化씨
진양 화씨(晋陽 化氏)의 시조 화명신(化明臣)은 중국 명나라 사람으로 조선 중기 성종 때 명나라에서 귀화하여 화(化)씨를 하사받아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관은 진양(晋陽), 나주(羅州), 복룡(伏龍), 여황(艅艎) 등이 있다.
진양 화씨(晋陽 化氏)의 시조 화명신(化明臣)은 중국 명나라 사람으로 조선 성종 시절 귀화했다. 화명신의 본래의 성은 화(花)씨이며 본래의 이름은 화광신(花光新)이었다고 한다.
그는 명나라 사부상서를 지낸 화평의 아들로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고 "어진 사람은 기회를 알고 행한다"며 '예의의 나라' 조선으로 일가를 이끌고 망명하여 경주에 은거, 학문으로 일관하던 중 조선 성종이 "중국의 화(花)씨가 조선에 귀화한 것은 향화(向化)의 의리"라며 화(化)씨를 성으로 내리고 경성군(慶城君)에 봉해졌고 도승지에 기용됐다.
그러나 득성(得姓) 시조 화명신 이후 사성보첩을 잃었다. 헌종 때 후손들이 경상도 안동대도호부에 보존되어 있던 족보를 가까스로 찾아냈으나 원본이 크게 훼손돼 정확한 선계(先系)를 밝히지는 못하고 화명신(化明臣)의 6대손 화섭(化燮)을 1세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화섭은 정유재란 때 울산의 왜군을 몰아내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선조 31년 영양공의 시호를 받았다. 전쟁이 끝난 후 경남 진양에 터를 잡아 뿌리를 내렸다.
화(化)씨는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286가구, 945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76위이다.
cf. 신의(神醫)로 불리는 화타-華陀)와는 다른 성씨
■ 華陀
(145년~ 208년 이전) 조조에 의해 죽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또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초(譙: 現 보저우시) 출신의 동향이다.
후한 말의 인물로《삼국지》의 등장인물. 자는 원화(元化)로 본명은 부(敷)다.
신의(神醫)라고 일컬어지는 전설적인 명의로서 또 다른 고대의 전설적인 명의인 편작과 더불어 중국에서 의사 하면 단번에 떠오르는 인물이다. 더불어 동시대의 인물인 장중경, 동봉과 함께 건안삼신의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