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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오늘도 예배드리는 귀한 성도님들의 삶과 가정과 일터 위에 충만하게 임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도 함께 인사합시다. 우리 서로 양옆에 앞에 계신 분하고 인사하실 때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출애굽 소식을 들은 이드로는 모세의 아내죠. 즉 자신의 딸과 자녀들 손주 그들을 데리고 모세가 머물고 있던 하나님의 산에 방문하게 됩니다.
여러분 그들이 재회하는 그 시간 얼마나 기쁨이 컸겠습니까? 그 자리에서 감사의 제사도 드리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음식도 나누면서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즐거운 교제의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그다음 날이 되자 모세는 아침부터 저녁에 이르기까지 하루 종일 백성들을 재판하는 일에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오늘 13절에 기록되어져 있는데 다시 한번 읽어봅니다.
이튿날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곁에 서 있는지라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드로는요. 왜 모세 홀로 재판을 하고 백성들은 왜 모세만 찾는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왜 이들이 모세에게만 찾아오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죠. 그러자 모세가 대답을 합니다. 그 대답이 15절인데 같이 보실까요?
모세가 그의 장인에게 대답하되 백성이 하나님께 물으려고 내게로 오니라.
백성이 모세를 찾은 이유는 자신들에게서 발생된 그 문제를 하나님께 묻기 위해서 왔다고 기록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 말 속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 백성들은 그렇게 불평과 불만을 했어도 그들의 삶의 기준을 자신의 뜻에 두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죠.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요.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대로 살고자 하는 경건한 모습이 이들의 삶에 있었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서로 간의 관계 속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면 모세 앞으로 쪼로록 나오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이 모세를 찾은 궁극적인 목적은요. 이스라엘을 신이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그 하나님께 그 뜻을 구하고자 이들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삶에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해서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경건하고도 거룩한 삶을 위해서 우리는요. 자신의 뜻도 자신의 생각도 자신의 판단도 내려놓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로마서 12장 2절에 보시면 로마서는 앞에 율법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복음에 대해서 쭉 설명하고 12장부터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삶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거기에 구원받은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 우리 같이 한번 크게 읽어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렇습니다.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 단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그 길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그것이 어떻게 사는 것이 아는 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이것은 우리가 지식적으로 알기 위해서 분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에는 그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우리가 그 삶을 살고자 애쓰고 노력하는 지혜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그러한 거룩한 성도,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 백성들은 어느덧 지도자 모세의 영적 권위를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요. 물론 출애굽 여정 속에서 지도자 모세를 향해서 시도때도 없이 불평 불만을 늘어놓았죠. 뿐만 아니라 모세를 향해 돌팔매질을 할 정도 그러한 상태에 이르기까지 극도로 예민해졌던 것이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모세를 대할 때 하나님께서 세우셨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보내신 자라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거예요. 그러니 모세도 하루 종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그 사역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힘과 즐거움이 그에게 있었다는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가족들하고 오랜만에 만났어요. 그러면 적어도 야 오랜만에 만났으니 하루면 되겠냐 이틀 3일 우리 이런저런 담소도 나누고 교제하자 그럴 법도 한데, 그다음 날이 되자 모세는요. 아침부터 저녁에 이르기까지 재판하는 일에 열심을 다했다. 하나님께서 그것이 그에게 주신 사명임을 알고 최선을 다했고 그리고 백성들도 의지함으로 찾아왔기 때문에 안 할 수가 없었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죠.
특별히 이 재판하는 모습을 보면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과거 40년 전 이스라엘 백성 중 한 사람이 모세를 향해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40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당시에 모세는 왕궁에서 자라며 권력을 가진 자로 자랐습니다. 왕자의 삶을 살고 있던 모세가 어느 날 갑자기 자기 백성들이 어떻게 사는가 궁금해서 나가보게 되죠. 그리고 백성들의 고된 노동을 지켜봅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어요? 우리 백성들이 저렇게 힘들게 사는구나 그런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겠죠.
그런데 갑자기 한 애굽 사람이 자기 민족 히브리 사람을 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그 모습을 본 모세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좌우를 살피더니 급기야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애굽 사람을 쳐서 죽이고 그 시체를 모래 속에 감추게 됩니다.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다시 나가보니 이번에는요 히브리인 두 사람이 옥신각신 싸우고 있는 거예요. 가만히 들어보니까 이 사람이 잘못했어요. 그래서 가서 왜 당신은 동적을 그렇게 치느냐며 꾸짖습니다.
그때 그 사람이 이야기합니다.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세우셨습니까?
당신이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일 셈입니까?
이렇게 따지는 거죠. 출애굽기 2장 14절인데 우리 그때 상황을 생각하면서 같이 읽어봅시다.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내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리 탄로 되었도다.
여러분 이때 동족이었던 히브리 사람이 모세를 향해서 따진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 누구기에 당신이 아무리 권력을 가지고 지금 왕 옆에서 왕자의 목숨을 산다 할지라도 도대체 당신이 누구기에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 행세를 하려고 하느냐 즉 그의 리더십, 영적 권위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즉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지도자 노릇, 재판관 노릇 하지 말아라 그렇게 이야기한 거죠.
그런데 이제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모세는 광야의 생활의 삶을 통해서 훈련되어지고 잦아졌습니다. 그리고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죠.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순종하여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내어서 하나님의 사연에 이르는 자리에까지 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이요. 하나님께 묻기 위해서 모세를 찾아왔다. 이 변화된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것이죠. 이들의 모습은 과거에 누가 당신을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라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과 같은 행동이다.
영적 권위를 인정해 주고 그 앞에서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러했기 때문에 모세 역시 맡겨진 사명에 아침부터 밤까지 최선을 다해서 감당했을 거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에게 허락하신 리더십도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어떤 사람에게는 목회자로, 어떤 분에게는 장로로, 어떤 분에게는 권사와 안수, 집사 또한 교사로 각각 여러 모양 여러 부분으로 직분을 세워주셨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그 직분 사명은요 단지 내가 하겠습니다. 동의했다고 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거룩한 직분이라는 사실이에 저와 여러분들이 그 사실을 잊지 말고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더불어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도록 저와 여러분들이 지지해 주고 격려해 주고 세워주는 그러한 은혜가 있기를 소망해요. 저는 그것이 호칭이라고 생각해요. 권사님을 권사님으로 부를 수 있는 호칭, 안수 집사님을 안수 집사님으로 불러줄 수 있는 호칭 이것을 통해서 세워주고 높여주고 그래서 질서가 잡힐 수 있도록 나아가는 것 그것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요. 200만 명이 넘는 백성들을 모든 문제를 홀로 감당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의 판단을 받기 위해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던 백성들의 행렬을 보게 되죠.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제가 생기면 모세에계로 나왔다 한두 사람이 나왔겠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행렬을 지어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서 있었을 거예요.
요즘 시대 오픈런에서 아침에 오픈하면 줄 서서 먹기 위해서 막 사람들 달려가서 줄 서는 것처럼 아마 이들도 문제 해결을 위해서 줄을 섰을 거예요. 그날 해결되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이드로가 보면서 안타까워하며 야 이것은 옳지 못하다고 문제를 제기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삶이 지속되게 될 경우 모세뿐만 아니라 백성들마저 지치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죠. 17절 18절에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같이 읽습니다.
모세의 장인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하는 것이 옳지 못하도다. 너와 또 너와 함께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에 내가 너무 중함이라 내가 혼자 할 수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무슨 일에 명분이 있어요? 그 명분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무조건 밀고 나가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어요. 그것이 거룩한 것이고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효율성을 배제한 채 열심히만 하는 것 옳지 못하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죠. 즉 이드로는 그 일이 중요하다 반드시 해야 되는 게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율성과 질서 있게 하면 좋겠다는 것을 제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를 제기한 이후로는 이제 내 말을 들으라라면서 권면을 하게 되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좋은 방침을 제안하게 됩니다. 19절 이하 22절이 그 제안의 내용인데요. 근데 이 말씀을 잘 살펴보면 베드로가 얼마나 지혜롭게 그에게 제안을 했는지를 볼 수가 있어요.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그 방침을 제안하기에 앞서서 먼저 모세를 축복했다는 거예요. 19절 말씀인데 우리 한번 같이 읽어봅시다.
이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내게 방침을 가르치리니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그 백성을 위하여 그 사건들을 하나님께 가져오며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이 말은 아주 중요한 축복의 메시지죠.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성경을 보면 볼수록 그것은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을 고백할 때 가장 큰 축복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서서 물의 문제로 인해서 원망할 때 있잖아요. 그때 그들이 하나님을 시험한다 하면서 여호와가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그것 좀 확인해야겠다. 왜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까 도대체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알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 속에서 계속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그 자리에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하나님 도대체 어디 계시는 거예요? 계십니까? 안 계십니까라고 묻게 된 것이죠.
여러분 따라서 여러분 문제 앞에 하나님을 우리는 묻게 돼 있다라는 거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이걸 알아야 돼요.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 문제는 결국에 해결된다라는 사실이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직면해 있는 그 문제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시고 능력이 많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흔히 이러한 사건들을 이야기할 때 요셉을 묵상하지 않습니까? 요셉의 인생은요 계속해서 떨어지고 떨어지고 가면 떨어졌다 올라가기도 해야 되는데 희한하게 떨어집니다.
또 떨어집니다. 계속해서 밑으로 내려가게 되죠. 그게 모셉의 삶의 현실이었어요. 그러나 성경은요. 그 환경에서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정확하게 기록해 주고 있다는 것이죠.
또한 요셉의 주인이었던 보디발 간수장 모두가 요셉을 보면서 하나님과 함께하심으로 범사에 형통했다. 잠깐 형통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의 범사가 형통했다고 고백했다는 거예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여호와께서 함께하셨다는 것은 요셉의 삶이요. 세상에 속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삶이었고, 세상 나라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고 살았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있어요. 그렇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형통한데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그때부터는 더 큰 위기가 온다는 것입니다.
사울 같은 경우를 한번 생각해 볼까요? 그가 하나님께서 초대 왕으로 세워주셔서 왕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죠.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어느 날 그의 삶에 주의 영이 떠나게 됩니다. 주의 영이 떠나게 되니까 악령이 그에게 나타나서 그의 삶을 괴롭혔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사무엘상 16장 14절인데 같이 한번 보세요.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르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여러분 무슨 말씀이냐 하면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나는 순간 악령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에 보시면 어떤 사람에게 귀신이 들렸는데 그 귀신이 잠깐 나갔던 사건을 이야기해 줍니다. 그 귀신이 어떻게 해서 그 사람에게서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해 주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그 사람에게서 쫓겨남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귀신은요. 그 사람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새로운 거처를 찾기 위해서 이곳저곳 두루두루 다니게 되죠. 그렇게 열심히 물색을 했지만 그가 쉴 거처가 없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귀신이 결심을 합니다. 내가 있던 그곳으로 다시 한 번 가보자. 그래서요. 본래의 집으로 돌아온 귀신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살고 있던 영혼에 그 마음에 들어가니까 청소도 돼 있어요. 수리도 싹 돼 있어요. 리모델링을 한 것 같아요.
그런데 문제는 그 안에 주님이 없었다는 거예요. 성경은 비어 있더라고 얘기해 비어 있더라. 누군가가 그 안에 있어야겠죠. 하나님이 그 안에 계셨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비어 있었다. 그래서 그 귀신은 옳거니 잘 됐다 해서 나가 일곱 귀신을 데리고 그곳에 들어갔다고 그렇게 성경을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새로운 통치자가 없는 상태. 그러면 결국에는 사단이 그 자리에 다시 차지하게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인간은요. 누구나 하나님이 아니면 악의 지배를 받게 돼 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오호라 나는 권고 자로다. 사망의 법과 생명의 법이 내 안에 공존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현실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의 법이 나를 지배하여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면 사망의 법은 줄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을 놓치고 우리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을 배제하고 살면 악한 그 법이 우리를 주장하게 된다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아니면 악한 것에 의해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는 거예요. 혹 나는 하나님과 악령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하는 분이 있다면 그야말로 이미 악한 영이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가 진정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거야말로 마땅한 삶이며 가장 큰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실 분명해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후 입만에 그 말씀이 바로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함이기 때문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삶에 언제나 어디에서나 무엇을 하든지 우리 하나님이 함께하는 은총이 있어 우리의 삶에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형통한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특별히 이것이요. 우리 성도 간의 축복의 말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오늘 이 시간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시다.
하나님은 당신과 함께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요 저와도 함께하시고 우리 성도님과도 함께하시고 그분이요. 오늘만 함께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 오시는 그날 그때까지 경주하는 우리의 삶 가운데 함께하신다.
여러분 그러니 저와 함께하시는 여러분과 함께하시는 그 하나님 붙잡고 날마다 승리의 찬송을 부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축복을 전한 이드로는 이제 실제적인 제안 두 가지를 하게 됩니다. 이해하기 쉽게 쉬운 단어로 표현해 주면 교육과 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안해 먼저 교육인데요. 이도르는 백성들에게 준수해야 할 규칙을 알려주고 삶의 방식과 방향을 가르쳐야 된다. 그렇게 제안을 합니다. 20절 말씀 우리 같이 읽어봅시다.
그들에게 윤례와 법들을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고
백성들이 하나님께 물으러 모세에게 나왔다는 것은 그들이요. 이 율례와 법도를 아직 잘 모르고 있다라는 것을 반증해 주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모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윤례와 법도에 따라서 판결해 주십시오라고 온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판결의 자리에 나오기에 앞서서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 그들이 인식하게 하고 그래서 이 재판이 줄 수 있도록 효율적인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즉 교훈이나 훈계를 통해서 그들의 무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윤리와 법들을 잘 가르쳐라고 주문한 거예요.
그래서 뒷문장에 보시면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죠.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내는 것이다. 즉 그 가르침을 통해서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별하도록 가르치라 이것이 핵심이죠.
그렇다면 여러분 그 길과 할 일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앞에 표현되었던 율례와 법도죠. 그래서 여러분 이 문장을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율레와 법도를 알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함으로 재판에 나오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가르쳐야 된다. 지금까지는 몰라서 이들이 옥신각신하면서 재판의 자리에 나왔다면 그것을 잘 가르쳐서 그래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은 이렇지 맞아 내가 잘못했네. 니가 잘했네. 이것을 판결하고 나오지 않을 수 있도록 또한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가르치라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야 할 삶의 기준은 바로 말씀이라는 거 생명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 우리를 교훈하기도 하고요. 책망도 하고요. 바르게 하기도 한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또한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해진다고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죠.
디모데후서 3장 16절 17절 우리 같이 큰 소리로 읽어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 생명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서 하나님이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실 뿐만 아니라 그 뜻대로 살아가는 존귀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렇게 먼저 교육이 필요하다라는 것을 제안한 후에 이어서 동역의 필요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백성들 가운데 능력 있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면서 뒤에 세 가지 조건을 이야기합니다. 천부장, 백부장 오십장 십부장을 세워야 되는데 이들을 그냥 세우지 말고 조건을 내건 거죠. 이러한 것에 부합한 사람 세워야 된다. 우리 21절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여기 보면은 세 가지 기준이 나와 있죠. 능력 있는 사람들 하면서 곧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세워야 된다. 다른 것 판단하기에 앞서서 이 사람이 하나님을 과연 두려워하는가 두려워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경외한다는 것이죠. 존견과 신뢰를 바탕으로 경건한 마음가짐과 끊임없는 공경의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을 세워야 된다.
그렇다면 여러분 경유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배울 수 있을까요? 신명기 1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분명히 왕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왕을 요구하면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을 왕으로 세워라. 그리고 그 사람이 왕으로 등극이 되면 율법서의 등사본을 기록해서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라. 즉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게 해라. 왕이 되면 그렇게 조건을 단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저와 여러분들을 어떤 분에게는 목회자로, 어떤 분에게는 장로로, 안수집사로, 권사로 또한 교사로 여러 직분으로 세워주셨다는 거예요.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기에 앞서서 저와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유하는 자들이 먼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형성돼야지. 두 번째는 진실한 사람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이는 인간의 됨됨이가 거짓이 없다는 것이죠. 모든 사람들에게 신뢰받을 만한 신실하고 충실한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잠언 14장 25절에 이렇게 말씀을 주세요.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
저와 여러분들이 진실한 사람들 되어서 생명 살리는 일에 동참하는 멋진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 번째는요.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이것은 쉽게 말해서 불의로 인해서 흔들리지 않고 항상 그 심지가 견고한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이 심지가 견고하기 위해서 무엇에 기준을 삼아야 됩니까? 말씀을 기준 삼아서 흔들리지 않는 삶이 되어야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잖아요.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니 무너지는 집이 있었다는 거예요.
반면에 무너지지 않는 집이 있었다는 것이죠. 무너지지 않는 집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로서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운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무너지는 집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로서 외부 환경에 의해서 무너져버리고 마는 집이었다라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죠. 꺾이면 안 돼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되는데 더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이 내 고집이냐 하나님의 말씀이냐 바라는 것은 내 고집이면 꺾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꺾이지 않는 그러한 마음 가지고 저와 여러분들이 흔들리지 않는 멋진 인생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이드로가 이 제안을 하고 나서 이렇게 할 경우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에 대해서도 언급을 해줍니다. 23절 말씀인데요.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십니다.
내가 만일 이 일을 하고 하나님께서도 내게 허락하시면 내가 이 일을 감당하고 이 모든 백성도 자기 곳으로 평안히 가리라.
결과는 이렇대요. 모세가 감당할 일 잘 감당할 것이다. 지금처럼 하면 나중에 지쳐서 못하지만 내가 말한 대로 교육하고 동역하면 지치지 않고 그 일을 다할 것이다.
두 번째 백성들은 평안의 집에 갈 것이다. 문제 해결이 다 되어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이 결과를 얻기 위해서 모세가 취해야 될 것은 이제 백성들에게 교육하고 또 잘 분배해서 동역하는 사역을 만들어가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 9절에 보니까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중간에 보시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된다. 여러분 아무리 좋은 제안일지라 할지라도 또한 그것을 열심히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일들, 지혜롭게 잘 구상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이 아름다운 일에 교육도 받으시고 같이 분배해서 사역도 잘 감당하여서 우리 신혼 교회가 이 지역 가운데 든든히 어떤 외부의 환경으로도 무너지지 않는 아름다운 집, 아름다운 교회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입니다. 이드로가 제안한 세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첫째는요. 모세에게 있던 이 과중한 업무를 벗어나게 해주었다.
두 번째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공동체를 위해서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전에는 모세 혼자였다면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이렇게 같이 하나님의 공동체를 위해서 섬기는 자들을 세웠다는 것이고, 세 번째 백성들로 하여금 어려운 문제가 풀어질 수 있도록 그 일을 감당케 했다. 전도서 4장 9절에서 12절 말씀을 설명하고 마치겠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은 것은 협력함으로 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만일 두 사람 중에 하나가 넘어지면 한 사람이 일으켜 세워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홀로 있으면 내가 문제가 당했을 때 일으켜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추운방에 두 사람이 누워서 끌어안고 있으면 열기가 있어 살아남지만 그렇게 해서 따뜻하지만 그러나 혼자 있는데 어떻게 그 따뜻함을 누릴 수 있겠느냐 한 사람으로 당해낼 수 없는 공격이 두 사람이면 능이 막아낼 수 있고, 세겹줄 즉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우리 신은 공동체로 부름받아 함께 세워가는 이 자리에 함께 말씀 중심으로 살아가시고, 더불어서 내가 맡아서 감당해야 될 그 사명에 최선을 다해 감당하여서 우리 모두가 평안하게 든든하게 세워져 가는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는 함께 동참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