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 태 고문께서 우리가 7월에 방문하게 될 체코프라하를 올려주셨네요.
2차 대전 때 연합군병사가 폭격을 명령받았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는 프라하가 너무 아름다워서 차마 폭탄을 떨어뜨릴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1999년부터 “프라하 모차르트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맡으면서 참 많이 다녔습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잡혀있는 공연은 지휘를 해야하는 가련한 지휘자의 운명때문에 ......
호텔비 100$이 아까워서 내일 또 공연이 있는데도 공연 후에는 잠오는 눈을 비비면서 320km떨어진 빈으로 돌아왔으며
다음날 점심 식사 후에느 320km들 달려서 저녁8시부터 10시까지 공연을 지휘하고 또 밤길을 달려 빈으로 왔습니다.
드보르작 홀로도 불리는 “루돌피움”과 실내천장이 아름다운 “스메타나 홀” 등 프라하의 대표적인 음악당에서 수십 번의 음악회를 지휘했는데 그때는 그홀이 이렇게 유명한 홀인지도 모르고 지휘를 했습니다.
프라하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320Km 떨어져 있으며 가는 길은 고속도로를 많이 거치는 길과
국도를 많이 거치는 두 가지의 길이 있는데 가는길에는 재미있는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있습니다..
고속도로는 빠르고, 국도는 아름다운 체코의 자연을 감상할 수가 있기에 좋았습니다.
국도는 급커브길이 많아서 밤에는 과속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위험하며, 표지판을 보고도 길 찾기가 쉽지 않지요.
낮에는 국도를 달리면서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의 배경이 되었던 체코의 숲을 감상했고
드보르작의 보헤미안적인 포근한 음악과, 스메타나의 “몰다우”를 몸으로 느꼈습니다.
이순태 고문께서 올려주신 첫 번째 사진인 국립박물관은 왕관처럼 광장위에 우뚝서 있으며, 박물관 아래는 지하철이 다니고, 박물관 옆은 국립 오페라하우스가 있지요.
광장아래 끝을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화약탑이 있고 화약탑 옆이 “스메타나‘ 홀이지요.
화약탑 은 1475년 지금의 구 시가지를 지키는 13개 성문 가운데 하나이자, 대포 요새로 건설되었습니다.
고딕 양식의 탑으로, 높이는 65m이며, 총 186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죠.
어둡고 칙칙하지만 자동차등의 먼지 때문이며, 옛날에는 왕과 여왕의 대관식을 거행했던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시내 중심으로 들어서면 체코의 종교 개혁자 “얀후스”(1372~1415)의 동상이 나옵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진리는 승리한다)고 했던 체코민족운동의 지도자이기도 합니다. (보헤미아의 독일화 정책에 저항)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트”보다 100년 이전에 벌써 “성경을 남의나라말(라틴어)로 읽지 말고 자기의 언어로 읽어 라고” 권했던 대단한 분이지요.
또 궁극적인 권위가 성경이어야지 교회나 특히 인간(당시의 교황이나 추기경)이 될 수 없다고 설파했다가 화형당한 올바른 분입니다.
다음사진이 프라하 성인데 성으로 가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지요.
차를 몰고 가면 다리를 건너는데, 다리를 건너기전 오른쪽에는 세계적인 체코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루돌피움”(드보르작 홀)이 있고 뒤에는 국립 음악원이 있지요.
걸어서 간다면 “카를교” 다리를 건너는데 소원을 빌기 위해 사람이 항상 많이 있습니다.
다리아래 흐르는 강이 “몰다우” 강인데 스메타나의 유명한 교향시 “나의조국‘ 중 ”몰다우“ 음악의 이름이지요.
체코사람들이 우리들이 흔히 아는 드보르작 보다 스메타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스메타나의 애국심 때문입니다.
체코가 독일의 압제 하에 있을 때 스메타나는 음악을 도구로 항거했던 애국자입니다.
나의조국중 “몰다우” 음악의 시작은 강이 두 갈레의 발원지에서 흐르는 것을 플륫과 클라리넷으로 표현하며, 물이 만나는 곳에서 현악기와 전체가 합쳐져서 큰 강물마냥 흘러가는 것을 잘 표현했습니다.
“카를교“ 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교라고들 합니다.
왕이 부인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왕비가 고해성사를 했던 신부를 고문했지만 실토하지 않자 신부를 다리에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별이 나오고 ... 그래서 다리에서 소원을 빌면 평생 한번은 소원을 들어주신다고 하니 꼭 한번은
들려보세요
특히 카를교는 조명을 받은 야경이 아름답기에 여자분 들이 좋아하데요.
성안에는 웅장하고 예쁜 교회가 있고, 교회 옆의 대저적인 건물이 현재도 대통령이 근무하는
집무실이며 신년에는 앞의 광장에서 시무식을 합니다.
성에 오르면 프라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며, 성 옆에는 옛날 귀족들이 살던 저택들이 있고
성 아래는 오래된 옛날 도시가 있지요.
음악최고 지도자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시내중심에 있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지오반니”가 초연된 공연장입니다. 모차르트는 프라하에서 갈 때 마다 환대를 받았으며 그래서 프라하를 사랑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모차르트의 삶을 그린 영화 “아마데우스”의 촬영을 프라하에서 했습니다.
사람들은 아마데우스의 촬영지를 오스트리아 빈으로 알고 있지만, 프라하에서 했습니다.
프라하에 가면, 영화속의 모차르트가 지휘하는 극장과 눈보라를 혜치고 마차를 타고 가는 거리, 말년의 살리에리가 신부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듯이 옛날을 회고하는 성당 등이 있습니다.
문학가 “카프카‘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고 러시아에 저항하는 ”프라하의 봄’이라 불리는 큰 저항의 물결도 프라하에서 일어났습니다.
한국 못지않게 시련을 많이 겪은 체코는 이런 시련을 통해서 예술이 발달했습니다.
체코사람들은 말수가 적지만 속으로는 자부심과 고집도 세지요.
체코인은 북쪽의 슐레지안, 프라하 근방의 보헤미안, 동쪽의 모라비안 민족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들은 성격과 문화가 조금씩 다르지요.
드보르작의 음악이 단순한 것은 보헤미안의 민요가 단순하기 때문이며, 야나첵의 음악의 화성이나 리듬이 복잡함은 모라비안의 민요가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슬로바크 슬라브족인 슬로바키아는 906년부터 1918년 1차 세계대전까지 헝가리의 지배를 받다가 1차대전 후에 체코와 합쳐졌다가( 체코슬로바키아) 1993년 다시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었습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언어가 많이 비슷하며, 민족성은 조금 다릅니다.
이번 7월에 우리는 역사적인 장소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몸으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