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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까지만 해도 사부가 절벽에 올라와 명상에 잠겨있는 것을
보면 쓸데없는 짓이라 생각하여 무시하고 넘어갔던 강운이었다.
하지만 지금 강운은 그 동안 사부와 함께 지내왔던 시간들을 생각해
보며 이제는 그 자신이 사부와 가장 닮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젠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기에 강운은 사부
의 모습을 자신을 통해 다시 재현해 내려고 애쓰고 있는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간 지도 모를 정도로 강운은 무아지경의 상태로
명상에 집중해 있었고 백호는 강운에게서 전혀 느껴 보지 못한 새로
운 느낌을 받고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느낌이라 하지만 그 느낌은 자신에겐 더 없이 익숙한 그런 느
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마치… 그래! 영감탱이의 느낌과 비슷하지 않은가? 운이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하긴.. 제자는 사부를 닮는 다고 했는데 운이
한테서 그 영감탱이의 느낌이 난다고 해서 이상할건 없겠지.. 하지만
전에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
백호의 의아함을 뒤로 한채 강운은 그로부터 한참동안이나 명상에서
깨어날 줄을 몰랐고 마침내 강운이 눈을 떴을 때는 해가 저물어 가고
있는 황혼 무렵이었다.
강운은 눈을 뜨고서 타들어가는 붉은 빛을 내는 황혼을 바라보며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었다.
황혼이 다 저물어 가고 주위에 어두컴컴해 질 때까지 강운은 그 자리
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 백호를 바라봤다.
강아지로 변신한 백호는 자신이 명상에 잠겨있는 동안 심심했던
모양인지 이미 쌔근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강운은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킨 후에 자고 있는 백호를
안아들고는 공간을 열었다.
“사부.. 기다려요. 반드시 내가 찾아내고야 말 테니깐! “
강운이 공간을 열고 사라지기 전 독백처럼 중얼거린 말이 긴 여운을
남기며 절벽 주변에 메아리 치고 있었다.
강운이 홀연히 모습을 감춘 후 4개월 동안 강호 무림의 정세는 실로
급박하다 못해 위험천만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 동안 화운문에 의해 억압되어있던 마교가 드디어 준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사실 언젠가는 터져버리고 말 활화산과 같이 위험한 형국이 150년
동안 유지 되고 있었으니 마교의 준동은 어쩌면 너무 늦게 나타난
것이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시작된 마교의 준동은 너무도 은밀하고 세밀한 계획하
에 이루어진 일이었기에 무림맹과 오련회에서 그 사실을 눈치 챘을 때
에는 이미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였다.
그 동안 무림맹과 오련회가 서로를 비하하며 헐뜯고 싸우고 있을 동
안에 마교는 아주 은밀하면서도 신속하게 오대세가에 첩자들을 심어
놓는데 성공했고 그 첩자들 대 부분이 오대세가에서도 가장 핵심
세력의 주축을 이루는 인물들이었기에 그들이 세가 안의 세력을
규합하여 내부를 침과 동시에 외부에서 마교의 정예들이 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하자 오련회라는 거대한 이름에 걸맞지 않게 너무나도
허무하게 오대세가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같은 날 같은 시에 이루어진 공격에 의해 오대세가 중 하북팽가를
제외한 모든 세가가 거의 초토화 되어 버렸고 다행히 그중 몇몇 살아
남은 인물들이 하북팽가에 모여 후사를 논의하며 급박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무너진 오대세가에 경악한 무림맹에서 뒤늦게 사람
들을 파견해 보았지만 이미 오대세가는 하북팽가를 제외한 모든
세가가 불타고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오련회의 본단이 있었던 제갈
세가는 그 피해가 가장 극심했다.
하북팽가는 다른 세가에 비해 그 피해가 아주 경미한 정도로 그쳤는
데 그것은 미리 세가 내에 침투해 있던 첩자들을 색출하여 잡아들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리 첩자들을 잡아들였다고는 하지만 팽가 역시
그 피해가 만만치는 않았다. 팽가 본 전력의 3할을 잃고 소가주인 팽
연후가 크게 다쳤기 때문이다. 팽연후는 직접 철궁단을 이끌고 팽가의
가장 선두에서 마교의 정예들과 접전을 펼치다가 어깨부터 허리에 이
르는 긴 검상을 당했던 것이다. 다행히 상처가 깊지 않아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당분간 거동에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마교는 그 동안 음지에서 숨어 지내며 수십 년 동안 비밀 세력을 키워
왔었던 만큼 그들이 한꺼번에 전면에 모습을 들어내자 그 세력은 무
림을 뒤집어 엎어버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마교라는 집단 자체가 사악함을 추종하는 세력인 만큼 그들이 일어났
을 때에는 언제나 피와 살육이 난무하고 겁난이 일어나는 계기를 만
들어 주는 역할을 주로 하였기에 무림인들 뿐만이 아니라 중원인
모두는 마교의 다음 행보를 조심스럽게 지켜보았다.
마교는 오련회를 짓뭉게 버린 후 그 여세를 몰아 무림맹까지도 무너
트릴 정도로 강맹한 위세를 떨쳤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그들은 십만대
산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외부로 출입을 하지 않았다.
마교가 더 이상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세간에서는 또 다른 소문이
> 퍼져나가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화운문이 모습을 들어낼 것이라
는 얘기들이었다.
150년 동안이나 잊혀져 있던 전설속의 문파였지만 위급한 상황이 닥
쳐오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화운문에 대한 얘기가 강호 전역을 달
아 오르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사람들은 마교는 화운문의 억압에서 완전히 벗어
나지 못했다는 말과 함께 사천에 있는 화운문의 분타로 모여들기 시
작 하였다.
사람들이 신비 문파 화운문이 다시 모습을 들어낼 것을 기다리고 있
을 때 마교 역시 세간에 퍼지고 있는 소문을 듣고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폐관수련에서 나온 교주가 너무나 성
급하게 오련회를 칠 것을 명했을 때에도 마교인들은 죽음을 불사한
충성심으로 오련회를 짓뭉게 버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들로서도 150년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한 가지 금기를 어
겼음에야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절대로 화운문과는 대적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것! 마교 역사상 가장
처참하고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후부터 지켜져 오고 있는 마교인이
지켜야 할 유일한 금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폐관 수련을 마치고 도저히 인간의 기운이라 할 수 없
을 정도로 사악한 기운을 내뿜는 교주의 명에 그 금기를 깨트려 버리
려 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절반 정도의 힘만으로도 무림맹 정도의 오
합지졸 집단은 손쉽게 무너트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우려하는 것은 무림맹이 아닌 화운문이었다.
마교는 오련회를 건드려 화운문을 이끌어낼 심산으로 십만대산에
서 조용히 웅크리며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상업이 성행하면서부터 눈부친 발전을 거듭해 오던 석
가장 일대는 오늘도 쉼없이 들낙거리는 상인들에 의해 발디딜틈이 없
을 정도로 북적거렸다.
4개월 전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다고는 하나 아직은 촌의 모습을 그
대로 간직하고 있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건물들도 많이 지어졌
고 또한 관에서도 그 중요성을 실감했는지 군졸들을 보충하여 치안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제는 제법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가고 있는 석가장 일대의 상
공에 강운이 모습을 들어냈다.
때가 저녁때인지라 어두컴컴했기에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나
행인들은 강운이 나타난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강운은 아직도 자신의 품에서 잠들어 있는 백호의 머리를 가볍게 쓰
다듬으며 전에 비해 너무도 많이 달라진 석가장 일대를 구경하며
허공에 마치 계단이라도 있는 듯이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지상으로 내려온 강운은 기억을 더듬으며 평안객잔을 찾아가기 시작
했다. 그곳에 추남과 화린이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강운으로서는 자신이 갑자기 사라져 걱정하고 있을 추남과 화린 그리
고 채수연에게 몹시 미안한 감정이 들었던 것이다.
주루를 비롯해 모든 객점들은 이미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셔대는
사람들로 미어터질 지경이었고 이곳 저곳에서 술을 먹고 헤롱대는
사람들이 싸움을 벌이며 난장판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주접을 떨고
있는 것이 강운의 눈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강운은 시선을 외면한 채 걸음을 재촉했고 마침내 평안객잔 앞에 도착
할 수 있었다.
그곳은 다른 객점들에 비해 매우 조용하면서도 뭔가 분위기 있어 보
였고 또한 외관도 거의 건물을 신축하지 않았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깨끗하고 깔끔해 보이는 것이 전과 비교해 무척이나 달라져
있었다.
강운은 마음으로 미리 채수연에게 뜻을 전할 수도 있었지만 갑자기
장난기가 생기는 바람에 갑자기 들어가 놀래켜 주려는 심산으로
평안객잔의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전에 왔을 때 처럼 그렇게 조심스럽게 열지 않아도 부서지
지 않을 만큼 문이 튼튼했기에 강운은 거침없이 문을 열고는 객점 안
으로 들어갔다.
“어서옵쇼! 저희 평안객잔을 찾아주신 손님의 탁월하신 선택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자! 이리로 오시지요. “
강운은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처음 보는 점소이가 자신을 반기자 얼떨
떨해 하면서도 점소이가 이끄는 대로 자리에 앉아 자신의 주문을 기
다리고 있는 점소이를 멀뚱하게 바라봤다.
“에.. 아무거나..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게 가져와. “
점소이는 강운의 말도 안되는 주문에 잠시 어찌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이내 굽신거리며 주방으로 뛰어갔고 강운은 그때서야 객점 안을 둘러
볼 여유가 생겼다.
밖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객점 안에는 제법 사람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특이할 만한 것은 그들 대부분이 검과 도등의 병장기를 휴대한 무림
인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강운이 객점안으로 들어올 때부터 험악한 인상을 구기며 강운
을 주의깊게 살펴보았지만 이내 강아지 한 마리를 끌어안고 아직은
어려보이는 강운을 보고는 피식 웃음을 짓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사실 강운이 다른 객점을 들러보지 않아서 모르는 것이지만 지금 석
가장 일대를 비롯한 사천으로 향하는 모든 길목의 객점에서는 무림인
들이 가득했던 것이다.
강운은 처음에는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생각에 불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기분을 풀고는 외관과 마찮가지
로 내부의 모든 장식과 모습이 바뀌었다는 것에 대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거 혹시 주인이 바뀌었나? 전에 그 할아버지가 이 정도로 미적
감각이 뛰어나 보이지는 않았었는데.. ‘
강운은 객점안에 새로운 손님이 들어올 때 마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
며 신속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점소이들을 바라보며 의문 가득한
시선으로 객점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곳은 이름만 평안객잔이지 전에 강운이 있었던 그곳과
는 너무나 모습이 많이 바뀌었던 탓이었다.
점소이가 탁자 한가득 음식을 들고 나오자 강운은 인사를 하고 돌아
가려는 점소이를 붙잡았다.
“잠깐만! 혹시 이 객점 주인이 채삼보 할아버지 맞어? “
점소이는 강운이 채삼보의 이름을 들먹이자 의외라는 듯한 눈빛으로
강운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주인 어르신을 아시는 분이신가요? “
강운은 점소이의 말을 듣고는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에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휴.. 제대로 찾아왔구나. 바쁘지 않으면 할아버지한테 가서 강운이라
는 사람이 왔다고 전해줘요. “
“예.. 알겠습니다요. 하지만 저희 주인 어르신께서는 요즘 손녀가 아
프셔서 외부인과 접촉을 하지 않으시고 계셔서 나오실지는 모르겠습
니다. 하지만 일단 말씀을 전해드릴 터이니 잠시 기다리십시오. “
점소이가 어딘가로 빠르게 사라져 버리자 강운은 먹음직 스러워 보
이는 음식들을 보고는 군침을 삼키며 허겁지겁 입에 쑤셔넣기 시작
했다.
4개월 만에 먹어보는 음식이라서 그런지 식탁 한가득 차려져 있던 음
식들이 강운의 입속으로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고 주변에
서 식사를 하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경악한 표정으로 입만 떡
하니 벌린 채 다물 줄을 몰랐다.
사람들이 어떻게 쳐다보든 강운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시원한
냉수 한잔을 쭈욱 들이킨 후에 불뚝 튀어나온 똥배를 통통 튀기며
아직도 잠이 들어있는 백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채삼보가 나오기만
을 기다렸다.
강운이 음식을 모두 헤치워 버리는데 소비한 시간은 일각도 채 걸리
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기에 강운은 빨리 나오지 않는 채삼보에게
불만이 생각기 시작했다.
강운이 막 안 되겠다 싶어 직접 객점 안을 돌아다녀 볼 생각으로 자리
에서 일어섰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숨을 헐떡거리며 자신에게 뛰어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