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장. TDX 교환기 개발 이야기
― 우리 손으로 만든 교환기, 정보통신 독립의 신호탄
전화 대기자 수백만 명, 절박했던 1980년대 초
1980년대 초, 한국 사회는 급증하는 전화 수요에 직면해 있었다. 전화 한 대를 신청하고 설치되기까지 몇 년이 걸리는 일이 흔했고, 전국의 전화 가입 대기자는 백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전화국의 핵심 장비인 교환기의 대부분이 고가의 외국산 장비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런 구조로는 전화 보급 확대는 물론, 국가 통신망의 안정성과 자립성도 보장할 수 없었다.
전자식 교환기의 국산화는 단순한 기술 확보를 넘어, 정보통신 주권을 위한 절박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 속에서 시작된 도전이 바로 ‘TDX(Total Digital eXchange, 전전자식 디지털 교환기)’ 개발 사업이었다.
“전화는 우리 손으로” – TDX 개발의 시작
1981년, 정부는 ‘정보산업 육성 10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전자식 교환기의 국산화를 국가 전략 과제로 채택하였다. 개발 주체로는 한국전기통신공사(KTA, 현 KT)와 한국전자기술연구소(ERTI, 현 ETRI)가 선정되었고, 삼성전자, 금성사(현 LG전자), 현대전자 등 주요 민간 기업들도 개발 협력에 참여하였다.
개발 총책임자는 당시 ERTI 개발단장이었던 양승택 박사였다. 그는 “외국 기술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실정에 맞는 독자적 교환기를 개발해야 한다”며 기술 자립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 경험도 인프라도 부족한 상황에서 한국형 전자식 교환기 개발은 사실상 ‘맨땅’에서 시작되었다.
세계 10번째, TDX-1의 탄생
당시 한국은 전자식 교환기에 대한 기술적 기반이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개발자들은 어렵게 입수한 외국 기술 자료를 밤새워 분석했고, 회로 설계부터 제어 소프트웨어까지 기초부터 하나하나 직접 쌓아 올려야 했다. “국산화는 불가능하다”는 비관적인 시선도 많았지만, 개발팀은 기술 독립의 열망을 동력 삼아 한 걸음씩 전진해나갔다.
그 결실은 1984년 1월, TDX-1 시제품의 완성이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열 번째로 자체 전자식 교환기를 개발한 나라가 되었고, 같은 해 5월 경기도 용인 전화국에서 국산 TDX를 통한 첫 통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대한민국 정보통신 기술 자립의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진화하는 교환기 – TDX-1A에서 TDX-10까지
TDX는 단일 모델이 아닌, 지속적인 기술 개선과 현장 적용을 통해 점진적으로 발전해갔다. 주요 모델은 다음과 같다:
TDX-1A
TDX-1 기반의 시험용 모델로, 소규모 전화국에 도입되어 실증 테스트에 활용되었다.
TDX-1B
대도시 전화국 수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용량을 확대한 모델로, 본격 상용화를 위한 전환점이 되었다.
TDX-10
1987년 상용화된 대용량 디지털 교환기로, 전국 주요 전화국에 도입되었다. 안정성, 확장성, 운영 효율성 면에서 성숙한 시스템으로, 한국 유선 통신망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기술 진보는 단순한 모델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한국 정보통신 산업의 구조적 성장을 반영한 결과였다.
민·관·학 협력의 성공 사례
TDX 개발은 정부(정책), 공기업(운영), 연구소(개발), 민간 기업(생산), 학계(인재 양성)가 유기적으로 협력한 대표적 성공 사례였다.
한국전기통신공사(KTA): 교환기 운용 실무와 현장 테스트 주도
한국전자기술연구소(ERTI): 회로 설계, 제어 소프트웨어 등 핵심 기술 개발
삼성전자, 금성사, 현대전자, 대우전자 등: 시제품 제작 및 양산
국내 대학들: 전문 인력 양성과 연구 협력
중소기업들: TDX 부품의 국산화 참여로 산업 생태계 확대
이러한 협업 체계는 TDX 개발을 단순한 기술 개발이 아닌, 국가적 기술 독립 프로젝트로 승화시켰다.
TDX가 남긴 것들
전화 대기 해소
1980년대 중반 이후 TDX의 본격적인 도입으로 수백만 명에 달하던 전화 대기 수요가 빠르게 해소되었다.
외화 절감
고가의 수입 장비 대신 국산 장비를 사용함으로써 외화 유출을 막았고, 일부 장비는 해외 수출 가능성도 보여주었다.
기술 자립 기반 마련
TDX는 단순한 장비가 아니라, 한국이 정보통신 기술 수입국에서 기술 자립국으로 도약하는 전환점이었다. 이후 CDMA 이동통신, 초고속인터넷, 5G 기술로 이어지는 발전의 기반이 되었다.
기억에 남는 순간들
첫 개통식 (1984. 5)
용인 전화국에서 국산 TDX를 통한 첫 통화는 국가적 사건이었다. 성공을 확인한 개발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기쁨을 나누었다.
ERTI 연구소의 밤샘 작업
개발자들은 회로도와 코드 분석을 밤새 이어가며 시험과 실패를 반복했다.
‘혈서 전설’의 진실
흔히 알려진 ‘혈서’는 실제로는 개발팀이 체신부 장관에게 기술 독립을 위한 각서를 공동 제출한 것이며, 양승택 박사에 따르면 후에 과장되어 ‘혈서’로 전해지게 되었다.
외국 사절단의 방문
TDX 개발 성공은 아시아와 중동 국가들에까지 알려졌고, 한국의 통신 기술을 견학하려는 외국 사절단이 줄을 이었다. 일부 국가는 실제 도입 협상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 이후 – 기술 독립의 씨앗에서 미래 통신의 밑거름으로
TDX는 1990년대 후반부터 IP 기반의 차세대망(NGN, Next Generation Network)으로 점차 대체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통신망 심장’으로 기억된다.
TDX 프로젝트는 장비 개발을 넘어, 한국 정보통신 기술의 근대화와 자립화를 이끈 결정적 분기점이었다.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기술 종속에서 기술 주도국으로.
그 출발점에 바로 TDX가 있었다.