기사 음주 테스트를 위한 기기 구비’였다. 아침에 운전기사를 상대로 다짜고짜 음주 테스트를 하라는 뜻이었다. 유럽에서 서비스업, 그중에도 식당은 소비자가 갑이 아니라 주인이 갑이다. 10명 조금 넘는 학생들을 위한 식사를 팔기 위해 주방장 자격증과 식당 위생검사증 운운하면 특히 프랑스에서는 당장 쫓겨날 일이다.
▲ 항상 짝을 이뤄 순찰하는 영국의 경찰들. / ⓒ 뉴시스
충격적인 한국 교육청의 서류 요구
해당 학교 담당자 말로는 세월호 사건 이후 학생들 단체여행 시 교육청이 요구하는 서류들이 그렇게 많아졌다고 한다. 전국의 교육청마다 조금씩 다르긴 해도 거의 대동소이할 거라는 말이었다. 겨우 10여명의 학생들을 받으려고 콧대가 하늘 같은 유럽 식당이 이 같은 서류들을 낼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이런 서류를 요구하는 한국 공무원들의 심리상태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지난 글을 쓰게 되었다.
서류 목록을 보고 문득 떠오른 단어는 ‘갑질’과 ‘면피’였다. 한국에서 일상생활 용어로 자리 잡은 ‘갑질’은 결국 어떤 형태로든 힘을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게 내미는 주먹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역사적으로 ‘갑질’의 원조는 관리들이 아니었을까? 아직도 봉건시대의 잔재 같은 관의 갑질을 보는 듯해서 서글펐다. 순수하게 보면 공무원들이 그런 코미디 같은 서류 요구 규정을 만든 것은 세월호 같은 비극의 재발을 막으려는 의도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모든 학교 교사들이나 교육청 관계자들은 물론 독자들도 안다. 이런 서류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혹은 내부 감사를 대비한 ‘면피용’이란 걸 말이다. 공무원들도 이런 서류들이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인은 말했다. 결국 비인격의 권력이 만들어낸 괴물 같은 제도는 구성원 모두의 의사와는 달리 혼자서 존재하면서 굴러가고 모든 구성원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이제 지난 기사 댓글에서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보완 설명하려고 한다. 우선 많은 댓글들이 궁금해 한 건 ‘정부가 국민의 주거지를 모르는데 어찌 세금을 부과하고 부동산 관리를 하느냐. 인구통계는 어찌 내며 불법 이민자는 어떻게 막나’라는 것이었다.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궁금해할 기본적인 의문이었다. 답부터 말하자면 “개별사안별로 오랜 관리제도가 있어서 문제없이 돌아간다”이다. 한국처럼 주민번호만 입력하면 출입국 날짜부터 개개인의 복지내역, 병원 출입내역, 약품 사용, 부동산 보유 상황까지 모든 게 물샐틈없이 파악되고 관리되는 통합 제도가 없더라도 말이다. 그런 통합 제도는 없지만, 영국에서도 전국 어느 병원을 가더라도 자신의 병력이나 투약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주소와 생년월일, 이름만 대면 별다른 환자카드 작성이나 보증인 없이 치료와 입원 수속이 가능하다. 요컨대 굳이 주민번호, 주민등록 같은 일괄적인 제도가 없더라도 필요하면 통합적으로 정보가 모아진다는 말이다. 주민번호 같은 시스템을 만들어 정보를 한꺼번에 파악하고 관리하고 통제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 더 중요하고, 여기에 영국인의 오랜 믿음과 철학이 숨어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통제를 한꺼번에 못하는 게 아니고 안 한다는 말이다.
1982년 영국에 처음 와서 가장 크게 놀란 일이 있다. 당시 한국에는 전 은행이 참여하는 온라인 송금 제도가 이미 전국적으로 실시되고 있어 부산에서 누군가 내 계좌로 무통장 입금을 하면 정말 5분도 안 되어 계좌에 송금액이 찍혔다. 그런데 한국에 비해 ‘최강 선진국’이라는 영국에는 누가 내 계좌로 수표를 입금하면 길게는 1주일, 짧게는 3일은 되어야 입금 기록이 찍혔다. 해서 친지였던 영국 유수 은행 이사한테 사석에서 물어보았더니 답이 이랬다. “우리도 스위치 하나면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가 왜 그걸 해야 하나? 그 결제 기간 동안 우리 은행들은 공짜 자금을 쓸 수 있는데….” 기절초풍할 대답이었다. 이제 영국도 같은 은행 지점 사이에서의 입금은 즉시 처리되지만 타 은행 간은 아직도 2~3일 걸린다.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 때문에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영국 정부는 이걸 알면서도 왜 즉각 은행에 명령해서 처리하지 않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영국에는 못 하는 일과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일이 혼재돼 있어서 외부인의 시각으로만 보면 상당히 헷갈린다.
▲ 賣物로 나온 런던의 한 가옥. / ⓒ 뉴시스
국가 관리는 自發的인 신고가 기반
독자들이 궁금해한 세금 문제도 마찬가지다. 각자 본인이 알아서 직접 신고하거나 회계사를 통한 신고로 관리된다. 영국 조세제도는 국민 모두를 일종의 개인사업자로 본다. 한국 회사원은 회사에서 전부 알아서 신고를 해주니 따로 신고할 일이 없지만 영국에서는 자신의 소득세를 자신이 신고하고 관리해야 한다. 영국은 개인의 부동산도 국가가 관리하지 않는다. 개인이 부동산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일괄적으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본인 소유의 부동산에서 소득이 발생하면 연 소득세 신고 시 적어서 내면 그만이다. 1가구1주택이란 개념도 없기 때문에 양도소득세도 없다. 주택을 아무리 많이 갖고 있어도 거기에 따른 중과세가 없으니 국가가 개개인의 주택 보유를 파악할 이유가 없다. 수십 채의 부동산에서 들어온 수입이라도 소득세 신고할 때 내면 되는 일이다.
영국에서는 매년 전국의 각 상업 건물로 부동산 관련 신고서가 날아온다. 만일 세를 얻어 영업을 한다면 주인이 누구이며 세를 얼마나 내고 있는지를 신고한다. 영국 국체청은 세입자의 신고대로 임대인이 자신의 수익을 신고하지 않으면 문제를 삼는다. 일단 국세청의 레이더에 그런 징후가 발견되거나 임의의 표본조사에서 문제가 되면 정말 경을 치게 되니 감히 수입 신고를 누락할 간 큰 영국인은 없다.
각 개인의 부동산 신고 외에 각 가정 단위로 매년 지방정부 종합세(council tax) 신고 서류도 날아온다. 해당 주택에 누가 살고 있는지 등 현황을 지방정부에서 파악하고 거기에 따라 지방정부를 움직이는 지방정부종합세(부동산 세금, 청소비, 하수도비, 지방자치분담금)를 부과한다. 이 세금은 지방자치단체마다 금액이 달라서 지방정부 능력 평가에 가장 중요한 지침이 된다. 여기에 따라 다음번 선거에서 어느 당에 투표할 건지 결정된다.
인구통계의 경우는 각 가정으로 인구조사 용지가 온다. 여기에 적어내는 내용에 따라 인구 수가 잡힌다. 아무리 인구조사 서류를 보내도 회답이 안 오면 결국 조사원이 직접 오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그 비율은 5%도 채 안 된다. 투표를 하기 위해 본인이 직접 작성한 투표 등록부도 주민등록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를 광고회사나 여론조사 기관들이 이용한다.
마지막 의문인 불법이민자들의 경우 별로 단속할 방법도 없고 단속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민자들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는 보수당 지지 유권자들에게 보이려고 만든 법이 몇 개 있는데 누구도 거기에 의해 처벌받았다는 말은 못 들어봤다. 자기 집을 세 주려면 세입자의 체류자격을 집주인이 반드시 확인하라고 하는데 확인을 하지 않더라도 당국이 어떻게 적발할 건지 모를 정도이다.
결국 영국에서는 주민등록, 주민번호가 없기 때문에 국민의 자발적인 신고에 의해서만 국가의 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귀찮은 일이지만 영국인들은 기꺼이 신고를 한다. 어찌 보면 비효율적인 절차에 따른 비용이 발생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무덤덤하다. 원래 그래 와서인지 전혀 시시비비가 없다.
엉성해서 구멍이 막 뚫려 있는데도 제도 보완을 안 하는 이유가 뭘까. 영국인의 공권력에 대한 맹렬한 불신이 이유라고 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보자. 원칙적으로 영국 경찰은 보행 중인 행인을 상대로 불심 검문을 하거나 주행 중인 차량을 정지시킨 후 운전면허증 검사를 하지 못하게 해놓았다. 영국 경찰은 도보 순찰이나 차량 순찰을 하는 경우 반드시 두 명이 한 조가 되어서 다닌다. 경찰 본인들의 안전을 위한 이유가 제일 크지만 동료 경찰의 월권이나 부정 행위를 막고 상황이 생겼을 때 법적 판단을 돕기 위한 목적도 크다.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다니면 월권이나 부정 행위를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영국인은 동료나 상관의 부정과 월권을 눈감아주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는 의리도 없고 상하도 없다. 특출나게 정의감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런 의리나 동료애를 지켜서 얻는 이득보다는 잃는 게 더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상대방도 파트너가 그런 걸 눈감아주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일단 入國하면 외국인 내국인 差別도 없다
짝으로 다니는 또 하나의 이유는 법적인 판단과 그 판단의 정당성을 돕기 위함이다. 행인의 행동이 뭔가 수상해 보이면 불심 검문을 하기 전 동료의 의견을 반드시 물어보아야 한다. 혼자만의 판단이 아니라 현장에 있던 동료도 같은 의견이라야 불심 검문의 법적 정당성이 갖추어진다고 본다. 이런 절차를 밟으면 검문에서 아무런 혐의나 증거가 발견되지 않더라도 문제가 되질 않는다. 동료가 반대를 하면 대개의 경우 단념을 하지만 극단의 경우는 한 명의 경찰이 책임을 지고 검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 만일 혐의를 찾아내지 못하면 단독으로 검문을 주장한 경찰은 내부적으로 소명을 해야 한다. 그때 동료 경찰은 자신이 반대한 이유를 분명히 밝힌다. 여기엔 의리나 동료애가 끼어들 여지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영국에 여행오는 친지들을 영접하러 공항에 나가면 많은 경우 영국 이민국 관리가 왜 그렇게 까다롭냐고 불평을 한다. 한국과는 비자면제조약이 체결된 사이인데도 왜 왔느냐, 어디에 묵느냐, 언제 돌아가느냐, 심지어 돈은 얼마 있느냐 등 꼬치꼬치 묻는다는 불평이다. 거기에 비하면 유럽 다른 나라들은 무사통과다. 별로 묻지도 않고 그냥 여권 한 번 보고 도장을 쾅 찍어준다. 그런데 한국의 방문객들이 놓치는 사실이 하나 있다. 까다롭더라도 영국에는 일단 들어오면 6개월간은 거의 영국인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길거리를 다녀도 여권 보자는 사람도 없고, 국내 항공기를 타도 신분증을 보여줄 필요도 없다. (한국에서는 기차 탈 때는 신분증 검사를 안 하면서 국내선 비행기에서는 왜 신분증 검사를 하는지 모르겠다. 발상의 전환을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은지?) 심지어 거주 주소가 있으면 운전면허 시험을 쳐서 면허증도 받을 수 있고 자동차를 사서 내 이름으로 등록할 수도 있다. 물론 영국 운전면허가 없더라도 자동차를 사서 내 이름으로 등록하고, 한국 국제면허증으로 운전하고 다녀도 된다. 심지어는 한국인이 여행와서 집을 사서 등기하고 소유할 수도 있다. 등기를 할 때 신분증 보자는 사람도 없고 주민등록도 필요 없다.
더욱 놀라운 점은 여행자로 와서도 영국 기업이나 식당을 인수해서 부가세 등록도 하고 영업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영국에는 영업허가 제도가 없다.) 들어올 때는 까다롭지만 일단 들어오면 내국인과 외국인의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실제 영국에서 30~40년간 살면서 업체를 서너 개씩 운영하는 교민들 중에 한국 국적을 유지하면서 영주권 하나만으로 사업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 국적으로 사업을 하는 동안 제도적으로 공기관 또는 영국 관리들로부터 전혀 차별받지 않고 비즈니스를 해나갈 수 있다. 한국 국적이 차라리 득이 된다는 말도 들었다. 외국 업체를 끌어들여 지방경제를 살리려 혈안이 되어 있는 영국 공무원들을 상대하기에는 외국인 신분이 더 유리하다는 말이다. ‘잘못하면 떠난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잘해주고 조금 잘못을 해도 제도를 잘 몰라서 그러려니 하고 이해를 하고 편의를 봐준다는 말이다. 6개월 체류비자를 받은 외국인을 추방하려면 영국 경찰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입국 시 이민국 관리가 찍어준 6개월 비자는 엄연히 국가가 한 약속이기 때문이란다. 이 약속을 깨고 기한 전 강제출국을 시킬 때는 당연히 국가의 이름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영국을 보통 ‘불문법의 나라’라고 학교에서 배운다. 전혀 아니다. 영국에도 글로 된 성문법이 많다. 단지 제일 중요한 성문법인 헌법이 없어서 그렇게들 부르는 게 아닌가 싶다. 헌법을 굳이 글로 남겨 놓지 않아도 오랜 전통과 무언의 이해를 통해 얼마든지 국정을 잘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보인다. 오히려 영국인들은 법을 글로 남겨 놓으면 조문과 제도에 묶인 권력자들과 관리들에 의해 현실로부터 괴리되는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구멍 난 제도를 그냥 두고 법과 제도를 애써 정비하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법과 제도의 이름으로 권력이 인간을 억압하는 불행을 경고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1984’가 영국에서 나온 건 우연이 아닌 듯하다.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이 괜히 영국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법과 제도와 문서보다는 무언의 합의와 이해가 더욱 우선한다는 영국인의 지혜가 새삼스럽게 와닿는다.
권석하 / 재영칼럼니스트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