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솔래의상, 비람강생상, 사문유관상, 유성출가상,
설산수도상, 수하항마상, 녹야전법상, 쌍림열반상
부처님의 생애를 탄생부터 80세 열반에 이를 때까지 주요한 부분을 여덟 부분을 뽑아서 그림으로 만든게 팔상성도라고 했어요.
쉽게 생각해보면 유튜브 동영상을 8부분으로 나누어서 썸네일을 뽑아놓은게 팔상성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자, 팔상성도는
도솔래의상, 비람강생상, 사문유관상, 유성출가상,
설산수도상, 수하항마상, 녹야전법상, 쌍림열반상입니다.
지난 주에 이어 오늘은 이 중에서 네 번째 장면인 유성출가상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태자의 탄생
지난 번에 석가모니 부처님은 기원전 약 624년전에 인도의 작은 나라 카필라국 석가족에서 태어나셨는데,
아버지는 숫도다나 대왕이고 어머니는 마야부인이라고 했어요.
석가모니 부처님은 전생에 도솔천의 보살로 계시다가 천신들의 권유로 인간 세상을 잘 살펴보고 카필라국의 왕자로 태어나기를 결정했다고 했죠.
이때 마야부인은 상아 이빨이 여섯 개인 흰 코끼리가 뱃속에 들어가는 태몽을 꾸고 아기를 잉태하게 되는 이야기를 ‘도솔래의상’이라는 그림과 함께 설명드렸습니다.
마야부인의 뱃속에 입태하고 열 달이 지나자, 아이를 낳으러 친정집으로 가게 되었는데, 이때 룸비니 동산에 잠시 쉬려고 들렸어요. 그리고 무우수 나무의 가지를 붙잡자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아기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났어요.
그리고 아기 석가모니 부처님은 태어나시자마자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씩 걸으면서 오른손 검지는 위로, 왼손 검지는 아래로 향하게 하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화택 아당안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늘 위, 하늘 아래 내가 홀로 존귀하니, 번뇌로 불타는 집과 같은 삼계를 내가 마땅히 편안하게 하리라.”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오신날 아기부처님을 이제 목욕시켜 드릴텐데, 그때 아기 부처님은 이러한 동작을 하고 계시다고 했습니다. 이 탄생 장면을 설명한 그림이 ‘비람강생상’입니다.
아기가 태어나자 숫도다나 대왕은 너무 기뻐 태자의 이름을 고타마 싯다르타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나 7일이 지나자 어머니인 마야 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그 시대의 관습대로 숫도다나 대왕은 마야부인의 동생인 마하파자파티와 부인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게 태자는 마하파자파티의 양육을 받으면서 자라나게 됩니다.
# 태자의 성장
싯달타 태자가 일곱 살이 되던 해, 숫도다나왕은 공부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갖춘 학당을 세우고 오백 명의 사까족 제자들을 선발해서 그 시대에 유명한 스승들을 불러서 태자의 교육을 시켰다고 합니다.
태자는 64종의 문자를 완벽히 익혔으며, 수학, 신화, 서사시, 경제학, 정치학, 수사학, 논리학, 동식물 연구, 음악, 기예, 승마, 창술, 궁술, 격투기, 수영 등 29종의 군사학을 연마하고 숙달되어 마침내 스승의 학식을 뛰어넘게 되어 스승들도 태자에게 경외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태자가 열 아홉살이 되자 이웃 꼴리아족의 공주 야소다라 공주와 결혼하게 됩니다.
숫도다나 대왕은 태자와 태자비를 위해 우기철을 위한 궁전, 여름 궁전, 겨울 궁전의 세 개의 궁전을 지어 각기 철마다 머물게 하였습니다.
# 네 개의 문
그렇게 아름다운 궁전에서 젊은 무녀들에게 둘려싸여 호화로운 생활을 할 때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는 새봄을 맞이하여 왕족들과 함께 동문으로 봄놀이를 나서다 한 노인을 만나게 됩니다. 하얀 머리카락에 거무죽죽한 얼굴, 굽은 허리에 바싹 말라 가죽과 뼈만 앙상하고 이빨은 몽땅빠지고 지적지적 눈물과 콧물이 범벅인 얼굴의 노인을 만나니 태자는 충격을 받습니다.
다시 며칠 후에 태자는 남문으로 나들이를 나가게 되는데, 이번에는 성문 길가에 거적때기에 귀신 몰골을 하고 엉겨붙은 머리칼에 벌건 종기가 온몸에 불거지고, 종기에서는 더러운 피고름이 흘러내리며 자기가 토해 놓은 더러운 오물 위를 뒹굴고 있는 병자를 만납니다. 태자는 노인을 만났을 때처럼 ‘자신도 노인이나 병자와 똑같이 피할 수 없다’라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습니다.
또 다시 이번에는 마부 찬나의 손에 이끌려 이번에는 서문을 나서던 어느 날, 태자는 한 무리의 장례행렬을 만나게 됩니다. 머리를 풀어헤친 그들은 죽은 시체의 옷자락을 붙들고 하늘이 무너져라 울부짖고 있었지만,
아무리 소리쳐도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볼 수 없었고, 부귀와 권세를 누리던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태자는 동문에서 노인을 만나고 남문에서 병자를 만나고 서문에서 죽은 자를 만나고 나자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수심가득한 얼굴로 사색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러자 사촌들의 끈질긴 권유로 북쪽 성문을 나서게 되는데, 이때 태자는 너무도 평화로운 수행자를 만나게되자 중생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수행자로서의 삶뿐이라고 생각하며 출가를 결심하게 됩니다.
태자가 이러한 네 개의 문을 나서는 장면이 사문유관상입니다.
# 유성출가상
네 개의 성문으로 외출을 나가면서 피할 수 없는 인간의 고통을 본 태자는 숫도다나 대왕을 찾아가 출가의 결심을 밝힙니다.
“아버지, 저는 수행자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러자, 숫도다나 대왕은 화를 내며 태자의 출가를 반대하였습니다. 그리고 태자에게
“제발 마음을 돌려 이 나라, 이 가문을 생각해 다오. 네 소원은 무엇이든 다 들어줄테니,
출가하겠다는 말만은 말아다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자 태자는
“그러면 저의 소원을 들어주실 수 있다면 출가하지 않겠습니다.
영원히 젊음을 누리며 늙지 않게 해주세요.
그리고 영원히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죽지않고 영원히 살게 해주세요. 그러면 출가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이별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버지, 그러면 출가하지 않겠습니다.
이런 고통을 두 번 다시 겪지 않게 해주실 수 있다면 출가하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숫도다나 대왕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숫도다나 대왕은 태자의 경호를 두 배로 늘리고 성곽의 경비를 철저히 하며
길가에 노인이나 병자나 죽은 사람을 보이지 않게 했습니다.
태자가 스물 아홉이 되던 해, 태자는 성밖을 나가 출가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던 때 시종의 달려와서 야소다라 태자비가 아들을 낳았다고 알려주었습니다.
태자는 하늘을 보며 굳어진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라훌라가 태어났구나. 속박을 낳았구나.”
새로운 왕자가 탄생하자 칠일동안 떠들썩한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밤이 되자 태자는 태자궁에서 아쇼다라 태자비와 시녀,
태자를 감시하던 오백 장수들이 잠에 취해 있는 모습을 보고 마부 찬다를 깨워
깐타까 말을 타고 성문을 뛰어넘습니다. 강가에 이르자 태자는 칼을 꺼내 스스로 머리를 잘랐습니다.
그리고 태자는 자신을 머리를 장식하던 화려한 구슬과 몸에 지녔던 장신구를 하나하나 풀어
찬다에게 주었습니다. 마부 찬다는 눈물을 흘리며 태자의 의복을 가지고 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 일은 기원전 595년 2월 8일 태자가 스물 아홉 되던 해의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을 넘어 출가를 하게 되는 유성출가상에 대한 내용입니다.
[부처님이 자기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모습의 스투파의 조각상]
[부처님이 머리카락을 자르자 천신들이 부처님의 머리카락과 장신구를 들고가는 모습의 스투파의 조각상]
덤으로 제가 재미나게 찾아보았던 예전 티벳의 중심도시 라싸의 대조사,
소조사에 모셔진 불상의 사진도 보여주었습니다.
[ 라싸 소조사에 모셔진 8세 석가모니 부처님상, 대조사에 모셔진 12세 석가모니 부처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